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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수가 英 노동당에 배워야 할 '딱 한 수'] [종기의 고름을 빨고 치질을 핥다]

뚝섬 2020. 5. 13. 07:49

한국 보수가 英 노동당에 배워야 할 '딱 한 수'

 

영남↔수도권, 강성↔온건 대립… 난파선 구조방안 놓고 자중지란
英 노동당, 상징적 당헌마저 바꾸며 환골탈태 후 재집권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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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가치' 빼고 다 바꿔라… 새 지도자도 그 과정서 나올 것

 

4·15 총선에서 보수 우파 정치 세력이 궤멸적인 패배를 당한 뒤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총선 직후에 보수 우파 정당을 이끌어온 50·60대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30·40대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래통합당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되는 김종인씨는 "지난 대선에 출마한 사람들의 시효는 끝났다" "70년대생 경제통을 대선 후보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 뒤 보수 우파 정치권의 체제 정비를 둘러싼 논란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면서 다른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영남과 수도권, 강성 보수와 온건 보수 사이의 시각차가 드러났다. '보수의 혁신'을 외치면 '정체성의 혼란'이라고 반발하고, "중도층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집토끼를 다독여야 한다"고 반박한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앞두고 간신히 하나가 됐던 보수 우파 정치 세력이 난파한 배를 구조하는 방안을 놓고 다시 자중지란(自中之亂)의 위기에 빠진 것이다.

 

인위적 물갈이는 불가능

 

보수 우파 정치 세력이 낡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일부 보수 정치인의 거칠고 투박한 언행도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50·60대는 다 빠지라는 주장은 무리다. 빈자리를 메울 30·40대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인위적인 물갈이는 가능하지도 않고 부작용만 드러날 뿐이다. 30·40대에게 더 넓은 공간을 열어주면서 50·60대와 경쟁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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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과 강성 보수' () '수도권과 온건 보수'의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양자를 갈라놓았던 '박근혜 탄핵'에 대한 입장 차이는 총선을 치르면서 상당히 희석됐지만 그 대신 지역과 정서의 차이가 부상하고 있다.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지역·집단에 속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이념은 같아도 그것을 실현하는 노선은 다를 수 있다. 노선이 조금만 달라도 배척한다면 보수 우파 정치 세력은 특정 지역과 일부 집단의 대변자로 쪼그라들 것이다.

 

지금 보수 우파 정치 세력에 필요한 것은 '세대교체 논란'이나 '지역·정서의 갈등'이 아니다. 어떻게 다시 국정을 이끌어갈 수 있는 정치 세력으로 거듭나고 이를 국민에게 인정받느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1990년대 후반 절치부심과 환골탈태 끝에 18년 만에 다시 집권에 성공한 영국 노동당의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래통합당 지도부가 4·15총선에서 참패한 뒤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사죄의 인사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1990년대 후반 영국 노동당을 환골탈태시켜 18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하게    한 뒤 차례로 총리를 역임한 토니 블레어(오른쪽)와 고든 브라운. /남강호 기자·게티이미지코리아

 

1900년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며 만들어진 노동당은 1920년대에 자유당을 제치고 양대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총선에서 승리해 첫 단독정권 수립에 성공했고 1970년대까지 보수당과 정권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1979년 마거릿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에 패배한 뒤 선거에서 연달아 져서 만년 야당이 됐다. 오랜 야당 생활과 내분으로 지쳐 있던 1994년 당권을 장악한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은 '새 노동당(New Labor)'이라는 기치 아래 노동당의 상징이던 당헌(黨憲) 4 '생산수단의 공동 소유'를 폐지하는 등 당을 완전히 개조했다. 그리고 3년 뒤 총선에서 '새로운 영국(New Britain)'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압승했다. 이런 성공적 변신의 배후에는 '3의 길(The Third Way)'을 주창한 기든스 교수가 있었다.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넘어서려는 이념적 노력은 노동당이 핵심 지지 세력인 노조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영국 중도층(middle England)'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국민 마음 사로잡을 '새 이념'

