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파키스탄]
[파키스탄과 인도]
이란과 파키스탄
페르시아 후예들… '시아파'와 '수니파'로 갈려 싸워
이란과 파키스탄이 최근 공습을 주고받으며 충돌했어요. 지난 16일(현지 시각) 이란이 파키스탄 영토 내 있던 이란 무장 조직의 근거지를 공격했어요. 이에 파키스탄은 "이유 없는 침범"이라고 비난하면서 이틀 뒤 이란 동남부 접경지의 시스탄발루치스탄 지역에 미사일을 날렸죠. 국제사회는 이란을 중심으로 한 중동 내 분쟁이 파키스탄이 있는 남아시아까지 확대될까 우려했어요.
다행히 지난 29일 이란 외무 장관이 파키스탄을 방문해 관계를 봉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앞서 파키스탄 외무 장관과 통화에서 두 나라는 '형제 같은 관계'라는 점을 강조하며 화해 의지를 적극적으로 내비쳤어요. 양국 간 긴장 관계는 일단 누그러졌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에서 갈라진 형제국
이란과 파키스탄은 긴밀한 동맹 관계였던 적도 있어요. 오랫동안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갈등을 빚기도 했고요. 양국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고대부터 이란과 파키스탄 지역은 페르시아 문화권에 속해 있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기원전 6세기~기원전 4세기)와 사산 왕조(3~7세기)의 지배를 함께 받았기 때문이죠. 그러다 7~8세기에는 이슬람교와 아랍 문화가 들어옵니다. 아랍의 이슬람 군대는 이 지역에 우마이야 왕조(661~750), 아바스 왕조(750~1258) 같은 이슬람 제국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란과 파키스탄 지역은 다른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이란은 페르시아 후예를 자처하기 때문에 당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파키스탄의 예술과 건축, 음악, 음식 등에도 페르시아의 영향이 남아있는데요, 파키스탄의 공용어인 우르두어가 페르시아어 서체인 나스탈리크체 표기를 사용하는 걸 봐도 알 수 있지요.
신생국 파키스탄을 맨 먼저 인정한 이란
이란과 파키스탄의 본격적인 외교 관계는 1947년 파키스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이때 영국에서 인도가 독립했는데요, 인도 서북부에 있던 파키스탄은 인도와는 별도의 신생국으로 분리 독립하기로 했습니다. 이란은 신생국인 파키스탄의 주권을 최초로 인정한 국가입니다. 1950년 양국은 우호 조약도 체결했어요. 당시 파키스탄의 초대 총독이었던 무함마드 알리 진나는 이란에 처음으로 파키스탄 대사(大使)를 파견하면서 "당신은 파키스탄과 가장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국가에 가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해요.
두 국가의 관계는 인도·파키스탄 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돈독해집니다. 이슬람교도가 많았던 파키스탄과 힌두교도가 많았던 인도는 분리되기 전부터 오랫동안 종교적 갈등이 심했어요. 분쟁은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위치한 카슈미르 지역 영유권을 둘러싸고 더 심해졌습니다. 결국 1948년, 1965년에 각각 제1·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했지요. 1971년엔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일어났답니다. 당시 파키스탄 자치령이었던 인도 동북부 벵골 지방의 동파키스탄(현재 방글라데시)이 독립하려 했어요. 인도가 동파키스탄의 독립을 지원하고 이에 파키스탄이 반발해 또다시 전쟁이 터집니다.
이란은 1965년과 1971년의 전쟁에서 제일 먼저 파키스탄의 편을 들며 파키스탄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하고 석유를 저렴하게 판매했어요. 전쟁에서 파키스탄이 무기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이란은 독일 시장에서 전투기, 미사일, 탄약 등을 가져와 파키스탄에 전달하는 '딜러(중개 상인)'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지요. 인도의 한 학자는 "이란과 파키스탄은 두 몸에 있는 한 영혼 같다"고 묘사할 정도였어요.
시아파 앞세운 이란, 수니파 파키스탄과 갈등
1970년대를 지나면서 이란과 파키스탄의 관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특히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자 파키스탄·이란의 관계는 큰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이 혁명으로 이란에서는 서방 국가와 협력했던 팔레비 왕조가 무너졌어요. 이슬람 교리를 그대로 따를 것을 강조하는 이슬람원리주의에 입각한 이란 이슬람공화국이 수립됐고요. 이 일로 이란은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가 단절됐지요. 파키스탄도 이란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했어요.
