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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과 홋카이도 사이.. 유럽으로 가는 가장 빠른 항로.. ] ....

뚝섬 2023. 6. 14. 10:16

[사할린과 홋카이도 사이.. 유럽으로 가는 가장 빠른 항로가 여기에 있다] 

[러∙일 분쟁 쿠릴열도] 

 

 

 

사할린과 홋카이도 사이… 유럽으로 가는 가장 빠른 항로가 여기에 있다

 

[주강현의 해협의 문명사]

 

지구온난화로 북극해가 녹는 비극이 발생하지만, 역으로 북극 항로가 개설되는 계기가 된다. 한반도에서 북극해를 거쳐서 유럽에 당도하자면 가장 빠른 항로는 라페루즈 해협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해협은 한국인의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사실은 환동해(동해를 둘러싼 지역)의 총체적 전략에서는 대단히 중요하다. 동해에서 북극해로 나아가는 중요 출구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사할린섬 남쪽 끝 코르사코프 항구에 화물선들이 정박해있다. 코르사코프 앞바다가 라페루즈해협이다. 북극 항로가 열리면 라페루즈해협은 한반도에서 유럽으로 가는 가장 빠른 항로의 통로가 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우리로서도 동해의 출구가 되는 북방 바다가 중요하다. 동해는 시베리아 대륙과 한반도, 일본 열도에 둘러싸인 호수 형상이기는 하나 갇힌 바다는 아니다. 동해는 대양은 아니지만, 심해저, 해류, 해저 지형 등에서 두루 작은 대양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작은 대양인 관계로 동해를 형성시켜주는 대륙과 섬 사이에는 많은 해협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들 해협이 항로로 이용된 역사는 매우 짧다. 오늘날 지리 상식으로 시베리아에서 타타르 해협을 건너면 사할린섬에 닿고, 사할린에서 라페루즈 해협을 건너면 홋카이도에 닿는다. 사할린이 섬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은 18세기 이후에야 확립되었다. 이들 해협은 다양하게 불렸으며, 그 명칭에는 해협을 발견한 각 나라의 이해충돌이 반영되어 있다. 러시아와 중국, 일본과 미국의 해양 전략이 충돌하는 해협이기도 하다.

 

홋카이도 북단의 소야 곶과 러시아 사할린섬의 크릴론 곶 사이를 러시아와 한국은 라페루즈 해협으로 부른다. 국제적으로도 라페루즈 해협이라 불린다. 중국과 일본에서만 소야 해협이라고 한다. 너비 약 40㎞에 수심은 평균 5~120m다.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의 전례에 따라서 세계 일주에 나선 프랑스 라페루즈 함대는 1787년 4월에 필리핀을 출항해 그해 6월, 한반도 남해안 일대를 탐험했다. 후발 해양 제국으로 발돋움한 프랑스는 폴리네시아 등 태평양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고, 북방 바다까지 뱃길을 돌린 것이다.

 

라페루즈 백작이 한반도에서 최초로 만난 섬은 ‘켈파에르트(Quelpaert)섬’ 즉 제주도였다. 이어 부산 앞바다를 거쳐서 동해로 항해하면서 섬을 하나 기록했는데 ‘다즐레(Dagelet)섬’ 즉 울릉도였다. 함대는 북상을 거듭하여 당시만 해도 러시아인이 없던 사할린 사이의 해협을 지나쳤으며, 이를 라페루즈 해협으로 명명했다. 이들은 북동으로 계속 올라가서 마침내 쿠릴열도에 당도한다. 서양 선박이 최초로 라페루즈 해협을 통과한 것이다.

 

북극해 항로가 시작된다면 라페루즈 해협의 중요성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해협의 북쪽 항로에 쿠릴열도가 있고 러시아와 일본이 북방 4도를 놓고 다툰다.

 

사할린섬과 시베리아 대륙 사이에는 타타르 해협(마미야 해협)이 있다. 이 해협은 유라시아 대륙과 사할린섬을 가르며, 북으로 오호츠크해, 남으로 동해로 연결된다. 길이 약 663㎞, 깊이는 가장 얕은 곳이 약 8m, 가장 좁은 폭이 불과 7.3㎞다. 겨울에는 얼어붙어 해협을 가로질러 횡단이 가능하다.

