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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영혼을 許하라] 눈만 뜨면 선거 걱정이 전부인 정당 싱크탱크의 수장이 공공 R&D 영역을 정치적으로 들쑤시고 다니는 행태

뚝섬 2019. 6. 24. 07:48

행정에 이어 연구 영역까지 영혼 팔거나 버리는 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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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권력' 위세 앞에 학문의 자유로운 영혼 사라져
선진 민주주의 저력 중 하나는 자유롭고 다양한 지식 생태계

 

더불어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 양정철 원장이 지방자치단체 소속 연구기관과의 업무협력 행보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야권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관권 선거 개입'이라 비난하지만, 여권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대꾸다. 또한 야당 소속 단체장이 있는 지역에도 업무협약을 요청한 상태라고 밝히며 자유한국당 산하 여의도연구원에 이와 유사한 협력 관계 구축을 권유하기도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시 현재로서는 직무상 선거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로써 정당 산하 연구원과 지자체 소속 연구원 사이의 정책 협력에는 과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만약 전자가 태생적으로 정치적인데 반해 후자는 법으로 독립적·자율적 연구 활동이 보장된 비정치적 조직이라는 이유를 들어 양자의 '잘못된 만남'을 지적한다면, 이는 번지수가 살짝 틀렸다. 지자체 연구원 자체도 이미 충분히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거듭될수록 이 대부분은 선거 캠프 아니면 선거 벙커로 변질해 왔다. 양정철 원장의 거침없는 지자체 나들이는 말하자면 마침내 올 게 온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한국의 공공 R&D가 총체적으로 무너지는 과정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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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각급 관변 연구소들의 수난이 두드러지고 있다. 코드가 맞지 않은 기관장들의 임기 도중 사퇴 정도는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소득 주도 성장, 탈원전, 4대강 보() 철거와 같은 '정치적' 의사 결정을 위해 지금처럼 용역 학문과 청부(請負) 지식이 무성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과거 정부하에서의 연구 결과가 뒤집힌 사례도 노동·경제·에너지·환경·보건·통일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부지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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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발전이나 포용성장, 건국 100, 판문점선언 이행과 같은 간판 정책의 배급줄 앞에 유관 연구단체나 기관들을 걸핏하면 총집합시키는 것이 현 정부의 학술 권력이다. '사람 중심의 과학기술'이라는 정체불명의 개념에 따라 이공(理工) 분야 고유의 권위와 전문성은 이념과 진영 논리로 대체되고 있다. 요새는 전문가들이 모이는 국책연구원 세미나 자리에 기관장 인사에 이어 노조위원장이 축사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52시간 근무제는 박사 연구자들을 '연구 노동자'로 전락시킬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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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혼 있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 이는 우리나라 공공 R&D의 현실과 관련하여 안오성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최근 한 매체를 통해 외친 절규다. '영혼 없는 공무원' 얘기를 익히 들어온 우리에게 '영혼 없는 연구자' 얘기는 새롭고 놀랍다. 행정에 이어 이제는 연구까지 영혼을 팔거나 버리는 세태가 되었나 싶어서다. 막스 베버에 의하면 관료는 영혼이 없는 게 오히려 정상일 수 있다. 그들 위에 열정과 책임감, 균형 감각으로 무장한 '소명(召命)으로서의 정치'가 있어, 그것을 위해 일로매진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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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부재의 지식사회는 단지 국가 출연 연구소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 등에서 운영하는 민간 연구소들도 공적 기능을 대폭 축소하면서 최근에는 입조심·말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대학 또한 폴리페서의 득세 이면에 냉소와 무기력, 자기검열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쓸모 있는 바보들'을 지식의 최전선에 앞세운 '촛불권력'의 위세 앞에 학문을 위한 자유로운 영혼은 숨 쉴 곳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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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저력 가운데 하나는 자유롭고 다양하고 탄탄한 지식 생태계의 존재다. 객관적 사실과 과학적 논리를 숭상하고 허다한 이견과 합리적 비판을 앙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국익에 더 큰 도움을 준다고 굳게 믿는 결과다. 그곳이라고 해서 왜 저질스러운 정쟁이 없겠느냐만 그래도 지식인의 자유로운 영혼만은 일종의 불가침 대상으로 함께 예우한다. 독단에 빠지고 위선에 취하고 인기만 좇는 지식의 자율적 정화(淨化)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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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눈만 뜨면 선거 걱정이 전부인 정당 싱크탱크의 수장이 자나깨나 나라 생각이 먼저이어야 할 공공 R&D 영역을 정치적으로 들쑤시고 다니는 전대미문의 행태는 국가 발전의 차원에서 자해가 될지 모른다. 그에게는 총선이 나라보다 중할까. 정치권력이란 매번 오고 가는 거지만 지식국가는 한번 무너지면 다시 서기 어렵다. 연구자에게 영혼을 허()해야 권력에는 약이 되고 나라에는 밥이 된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조선일보(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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