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에 걸친 텍사스 생활을 감동적인 마지막 플레이로 장식한 추신수. 동아일보DB
추신수는 바지 지퍼를 혼자 올리지 못할 정도로 오른손 부상이 심했다. 경기에 나서려면 진통제 주사를 맞아야 했지만 팀 주치의가 말렸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풀스윙을 하면 부상 부위 손상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스윙을 하지 않고 번트를 대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진통제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
28일 열린 이번 시즌 최종전을 마지막으로 추신수와 텍사스의 7년 계약은 끝났다. 휴스턴과 맞붙은 이날 추신수는 오전 7시에 경기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경기 시작 시간(오후 2시 5분) 전까지 코치가 던져 주는 공에 번트를 대고 또 댔다. 기회는 딱 한 타석뿐이었다. 추신수는 전날 크리스 우드워드 감독과 선발 1번 타자로 출전하되 한 타석에만 들어서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추신수가 타석으로 걸어가는 동안 구장 전광판에 가족이 비쳤다. 구단 특별 초청으로 관중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메이저리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 때문에 무관중 경기를 치른다. 가족이 야구장을 찾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추신수는 “아내가 텍사스 입단식 때 입었던 원피스를 입고 있는 걸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왼손 타자 추신수를 상대로 상대 팀 내야진은 1루 쪽으로 치우치게 수비 위치를 잡았다. 추신수는 휴스턴 선발 투수 체이스 데종이 던진 두 번째 공을 3루 쪽으로 굴린 뒤 1루를 향해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1루에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4.4초. 추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1루를 향해 뛴 4290번 중 13번째로 빠른 시간이었다. 1루심 판정은 세이프. 베이스를 밟는 순간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서 왼쪽 발목 통증을 느낀 그는 텍사스 유니폼을 입고 때린 771번째 안타를 뒤로한 채 교체됐다.
선수단은 물론이고 트레이너와 클럽하우스 관리인까지 모두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그와 포옹을 나눴다. 그중 가장 추신수를 반긴 건 왼손 투수 웨스 벤저민이었다. 벤저민은 “코로나19로 마이너리그 캠프가 중단됐을 때 통장에 50달러밖에 없었다. 그런데 추신수가 마이너리그 선수들에게 보낸 돈이 들어와 있는 걸 보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추신수는 코로나19로 모든 마이너리그 일정이 중단되자 텍사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 선수 191명 전원에게 1000달러씩을 선물했다. 추신수는 이 공로로 그해 사회 공헌에 가장 앞장선 선수가 받는 로베르토 클레멘테상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추신수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품격이란 무엇인지 증명할 줄 아는 선수였다.
내년에 추신수가 어떤 팀에서 뛰게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어쩌면 더 이상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그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꺼지기 전에 가장 밝다는 촛불처럼 추신수가 텍사스에서 남긴 마지막 모습은 많은 팬들 가슴에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황규인 스포츠부 기자, 동아일보(2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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