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 신복룡]
[가야산(伽倻山)(충남 예산)]
이야기보따리 신복룡
매주 신문에 칼럼 쓰는 일은 야구에서 투수가 던지는 볼 배합에 비유하고 싶다. 변화구를 던질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슬라이더, 또는 체인지업을 던진다. 어쩌다가 한 번씩은 강속구도 필요하다. 같은 공을 계속 던지면 두들겨 맞기 때문이다. 관건은 채담(採談)이다. 다양한 차원의 이야기를 채취해서 저장해 놓는 채담가(採談家)의 기능을 항상 수행하고 있어야만 다양한 공을 던질 수 있다. 독서와 유적지 현장 답사도 채담가의 임무이지만 강단과 강호에서 이야기보따리를 가지고 있는 고수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한다.
근래에 한 번씩 찾아 뵙는 신복룡(78) 선생도 채담가의 생존 본능을 충족해 주는 이야기보따리를 가지고 있는 분이다. 대학에 있다가 정년퇴직했지만 구한말의 동학과 개화기에서부터 시작하여 해방 전후의 좌우익 충돌에 이르는 인간 군상, 혈연과 지연, 학맥과 풍습에 대해서 해박하다. 신 선생 당신도 대단한 채담가이자 문필업자인 것이다. 이 양반이 30대 중반인 1977년부터 매일 아침 7시 시작하는 5분짜리 라디오 프로에 출연하였다. 그날그날의 역사, 오늘이 무슨 날, 절기이고, 누가 죽고 누가 태어났는가 등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프로였다.
어느 날 방송국 사장이 환한 표정으로 신복룡을 격려하였다. "매일 아침 박정희 대통령이 이 프로를 즐겨 들으신다. 청와대 뒤의 인왕산을 산책하는 아침 시간에 수행 비서로 하여금 꼭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휴대하게 한다. 신복룡 프로를 듣기 위해서이다. 들을 만하다고 칭찬하셨다." 박통 칭찬 이후 곧바로 방송국 사장은 신복룡의 방송 대본료를 2배로 대폭 올려 주었다. 대학 시간강사 시절에 이 돈은 큰돈이었다고 한다. 이 사정을 몰랐던지 프로 담당 국장이 바뀌면서 신복룡의 프로를 중단시켰다. 그랬다가 국장이 혼쭐났다. "각하가 즐겨 듣는 방송인데!" 사흘 만에 다시 방송을 시작했다. 당시 3년간의 방송 출연료(대본료)를 모아서 왕십리에 단독주택을 살 정도였다. 집 한 채는 살 수 있어야 프로페셔널 매설가라 할 수 있다.
이야기보따리 신 선생이 최근에 구한말 서양인들이 조선을 구경하고 쓴 '한말 외국인 기록' 11책 23권(집문당)의 개정판을 냈다. 각주까지 달려 있는 번역서이다. 여기서 유대계 독일인 오페르트가 쓴 '금단의 나라 조선'이 흥미로웠다. 파렴치한 도굴범 수준을 뛰어넘는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당시 조선을 기록하고 있다.
-조용헌, 조선일보(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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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伽倻山)
조선·대한제국의 근대사를 뒤돌아보게 하는 그 곳이 있는 산..

충남 서산시 운산면과 해미면, 예산군 덕산면 경계에 있는 산(678m). 충남 서부 지역에서 제일 높다. 신라 시대부터 명산으로 알려져 일찍부터 이곳을 서진으로 삼았었다. 가야산으로부터 북쪽으로 난 산능선을 따라가면 해미면 산수리에서 석문봉(石門峰)이 되는데, 석문봉이라 불린 것은 마치 커다란 문을 열어 놓은 듯한 모양으로 보이는 데서 유래되었다. 다시 북으로 운산면에 이르러서는 상왕산(象王山)이 된다. 석문봉은 다시 서쪽으로 황락리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며, 해미읍내에 이르러 정산(停山)이 되는데, 이 산은 해미면사무소의 뒷산이 되며 산 아래에는 해미읍성이 있다.
