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프레임을 버려야 할 때
도덕 지향과 士農工商 풍조, 기업인 위상은 최저 수준… 중국에 대한 事大도 비슷
일본엔 과잉 대응하면서 사드 보복 등에 아무 소리 못 내… 조선의 실패 되풀이하지 말아야
역사가 반복되는 것인지, 아니면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우리 사회 모습을
보면 조선시대와 닮은 점이 참 많다.
첫째는 도덕 사회 지향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이 추구했던 이상 사회는 '백성들 모두 도덕군자가 되는 사회'였다. 대표적으로 조광조가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중종에게 강도 높은 성리학 강연을 하다가 '짤렸다'.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였다. 지금 사회 역시 도덕성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있다. 공직자든, 연예인이든 모두 사생활이 깨끗하고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어야 한다. 기업도
돈만 벌어서는 안 되고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다. 수익성이 우선 되어야 할 국민연금마저 기업 도덕성을
문제 삼는다. 공직자 청문회는 30년 전 잘못까지 따진다. 세계에서 먹고사는 문제보다 도덕이 더 중요한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이건 맛의 대참치!!
둘째는 사농공상(士農工商) 풍조이다. 조선은 늘 상공업을 천시해 왔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공무원 할
생각만 했으니 나라가 융성할 수 없었다. 조선이 일본에 뒤처진 것도 이러한 풍조 때문이다. 앞으로 일본 지폐에 등장할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라는 사람은 19세기 말 대장성의 유능한 관료였지만 과감히 상공인의
길로 들어서 일본 부흥의 길을 이끌었다. 조선에서는 양반이 상공업에 종사하려면 양반 직을 버려야 했던
것과는 너무 다르다.
오늘날 우리가 이 정도 먹고사는 것은 해방 이후 산업 입국 정신 덕택이다. 사농공상에서
벗어나면서 뛰어난 기업인이 등장하고 정부는 기업 활동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했기에 사상 처음으로 중국보다 잘사는 나라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사농공상의 망령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학자들이 꿈꾸는 이상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반(反)기업 정책들이 양산되면서 상공업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미래 산업 역시 이념에 막혀 있다. 기업인 위상은
최저 수준이다. 정치인 만나면 깍듯이 인사해야 하고, 각종
행사나 국정감사장까지 불려다니는 모습은 매우 후진적이다. 잦은 출국 금지와 압수 수색, 배임으로 너무 쉽게 범법자로 몰고 가는 것도 정상적이지 않다.
셋째는 나만이 옳다는 편협함이다. 조선은
성리학 이념과 당파 이익에 따라 분열하면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선조 때 기축옥사를 들 수 있다. 서인이었던 정철이 정여립 모반 사건을 수사하면서 동인 1000여 명을 처형했던 사건이다. 이후 서인이 장기 집권에는
성공했지만, 조선사회의 유능한 인사는 절반이 괴멸되었고 곧이어 임진왜란을 맞이하면서 나라는 결딴났다.
지금 우리 역시 이념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조선시대의 동인-서인이 좌파-우파로
무늬만 바뀌었을 뿐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행태는 똑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편협함이 이념을 만나면
광기가 일어나는 적이 많았다. 방향만 다를 뿐이다. 우리도
좀 넓은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사회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공존하면서 다양성이 확보될
때 비로소 깊이가 생긴다. 톨스토이는 깊은 강물에는 돌을 던져도 흐려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얕은 개천에는 작은 돌멩이 하나만 던져도 놀란 송사리들이 물을 흐리고 주변이 시끄럽다. 큰 물고기는 아예 살 수가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깊은
강물일까, 아니면 얕은 개천일까?
마지막으로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이다. 조선에 중국은 황제의 나라였다.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해도 반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 전통은 지금도 계속되어 우리는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사드
보복, 자동차 배터리 차별과 같은 황당한 공격을 받아도 아무 소리도 못 낸다. 반면 일본에 대하여는 과잉 대응한다. 지금이 애국, 매국 운운하면서 항일 투쟁할 때인가. 우리가 미·일 동맹에서
벗어나는 순간 조선시대처럼 중국의 '밥'이 될 수 있음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가 급변하고 있다. 자유무역은 막을 내리고 미국은 세계 경찰 역할에서 손을 떼고 있다. WTO 체제나 국제 규범 같은 것은 역사의 유물이 되고 있다. 세계는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힘이 약한 나라는 하소연할 곳마저 없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우리 스스로 힘을 모아 부국강병 해야 하는데 조선시대 프레임에 머물러 있는
한 요원하다. 하루빨리 프레임을 바꾸고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조선의 실패가 반복되지 않는다.
