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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 이지함의 공부처] [國學으로서 사주와 풍수] '임꺽정'엔 사주, '창궁의 묘'엔 점성술이 등장하는 이유

뚝섬 2019. 4. 22. 07:20

토정 이지함의 공부처 


'정감록'이 주로 남성 독자층의 사랑을 받았다면 '토정비결'은 남녀가 모두 좋아하는 비결서였다. 정권의 교체를 파악하는 데는 '정감록'이 필요하였겠지만 자기 인생의 앞날과 운명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토정비결'이 필요하다. 그동안 필자는 최고의 스테디셀러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진 토정이 어느 산, 어떤 지역에서 집중적인 정신 수련을 하였을까 하는 의문을 지니고 있었다. 이번에 '퇴계선생 귀향길' 재현단에 합류하여 충북의 청풍(淸風)과 단양(丹陽)을 지나면서 미처 몰랐던 부분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토정의 친형인 성암(省菴) 이지번(李之蕃·1508~1575) 48세부터 단양의 구담봉(龜潭峰)에 들어와 은둔생활을 하였고, 말년인 60세에 청풍군수를 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지번과 동생 이지함(李之菡·1517~1578)은 모두 일찍부터 서화담(徐花潭) 문하에서 공부한 화담학파였다. 화담학파의 특징이 벼슬하는 것을 꺼리고 최소한도의 먹고 살 것만 있으면 산골에서 은둔수도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도가적인 취향이다. 유학자이면서도 도가적인 취향을 지녔던 이지번도 '세상 험하다'고 여기고 단양 산골로 숨었던 것이다. 


스승인 서경덕이 화담(花潭)에서 살았듯이 이지번도 구담(龜潭)에서 은거하였다. 이때부터 동생 이지함도 본격적인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공부를 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동안 전국을 방랑하고 다니던 동생 이지함을 형인 이지번이 잡아다 놓고 "이제 그만 돌아다니고 여기서 공부에 집중하거라"는 훈계를 하였다고 한다. 이지번의 16대손인 이문원(82) 선생으로부터 직접 들은 가전(家傳)이다. 이론 섭렵과 세상 경험만 가지고 도사 되는 게 아니다. 면벽기도(面壁祈禱)의 정신 수련이 몇 년간 필수적이다. 토정의 형인 이지번 본인도 이미 천문, 지리에 깊은 공부가 있었다. 이런 공부 없으면 산골에서 벌떡증 생겨 은둔생활 못 한다.

토정은 아홉 살 위인 친형에게서 기본적인 과목을 배웠으며, 화담 문하에서 추가 공부를 하였지만, 40세 무렵부터 몇 년간 단양 구담봉 일대에서 집중 수련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청풍, 단양, 제천, 영춘'사군산수(四郡山水)'라고 부른다. 옛날부터 시인, 도사, 학자들이 가보고 싶어 했던 지역이다. 이지번이 청풍군수 자리를 맡았던 것도 절친했던 퇴계 선생의 권유가 작용하였다고 한다. 청풍의 그 유명한 한벽루(寒碧樓)에 올라 주변 산세를 감상하니 호수의 수() 기운과 주변 바위산의 화() 기운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선일보(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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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學으로서 사주와 풍수



조선일보 1928 11 21일 자에 실린 홍명희의 '임꺽정' 연재1회분. 이 소설은 연산군 때 홍문관 교리 이장곤의 사주풀이에서 시작한다. / 조선일보DB

 

지식인 가운데 사주 공부를 하는 이가 은근히 많다. 그 역사가 길다. 조선 초 정인지·서거정과 여기서 언급하는 정희량도 그 대표적 예다.