가야산에는 일락사가 있으며 주변에 많은 문화 유적을 간직하고 있고 자연 경관이 빼어나다. 특히 기암과 능선을 따라 피어있는 진달래와 억새풀이 유명하다. 또 가야산의 원효봉에는 KBS 중계소가 자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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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군(南延君)묘:
남연군 이구(南延君 李球, 1788~1836)는 조선 시대 후기의 문신, 왕족으로 이름은 구(球), 자는 치수(稚受)이며 원래 이름은 채중(采重) 또는 채중(寀重). 시호는 영희(榮僖)·충정(忠正).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이며, 고종황제의 할아버지이다. 원래 인평대군의 6대손이나 뒤에 아들 없이 사망한 사도세자의 넷째 서자 은신군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살아생전 행적 보다 사후 그 무덤이 독일의 상인 에른스트 오페르트(Ernst Jakob Oppert) 일행에게 훼손당한 사건으로 유명한 인물.
철종실록에 의하면 그는 모범적 왕족의 한 사람으로 지명되었지만, 근무지 이탈 및 양자로 입양되었음에도 생가 근처에서 생활한 일, 권력남용 등으로 지탄을 받아 순조실록에 기록되었다. 인평대군의 6대손이자 능창군의 7대손으로 왕위 계승권에서는 멀었으나 그가 은신군의 양자가 되면서 계동궁의 상속권 및 왕위 계승권에 근접하게 되었다.

남연군묘는 우리 나라 근대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조선과의 통상 교섭을 요구했던 서구 열강들이 실권자인 대원군에 의해 모두 실패하자 급기야 1868년 4월 21일 야음을 틈타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묘를 도굴하기 시작한다. 대원군의 강력한 권한이 아버지 묘가 명당에 묻혔기 때문이라는 조선 천주교도인들의 말에 미국인 잰킨스를 자본주로, 프랑스인 페롱을 통역관으로 삼아 약 100여명의 중국청년을 러시아병사로 위장하여, 조선 천주교도인들의 안내로 저지른 남연군묘 도굴 사건이다.
이 사건을 주도한 유태계 독일인 오페르트 일당은 남연군묘를 파헤쳐 흥선대원군의 기세를 꺾고, 유골을 확보함으로서 개방에 대한 최고의 협상카드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무덤은 단단한 석회석으로 다져 놓았기 때문에 쉽게 파지 못했고, 조수(潮水) 시간 때문에 철수함으로서 실패하고 만다. 이 소식을 접한 대원군은 부모도 모르는 천인공노할 오랑캐들과는 상종할 수 없다며 척화비를 세우고 더욱 강력한 쇄국정책을 시행하였다. 또 천주교인들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천주교박해를 강화하였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무려 8천명이 넘는 천주교 신자들을 학살한 사건의 계기가 된 것이다. 결국 이것은 풍수사상 때문에 생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風水思相 관련한 남연군 묘: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이 죽자, 지관(풍수)은 2대에 걸쳐 황제가 나올(二代天子之地) 가야산 동쪽의 땅과 만대에 영화를 누릴(萬代榮華之地) 광천 오서산을 지목하였다. 두말할 것 없이 흥선군은 가야산을 택하였다. 그런데 명당으로 지목한 자리는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다. 흥선군은 연천에 있던 아버지의 묘를 임시로 탑 뒤 산기슭으로 옮기고 절을 불태우고 탑을 부순 후, 이곳에 묘를 썼다. 7년 후 흥선군은 차남 명복을 얻었고, 이가 곧 후사가 없던 철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황위에 오른 고종이다. 아들이 왕이 되자, 불태운 가야사에 사죄하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남연군묘 아래쪽에 보덕사를 세우고 원당 사찰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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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근대사연표:
1866 병인(천주교)박해, 제너럴 셔먼호 사건, 병인양요
1868 오페르트 도굴사건
1871 신미양요, 척화비 건립
1875 운요호 사건
1876 강화도 조약(상호조규부록, 조일통상장정), 1차 수신사 파견(김기수)
1880 2차 수신사 파견(김홍집-조선책략유포), 통리기무아문
1881 신사유람단, 별기군 창설, 영선사, 영남만인소
1882 조·미 수호통상조약, 임오군란(제물포 조약, 상민수륙무역장전), 독일·영국 조약 체결
1883 원산학사, 한성순보, 전환국
1884 조·러 수호통상조약, 갑신정변(한성조약, 텐진조약(1885)), 우정국
1885 거문도사건(영), 중립론
1886 육영공원
1888 조·러 육로통상조약
1889 방곡령
1892 교조신원운동
1894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1895), 갑오개혁
1895 을미개혁, 삼국간섭, 을미사변, 을미의병
1896 아관파천, 독립협회
1897 대한제국(광무개혁)
1898 헌의 6조-관민공동회(독립협회)
1899 대한국국제 9조, 경인선 개통
1902 1차 영·일 동맹
1904 러·일 전쟁(~1905), 한일의정서, 보안회, 1차 한·일협약(고문정치:재정-메가다(일), 외교-스티븐스(미))
1905 카스라·테프트 밀약, 2차 영·일 동맹, 포츠머스 조약, 2차 한·일 협약(을사조약, 통감정치), 을사의병
1907 국채보상운동, 군대해산, 헤이그 특사 파견, 고종강제퇴위,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 차관정치), 신민회
1908 서울 진공 작전, 동양척식주식회사
1909 기유약서, 안중근 의거, 간도협약
1910 국권침탈, 조선총독부, 성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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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집권부터 한일합방 연표:
1863년
금위영(禁衛營)군졸들, 받은 녹미(祿米)의 질 문제로 소요. 동학 교조 최제우 체포되고, 남해에 민란. 흥선군을 대원군(大院君)으로 봉하고, 대왕대비 조씨가 수렴청정을 시행.
1864년
북인(北人)·남인(南人)을 등용하고, 비변사(備邊司)와 의정부(議政府)의 업무분장. 최제우, 대구에서 사형. 김정호, 대동지지《(大同地志)》완성. 1865년 통제중군(統制中軍) 설치. 찬집소(纂輯所) 설치. 《대전회통(大典會通)》 편찬, 《양전편고(兩銓便攷)》 등과 함께 완성.
1866년
대왕대비의 수렴청정 끝내고 왕에게 환정(還政). 민치록(閔緇祿)의 딸이 왕비가 됨. 미국 상선 제네럴 셔먼호(號), 군민 (軍民)에 의해 불탐. 척사윤음(斥邪綸音) 발표. 프랑스 함대, 양화진(楊花津)에 내침. 해군대령 올리비에가 이끄는 프랑스군, 재차 내침, 강화도 점령, 양헌수(梁憲洙) 등이 대파.
1867년
서울 각 성문에서 통과세(通過稅) 징수. 신관호(申觀浩)가 수뢰포(水雷砲)를 만듦. 경복궁의 근정전(勤政殿)˙경회루(慶 會樓) 완공.
1868년
당백전(當百錢)의 통용을 명령.
1869년
전라도 광양현(光陽縣)에서 민란 발생. 대원군의 명에 좇아 전국 8도(八道) 4도(四都)에 원납전(願納錢) 납입을 독촉.
1870년
일본주재 독일공사 브란트, 일본 외무서기 하나부사[花房義質] 등 군함 헬타호(號)를 타고 부산에 입항, 통상을 요구, 거절당하자 귀국. 청국인 7,000여 명이 평안도 후창군(厚昌郡) 일대에 침입, 벌목을 시도하다 축출됨.
1871년
사액(賜額) 서원 47곳만 남기고 전국의 서원을 철폐.
1873년
선혜청(宣惠廳) 별창(別倉)에 화재. 최익현(崔益鉉), 대원군을 배척하고 시폐(時弊)를 논단하는 상소로, 호초참판에 특임. 소사(疏辭)가 과격하다 하여 제주에 유배. 국왕, 친정 선포(대원군 실각).
1874년
강화도 연안 포대 축조 완성. 일본의 정한설(征韓說)로 각 군영(軍營)에 엄중경계령 내림. 병조판서 민승호(閔升鎬)의 침실 화약 폭발로 일가족 폭사. 달레(프랑스 신부)의 저서 최초의 《한국교회사》 발간.
