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도쿄, 비싼 서울]
[일본은 '푸드 로스' 전쟁 중... 40년 간식 '편의점 오뎅' 사라진다]
[아큐파이드 재팬과 봉준호]
[좌파와 재벌]

값싼 도쿄, 비싼 서울
엔화 값이 싸지면서 일본에 놀러가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이달 들어 10일까지 국내 항공사의 인천-나리타 노선을 이용한 사람이 약 9만명으로 집계됐다. 올 1월보다 35%나 늘었다. 8일 기준 원/엔 환율은 100엔당 928.63원으로 7년 7개월 만에 가장 낮다.
▶유튜브에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일본 곳곳을 여행 다니며 띄운 ‘먹방 투어’ 동영상이 넘쳐난다. 일본 여행을 가면 주머니 가벼운 젊은이들도 점심 값이 저렴하다고 느낄 정도로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다. 일본 직장인의 평균 점심 값은 6400원. 우리나라 유명 냉면집의 냉면 반 그릇 값도 안 되는 가격이다. 한국에서 골프 치느니 항공료 포함해도 일본 가서 골프 치고 오는 게 훨씬 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연간 7억개가 팔리는 일본의 국민 과자 우마이봉이 지난해 제품 출시 43년 만에 가격을 20% 올린 게 큰 뉴스였다. 말이 20%지, 10엔짜리를 2엔(20원) 올려 12엔이 됐을 뿐이다. 몇 년 전 일본 빙과 업체 아카기유업에서 사장을 비롯해 임직원 100여 명이 도열한 가운데 소비자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는 광고 영상을 띄웠다. 한국 같으면 갑질로 사회적 물의를 빚었을 때나 올리는 영상인데, 25년 만에 아이스크림 가격을 개당 60엔에서 70엔으로 올리면서 대국민 사과 영상을 띄웠다. 1997년 일본인 월급을 100이라고 할 때 2020년은 90 수준이다. ‘잃어버린 30년’의 경기 침체로 월급이 뒷걸음질치니 일본 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 1엔이라도 더 싼 제품을 내놓으며 가격 경쟁을 벌이느라 원가절감의 고수들이 됐다.
▶실제로 서울이 도쿄보다 비싼 도시가 됐다. 국제 인력관리업체 ECA인터내셔널이 207개 도시의 생활비를 조사했더니 서울이 9위, 도쿄가 10위였다. 세계 주요 도시 물가를 비교하는 맥도널드 빅맥 지수에서 올해 일본의 빅맥 가격은 3.15달러로, 55국 중 43위 수준이다. 가장 비싼 스위스 7.26달러의 반값도 안 되고, 아시아에서 한국(3.97달러), 태국(3.9달러), 중국(3.54달러)보다 낮다.
▶일본은 극심한 디플레이션(물가하락)에서 벗어나려고 전 세계가 금리를 올리는 동안에도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해 엔화 가치가 급락했다. 공격적인 돈 풀기로 경기를 띄우는 ‘엔저론자’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가 10년 만에 물러나고 경제학자 출신인 우에다 가즈오 총재가 일본은행 총재로 부임하면서 지금의 엔저 현상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환율 효과가 사라져도 일본보다 월등하게 비싸진 터무니 없는 물가로는 외국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3-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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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푸드 로스' 전쟁 중… 40년 간식 '편의점 오뎅' 사라진다
편의점 대국 일본에서 겨울을 지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마주쳤을 명물 간식이 있다. 전기 냄비가 따끈하게 데워주는 '편의점 오뎅'이다. 일회용 컵 용기에 국물과 함께 어묵, 곤약, 무 등을 담아 먹는다. 어묵 하나에 100엔, 곤약은 75엔, 튀긴 두부는 90엔 정도다. 추운 겨울 따끈한 국물과 함께 즐길 수 있고, 값도 싸 서민들에겐 겨울철 대표 간식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1970년 말 등장 이후 40년 넘게 사랑받아 온 편의점 냄비 오뎅이 올겨울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일본의 3대 편의점 체인인 패밀리마트의 경우 지난 1월부터 전체 매장의 절반인 6000개 매장에서 냄비 오뎅 메뉴를 뺐다. 전기 냄비가 있었던 계산대 바로 앞자리는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는 '팩 오뎅'이 차지하고 있다〈사진〉.
