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일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신성일이다'라는 자존심 하나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는 영화계 후배들에게 늘 "돈 없어도 폼 나게
살아라. 자존심 없는 사람은 영화 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신성일 회고전이 열렸다. 작품
상영 후 관객들과 대화하는 1시간 내내 그는 의자에 앉지 않고 꼿꼿이 서 있었다. 끝난 뒤 그는 "신성일이
'가오'가 있지, 암 걸렸다고 앉아있을 수 있느냐"고 했다.
▶정치에 입문했던 것도 "정치인은 큰 꿈을 꾸는 장부(丈夫)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그러나 "누구 편에 줄서기 해야
공천받고 간까지 다 빼줘야 하니 정말 하기 싫었다. 삼류 짓이었다"며
정계를 떠났다. 뇌물 수수죄로 감옥에 다녀온 뒤엔 "군
출신들이 별 자랑을 하면 나는 '그까짓 별 몇 개가 아니라 은하수를 가진 스타였다'고 맞받아쳤는데 이제 '감옥 별'까지
얻었다"고 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던 경북고 2학년 때 어느 날 집에 들이닥친 빚쟁이들이 달아난 어머니를
찾아내라며 신성일을 집단 폭행했다. 그때 그는 '이 세상은
나 혼자이며 아무도 날 돌봐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후
그는 어머니가 늘 들려주던 일본 속담 "기회는 앞머리털이다.
왔을 때 정면으로 움켜잡으라"를 신조로 삼고 살았다. 스물두 살에 신상옥 감독이 준 '신인 배우'란 기회를 정면으로 움켜쥔 그는 한국 영화를 대중문화 영역으로 확장한 최초의 톱스타였다.
▶2011년 펴낸 자서전에서 그는 '사랑'을 고백했다. 서른세 살 때 아나운서 출신 미국 유학생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일등석에서 사랑을 나눴다는 그의 고백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비난이 쏟아지고 광고 섭외가 끊겼다. 그는 나중에 "여자의 아름다움에 나는 속수무책이다. 남자들이 말 못 할
것을 대신한 것이다. 내가 한 일에 대해 나는 책임을 진다"고
말했다.
▶작년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뒤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힘이 빠져 풀 죽은 얘기 하는 걸 들으려고 왔다면 어림없는 소리"라고
일갈했다. 한 달 전만 해도 부산영화제 레드카펫에 청바지와 더블 재킷을 입고 나타나 환하게 웃었다. 그런 그가 4일 이른 새벽 조용히 떠났다. 아프거나 힘들다고 단 한 번 말하지 않았다. 그는 '맨발의 청춘'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 영화 주제가처럼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 살아온 사내들의 시대였다. 그
시대가 저무는 것 같다.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18-11-05)-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國內-이런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내가 누군지 알아?"] "So what?(그래서 뭐 어쨌다고?)" (0) | 2018.11.13 |
|---|---|
| [김동길 인물에세이 100년의 사람들] (48) 장기려(1911~1995): "정말 김일성의 맹장 수술을 하셨습니까?" (0) | 2018.11.10 |
| [김동길 인물에세이 100년의 사람들] (47) 최인호(1945~2013): "소설로 젊은이들 열광케 하고... 그는 '별들의 고향'으로 갔다" (0) | 2018.11.04 |
| [페미사이드(Femicide)] '피해자에게 처벌 의사 묻지 마라' '국가가 가해자다' (0) | 2018.10.31 |
| [당신이 엊그제까지 하던 게 '광기 어린 공격'] [공지영의 침묵, 강용석의 막말] ['점' 유감] 기나긴 거짓말 공방에 '신체 특징'이란 말이.. (0) | 2018.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