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웅의 본색은 친일청산 아닌 연방제
# 지난 주말 제75주년 광복절 행사에서 행해진 김원웅 발언의 본색은 단순한 의미의 친일 청산이 아니다. 진짜 핵심은 1국 2체제의 연방제를 하자는 것이다. 이날 발언 중 특기할 것은 느닷없이 골드만삭스가 등장하는 대목이다. 굳이 인용하면 이렇다. "국제 금융시장을 주도하는 골드만삭스는 남북이 상호 주권을 존중하는 1민족 2체제로 서로 협력하면 수년 내에 프랑스와 독일을 따라잡고, 이어서 일본도 따라잡아 세계 최선진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이렇게 찬란한 우리 민족 미래의 발목을 잡는 것은 '친일에 뿌리를 두고, 분단에 기생하여 존재하는 세력'이다." 압축하면 친일 기득권 분단 세력을 몰아내고 1국 2체제의 연방제를 하자는 것 아닌가!

# 하지만 이 발언에는 교묘한 트릭이 있다. 먼저, 골드만삭스의 예측은 최근 것이 아니다. 11년 전인 2009년 9월 21일 내놓은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 188호(Global Economics Paper No. 188) '통일 한국, 대북 리스크에 대한 재평가'에 담긴 내용이다. 둘째, 당시 이 보고서를 작성한 이는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의 한국인 이코노미스트 권구훈이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81학번으로 하버드대에서 사회주의경제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고 2001~ 2004년 IMF(국제통화기금) 모스크바 사무소 상주대표를 지낸 경력이 있다. 그런데 재작년 겨울부터는 송영길 의원 후임으로 문재인 정부의 북방경제협력위원장(장관급)을 맡고 있다. 셋째, 당시 권 이코노미스트가 작성한 골드만삭스 보고서에서 언급한 통일 한국이란 독일 같은 통일이 아닌 중국-홍콩 관계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한마디로 1국 2체제의 연방제를 바탕에 깔고 쓴 것이다. 그런데 10년이 훌쩍 지난 작금의 중국-홍콩 관계를 보면 그런 양자 간 관계가 남북 간의 관계에서는 반드시 피해야 할 것임은 자명하지 않은가.
# 백보 양보해서, 김원웅의 말처럼 친일 기득권 분단 세력이 소멸하고 1국 2체제 연방제를 하면 정말 통일 한국이 프랑스, 독일, 일본마저 제친 세계 최선진 강국이 되는 것일까? 권구훈의 2009년 리포트를 좀 더 들여다보자. 당시 권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증시가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선진 지수에 편입되면서 장기 투자 목적으로 한국을 보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그 고객들이 북한 리스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를 자주 물어오자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보고서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래서인지 이 보고서는 북핵 리스크는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북한의 광물 자원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2008년 북한 GDP의 140배에 달한다는 장밋빛 전망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조금만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그것이 허수임을 쉽게 알 수 있다. '2008년 북한 GDP의 140배' 운운하며 제시되는 수치는 미채굴 상태의 우라늄, 아연, 납 등 북한 광물 자원을 해외의 전략 투자자에게 판매한 후 이를 다시 장기채에 투자해서 얻는 수익까지 포함한 것이다. 한마디로 단순하게 특정할 수 없는 가상 가치인 셈이다. 북핵 리스크를 가린 채 오로지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려던 의도로 작성되었던 골드만삭스 보고서가 김원웅의 광복절 발언을 통해 연방제를 해야만 하는 이유로 둔갑한 것 자체가 허구요 난센스다.
#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후보 때부터 공공연하게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언급해왔다. 두 달 전 6·25 70주년 행사 때도 이런 속내를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러니 10여 년 전 골드만삭스 리포트의 작성자를 수소문해서 장관급인 북방경제협력위원장에 앉힐 수 있었던 것이고, 김원웅 같은 이를 광복회장에 앉힌 것 아니겠는가. 특히 김원웅은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6년 2월에 국회의원 신분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후 낮은 단계의 연방제 실시를 위해 국가보안법을 우선적으로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는 광복회장이 되기 전에 조선의열단 기념사업회 회장이란 직함을 들고 다니며 김정은을 시대의 위인으로 추앙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조선의열단은 지난해 이른바 '서훈 논란'을 야기했던 김원봉이 조직한 단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현충일 때 느닷없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 서열 3위의 김원봉을 추켜세워 온 나라와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던 배경에 김원웅의 부추김이 있었던 것이리라. 그도 그럴 것이 김원웅이 광복회장을 맡게 된 시기도 바로 작년 6월이었다. 문재인과 김원웅은 김원봉과 연방제에 관한 한 동류항인 셈이다.
# 악마의 발톱은 항상 디테일에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광복절 행사가 치러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연단에 '대한민국'이 아닌 '우리나라'라는 글씨가 눈에 띄지 않던가! 문재인 청와대의 괴벨스와 같은 존재인 탁현민의 작품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대한민국'이 아니라 굳이 '우리나라'라고 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5·10 선거를 통해 이승만이 세운 대한민국 자체를 깡그리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리라. 그래서 일부러 김구의 백범일지에 나오는 '우리나라'를 표방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날 김원웅은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단독정부[單政]를 이끈 일개인으로 호출하고 문재인은 아예 이승만을 무시한 채 오직 김구만을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것 아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정통성 자체를 시작부터 폄훼하는 수작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김원웅 발언의 대미(?)가 "대한민국을 광복하라!"였지만 그것은 곧 대한민국은 해체하고 1국 2체제의 연방제로서 김정은과의 '우리나라'를 광복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 '우리나라'를 위해 사회주의 부동산 정책의 광풍도 분 것이리라. 더는 이들의 역사적 장난을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된다!