냄비 오뎅 퇴출은 작년 10월 시행된 '푸드 로스 삭감 추진법'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푸드 로스(food loss)는 '먹을 수 있지만 버려지는 식품'으로 유통기한이 끝나가는 편의점 식품이 대표적이다. 2016년 일본 농림수산성 조사 결과 일본에서 발생하는 푸드 로스는 1년에 643만t에 달했다. 유엔세계식량계획이 전 세계에 원조하는 양(약 320만t)의 2배가 넘는다. 일본 국민 1명당 51㎏꼴이다. 식량 자급률이 30%대 후반에 불과한 일본은 이를 뼈아프게 받아들였다.
대형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 과자업체, 식품업체들은 '푸드 로스' 줄이기에 대대적으로 나섰다. 패스트푸드점은 '주문받은 만큼만 음식 만들기', 과자업체는 '제조 공정을 개선해 유통기한 늘리기'로 대응했다. 지난 12일 기자가 요코하마의 한 맥도널드 매장에서 '빅맥'을 주문하자 직원들은 그때서야 패티를 굽고 감자를 튀기기 시작했다.

편의점들이 택한 전략은 냄비 오뎅 없애기였다. 냄비 오뎅은 유통기한이 길어야 16시간밖에 안 된다. 이 때문에 푸드 로스 양산의 주범으로 찍혔다. 이에 반해 팩 오뎅은 유통기한이 6개월이다. 값도 냄비 오뎅보다 20% 이상 저렴하다.
'예약제 김밥'도 등장했다. 일본에선 입춘 전날(세쓰분·節分) 정해진 방향을 향해 복을 빌며 '에호마키'란 김밥을 먹는 풍습이 있는데, 이 김밥은 냄비 오뎅,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함께 푸드 로스의 주범으로 꼽혔다. 매년 가게에서 팔리지 않고 산처럼 쌓인 에호마키가 대량 폐기되는 일이 반복됐다. 올해(2월 3일)는 몇몇 업체가 예약제로 주문을 할 경우 할인을 해주는 방식을 도입해 완판에 성공했다.
IT 업계는 푸드 로스 줄이기의 숨은 조역을 자청하고 나섰다. 소비자들이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남은 음식을 싼 가격으로 살 수 있게 알려주는 앱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다베테(たべて·먹어)라는 앱의 경우 가맹점이 지난해 9월 319개에서 최근 500개 이상으로 늘었다. 기자가 초코롤빵을 구출하러 갔다가 만난 카페 주인 고바야시(63)씨는 "앱에 등록해 약 20% 정도 폐기 음식을 줄였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버려질 운명이었던 음식을 누군가 사가면 '구출됐다'고 표현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일부 소비자에게 씁쓸함을 주기도 한다. 20대 직장인 마에야마씨는 "팩 오뎅이 깨끗하고 간편한 데다 가격도 더 싸서 좋지만 냄비 오뎅이 없어져 왠지 쓸쓸한 기분은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대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번 '옛것'으로 분류되면 되살아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태동 도쿄 특파원, 조선일보(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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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큐파이드 재팬과 봉준호
영화 기생충이 작품·감독·국제영화·각본상으로 아카데미 4관왕에 올랐다. 작품상에 특히 눈이 간다. 1년간 상영된 전 세계 수천 영화 가운데 최고의 작품(Best Picture)이란 의미다. 지난해 아카데미 작품상은 피터 패럴리 감독의 그린 북(Greenbook)이다. 따뜻한 미소가 가슴 깊이 파고드는 영화다. 1962년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Don Shirley)의 미국 남부 투어 실화에 기초했다. 흑인 차별의 실상이 피아노 선율과 더불어 '잔잔하게' 그려진다.

기생충 덕분에 그린 북을 다시 봤다. 영화 속 콘서트 투어 경로를 보면서 필자의 남부 여행 기억이 되살아났다.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남부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99% 미국산 자동차의 아칸소, 걸어 다니면 모두가 쳐다보던 켄터키, 저개발국 수준의 험한 도로로 채워진 조지아…. 차별까지는 아니더라도 동·서부 도시와 전혀 다른 공기가 남부에 표류한다.