1875년
울산에서 민란 일어남(29일 진압). 왕이 경복궁으로 옮기고, 양주(楊州)에서 은거하던 대원군 운현궁으로 환거. 일본 군 함 운요호를 포격, 퇴각.
1876년
최익현(崔益鉉), 척사소(斥邪疏)로 일본과의 통상조약에 반대, 흑산도에 유배. 불평등조약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 강화도조약˙병자수호조약)에 조인. 경복궁에서 실화로 열조 어필(列祖御筆)·대보(大寶) 등 소실.
1877년
제생의원(濟生醫院), 종두(種痘) 실시. 천주교 조선교구 주교 리델(프랑스인) 및 두새·로베르 신부 등 체포.
1878년
청의 요청으로 리델 등 프랑스 신부를 베이징으로 귀환 조처. 일본 대리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가 부산해관의 철폐를 요구하는 무력시위 감행.
1879년
강수관(講修官) 홍우창(洪祐昌), 일본 대리공사 하나부사와 원산개항예약 의정서(議定書)에 조인.
1880년
김홍집(金弘集)을 일본수신사(日本修信使)에 임명. 원산에 일본 영사관 개관. 하나부사, 일본 국왕의 친서(親書) 고종에 게 전달. 삼군부(三軍府) 폐지하고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을 설치. 《동경대전(東經大典)》 등 출간. 지석영, 종두(種痘) 실시.
1881년
박정양(朴定陽) 등 10여 명을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에 임명.
별기군(別技軍)을 두고 신식군사훈련을 실시.
1882년
조미(朝美)수호조규·조영(朝英)수호조규 조인. 원산·부산·인천 개항. 5월, 조독(朝獨)수호통상조약 조인. 군인들, 급료 체불과 급여양곡의 변질˙정량부족 등에 격분, 난동(壬午軍亂). 대원군, 원군으로 들어온 청군에 의해 납치, 청국으로 호송. 7월, 제물포조약 및 수호조규속약(修好條規續約) 체결. 박영효(朴泳孝)를 일본특사 겸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선중에서 태극기를 고안).
1883년
태극기를 국기로 정함.
당오전(當五錢)을 주조. 초대 미국공사로 푸트 착임, 수호조규(修好條規)를 비준·교환. 기기국( 機器局)을 새로 설치. 최초로 영어교육 실시. 조영(朝英)수호통상 조약, 조독(朝獨)수호통상조약 조인.
1884년
부산~나가사키[長崎] 간 해저전선 개통. 우정총국(郵政總局) 개설. 이탈리아 및 러시아와 수호조규에 조인.
개화당 일파 , 수구당 민씨 일파를 죽이고 새 정부를 조직(甲申政變). 5개조항으로 된 한성조약 체결.
1885년
광혜원(廣惠院)을 설립, 미국인 의사 알렌 진료 실시. 영국함대 거문도를 불법점령.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 등 내한. 최초의 개신교회(소래교회) 창립. 배재학당(培材學堂) 설립. 대원군 귀국. 《한성주보》 발간.
1886년
이헌영을 초대 주일공사에 임명. 서대문 밖에 수력화약공장(水力火藥工場) 건설. 스크랜튼, 최초의 여성교육기관 설립( 梨花學堂). 한불수호조규(韓佛修好條規) 조인. 언더우드, 학당 개설(儆新學校).
1887년
거문도 점거했던 영국 함대 철수(1885~). 광무국(鑛務局) 설치. 최초의 감리교회 정동교회(貞洞敎會) 창립. 김홍집(金弘集)을 좌의정 겸 총리내무부사(總理內務府使)에 임명. 새문안교회 창립. 상공회의소 개설.
1888년
이화학당에서 최초로 주일학교(主日學校) 시작. 군제 개편, 삼남지방에 큰 흉년.
1889년
함북 길주(吉州)와 강원 정선군(旌善郡) 등지에서 민란 발생. 유길준(兪吉濬)의 《서유견문록(西遊見聞錄)》 완성. 언더 우드, 조선야소교서회(朝鮮耶蘇敎書會:현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부산에 최초의 기선회사 설립.
