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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주범' 김영철 경질] 천안함 폭침으로 정점 찍었던 '57년 대남 공작' 인생.. [4살 더 많은 박용옥에 “남쪽 준장” 부르며 건방떨자.. ]

뚝섬 2019. 4. 26. 06:27

1990년쯤 김일성이 내선으로 남북 협상 내용을 듣다가 북 대표가 남측을 몰아세우자 박수를 쳤다. 집무실로 불러 '대적(對敵) 투쟁'을 칭찬하며 이름을 물었다. "본명은 김동수인데 대남용 가명이 김영철"이라는 답을 들었다. 그 자리에서 '김영철'이란 이름이 더 좋으니 본명으로 쓰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대남 총책 '김영철'은 김일성이 내려준 이름인 셈이다.

▶김영철의 부모는 알려져 있지 않다. 김일성을 돕다 사망한 사람의 유자녀만 입학한다는 '만경대 학원' 출신이라는 점이 그의 성분을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그런 배경 덕을 봤는지 16세이던 1962년 출세 코스인 최전방 비무장지대(DMZ)에서 사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1989년부터 북 회담 대표로 나왔는데 굳은 표정을 좀처럼 풀지 않았다. 회담 결과가 맘에 들지 않으면 "당신네 협정이지 우리 협정이 아니다"라고 쏘아붙였다.


 

▶김정은은 아버지가 발탁한 군 지도부를 줄줄이 숙청하면서도 김영철만큼은 계속 중용했다. 정찰총국장이던 김영철이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을 주도한 것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천안함 공격은 내부적으로 김정은의 후계 구도를 굳히는 데 활용됐다. 그는 2016년 군 출신으로는 드물게 대남 사업을 총괄하는 당 통일전선부장에 기용됐다.

▶김영철이 남한에 밝은 것은 맞지만 북핵이나 대미 협상은 다뤄본 적이 없다. 문외한에 가깝다. 북 체제 특성상 담당이 아닌 분야의 정보는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접근하기 어렵다. 알려고 하면 간첩으로 몰린다. 그런데도 김영철이 김정은의 북핵 특사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두 번이나 만난 것은 최근 한반도 국면이 서훈 국정원장·김영철 통전부장·폼페이오 CIA 국장 등 이른바 '스파이 라인'의 물밑 접촉으로 굴러갔기 때문이다. 하노이 미·북 회담 결렬은 이 라인의 실패를 의미한다
.

▶통전부장이 김영철에서 장금철로 교체됐다고 국정원이 그제 국회에 보고했다.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한 문책성 인사일 것이다. 천안함 폭침으로 정점을 찍었던 '57년 대남 공작' 인생이 북핵 늪에 빠져 침몰하는 모양새. 김영철에 앞서 통전부장을 맡았던 김용순과 김양건도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모두 김씨 일가의 최측근으로 온갖 충성을 다 했지만 끝이 좋지 않다. () 같은 권력에 너무 가까이 접근했다 타버린 것일까, 숱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대가를 치르는 것일까.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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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김영철, 4살 더 많은 박용옥에 “남쪽 준장” 부르며 건방떨자…



“어이, 준장!

1990
9월∼1992 9 8차례에 걸쳐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다. 당시 군사분과위원회 북한 측 대표인 44세의 김영철 소장(73)은 우리 측 대표인 박용옥 준장에게 회담 내내 “준장이 뭐야? 그건 거의 장군이 아니잖아”라며 하대했다. 북한군 소장은 별 하나로 우리의 준장과 같지만, 용어 때문에 자신이 우리 군 소장급인 것처럼 행세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김영철이 네 살이나 더 많은 박 준장을 “남쪽 준장”이라 부르며 계속 건방을 떨자 1992 5 7차 회담을 앞두고 박 준장을 소장으로 승진시켰다. 김영철은 별 두 개를 달고 등장한 박 소장을 보고 머쓱해했다고 한다.

2016년 북한의 대미·대남 업무를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장에 김영철이 임명됐을 때 당시 공식적인 북한 내 서열 2위는 최룡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었지만 실제로는 김영철이 더 실세라는 소문이 돌았다. 김영철은 김정은의 어머니 고용희의 보좌역을 하는 등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이 밥투정을 할 때부터 지켜본 몇 안 되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초급장교 시절부터 군사정전위 연락장교를 맡는 등 한미 군사훈련, 주한미군 문제 등을 체득할 기회가 많았다.

▷김영철이 최근 통전부장에서 해임됐다. 하노이 회담 노딜은 ‘무오류’여야 하는 김정은의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고 그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보인다. 새 통전부장인 장금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은 대남 민간교류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러 밀착과 남북 관계를 통해 미국에 맞서겠다는 김정은의 책략으로도 읽힌다. 하지만 장금철의 첫 작품으로 보이는 통전부 소속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25일 내놓은 대변인 담화는 ‘남조선 당국의 배신적 행위’ 운운하는 원색적인 비난으로 채워졌다. 통전부의 대남 비난 담화는 지난해 1 23일 이후 처음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지난해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김영철은 정치군인에 불과하다. -미 외교와 남북 관계 총책이라는 자리는 분에 넘친다. 나중에 숙청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천안함 폭침의 배후인 김영철은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 ‘대남 정치꾼인’으로 불릴 만큼 협상 중에도 도발 등 뒤통수를 치며 골탕 먹이는 데 능란했다. 천안함 폭침 문제를 다룬 2014 10월 남북군사회담에 수석대표로 나타나는 뻔뻔함을 지녔다. 김정은은 하노이에서 돌아가는 길에 “이런 열차 여행을 또 해야 하냐”며 불쾌해했다고 한다. 김영철이 아직 당 부위원장과 국무위원은 유지하고 있지만 해임을 넘어 숙청까지 이어질지 관심거리다.

 

-이진구 논설위원, 동아일보(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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