-김대기 단국대 초빙교수·前 청와대 정책실장, 조선일보(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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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派 혼합의 한국
근자에 읽은 책 가운데 '한국사람 만들기'(함재봉·아산서원) 1·2권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탐구한 책이다. '정체성'. 이거 말은 쉽게 하지만 실제로는 알기 어렵다. 자기 정체성을 안다는
것은 반도(半道·50%)를 깨친 셈이다. 이 책에선 '다섯 종류의 한국 사람'이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친중 위정척사파다. 중국에서 유래한 주자학적 세계관을 신봉하는
집단이다. 이 파는 19세기 말의 혼란기에 조선에 상륙했던
서양과 일본을 배척한다. 조선 말기 선비들은 천주교와 서구 열강, 일본의
제도와 사상을 '삿된 세력'으로 규정하였다. 단 중국은 예외였다. 대국으로 신봉했다. 최근에 사드 사태를 겪으면서 이게 어느 정도 깨졌다.
둘째는 친일 개화파다. 명치유신 이후의 발전된 일본을 따라가야 조선도
발전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조선이 500년 동안 추종했던
중국은 별 볼일 없는 후진적인 국가로 인식하였다. 일본이 선진국이다.
일본식 부국강병을 따라가야만 조선이 잘된다고 보았다. 일본이 개발한 문명개화의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삼성 이병철의 반도체 산업 시작도 친일개화파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병 주고 약 주는 게 일본이다.
셋째는 친미 기독교파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자 많은 식자층은
미국을 추종하였다. 그 매개체는 기독교였다. 일제강점기에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일본을 혐오하고 미국을 좋아한다는 의미였다. 유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믿어야만
나라가 잘된다고 믿었다. 해방 이후에는 기독교를 매개로 하여 미국에 유학을 갔다 온 인사들이 한국의
주류사회를 형성하였다. 대학과 학계, 병원, 방송국, 문화계 전반이 친미 기독교파로 볼 수 있다.
넷째는 친소 공산주의파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탄생한 소련은
식민지 국가의 지식인들에게 유토피아처럼 보였다. 양반, 상놈
없애고 지주들 땅 뺏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자는 공산주의 이념은 조선의 식자층을 매료시켰다. 유교의
선비정신과 일정 부분 맞아떨어지는 게 있어서 영남 양반 집안 후손들 상당수도 이쪽으로 갔다. 그뿐만
아니라 소련은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에게 돈을 대주면서 조선의 독립과 조선 소비에트 건설을 지원하였다.
다섯째가 인종적 민족주의파다.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 '환단고기'를 좋아하는 파다. '재야
사학'의 멤버들도 이 범주에 속한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어느
한 가닥이 아니다. 5개 가닥이 밧줄처럼 서로 꼬여 있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선일보(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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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먹고사는 문제 달렸는데… 어디서 유치하게 편 가르기를 하나"
'나는 왜 싸우는가' 출간한… '보수의 女戰士' 이언주 의원
'보수의 여전사'로 불리는 이언주(47) 의원이 '나는 왜 싸우는가'를
출간했다. 토요일, 광화문에서 만났을 때 책보다 그의 스타일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당신은 주요 현안마다 유튜브(이언주 TV)나 SNS를 통해 한마디씩 한다.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는가?
이언주 의원은 "집권세력은 이 엄중한 사태를 '친일·반일'로 엮어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란 대중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지지자들을 더 많이 모으는 행위다. 정치인이
숨어서 지켜보거나 널뛰는 여론에 같이 춤추면 정치인이라고 할 수 없다. 혹 비난받아도 자기 입장을 밝히는
데 주저해선 안 된다. 그게 부담스러우면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한다."
―발언 내용의 동의 여부를 떠나서, 순발력과 언어 감각이 뛰어난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남도청을 방문해 "이순신 장군은 불과
열두 척 배로 나라를 지켜냈다"며 일본 제재에 정면 대응을 시사하자 "문 대통령은 이순신이 아니라 어리석은 선조"라고
했는데?
"임진왜란은 무능한 선조와 조정(朝廷)이
자초했고, 그 위기를 막기 위해 이순신이 나섰던 거다. 문
대통령과 그 세력은 구한말 위정척사파처럼 비생산적이고 극단적인 민족주의, 반일 감정을 부추겨 지금의
상황을 초래했다. 그래 놓고 이순신 장군을 운운하는 것은 턱없는 소리 아닌가."
