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거지 같다
'거지 같다'는 시장 상인의
하소연… 요즘 국민들 마음 정확하게 표현
정권, 줄기차게 국민 목소리 외면… 과연 이 난국 헤쳐나갈 수 있는가
며칠 전 시장통 상인이 대통령에게 한 말은 요즘 국민들의 심기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좀 어떠세요?"라는 포괄적 질문에 "거지 같아요"라고 포괄적으로 답했다. 그리고 거지 같아진 이유 세 가지를 들었다. "너무 장사가
안돼요" "경기가 너무 안 좋아요"
"진짜 어떻게 된 거예요?"였다. 이
중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어떻게 된 거예요?"다. 장사가 안되고 경기도 안 좋은데 왜 이렇게 됐는지도 모르니 화가 나고 거지 같은 것이다. 그는 마지막에 '거지 같다'와
비슷한 말을 덧붙였다. "울게 생겼어요." 보통
사람들은 거지 같을 때 우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구걸하는 사람이 많던 시절엔 거지란 말을 흔히 썼다. 땅에 떨어진 걸 주워 먹으면 아이들끼리 '땅거지'라고 놀렸다. 이젠
구걸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거지란 말도 거의 안 쓴다. 그러나 '거지
같다'는 말은 살아남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거지 같다'는 단어가 없다. 누구나
뜻을 달 수 있는 '우리말샘'에는 있다. '보잘것없고 시시하여 마음에 달갑지 않다'고 풀이해 놓았다. 그 상인은 장사가 너무 안되는 데다가 폐렴 바이러스 때문에 손님이 더 줄어 아주 죽을 맛이다. 그 답답한 마음을 '거지 같다'고
하소연한 것이다.
인터넷에서 '거지 같아요'로 검색을 해봤다. 여러 가지 케이스가 있었다. "아이 보고 살림하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신랑은 맨날 술 마시고 다녀요." "큰맘 먹고 비싼 물건 샀는데 금방 고장
나고 환불이나 교환도 안 된대요." "회사 내규에는 출산휴가에 육아휴직을 이어 쓸
수 있게 돼 있는데 상사가 휴직을 못 하게 해요." 전부 거지 같은 경우다. 기대했던 것에 훨씬 못 미칠 때,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이 되지 않을
때, 누군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해주지 않을 때 우리는 거지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요즘 높은 사람들이 시장을 찾는 일이 부쩍 잦다. 그때마다 그들의 생각이 민심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국무총리는 손님이 줄었다는 상인에게 웃으며 "편하시겠네"라고 했다.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자 한술 더 떠 "많이 벌어놓은 걸로 버티셔야지"라고 했다. 그 대화를 전해 들은 자영업자들이 이 나라를 어떻게 생각할까. 손님이
너무 많아 눈코 뜰 새 없어야 콧노래가 나오는 게 자영업자다. 대통령 부인은 상인과 만나 "예쁘시네요" "마스크 벗으면 더 예뻐요" 같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지금 이 나라에 무슨 경사라도
났나. 세월호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할 만큼 안전한 나라를 강조했으면, 난리 통에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워야
하지 않는가.
국민은 일상 언어로 말할 자유가 있다. 그들이 준 표로 권력을 쥔 자들은 그 말을 겸손하고
뼈아프게 들어야 한다. 이 정권 사람들은 국민 말을 들을 생각은 않고 늘 논평하려고 든다. 옳은 말 하는 국민을 정적(政敵)처럼
여긴다. 조국 사태, 탈원전 쇼, 허구적 소득 주도 성장, 부동산 정책 실패, 선거 개입과 검찰 수사 방해까지 국민들은 줄곧 "거지 같다"고 외쳤다. 그런데 전혀 듣지 않고 맘대로 밀어붙였다. 모든 게 자기들 덕분에 잘되고 있다고 해왔다. 그러니 시장에 나와도
분위기 파악이 안 돼 엉뚱한 소리를 한다.
그런 와중에 어찌해볼 도리 없는 전염병까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바이러스는 권력이 다스릴
수 있는 게 아니지만, 국민 말을 귓등으로 흘리는 정권이 과연 이 난국을 잘 헤쳐나갈지 불안하다. 그래서 거지 같다. 요즘 하루하루 살며 버티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진짜 거지 같은 심정이다.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2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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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는 밥통을 깨진 않는다
포퓰리즘이 나라를 망가뜨리는 현장을 보려고 지난달 폴란드를 둘러봤다. 기사가 나가자 한국에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놀랄 만큼 닮았다는 것이다. 폴란드 여당인 법과정의당(PiS)은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현금 수당을 펑펑 뿌리고, 동시에
법원·검찰을 친위 세력으로 삼으려고 사법제도를 개편하고 있다. 공영방송을 정권의 홍보 도구로 앞세우고
과거사를 헤집어 선거에 활용하는 것마저도 같다. 두 나라 집권 세력이 장기 집권 전략을 서로 베낀 것
같다.
그러나 폴란드에 가 보면 한 가지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폴란드만큼 기업에
친화적이고 특히 해외 자본 유치에 열성적인 나라를 찾기 어렵다. 정부가 현금 수당을 뿌려 매표(買票) 행위를 하고 있긴 해도 나라의 부(富)를 키우려는 노력은 쉼 없이 이뤄지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전국을 경제특구로 정해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해외 기업에 투자금의 20~50%를
법인세 감면으로 돌려준다. 세계 각지에서 기업이 몰려든다. 일손이
모자라 우크라이나에서만 150만명이 유입됐을 정도로 활기가 넘친다. 바르샤바
시내는 초고층 빌딩이 쑥쑥 올라가는 중이다.
기자는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 바르샤바 시장을 만났다. 야당 소속이라 포퓰리즘을 구사하는
집권당과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이다. 그는 "정부와
정치적으로 대립 중이지만 경제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의지가 있다는 점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다"고
했다. 옥스퍼드대 유학파인 트샤스코프스키 시장은 해외 큰손이 오면 유창한 영어로 투자를 권유한다.
공교롭게도 폴란드에 거액을 투자하는 기업 중에는 한국 회사가 많다.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대표적이다. 두 회사는 신규 일자리 창출을 이유로 각각 수백억원대의 폴란드 정부 보조금을 받았거나 받을 예정이다. 폴란드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240개사에 달한다. 2018년 한국 기업의 폴란드 투자는 5억3500만달러(약 6400억원)로 전년보다 2.5배 늘었다.
폴란드에서는 법인세를 인상하고 규제를 늘리고 지배 구조에 간섭하며 기업을 옥죄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한국과 폴란드 집권당이 놀랄 만큼 비슷한 집권 전략을 갖고 있지만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180도 다르다는 얘기다.
돈을 뿌려 환심을 사려는 정부 입장에서 기업은 국민에게 줄 현금 수당을 뽑아내는 원천이다. 폴란드에서는
기업을 어르고 달래서 어떻게든 기를 세워주려고 애쓰는 반면, 한국의 집권 세력은 기업의 뺨을 때리고
윽박지르는 행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미 한국은 성장이 정체되고 기업 실적이 뚝뚝 떨어지며
세수(稅收)가 줄어들고 있다. 현금을 대거 살포한 뒷감당을 못 하는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른다.
-손진석 파리 특파원, 조선일보(2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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