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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아는 '치부'가 아니라 '자산'이다] [모성애 버린 엄마들] ....

뚝섬 2024. 6. 9. 05:22

[입양아는 '치부'가 아니라 '자산'이다]

[모성애 버린 엄마들]

[또 다른 ‘정인이 비극’ 막으려면]

[“춘천 청하다방 주인 가족을 찾습니다”]

 

 

 

입양아는 '치부'가 아니라 '자산'이다

 

감춰왔던 해외입양의 속살… 돌아온 입양아 출신 수백명
"정부의 아동 매매" 선동 깨려면 환영과 파격 대책 동시에 내놔야

 

미국 메릴랜드 대학병원의 심장이식 전문 의사가 발명가 토머스 클레멘트(71)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인간에게 돼지 심장을 이식한 후 약물 투입 방식을 이야기하던 때였다. 빨대로 음료수를 마시던 토머스가 말했다. “빨대로 음료수를 빨듯, 공기로 심장 판막을 들어올려 주사제를 넣는 건 어때?” 얼마 전 병원은 이 기기로 미국 의료기 발명 대회에 출전, 1등상을 수상했다. 토머스는 60개가 넘는 기술 특허 보유자이고, 의료기 회사를 글로벌 기업에 매각해 큰 돈을 벌었다. 제너럴일렉트릭(GE) 기술자였던 양아버지는 그를 “내 평생 최고의 선택”이라 했다.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 버려진 그는 5세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얼마 전 방한한 그가 “귀국한 입양인들 형편이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가 큰돈을 기부했지만 그것으론 역부족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중년이 된 해외입양인들이 돌아온다’(7일 자)는 기사로 썼다.

 

입양인 사정은 천차만별이었다. 네덜란드 출신 시모나는 소녀 가장, 여성 전사처럼 살고 있다. 시민 단체를 꾸려 입양인에게 푸드박스를 보내고, 집을 리모델링해주고, 월세를 내준다. 같은 나라 출신 창우씨는 직업이 없어 굶기를 밥 먹듯 한다. 두 사람 모두 삶이 녹록지 않은데, 그래도 한국에 사는 게 좋다고 했다.

 

어느 전문가가 이런 말을 했다. “유엔 표결이 있을 때였다. 북한과 가까운 유럽 국가들에 우리 쪽에 표를 주지 않으면 입양을 보내지 않겠다고 을러서 표를 받았다”고 했다. 지독히 가난했던 50년대가 아니라 80년대 출생아의 1%인 8,000명 이상의 아이를 해외 입양 보냈다. 한국은 입양아를 ‘외교 무기’로도 썼던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해외로 아이를 보낸다.

 

운동가들은 이걸 두고 ‘영아 매매’ ‘인신 납치’라 부른다. “이승만 대통령이 ‘아버지의 나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혼혈아를 해외로 보낸 건 인종 청소였다” “건당 3000~3만달러에 정부가 아이를 팔아 넘겼다.”

 

동의하지 않는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않는다”며 국내 입양은 하지 않던 나라였다. “미국에서는 거지도 햄버거를 먹는다” “영어라도 잘하게 외국 입양 갔으면 좋겠다”는 농담까지 있던 나라였다. ‘해외 입양 환상’은 지위 고하를 막론, 모두에게 있었던 나라였다.

 

과거에 대한 진단은 다르지만, 해법은 비슷할 수 있다. 이민은 의지였지만, 입양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양인이 한국에 오면 ‘재외동포비자(F4)’를 발부받는다. 여기서 살며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정부나 지자체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청년주택이나 문화바우처 같은 것은 어림없는 소리다.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력이 낮거나 한국말도 못하는 사람이 많아 합법적 취업은 어렵다. 그런 사람 수백 명이 지금 한국에 산다.

 

물론 ‘귀화’ 과정을 밟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럽·미국 출신 입양인이 ‘마지막 보험’ 같은 입양국 국적을 포기해야 이게 가능하다. 그들이 모국으로 돌아오면 특별한 ‘루트’를 열어줘야 한다. 탈북자나 고려인 후손에 비해 ‘입양인’이 홀대받을 이유가 없다. 그들을 ‘입양 시스템의 피해자’로 남겨둬선 안 된다.

 

시모나가 이렇게 반박했다. “나는 피해자(victim)가 아니다. 과거를 비판하자는 게 아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고칠 수 있다는 얘기다. 입양인들은 그 나라 언어에 능통하고, 인적, 사회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한국이 우리를 시민으로 인정하고, 취업 지원을 해서 활용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한국은 초저출산 국가라 엄청나게 걱정하지 않나. 왜 우리는 안 보이는 건가.” 그녀에게서 한 수 배웠다.

 

-박은주 기자, 조선일보(2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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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감소 지역에 고려인 동포 이주 프로젝트. 독립운동 후예들이 지역 소멸 위기도 막아주실까.

 

-팔면봉, 조선일보(2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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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 버린 엄마들

 

지난해 여름 미국 애리조나의 한 아파트 3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집에는 젊은 엄마와 어린 남매가 있었다. 밑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을 향해 엄마가 외쳤다. “아기를 받아 주세요!” 베란다 밖으로 던진 아기를 한 남자가 받아안은 걸 본 엄마는 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직 딸이 남아 있었다. 그게 엄마의 마지막이었다. 딸은 이웃에게 구출됐다. 이런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겨울에 길을 걷다가 아이를 낳게 되자 옷을 벗어 덮어주고 얼어 죽은 엄마도 있다. 인도 철학자 라즈니시는 어머니를 ‘자식 위해 죽을 각오가 돼 있는 여자’라고 했다. 