1928
11 21일부터 1940년까지 13년 동안 조선일보에 연재된 홍명희의 '임꺽정'은 우리 민족의 고전이 되었다. 소설은 연산군 때 홍문관 교리 이장곤의 사주풀이에서 시작한다. 연산군 폭정에 이장곤의 목숨이 위태롭다. 이때 그의 친구이자 사주에 능한 정희량이 준 사주풀이 쪽지를 펼쳐 본다. 쪽지에는 "도망이 상책이다. 북쪽으로 가라(走爲上策 北方行)"는 일곱 글자가 적혀 있었다. 조언대로 무작정 북쪽으로 도망을 가 함흥에 이른다. 거기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임꺽정'의 주인공들이다. "사주가 맞습네까?"라는 작중 인물 '삭불이'의 질문에 이장곤은 "맞는 것도 있지"라고 답변한다. 작가 홍명희의 사주관이다
.

1996
년 일본에서 출간된 소설 '창궁의 묘(蒼穹の昴)'는 한중일 TV 드라마로 더 유명해졌다. 작가 아사다 지로는 호언한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나는 작가가 되었다." 청나라 말기가 배경인 역사소설이다. 그는 이 소설을 쓰려고 12년 동안 역사 현장을 누볐다. '창궁의 묘'는 점성술사의 예언으로 시작한다. 가난한 과부의 아들 춘아는 말똥·소똥을 땔감으로 팔아 생계를 꾸려나간다. 천성이 착한 춘아를 알게 된 노파 점성술사 백태태가 말한다. "너의 수호성은 오랑캐의 별, 묘성(昴星). (중략) 너는 반드시 천하의 모든 재물과 금은보화를 거머쥘 것이다." 그 말을 믿은 소년은 스스로 거세하고 황궁에 들어가 최고 권력자 서태후의 총애를 받는 대총관이 된다. 백태태의 예언이 실현된다
.

홍명희의 '사주'와 아사다 지로의 '점성술'은 전혀 다르다. 사주는 태어난 연월일시를 오행으로 환원해 그 상생상극 관계를 따져 길흉을 엿본다. 점성술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하늘을 뒤덮고 있는 별자리가 무엇이냐를 보고 운명을 점친다. 사주·풍수·점성은 본질적으로 중국에서 발원하여 주변으로 확산되었다. '임꺽정' '창궁의 묘'에서 각각 다른 운명 예측술이 등장하는가? 작가 개개인의 취향인가? 그렇지 않다
.

청나라 지배 세력은 만주족이다. 몽골족과 마찬가지로 유목사회였다. 유목민들과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밤하늘 별들의 움직임은 매우 중요하였다. 몽골족이 지배 세력이던 원나라 역시 별을 보고 치는 점이 주류였다. 그러한 까닭에 원나라의 복속국이 된 고려에서도 점성술이 '관학(官學)'이 되었다. 해양 세력인 일본 역시 점성술이 주류이다. 반면 농업을 바탕으로 한 조선은 때(절기)가 중요하였다. 사주 역시 절기를 바탕으로 한다. 사주가 조선조 명과학(命課學)의 주류 '관학'이 된 이유이다. 모든 운명 예측술이 그 시대 및 사회 제약적이라는 결론이다. 어떤 사회경제 체제냐에 따라 운명 예측술이 달라진다
.

조선과 해방 전후 사주술은 '관존민비·남존여비·대가족제도·처첩제도' 등 봉건적 관념을 전제한다. 현재 직업 사주술사들, 소위 '동양철학자들'의 병폐는 이것을 간과하고 기존 술서를 고집한다는 점이다. 최근 퇴직 후 제2의 직업을 염두에 두고 사주 공부를 하는 이가 많아졌다. '특수대학원'들이 사주와 풍수로 호황을 누린다
.

바람직한 현상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동시대 문제를 해석·해결하려는 대응 논리를 고민하기보다는 옛것을 답습하기 때문이다. 반면, 희망도 보인다. 지식인들 가운데 사주와 풍수를 천착하는 이가 적지 않다. 비판적 접근과 새로운 패러다임이 짜인다면 사주나 풍수도 하나의 '국학(國學)'이 될 수 있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조선일보(19-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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