70여년 전 역사 재생은 앨라배마 시골길을 달리다 얻게 된 수확물 중 하나다. '앤티크'란 글씨로 도배한 작은 골동품 가게에 들어갔다. 폐기물 전시장 수준이지만, 흙 속의 진주 하나를 발견했다. 10달러짜리 유럽풍 수제 찻잔으로 색상과 디자인, 강도가 탁월했다. 찻잔 뒤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메이드 인 아큐파이드 재팬(Made in Occupied Japan)', 즉 점령기 일본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아큐파이드 재팬'은 1947년 2월부터 1949년 2월까지, 즉 맥아더 장군 통치하의 일본 수출품에 붙여진 국명이다.
이 찻잔은 세라믹의 멋과 맛을 일깨운 기점이었다. 남부에 흩어진 골동품 가게를 통해 꾸준히 수집한 결과 지금까지 200여점을 모았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보면 볼수록 깊고도 신성한 '기(氣)'가 느껴진다. 기아에 허덕이며 점령군의 푼돈에 매달리던 1억 패전국의 '핏빛 눈물'이 배어 있기 때문일까. 진짜 예술은 혼(魂)에서, 혼은 극(極)과 극(劇)의 삶에서 온다고 믿는다. '아큐파이드 재팬' 싸구려 찻잔조차 귀한 예술작품으로 와닿는 이유일 듯하다. "예술에만 미쳤다."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기자회견에서의 말이기도 하다.
-유민호 퍼시픽21 아시아담당디렉터, 조선일보(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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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와 재벌
궁합을 볼 때 상극 관계이면서도 궁합이 맞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돼지고기와 새우젓의 관계이다. 돼지고기와 새우젓은 상극이다. 그렇지만 새우젓을 한 젓가락 집어 먹을 때 돼지고기의 느끼한 맛을 잡는다. 재벌과 좌파의 관계도 그렇다. 양쪽은 상극이다. 재벌이 돼지고기라고 한다면 새우젓은 좌파라고나 할까. 한국 현대사에서 '재벌, 좌파'가 궁합을 맞춘 경우가 두 번 발견된다. 인촌 김성수가 빨갱이 소리를 들었던 죽산 조봉암을 후원한 경우이다. 죽산이 남한의 혁명적 토지개혁을 주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지주였던 인촌의 '백업'이 있었다. 이번에 아카데미 4관왕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도 CJ라는 재벌이 돈을 대고 봉준호라는 좌파 성향 감독이 재능을 발휘한 구조이다. 기생충이 침체되어 있던 나라 분위기를 바꿨다. 바이러스 전염으로 온 국민이 움츠러들고 있는 정국에서 아카데미 기생충이 들어와 이 바이러스를 잡아먹었다.
아울러 영화라는 투기사업에 계속 뒷돈을 댄 CJ 이미경 부회장의 코멘트가 생각난다. 6~7년 전쯤 이미경과 몇 번 식사했는데, 그가 필자에게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자식도 없고, 남편도 없어요. 거기에다 몸도 불구예요. 나는 뭔 재미로 살아야 하는 거요? 그래서 영화를 좋아해요. 조 선생님, 내 병 고칠 수 있는 영험한 도사 좀 알면 소개해 주세요." 껍데기는 남들이 선망하는 돈 많은 재벌가 딸이고 부회장이지만 그 내면세계는 인생의 낙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의 병을 낫게 해 줄 수 있는 도사 연줄을 가동시켜 보았다.
지리산·설악산·오대산·팔공산·계룡산·가야산·한라산 도사들에게 사발통문을 보냈다. 팔공산의 팔봉(八峰) 선생에게서 회답이 왔다. "그녀는 전생에 큰 객줏집의 대모(代母)였다. 많은 사람에게 밥을 먹이고도 그 외상값을 받지 않는 공덕을 쌓아서 부잣집에 태어났다. 특히 광대패, 소리꾼 같은 예능인들에게 밥을 많이 먹였다. 몸이 불구인 것은 선대에 사냥을 즐긴 업보이다. 개인의 업보도 있지만 집안의 업보도 있다"라는 해석이었다. 빈부(貧富)와 귀천(貴賤)은 생을 바꾸면서 교대한다는 게 윤회의 법칙이다.
이번 기생충의 오스카상 수상에는 재벌가 이미경의 전생 업보와 한(恨)이 크게 기여했다는 게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다. 영화 사업이 자신의 업보이자 한을 푸는 계기였다. "조 선생님, 한국이 가진 자산은 훌륭한 아티스트들입니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선일보(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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