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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도(作圖)]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창의성 노트']

뚝섬 2022. 7. 14. 08:52

작도(作圖)

 

완벽한 모양의 도형 그려서 수학의 아름다움 보여주려 했다

 

바티칸 궁전에는 '아테네 학당(The School Of Athens)'이라는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이자 건축가인 라파엘로 산치오의 작품인데요. 이 그림에 고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가 등장해요.

그림 속에서 유클리드는 '작도(作圖)'를 하고 있습니다. 작도란 자와 컴퍼스만을 사용해 선이나 도형을 그리는 것을 말하는데요. 라파엘로는 왜 유클리드가 작도하는 모습을 그렸을까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작도에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고 믿었어요. 예컨대 현실에서 반지름의 길이가 모두 같은 완벽한 상태의 원 혹은 완벽한 직선을 그리는 것이 가능할까요? 우리의 생각이나 마음속에서는 가능할 수 있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그린 원은 사실 원의 정의인 '완벽하게 일정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자취'가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원과 가까운 것을 원이라고 생각하고 부르는 것이지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은 인간이 이상적인 '도형(圖形)'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는 이상적인 도형의 모습이 구현된 '완벽하고 변하지 않는 비(非)물질적인 세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를 '이데아(Idea) 세상'이라고 정의했죠. 그리고 컴퍼스로 원을 그리고, 자로 직선을 그리는 것을 이데아 세상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도형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으로 봤어요.

플라톤처럼 고대 그리스인들은 무언가에 대해 정의한 뒤 그것을 꼼꼼하게 따지며 실제 존재하는지 증명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정삼각형의 정의는 '세 변의 길이가 같은 삼각형'이지요. 오늘날 사람들은 이 정의를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러지 않았어요. 정의에서 사용된 표현 그대로가 현실에서 실제 존재할 수 있는지에 집중한 거예요.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작도에 집중했어요. 정삼각형을 작도해 그려냄으로써 이것이 말뿐 아니라 실제 존재할 수 있는 도형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던 거지요.

유클리드는 도형과 공간의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인 기하학의 체계를 세운 것으로 평가받아요. 그런 유클리드가 작도를 하는 모습은 이상적인 도형에 대한 인류의 열망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유클리드는 자신의 수학서 '원론(Elements)'에서 정사각형, 정오각형, 정육각형, 정팔각형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정칠각형'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정칠각형의 정의는 일곱 개의 변이 같은 칠각형인데, 이 도형은 작도할 수 없어서 실제로 존재한다고 할 수 없었죠. 그래서 유클리드는 정칠각형을 그의 책에서 뺀 거예요.

이처럼 당시 그리스인들은 이데아 속에 존재하는 완벽한 모양의 도형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도형을 작도함으로써 수학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답니다.

-최영기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 조선일보(22-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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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창의성 노트'

 

500년 전 오늘 한 특별한 인물이 죽었다. 신기술과 신지식이 솟구치듯 쏟아진 르네상스 시대에 태어나 사생아, 난독증 환자, 동성애자, 채식주의자로 살았던 사람. 구텐베르크, 콜럼버스와 동시대에 활동한 사람.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1519년 5월 2일에 죽었다.

그의 천재성은 예술·과학·기술·창의성에서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돌출했다. 그는 '모나리자'를 그린 천재 화가요, 근육과 뼈, 뇌에 관한 해부학 지식을 전파한 의학자요, 기하학과 수학적 형태의 변화를 연구한 수학자요, 태양과 별들의 이동 경로를 관찰한 천문학자요, 독창적인 무기를 고안한 군사 공학 기술자요, 나선 추진기를 이용한 영구기관과 유인 비행기를 설계한 과학자였다.

레오나르도는 한 공증인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사생아에 대한 차별이 없던 시대라고 했지만 그는 최상위 전문교육 기관인 '라틴어 학교' 대신에 '주산 학교'에 보내져 실업계 교육을 받았다. 그의 생애 동안 다채로운 창의성에 촉매 역할을 한 박물적 지식은 대부분 독학으로 얻은 것이다.

그는 잠자리나 조류(鳥類)와 같이 이동하는 것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눈썰미가 남달랐다. 강물의 흐름을 관찰하고 "당신의 손에 닿는 강물은 이미 지나간 것의 마지막이자 다가오는 것의 처음이다"라고 썼다. 그는 자연에서 관찰한 것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1487년경부터 쓰기 시작한 '파리 매뉴스크립트 B'라는 노트에는 잠수함, 스텔스함, 대포 같은 군사 무기 스케치, 교회와 도시를 위한 건축 설계 도면들을, 또 다른 후기 노트에는 뒤죽박죽인 낙서들, 반쯤 다듬어진 착상들, 무기나 동력 장치에 대한 것, 논문 초고 등을 남겼다. 그 당시는 종이가 비쌌기 때문에 레오나르도는 늘 수첩의 가장자리까지 채워서 쓰곤 했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조선일보(19-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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