 

한국의 보수 우파는 박정희 시대가 끝난 뒤 '조국 근대화'를 이을 새 이념을 제시하지 못했다. 박정희의 후광(後光)에 기대어 정권을 이어갔고, 진보 좌파 정권 10년이 끝날 무렵에야 '선진화'라는 담론이 나왔다. 하지만 정치권 외곽에서 만들어진 '선진화론'이 보수 우파가 재집권한 뒤 국정 운영에 영향을 미쳤다고는 보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를 표방하며 국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고, 박근혜 정부는 1970년대 유신 시절의 국가주의로 회귀함으로써 국민의 마음을 놓쳤다.

그러는 사이에 정치 지형은 보수 우파에 점점 불리하게 기울어갔다.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한 분석에 따르면 진보보다 보수가 많아지는 연령 분기점이 8년 전에는 47세였던 것이 57세로 10년이나 늦춰졌다. 지난 1월 출간된 '세습 중산층 사회'(조귀동 지음, 생각의 힘)가 생생하게 그린 것처럼 요즘 젊은이들은 '10% 90%'의 메울 수 없는 격차에 절망하고 있다. 보수 정치 세력이 우리 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큰 비전 아래 제시하지 못하면 재집권의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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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보수 정치인이라면 눈앞의 정치적 움직임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새 이념'에 관심을 가질 때이다. 화석이 돼 역사의 무대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지킬 것과 버릴 것을 가려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비롯한 핵심 가치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바꿀 수 있다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시대와 국민의 변화를 세심하게 읽고, '공론화' '공정' 같은 진보 좌파의 어젠다도 수용할 필요가 있다. 지식인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를 이끌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새로운 정치 지도자는 누가 점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치열한 분투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탄생할 것이다.

 

-이선민 선임기자, 조선일보(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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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기의 고름을 빨고 치질을 핥다

 

예상했던 일이다. 여당이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자 정부 여당의 지도자들은 경쟁적으로 대통령 '찬미가'를 불러대고 있다. 이광재 당선자는 문재인 대통령을 조선의 태종에 비견했다. 누가 뭐래도 현대사에서 태종과 비슷한 정치 행적을 보인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지난 8일 법정에 재판을 받으러 출석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차를 지지자라는 사람들이 물티슈로 닦아주는 동영상이 소셜미디어에 공개돼 큰 충격을 줬다. 아무리 재판 중이라지만 조 전 장관은 가족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 사건으로 검찰에 기소된 인물이다. 하나는 우리의 입시 제도 근간을 뒤흔든 부패고 하나는 자기편을 감싸다 들통난 권력형 비리다. 지지자라는 사람들은 "조 장관 마음에 먼지가 쌓인 게 아니라 검찰이 먼지를 씌운 것" "검찰이 씌운 먼지를 국민이 닦아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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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 또한 여당 압승이 가져다준 우리 사회의 병리적 초상화일 것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차 갖고도 이러니 실물을 만나면 아마 머리카락으로 (조 전 장관) 발을 닦아 드릴 듯"이라고 촌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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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는 이런 행태를 연옹지치(吮癰舐痔)라고 했다. 연옹이란 악성 종기에서 나는 고름을 빨아준다는 뜻이고 지치란 치질의 환부를 핥아준다는 뜻이다. 권력자를 향한 아부라면 무소부지(無所不至), 즉 못할 짓이 없다는 말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결코 할 수 없고 또 해서도 안 되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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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에서 간신이 아첨하는 행태를 비판할 때마다 이 말을 자주 쓰길래 필자는 표현이 많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저 상투적 표현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지난 총선 이후 여권에서 벌어지는 과도한 아첨 행렬과 일부 지지자의 낯뜨거운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닌 듯하다. , 적어도 '태종실록'에는 이 말이 나오지 않는다. 태종은 이런 저질스러운 아첨을 용납하는 군주가 아니었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조선일보(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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