―아베 총리의 경제 제재 조치가 선(線)을
넘은 것은 사실인데?
"물론 졸렬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국제 관계에서는 어느
나라든 자기 국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나라도 해당된다. 각자의 국익을 위하는 데 착하고 나쁜 것이 없다. 올 초 외교 협의
창구를 마련해 중재위원회를 가동하자던 일본 제안에 우리 정부는 들은 체 만 체 했다. 위기가 닥칠 것에
대비하고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정부가 대책도 없이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말만 자꾸 내뱉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조국 민정수석이 '죽창가' 운운한
것은 코미디의 극치인 셈이다."
―지금 일본의 도발에 옛날 항일 운동 하듯이 적극 대응하자는 것인데.
"동학운동의 촉발은 당시 조정의 무능과 부패, 외세인 청나라의 개입 때문이었다. 현재 시점으로 보면 그 죽창은 무능한 문 정부를 향하는 것인데, 이런
역사적 사실조차 모르고 페북질을 하고 있다."
―조국 수석은 "지금 중요한 것은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이다"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은 친일파"라고
했다. 그 논리라면 조 수석 같은 사람은 '친북파'나 '친중파'가 된다. 문 대통령 곁에 이런 수준의 참모만 모여있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가 달려 있는데 어디서 유치하게 초등학생처럼 편 가르기를
하려고 하나. 이는 친일·반일이 아니라 무능·무대책·무책임의 문제다. 나라를 망가뜨리는 게 매국(賣國)이다. 한·일 관계에서 어리석은 행동을 해놓고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벌여 놓고는 아무 대책이 없는 이들이야말로 '현대판 매국노'다."
―SBS CNBC의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견 기자가 "의병으로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나. 그때 그 방법으로 나라를
구하긴 했나"라며 논평을 했다가 청와대의 반발을 샀다. 정권
지지 세력이 댓글 공세를 퍼부었고, 그는 앵커직에서 물러났다. 나는
이런 상황을 몹시 심각하게 본다. 청와대가 비정상적 한·일 관계를 이용해 우리 내부를 비정상적 상황으로
몰고가는 것 같다.
"그런 지적은 일본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나라를 위한 것이다. 조선이 왜 나라를
잃었나. 무능한 고종이 나라를 팔아넘길 때까지 아무도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을 극복하려면 과거에 우리가 얼마나 무능해서 그런 상황을 맞았는지 철저하게 반성하고 다시는 재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집권 세력은 이 엄중한 사태를 '친일·반일' 프레임으로 엮어 교묘하게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
―일본과 맞선 상황에서 어쨌든 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청와대 회담에서 5당 대표가 초당적 협력을 하기로 했는데?
"어떤 대응과 해법에 협력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지금처럼
버티면서 부품 국산화를 하자는 것 같은데, 국산화가 금방 되지도 않고 부품을 만들어도 기술 수준이 맞아야
한다. 정부는 자신이 큰소리치면서 저질렀으면 자신이 책임 있게 수습해야지…. 이제 와서 대책이라며 미국에 매달리는 것인데 우리 국민을 더 초라하게 만든다."
―당신의 해법은 뭔가?
"우리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 건은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대통령이 1965년 한·일 협정 당시 역사적 상황과 지금의 외교 현실에 대해 국민에게
솔직히 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열어가자고 설득해야 해법이
있다."
―한쪽에서는 당신의 이런 발언을 지지하겠지만, 다른 쪽에서는 모욕과 조롱, 쌍욕을 퍼붓는다. 여성 의원으로서는 견뎌내는 게 더 어려울 텐데?
"반대 의견에는 경청한다. 그러나
저질적인 언어 테러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대중에게 웃음을 팔고 좋은 얘기를 하고 국민 세금으로
내가 생색내면 다시 금배지를 다는 데 편하지만 그러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
―이번 책을 통해 해운 업체에 근무한 아버지가 싱가포르 주재원에 발령나 초등학교 3년을
거기서 보냈고, 서울대 불문과 재학 중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학습지 교사, 호프집 서빙 등 아르바이트를 뛰며 사실상 가장 노릇을 했으며, 모친은
그때의 충격으로 돌아가셨다는 등 당신의 개인사를 알게 됐다.
