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간접 테러 지원국'] '범인을 아는 완전 범죄'.. 말레이시아는 북 테러를 간접 지원한 결과가 아닌가

뚝섬 2019. 4. 3. 07:40

파키스탄 첫 여성 총리를 지낸 부토가 2007년 선거 유세 도중 자살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재집권을 노리던 유력 정치인이 암살된 사건인데도 당국은 검시(檢屍)도 없이 시신을 서둘러 매장했다. 진상은 미궁에 빠졌다. 유엔이 독립 수사에 나설 정도로 파키스탄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었다. 르완다의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1994년 암살된 사건도 지금껏 오리무중이다. 이웃 나라 부룬디의 대통령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가다 격추됐는데 누가 그랬는지 밝혀진 게 없다. 다만 그 뒤 투치족에 대한 후투족의 '르완다 대학살'이 시작됐을 뿐이다. 석 달 남짓 100만명이 죽었다.

▶작년 3월 러시아 전 공작원과 딸이 영국 자택 근처에서 혼수상태로 발견됐다. 현관 손잡이에 젤 타입으로 묻힌 신경가스 '노비촉(novichok)'에 노출됐고 러시아군 정보국의 소행이라고 영국 경찰이 밝혔다. 러시아는 2006년에도 영국에 망명한 전 공작원을 방사성 물질 '폴로늄' 중독으로 암살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영국은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하며 '외교 전쟁'을 벌였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2017 2월 김정남 암살 직후 사건 용의자로 북한 외교관을 특정하고 신경 독가스 'VX'가 사용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때만 해도 이 나라를 '다시 보게 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달아난 북 용의자 4명의 거주지를 신속히 압수 수색했고 미처 도망 못 간 북한인을 체포했다. '한국 경찰보다 낫다'는 우리 댓글이 넘쳤다. 그 나라 문화장관은 북을 "도 넘은 깡패 국가"라고 했고 외교부는 북 대사를 내쫓았다.

▶그랬던 말레이시아가 갑자기 돌변했다. 김정남 얼굴에 VX를 발랐던 베트남 여성에 대해 '살인'이 아닌 '상해(傷害)' 혐의로 징역 34개월을 선고했다. 이제 감형 절차를 거쳐 내달 석방한다고 한다. 지난달엔 공범인 인도네시아 여성은 그냥 풀려났다. 북이 쓴 VX가 액체가 아닌 가스였다면 공항에서 수백 명 사상자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최악의 화학무기를 동원한 국제 테러인데도 면죄부를 준 것이다. 김정남 암살은 졸지에 '범인을 아는 완전 범죄'가 돼 버렸다
.

▶미국은 2017년 하반기 북을 9년 만에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면서 '외국 영토 암살'을 근거로 들었다. 김정남 암살을 테러로 규정하고 각종 제재를 부과하겠다는 압박이다. 이제 그 암살범을 전부 풀어주려는 말레이시아는 북 테러를 간접 지원한 결과가 아닌가. 이 황당한 일의 내막이 무엇인지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
.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19-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