 

사할린섬 북부 지역 원주민인 니브흐족을 그린 그림. 사할린은 오랫동안 시베리아 대륙에 연결된 반도로 여겨졌으나 18세기 들어 섬으로 확인됐다. /러시아동방과학원

 

타타르 해협을 확인하려는 열강의 노력은 일찍이 17세기부터 시작되었다. 사할린섬은 오랫동안 시베리아 대륙에 부속된 반도로 여겨졌다. 1644년 러시아 부대는 아무르강(헤이룽강) 하구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겨울을 나게 된다. 그러면서 사할린이 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709년 청나라 강희제는 아무르강 하구에 예수회 선교사를 포함한 탐험대를 파견한다. 그들은 사할린에 상륙해 섬을 탐사했다. 18세기 중순, 청은 사할린의 일부 지역에 조공을 부과하기도 했다.

 

1945년 이전 왓카나이와 사할린을 연결하던 정기선 발착장이 있던 일본 최북단의 땅에는 마미야 린조 동상이 해협을 바라보며 서 있다. 일본 입장에서 마미야 해협을 발견한 마미야를 기리는 것이다. 타타르 해협이 마미야 해협이라고도 불리게 된 것은 마미야가 이곳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마미야는 1808년에 막부 명령으로 북사할린 서해안 길랴크족의 여러 촌을 탐험했다. 같은 해 겨울을 그곳에서 보내고 다음 해에 길랴크족의 배를 타고 그들과 함께 헤이룽강을 거슬러 올라가 강의 상류 데렌까지 갔다. 이곳에서 다시 강을 내려와 사할린으로 돌아왔다.

 

사할린이 반도가 아니라 섬이라고 추측한 그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혼자 사할린 탐험길에 올랐다. 당시에는 사할린이 헤이룽강 하구의 남쪽에서 대륙과 연결되어 있다고 잘못 믿고 있었다. 마미야는 두 번째 탐험(1809년)에서 북위 53도15분 지점에 도달해 사할린이 섬임을 확인했다. 사할린이 섬이라는 것이 확실하자, 러시아와 사할린 사이를 마미야 해협으로 명명함으로써 일본인으로는 유일하게 세계지도에 이름이 등록된 사람이 되었다.

 

러시아와 프랑스, 일본, 중국의 ‘발견’은 사실 당대 열강의 입장일 뿐이다. 사할린에는 오랫동안 아이누, 니브흐족, 윌타족 등의 민족이 살고 있었다. 때문에 예부터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은 당연히 사할린을 섬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라페루즈는 사할린이 하나의 섬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고 기록했으나, 그는 이 정보를 원주민에게서 입수했다. 마미야 린조도 일본에서 사할린이 섬임을 발견한 인물로 공적을 인정받고 있지만, 정보의 원천은 역시 사할린 북부의 니브흐 촌민이었다.

 

국제적 패권의 역사는 냉혹하다. 라페루즈의 ‘세계 일주 항해기’ 이전에는 동해 표기에서 ‘한국해’가 다수였다. 동해를 직접 탐사한 라페루즈가 일본해 표기를 것이 유럽인들 사이에서한국해일본해 바뀌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주강현 해양문명사가·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 조선일보(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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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 분쟁 쿠릴열도

 

근로자 가세한 인프라 공사 한창

 

[러시아 쿠나시르 섬을 가다]

사할린 포함 
근로자 300 여명, 핵잠수함 정박 가능한 군사 요지
수산업·생태관광 경제잠재력 커… 영유권 두고 수차례 협약에도 갈등

 

 

러시아와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쿠릴열도 남단 쿠나시르(일본 이름 구나시리·國後)섬 공항 터미널은 간이역 대합실 같았다. 지난 6일 70㎡(20여 평) 남짓한 터미널에는 북한 근로자 7명이 사할린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 길이라고 했다. 남색 점퍼와 낡은 운동화 차림이었다. 김일성 배지를 왼쪽 가슴에 단 근로자도 있었다. 그는 "여기 춥습네다. 날씨가 한심합네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는 올해 부두·도로·주택 같은 인프라 공사와 학교·병원·휴양시설을 짓는 섬 개발 공사를 본격 시작했다. 북한 근로자 30여명도 이 공사 현장에서 '외화 벌이'를 하고 있다. 또 다른 북한 근로자는 "1년 반 정도 일하고 중간에 한 번 고향 갑네다. 사할린에도 (북한 근로자가) 300명 정도 있습네다"라고 했다. "대개 3년 일정인데 체류 연장도 가능하다"고 했다.