"세상이 나를 많이 단련시켰다. IMF 사태가 터진 해 내가 사법시험에 합격해
겨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집안 부채 때문에 사귀던 남자와 결혼이 깨지기도 했다. 사법연수원을 나와 로펌에 취직해 국제거래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
뒤 르노삼성차의 법무팀장으로 옮겼다. 2008년에는 에쓰오일의 법무총괄 상무를 맡았다. 당시 36세로 주요 대기업에서 최연소 임원이었다."
―2012년 민주당 한명숙 대표에 의해 영입됐는데?
"학창 시절에 '골목대장' 기질이 있었다. 민주당
영입을 쉽게 받아들인 것은 이들을 자유민주주의 세력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입당하고 보니 주류인 운동권과는
정서적으로 너무 큰 차이가 있었다. 이들은 경직된 이념과 교조적 태도에 빠져 있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대기업에서 국제 파트를 담당해온 나로서는 내적 갈등이 심했다. 무엇보다 북한에 대한 이들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맹목적
추종과 시대착오적인 민족주의를 그대로 갖고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에 있을 때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을 비판하면서 현 집권 세력처럼 '1919년
임정(臨政)이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했지 않았나?
"솔직히 고백하면 현대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당 주위에서 그렇게들 얘기하니
그런 줄 알았다. 설마 이들이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점점 의문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해방 정국에서 남한에서나마
단독 정부가 수립돼 공산화되지 않은 게 천운이라고 본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이 없었으면 저쪽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천재다. 그런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은 우리 국민 입장에서 굉장히 행운"이라고 말해 잠시 화제가 됐는데?
"자유를 중시하는 내 성향과 꼭 맞는 분은 아니지만 그 위대함을 인정한 것이다. 지금처럼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인이라면 어떻게 한·일 협정을 맺었겠나. 자칫 정권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박정희는 당시 국민을 설득했고, 청구권 자금을
국가 기간 산업의 종잣돈으로 썼다. 국가 장래를 위한 그런 통찰력을 갖춘 인물이 어디에 있겠나."
―당신은 정치적 계산으로 당을 옮겨다니며 말을 바꾼다는 비판이 있는데?
"민주당 탈당 무렵 문재인이 대통령 될 확률이 가장 높았다. 정치적 이득을 따지면
민주당에 가만히 남아 있어야 하고, 한자리를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면 민주당이 이상한 길로 갈 것으로 예견됐다. 내 신념을 죽이고 동조할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 결국 탈당하면서 '단 하루를 정치해도 내 생각을 국민에게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대변인을 했던 당신이 어느 날부터 보수의 아이콘처럼 변신했다. 좌(左)에서 우(右)로 급격한 이념 선회를 한 셈인데?
"잘 몰라서 그런 적은 있어도, 내 신념이나 발언을 바꾼 적은 없었다. 내가 가장 중시하는 가치는 개인의 자유다. 자유에 따르는 책임도
내가 진다. 국가나 권력 집단이 내 삶을 관여하거나 노예처럼 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이게 보수의 가치라고 본다. 과거 보수 정권은 이런 보수의
가치를 스스로 무너뜨린 측면이 있다. 민주화 세력이라는 민주당은 다를 줄 알았는데 더 전체주의적이었다. 얼마 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자사고를 없애겠다고 했을 때 내가 분노한 것은 이 때문이다."
―조희연 교육감를 향해 '꼴통 사회주의자에 폭력적인 파시스트'라는 글을 SNS에 올렸는데?
"운동권 출신은 아직도 과거 사회주의·공산주의를 꿈꾸던 시절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세상이 경쟁하고 있는데 우리만 억지로 자사고를 없앤다고 그런 경쟁 환경이 바뀌는가. 왜 국가권력이 개인의 선택권을 막고 획일적으로 강제하는가. 더욱이
그는 자기 자식은 외고를 보냈다. 이런 위선과 이중성이 어디 있나."
―'나는 왜 싸우는가'로 책 제목을 단
것은 여전사(女戰士)의 투쟁이 제대로 이해받지 못해서인가?
"내 개인의 얘기도 있지만, 이 책은 현재 대한민국 상황을 설명하고 우리가 왜
이 정권과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싸우려면 그 바탕에 신념과 가치가 있어야 한다. 보수 세력은 싸우고 있지만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이런 가치를 찾고 회복하기 위해 싸운다고 해야지, 빼앗긴
권력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국민에게 설득이 안 된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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