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잘못이 아니야
두 명의 죽음이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있다. 2016년, 구의역에서 사망한 19세 김군과 김포공항역에서 사망한 36세 직장인 김모씨. 아픈 기억이 소환된 건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걔만 조금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다”는 발언 때문이었다. 그때 김군의 나이 열아홉. 김군이 사망한 지점의 스크린도어에는 아직도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문구가 남아있다. 만 19세 어린 김군의 가방 속 유품이 컵라면이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진 사람이 한둘인가. 그가 쓰러져간 구의역에는 “아가, 라면 먹지 말고 고깃국에 밥 먹어라”라는 문구의 포스트잇과 함께 국과 밥을 차려온 사람도 있었다. 김군이 떠난 5월 28일, 그다음 날은 그의 생일이었다. 그가 비정규직 외주 노동자라고 해서 안전도 비정규직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같은 해 10월 19일, 김포공항역에서도 사고가 있었다. 김포공항역에서 공항 철도로 환승해 회사로 가는 건 직장인 김씨의 평소 출근길이었다. 그는 출발 직전 기관사에게 인터폰을 하며 사고 역에서 내리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열차문은 열리고, 스크린도어가 열리지 않아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아직도 내게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건 의식을 잃기 직전 그가 남긴 “회사에 늦을 것 같으니 연락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다발성 장기 손상으로 죽은 그가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은 출근 걱정이었다.
평범한 소시민들이 먹고사는 것에 얼마나 큰 두려움을 갖는지 이것보다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을까. 규칙적으로 출근하지 않는 나도 가끔 러시아워에 전철을 타는데, 마스크까지 쓰고 타야 하는 지하철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러니 코로나에도 매일 출퇴근을 반복하며 일용할 양식을 벌어야 하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사는 동안 요즘처럼 각 부처 장관 이름을 많이 알았던 적이 없다. 오히려 장관이 누군지 몰랐던 시절이 그립다. 직장인 친구의 ‘오늘도 무사히’라는 출근길 주문이 참 아프다.
-백영옥 소설가, 조선일보(20-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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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 정권의 ‘反페미’ 장관들
설화(舌禍)로 논란이 된 국무위원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재차 ‘막말’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또 실수할까 걱정해 여러 질문에 “죄송하다”는 답변 정도로 말을 아끼곤 한다. ‘계층 차별’ 논란이 있는 후보자가 이를 해명한답시고 ‘여성 비하’ 논란까지 더하는 일은 더욱 흔치 않다. 이 희한한 일을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변 후보자가 23일 청문회에서 한 말은 이렇다. “여성인 경우 화장이라든지 이런 것들 때문에 (모르는 사람과) 아침을 같이 먹는 것을 아주 조심스러워한다.” ‘못사는 사람들이 미쳤다고 밖에서 밥을 사 먹겠느냐’는 과거 발언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낯선 사람과 밥을 먹는 얘기를 하는데 왜 “여성”이 튀어나왔는지부터 납득하기 어려웠다.
변 후보자의 말은 ‘모든 여성은 모르는 사람과 만날 때 반드시 화장을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간단하게 줄이면 ‘여성은 화장을 한다’가 된다. 그가 ‘여성은 화장을 (해야) 한다’까지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국무위원 후보자가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고, 신중해야 할 청문회장에서 이런 인식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여당 소속 국토위원장이 “유감을 표명해달라”고 재촉했겠나.
이 정권의 장관들이 평균 이하의 성인지 감수성을 드러낸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성추문에 휩싸인 3선(選) 서울시장이 자살해 치르는 보궐선거를 두고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전 국민적) 집단 학습 기회”라고 표현한 이는 여성가족부 장관이었다. 그의 발언이 얼마나 황당했던지, 여당 의원들까지 야당의 ‘장관 발언 금지’ 요구를 아무 소리 없이 받아들였다.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성폭력을 두고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다”고 한 것은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다. 전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여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미투(Me too)’ 논란은 말할 것도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랫동안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을 자처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낙점하고 여당이 밀어주는 국무위원들의 발언은 페미니스트와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인다. 여당 내에서도 “문제 될 말을 할만한 사람만 쏙쏙 뽑아 오는 것 같다”는 자조가 나올 정도다.
여권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강도 높은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 대부분은 “여성은 화장 때문에” 같은 소리 안 한다. 장관이 잘못했는데 왜 애매한 사회 탓을 하는지 모르겠다. 엉뚱하게 ‘교육’ 운운할 게 아니라, 국무위원의 기본 소양조차 검증하지 못하는 이 정권의 ‘인사 무능’부터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최연진 기자, 조선일보(20-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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