1타 강사
‘미스터 트롯’ 경연에도 참가했던 수학 ‘1타 강사’ 정승제씨가 얼마 전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다. 진행자가 “6층짜리 건물이 있고 직원이 70명 정도 된다”고 소개하면서 연 수입을 묻자 “미국 메이저리거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고 답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강의료, 교재 인세, 유튜브 수익 등을 다 합하면 이 1타 수학 강사의 수입은 메이저리그에서도 고액 연봉군에 속하는 연간 수백 억원일 것이라고 학원가에서는 추정한다.

▶학원가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강사를 ‘1타 강사’라고 부른다. ‘1등 스타 강사’ 내지는 ‘1번 타자 강사’를 줄인 말이다. 2000년대 들어 강사 한 명이 동시에 전국의 수만 명에게 강의할 수 있는 ‘인강(인터넷 강의)’ 시대가 열리면서 사교육 시장은 무한 경쟁, 승자 독식 구조가 됐다. 귀에 쏙쏙 꽂히게 강의 실력이 뛰어나야 하는 것은 물론, 연예인 같은 외모와 입담도 중요하다.
▶피 말리는 경쟁 속에서 승자로 등극한 극소수 1타 강사는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기업’이다. 3년 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320억원짜리 건물을 누군가 대출 없이 현금으로 구입해 화제가 됐다. 그 큰손은 스탠퍼드대 수학과 출신의 1988년생 1타 강사 현우진씨였다. 사회탐구 영역 1타 강사로 손꼽히는 이지영씨는 “2014년 이후 연봉이 100억원 이하로 내려가 본 적이 없다”면서 130억원이 넘게 찍힌 은행 잔액을 공개했다. 부동산, 주식 자산은 포함하지도 않은 주거래 은행 통장 잔액만 그 정도였다.
▶대장동 게이트 와중에 국민의힘 대선 예비 후보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대장동 1타 강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민·관 개발의 외피를 쓰고 소수가 수천 억원을 챙겨간 대장동 게이트는 등장인물도 많고 내용도 복잡해서 일반인이 속속들이 전모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 복잡한 걸 원 후보가 학원 선생님처럼 소매 걷어붙이고 칠판에 글씨 쓰고 점 찍고 동그라미 쳐가며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띄웠다. 많은 사람이 그 유튜브를 보고 대장동 게이트를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수포자(수학 포기)’ 수험생들에게 1타 수학 강사는 수학 공부도 도전해볼 만하다고 마음먹게 해주는 동아줄 같은 존재다. ‘정포’(정치 포기) 국민이 정치권에 기대하는 1타 강사는 그저 어렵고 복잡한 사안을 쉽게 설명해주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국민에게 실타래처럼 얽힌 국정 현안의 해법을 제시하는 ‘1타 리더십’을 보고 싶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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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법의 역설
"세상이 밉습니다." 2010년 지방에서 시간강사를 하던 박사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 '스트레스성 자살'이라고 썼다. 10년 넘게 시간강사로 일하며 논문 54편을 지도교수와 그 교수의 제자 이름으로 대필했다고 한다. 교수에게 밉보이면 6개월마다 계약하는 시간강사 자리나마 보전하기 어려워 '노예 같은 삶'을 살았다고 했다. 강의 시급 3만3000원에 월 100만원가량 박봉도 힘겨웠을 것이다.
▶시간강사가 자신을 자조적으로 부르는 말이 '유령' '보따리 장사'다. 정해진 연구실도 없고 이 대학 저 대학을 옮겨 다니며 강의하느라 대학에서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는 존재라는 뜻이다. 전국에서 시간강사 7만6000명이 대학 강의의 22%쯤을 맡고 있다. 대학마다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1000명이 넘는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에 따르면 보통 1주일에 6시간 강의하는 사립대 시간강사가 퇴직금까지 포함해 받는 연봉이 900만원 수준이다. 주당 9시간을 강의해야 연봉 1350만원을 받는다. 10년 공부해 박사 학위를 땄다는 한 시간강사는 "가방끈 긴 '거지'가 시간강사"라고 했다.