1890년
부산·인천의 25객주(客主)를 철폐. 침례교회 선교를 시작. 커피˙홍차 등이 소개되고 서양의 배˙사과˙복숭아 등이 원산(元山)˙길주(吉州)˙대구(大邱) 등지에서 재배 시작.
1891년
제주민란 발생.
1892년
일본 어선, 제주 성산포(城山浦)에 상륙, 민간인을 살해하고 부녀자 폭행. 정부, 김옥균(金玉均) 암살계획을 세워 이일식(李逸植) 등을 일본에 파견. 현대식 화폐 주조.
1893년
동학교도 2만여 명, 충청도 보은군(報恩郡) 장내(帳內)에 모여 척왜척양(斥倭斥洋)·창의(倡儀)의 기치 아래 농성시위 계속. 지석영(池錫永), 교동(校洞)에 우두보영당(牛痘保謁堂)을 설립. 중림동(中林洞) 약현성당(藥峴聖堂) 준공. 전봉준( 全琫準) 등 학정 시정을 진정. 최초로 전화기 들여옴. 최초의 시계포, 구리개(을지로入口)에 등장.
1894년
김옥균, 상하이에서 홍종우(洪鍾宇)에게 암살당함. 갑오경장(甲午更張)의 시작. 과거제도 폐지. 15일, 김홍집내각 성립. 경북 안동(安東)에서 서상철(徐相轍) 의병 봉기(최초의 反日의병운동). 동학교주 최시형(崔時亨), 무장봉기 선포. 홍범 십사조(洪範十四條)와 독립선고문을 종묘에 고함.
1895년
동학운동 주모자 전봉준 등 사형. 을미개혁(乙未改革) 단행, 재판소(법원) 구성법 등 34건의 개혁안 의결. 군제(軍制)개혁도 단행, 훈련대 등 설치. 일본공사 미우라[三浦梧樓] 부임. 소학교령(小學校令) 공포. 8월, 명성황후(明成皇后:閔妃)를 시해한 을미사변(乙未事變) 발생. 제3차 김홍집내각 성립.
1896년
연호 건양(建陽)·태양력 사용(음력 1895.11.17). 이범진(李範晋)·이완용(李完用) 등 고종 및 왕세자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俄館播遷). 서재필, 《독립신문》 창간.
1897년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침. 국호(國號)를 대한제국(大韓帝國), 왕의 호칭을 황제로 정함.
1898년
한성전기회사(漢城電氣會社) 설립. 2월 9일, 독립협회, 종로 네거리에서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개최. 22일, 흥선대원 군(興宣大院君) 죽음(5월 국장). 동학교주 최시형(崔時亨) 처형. 농상공부(農商工部)에 철도사(鐵道司) 설치. 《제국신문(帝國新 聞)》 순한글 신문으로 창간. 《황성신문(皇城新聞)》(일간) 발행. 서울 종현(鐘峴)에 천주교회당 건립.
1899년
정선(旌善)·제주 등지에서 민란 발생. 광제원(廣濟院) 개설. 서울에서 전차 운행 시작. 대한국 국제의정(國制議定)을 반포. 경인선(京仁線:인천~노량진간) 완성(33.2km). 《독립신문》 폐간.
1900년
만국우편연맹 가입. 의사˙약제사˙약품순시 규칙 등 공포. 한성전기회사(한˙미인 공동경영)가 최초로 종로에 가로등 3 개 가설. 한강철교 준공, 경인선철도 완전 개통. 태극기 규정발표(흰 바탕에 長2자, 廣1자 8치, 태극은 지름 7치에 청˙홍색).
1901년
신식 화폐조례(貨幣條例) 공포, 금본위제도(金本位制度) 실시. 최초의 안남미 수입. 흥선대원군을 왕으로 추봉. 활빈당원 하원홍(河元泓) 등 참형. 혜민원(惠民院) 설치. 강일순(姜一淳), 증산교 창시.