이날 쿠나시르 방문은 한림대 러시아연구소 조사단 22명과 함께였다. 50명을 태운 소형 여객기가 공항 활주로에 멈춰 서자 러시아 국경수비대 소속 군인이 비행기로 올라왔다. 두 달 전 이미 방문 허가를 받았지만 경비대원은 "왜 왔느냐" "며칠 있나" 일일이 묻고는 일행의 여권을 모두 가져갔다. 군용 비행장으로 함께 쓰이는 멘델레예보 공항 검색대에서 방문자와 여권 사진을 다시 대조하는 '이중 검문'을 했다. 인근 군 훈련장에서 사격 소리가 잇달아 들렸다.

공항 터미널 청사를 나서자, 병풍처럼 험산(
險山)이 늘어선 섬이 바다 건너 눈앞에 보였다.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北海道)다. "쿠나시르 해안 등대에서 탐조등을 켜면 홋카이도에서 그 불빛으로 신문을 읽을 수 있다는 말이 있어요." 쿠릴열도 영유권 분쟁 전문가 최태강 한림대 러시아연구소장의 말이 실감 났다.

 

-한림대 러시아연구소 조사단이 8일 러시아 쿠릴열도의 쿠나시르 섬 해안에 형성된 주상절리(柱狀節理)를 살펴보고 있다. 주상절리는 마그마가 급격하게 냉각 응고하면서 생기는 다각형 기둥 모양의 바위다. /쿠나시르=김성현 기자 

 

섬 인구는 7800여명. 하지만 이 섬을 포함한 쿠릴열도는 오호츠크해와 태평양을 잇는 군사적 관문이다. 특히 쿠나시르와 이투루프 섬은 향후 러시아 핵미사일 잠수함의 정박이 가능하다. 수산업과 생태 관광 등 경제 잠재력도 크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출신의 바딤 슬랩첸코 한림대 연구교수는 "쿠나시르 섬은 화산·온천 같은 자연 자원을 지니고 있어 동북아 생태 관광의 메카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 섬의 골로브닌 화산에서는 한반도에서 볼 수 있는 눈잣나무와 가문비나무 같은 한대성(
寒帶性) 침엽수들이 서식하고 있다. 현지 생태를 조사한 공우석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는 "쿠릴열도는 북방계 식물들의 보고(寶庫)이며, 한반도에 서식하는 식물들의 기원과 같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러·일 양국은 1855년 시모다(
下田)조약 이후 쿠릴열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수차례 협약을 맺었다. 러·일전쟁과 2차 대전 이후 '전리품(戰利品)'으로 간주됐다. 러·일전쟁 직후인 1905년 포츠머스 강화조약 때는 승전국 일본이 영유권을 넘겨받았다. 1945년 2월 얄타회담 때는 미·영·소 연합국 3국이 "쿠릴열도를 소련에 양도한다"고 합의했다. 러·일 양국은 자국이 유리한 협상을 맺었던 시점을 기준으로 내세운다.

러시아와 일본의 속내는 다르다. 일본은 이투루프·쿠나시르·시코탄·하보마이 등 쿠릴열도 남쪽 4개 섬 반환을 요구하는 반면, 러시아는 시코탄과 하보마이 2개 섬은 돌려줄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최태강 소장은 "러시아가 쿠릴열도의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실효 지배를 강화하려는 '굳히기 전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쿠릴열도

 

러시아 캄차카 반도와 일본 홋카이도 사이에 있는 22개의 크고 작은 섬과 암초를 일컫는다. 사할린 동쪽에 있다. 이 가운데 이투루프·쿠나시르·시코탄·하보마이 등 남쪽 4개 섬이 러·일의 영유권 분쟁 지역이다. 

 

-쿠나시르=김성현 기자, 조선닷컴(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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