-정진홍 컬처엔지니어, 조선일보(2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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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괴상한 독립기념일
나라가 독립한 날, 과거의 상처를 스스로 들쑤셔 집안싸움을 벌이는 막장 나라는, 21세기 세계에서 정말 찾기 어렵다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현대사를 들여다봤다. 독립기념일을 2020년 8월 15일 대한민국 광복절처럼 난장판으로 보내는 나라가 세상에 또 있는지 궁금했다. 찾다가 도달한 콩고에서 뜻밖의 장면을 접했다. 콩고는 몇 년 전까지 '아프리카의 세계대전'으로 불린 대규모 내전을 치렀다. 코로나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흑사병과 에볼라에 시달린다. 경제 규모는 한국의 3%도 안 된다.
지난 6월 30일은 콩고 독립 60주년이었다. 아프리카 독립기념일이라면 독재자를 위한 군사 퍼레이드부터 떠오른다. 하지만 콩고 정부는 행사를 생략했다. 아낀 비용을 코로나와 반군을 막는 용도로 돌렸다. 대신 이날을 갈등과 분열을 봉합하는 기회로 삼았다.
신생 국가는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콩고도 독립 직후 건국 영웅들의 비극적 갈등이 있었다. 갈등 끝에 피살된 건국 총리 루뭄바는 순교자로 추앙받았다. 지금도 콩고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힌다. 그의 일생이 서구에서 영화로 제작됐고 콩고엔 그의 이름을 딴 마을이 생겼다. 반면 건국 대통령 카사부부는 동지이자 정적이던 루뭄바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의심 때문에 비판을 받아왔다. 공적은 잊혔다. 이번에 치세케디 콩고 대통령이 역사의 뒤편에서 소환한 인물이 건국 대통령 카사부부다. 그를 루뭄바와 같은 국가 영웅으로 끌어올렸다. 카사부부 이름을 딴 마을도 만든다. 과오도 있었지만 모두 콩고 독립과 건국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콩고가 특별한 게 아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독립기념일을 이렇게 보낸다. 이념 대립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독립기념일에 작정하고 과거의 상처를 들쑤셔 집안싸움을 일으키는 막장 나라는 정말 찾기 어렵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불행한 과거를 끝없이 끄집어내는 폴란드 정도가 독립기념일이 돌아오면 자기들끼리 싸운다. 폴란드에 대한 유럽의 대접은 자신의 역사에 대한 폴란드 스스로의 대접보다 박하지 않다.
인도도 8월 15일이 독립기념일이다. 2차대전이 끝난 지 2년 후인 1947년 이날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건국했다. 세계적으로 8월 15일은 일제 패망과 2차 대전 종전만이 아니라 피식민지의 해방을 축하하는 날이다. 인도는 식민지 피지배의 기간이 길었고 착취와 폭정의 피해도 컸다. 독립 당시 인도의 건국 지도자들은 식민 시대의 두 가지 핵심 잔재를 어떻게 청산할지 깊은 고민을 했다. 영국 제국주의가 이식한 영어와 크리켓이다. 인도 지도자들은 이들을 오히려 국가 통합의 유산으로 계승했다.
'힝글리시(힌디어+잉글리시)'로 불리는 인도식 영어와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은 크리켓을 식민지 잔재로 여기는 사람은 이제 극소수다. 크리켓 국제대회에서 영국을 누를 때 인도 국민은 환호하고 통합한다. 힝글리시 인구가 잉글리시 인구를 압도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인도가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면 미국식 영어처럼 힝글리시가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식민지 잔재로 다민족·다종교·다언어 국민을 하나로 묶었다. 인도 통합과 발전의 상징이자 수단으로 진화시켰다. 이래서 인도가 대국(大國)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인도 총리의 독립 70주년 기념 연설을 인상 깊게 들었다. 90분 넘게 이어졌지만 과거를 탓하지 않았다. 인도에 대한 자랑과 미래 설계로 대부분을 채웠다. 거창하지도 않았다. 인도 언론은 '1가구 1화장실' 약속을 주요 내용으로 전했다. 올해 8월 15일엔 중국과의 국경분쟁을 의식해 "인도의 주권 존중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을 특정하지 않았다. 여당은 조국의 스와라지(독립) 정신을 찬양했고, 야당은 국경분쟁에서 희생된 인도 장병에게 경의를 표했다.
대한민국은 독립기념일 자랑거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2차대전 후 식민 지배에서 해방돼 건국한 나라 중 유일하게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뤘다. 한국 국민은 독립기념일에 과거와 현재를 자랑스러워 할 자격이 있다. 광복절 자축은 현대사를 성공시킨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다. 이런 국민이 내전과 질병의 역사로 얼룩진 나라의 국민보다 독립기념일을 훨씬 비루하게 보냈다. 광복회장이란 자가 독립기념일 축사를 저주의 언어로 채웠다. 대통령은 그 저주를 듣고도 침묵했다. 집권당은 그 저주에 박수를 보냈고 동참했다. 국민을 둘로 쪼갰다. 모든 나라의 독립기념일을 다 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괴상한 방식으로 독립과 건국을 기념하는 나라일 것이다.
-선우정 부국장, 조선일보(2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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