1902년
갑산(甲山) 동광(銅鑛)의 갱도(坑道) 무너져 광부 600여 명 참사. 일본제일은행 부산지점, 1원권을 발행, 한국에서 강제유통시킴. 이상재(李商在) 등 개혁당 사건과 관련, 구속. 황제등극 40주년 칭경식(稱慶式)을 거행. 국가(國歌)를 처음 제정. 제1차 하와이 이민단 100여 명 출발.
1903년
개성~평양간 전화 개통. 주한 외국공사들, 러시아 공사관에서 비밀회담. 장지연(張志淵) 《대한강역고(大韓疆 域考)》 등 편찬.
1904년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 조인.
의주(義州)를 개방.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특파대사로 내한. 8월 18일, 송병준(宋秉畯) 등, 유신회(維新會) 조직. 일진회(一進會)로 개칭. 제1차 한일협약(韓一協約) 체결. 원직(元稷)˙나유석(羅裕錫), 보부상을 규합, 진명회(進明會) 조직(12월 共進會와 통합). 미국인 천일외교관 스티븐스, 외교고문에 임명. 대한적십자사발족, 세계적십자사에 가맹.
1905년
일본 독도(獨島)를 강점, 다케시마[竹島]로 명명. 황제, 러시아 정부에 밀서. 이용익(李容翊), 보성학교(普成學校) 설립(고려대학). 일본특파대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내한. 박제순과 일본공사 하야시[林權助], 제2차 한일협상조약(乙巳條約) 조인. 손병희(孫秉熙), 동학(東學)을 천도교(天道敎)로 개칭. 일본, 한국통감부(統監府) 및 이사청(理事廳)관제 공포 시행. 초대 통감에 이토 히로부미가 부임.
1906년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입국. 엄비(嚴妃), 진명(進明)여학교 설립. 최익현(崔益鉉)˙신 돌석(申乭石) 등 의병 일으킴. 일본 경찰, 경운궁(덕수궁)의 경비권을 강탈. 최익현˙임병찬 등 9명 대마도에 유배. 《한성신보》 폐간. 통감부의 기관지로 《경성일보(京城日報)》 창간. 지방행정구역 개편(13도 11부 333군으로 개편). 한국 최초의 기념우표 발행. 19일, 가톨릭교 주간지로 《경향신문》 창간. 최초의 소년잡지 《소년한반도》( 창간. 최초의 전국적 호구조사 실시.
1907년
서상돈(徐相敦) 등,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 이완용(李完用) 내각 성립, 한글판 《대한 매일신보》 창간. 헤이그밀사사건(李儁 분사). 총리대신 이완용, 황제에게 양위를 강요.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丁未七條約) 및 비밀부 각서 조인. 군대해산 조칙(詔勅) 발표. 연호를 융희(隆熙)로 함. 경운궁에서 순종, 황제 즉위식. 서울에서 최초의 박람회 개최(~11.15.).
1908년
청진항(淸津港) 개항. 관립한성고등여학교(현 京畿女高) 설립. 부산역 개설. 전명운(田明雲)˙장인환(張仁煥),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티븐스 사살. 안창호(安昌浩) 등 대성학교(大成學校) 설립. 최남선(崔南善), 최초의 월간종합지 《소년(少年)》 창간. 최초의 신극 이인직(李仁稙)의 《은세계》, 원각사에서 공연. YMCA회관 개관식 거행.
1909년
나철(羅喆), 대종교(大倧敎) 창시. 미주(美洲) 한국인단체들, 통합해 국민회로 발족, 《대한민보(大韓民報)》 창간. 10월 24일, 안중근(安重根),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창립. 최초의 서양 화가 고희동(高羲東), 화가로 데뷔.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여순(旅順)감옥에서 사형당함. 총리대신 이완용, 조중응(趙重應)과 통감 데라우치[寺內正 毅]를 방문 합방에 관한 각서 교부. 이완용·데라우치, 한일합병조약에 조인. 총독에 데라우치 통감이 임명. 데라우치 총독 암살계획을 추진중이던 안명근(安明根) 체포. 105인 사건으로 확대되어 12년에 윤치호(尹致昊) 등 신민회원 120여명 기소.
-자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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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伽倻山)(충남 예산)] 조선·대한제국 종극(終極)의 먼 출발점-남연군묘(墓)가 있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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