▶앞서 말한 시간강사의 죽음을 계기로 2011년 강사법(고등교육법)이 개정됐다. 그 후 세 차례나 시행이 유예되다 지난달 개정안이 다시 국회를 통과했다. 내년 8월부터 교원 지위가 법적으로 보장돼 4대 보험 혜택을 받고, 1년 이상 강의하면서 3년간 강사직을 유지할 수 있다. 수업이 없는 방학에도 같은 임금을 받는다. 적어도 유령 신분은 벗게 된 셈이다.
▶그런데 법 통과 한 달도 안 돼 이 강사법이 오히려 시간강사의 목줄을 죄는 역설적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재정난에 빠져 있는 대학들이 시간강사를 대량 해고하거나 강좌 수 축소, 교수 강의 증가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들은 지난 10년간 등록금 인상이 동결된 데다, 인구 감소로 입학 정원까지 줄어 어쩔 도리가 없기도 하다. 시간강사의 30% 이상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처음부터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 했다. 최저임금 사태, 주 52시간 사태가 다 마찬가지다. 아직 받아들일 능력이 안 되는데 강제로 밀어붙이면 도우려 했던 약자가 오히려 더 피해를 보는 역설이 벌어진다. 이 정부는 이런 부작용이 벌어지면 국민 세금으로 '쉽게' 해결한다. 음식점 주인에게도, 택시 기사에게도, 전등 끄기 알바에게도 세금을 퍼준다는데 시간강사라고 안 될 일이 뭐냐고 할까.
-박은호 논설위원, 조선일보(1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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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학원 강사
작년 12월 16일과 17일, 31세 스타 강사 H씨가 부산과 대구에 떴다. 대형 콘서트홀을 메운 학생들 앞에서 그야말로 공연하듯 수학 강의를 했다. 4부에 걸쳐 진행된 행사에서 H강사는 기출 문제를 분석하고 출제 경향을 예상한 후 수험생 고민 상담과 격려 시간도 가졌다. 마지막엔 참석 학생들에게 무료로 나눠준 학습플래너에 친필 사인을 해주는 순서도 있었다. 콘서트는 사전 예약 3일 만에 전석이 마감됐다고 한다.
▶H 강사가 서울 강남의 300억대 빌딩을 구입했다고 해서 화제다. 그는 강남에 또 하나의 빌딩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출신인 그는 수강생의 집중도를 유지시켜 가는 강의법으로 평가받는다. 딱딱한 수학 강의를 풍부한 유머와 비유를 섞어 끌어간다는 것이다. 외모도 훤칠하다. 몇 년 전부터 서울 대치동 학원가를 사로잡은 그는 수험생들에겐 아이돌 스타나 다름없다.

▶과거엔 좁은 의자에 수백 명이 걸터앉아 잘 돌아가지도 않는 선풍기 밑에서 공부하던 것이 학원 강의실 풍경이었다. 수강생은 많아야 수백 명 정도. 2000년대 초 온라인 강의가 시작되면서 강의 풍경과 내용이 확 바뀌었다. 강사 한 명이 수십만 명을 가르칠 수도 있게 됐다. 그러면서 1년에 100억원 이상씩 번다는 이른바 '1타 강사'들이 생겨났다. 야구의 1번 타자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1타 강사'를 이렇게 소개한 적이 있다. "강의 능력에 따라 돈을 받는다. 수강생의 성적이 안 좋으면 강사는 해고되거나 정직에 처해진다." 한국 사교육은 강의에 가격을 매기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유능하면 돈 벌고 실력 없으면 도태된다. 학교 교육에선 상상할 수 없는 성과주의가 적용된다.
▶스타 강사들은 전속 코디네이터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두고 있다. 시즌마다 성형수술 받기도 하고 꼭 명품 옷을 입고 나오는 강사도 있다. 만화 공주 주인공 의상을 입고 강단에 서기도 한다. 학생들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중요해서일 것이다. 이들한테는 교재 연구, 강의 보조 등을 하는 전속 스태프들도 딸린다. 그렇게 해서 한 해 수십억, 수백억을 벌어들이는 스타 강사는 한 명 한 명이 각각의 중소기업이나 다름없다.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다는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현상이다. 교육부 올해 예산이 68조원이다. 그 어마어마한 돈을 쓰면서 공교육은 뭘 하고 있는 건가.
-안석배 논설위원, 조선일보(18-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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