파키스탄은 이란의 새 정권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종교적인 갈등 관계에 놓입니다. 오늘날 이란의 90% 이상이 이슬람교의 한 분파인 '시아파'를 믿어요. 반면 파키스탄은 대다수가 이슬람교의 또 다른 분파인 '수니파'를 믿고 있어요. 이란이 이런 종교적 정체성을 앞세우자 파키스탄과는 사이가 멀어질 수밖에 없던 거지요. 다만 이후에도 양국은 에너지 분야에서만큼은 경제 협력을 강화하려 노력했어요. 그 예시로 이란·파키스탄 가스관 연결 프로젝트는 두 나라 간의 중요한 경제 협력 중 하나입니다.
최근에 일어난 군사적 충돌은 이란계 소수민족인 발루치족을 둘러싸고 벌어졌습니다. 발루치족은 자기 민족만의 나라 없이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 걸쳐 살고 있습니다. 이 발루치족이 사는 땅을 통틀어 '발루치스탄'이라고 하죠. 그런데 발루치족은 따로 나라를 만들겠다며 발루치해방전선(BLF) 등의 여러 무장 단체를 결성해 격렬하게 분리 독립 운동을 벌여왔어요. 이란과 파키스탄 정부는 독립에 반대하며 발루치족을 탄압했지요. 발루치스탄은 양국에서 경제적으로는 가장 낙후된 곳이지만, 천연가스·우라늄 등 지하자원이 풍부해 두 나라는 땅을 포기할 수 없던 겁니다.
발루치족 무장 단체의 파키스탄 내 근거지를 이란이 지난 16일에 공격하고, 이에 대해 파키스탄이 이란 영토에 보복하며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됐던 거예요. 오늘날 파키스탄과 이란은 발루치스탄 문제 외에도 아프가니스탄과의 관계, 이슬람 세계 내의 다양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어요. 이러한 이슈들은 두 나라 간의 협력뿐만 아니라 때때로 긴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답니다.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기획·구성=장근욱 기자, 조선일보(2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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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과 인도
카슈미르, 한쪽은 파키스탄령, 다른쪽은 인도령
70년간 두 나라가 이 땅 두고 '으르렁'
지난 5일 인도 정부가 이제까지 헌법으로 보장해온 인도령 카슈미르 특별자치권을 폐지했어요. 카슈미르 지역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며 갈등이 이어져온 곳이에요. 지금껏 인도령 카슈미르는 국방·외교를 뺀 나머지 영역에서 자치권을 누리고 있었는데, 앞으론 인도 정부가 직접 통치하겠다는 거예요.
인도령 카슈미르에 있는 수루 계곡. /위키피디아
인도 북서부에 있는 카슈미르는 험준한 산악지대예요. 세계에서 둘째로 높은 산인 K2가 있는 카라코람산맥이 카슈미르를 지나죠. 전체 면적(22만㎢)은 한반도와 비슷하지만 인구는 약 1100만명에 그쳐요. 자연경관이 뛰어나지만 긴 분쟁을 겪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옥'이라 불립니다. 카슈미르는 원래 독립 왕국이었다가 14세기 후반 이슬람교 무굴제국의 일부가 됐어요. 무굴제국이 영국 식민지가 되면서 카슈미르도 영국 지배하에 들어갔지요.
2차 대전이 끝난 뒤 영국이 인도 대륙에서 물러가고, 힌두교 국가 인도와 이슬람교 국가 파키스탄이 들어섰어요. 두 나라 가운데 놓인 카슈미르가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카슈미르는 인구 70% 이상이 이슬람교도지만, 지배 계층은 힌두교도가 더 많았거든요. 카슈미르 지배 계층이 인도에 귀속되겠다고 선언하자 파키스탄이 반발해 두 나라는 카슈미르를 놓고 2년간 전쟁을 벌였어요.
1949년 유엔의 중재로 인도와 파키스탄이 휴전하면서 카슈미르 지방 가운데 인도 쪽 3분의 2는 인도령 잠무 카슈미르가 되고, 파키스탄 쪽 3분의 1은 파키스탄령 아자드 카슈미르로 나뉘었어요.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두 나라는 카슈미르가 서로 자기 땅이라며 으르렁거리고 있죠. 두 나라가 국제사회의 비판을 무릅쓰고 핵무기를 개발한 것도 카슈미르 때문이었어요.
긴 분쟁에도 불구하고 카슈미르는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고급 모직물을 뜻하는 영단어 '캐시미어(cashmere)'가 카슈미르에서 나왔습니다. 카슈미르에서 키우는 산양 털로 만든 양탄자와 모직 제품이 명품으로 꼽혔거든요.
-박의현 창덕여중 지리 교사, 조선일보(1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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