 

▶과학은 이런 모성이 호르몬의 마법 덕분이라 설명한다. 아이를 낳으면 뇌에서 옥시토신이 분비되는데 그게 모성애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젖을 물릴 때 다량 분비돼 자식과 애착 관계를 형성한다. 남편 코 고는 소리엔 아랑곳 않고 잘 자다가 아기의 작은 울음소리에 눈을 번쩍 뜨는 것도 이 호르몬의 조화다.

 

아버지에겐 돈 떨어졌을 때 전화하고 어머니에겐 위로받고 싶을 때 전화한다는 말이 있다. 시인·동화작가 정채봉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어 어리광 한 번 부리지 못했다. 그 상실감을 시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중략)/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중략)/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게 참척(慘慽)이다. 최악의 불효로 친다. 부모가 자식 목숨 빼앗는 것은 해당하는 단어조차 없다.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비극이 최근 잇달아 벌어졌다. 모두 어머니 소행이다. 한 여성은 자신이 낳은 아기를 이 혹한에 탯줄도 끊지 않고 집 밖으로 내던졌다. 또 다른 여성은 여덟 살 딸의 호흡을 막았다. 제 손에 숨막혀 죽어가는 아이 눈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상상이 안 된다.

 

▶천륜을 저버린 엄마들에게도 저마다 사연은 있을 것이다. 두 사례 모두 가족이 해체됐거나 경제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IMF 위기 때도 많은 가정이 깨지고 아이들이 희생됐다. 한 정신의학과 교수에게 물었더니 “생활이 어려워 조울증에 빠지면 공감 능력을 잃고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절망적 상황 때문에 모성애를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보통의 어머니들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1-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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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정인이 비극’ 막으려면

 

입양 대상 아동 많고 부모 적어 양부모 점검 과정 허점 많아
해외 한국인은 뜻 있어도 못 해… 제도 맹점 꼼꼼히 살펴 개선해야
 

 

18일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서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숨진 정인 양의 묘지가 눈으로 덮여 있다./연합뉴스

 

‘정인이 사건’ 양부모 재판에 몰려든 시민들을 보고 누군가 그랬다. “우리나라 사람들 참 대단해. 자기 일도 아닌데 저렇게 불같이 화내고 슬퍼하다니….” 하지만 2016년 대구와 포천에서 벌어진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을 떠올려보면 씁쓸하다. 당시에도 각각 3세와 6세 여아가 입양 가정에서 학대에 시달리다 숨지면서 지금처럼 사회적 공분이 일어난 바 있다. 포천 6세 입양 여아는 툭하면 굶거나 묶여서 맞는 끔찍한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양부는 전과 10범이었고, 양부모는 시신까지 불태웠다. 불과 5년 전 일이다.

 

양부모라 그랬다는 건 물론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아동 학대 사건 10건 중 7건은 친부모로부터 일어난다. 그런데 친부모 학대가 많은 건 친부모 슬하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지 어느 편이 더 심각하냐는 식의 공방은 통계적으로 부질없다. 다만 학대 당사자가 친부모라면 아이 처지에선 어쩔 수 없이 놓인 환경이지만, 입양은 다르다. 좋은 부모를 만날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해준다면 비극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입양 과정은 간단치 않다. 사회복지 기관에서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입양 신청 부모보다 매년 300~500명 정도 많다. 이 과정을 담당하는 복지사는 수가 적어서 업무에 허덕인다. 정인이는 2019년 입양된 704명 중 하나였다. 해외 입양아가 317명, 한국인 양부모를 만난 아이는 정인이를 포함해 387명이었다. 정인이는 입양될 때만 하더라도 운 좋은 아이였던 셈이다. 아이들은 많고 입양 희망 가정은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입양 허가는 거의 100% 이뤄진다. 2017~2019년 입양 허가 신청은 2244건, 승인은 2248건이었다. 전년도에서 넘어온 사례까지 포함한 수치다. 현실이 이러니 이 부모가 입양아를 잘 키울 수 있는지 점검하는 과정이 빈틈없이 이뤄지고 있는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입양 기관들은 20여종 가까운 서류를 보고 2차례 가정 방문까지 하면서 철저히 따진다고 항변하지만 이번 ‘정인이 사건’을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사정은 이런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아이들이 입양될 수 있도록 정부와 기관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회의적이다. 한 지인은 남편 직장 사정으로 외국에 장기 거주하고 있다. 오랫동안 고민하다 입양을 결심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다른 서류는 다 냈는데 복지사가 직접 가정을 방문해 쓰는 ‘가정조사서’에서 막혔다. 복지사가 며칠씩 해외 출장 갈 수도 없고 비용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다. 한 사회복지 기관 관계자는 “이런 사례가 적지 않다”면서 “출장비 때문이라면 현지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대신 해주면 된다. 방법을 찾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면서 답답해했다. 아니면 해외 지사가 있는 입양 기관에서 해주면 되는데 한국인은 안 해준다. 외국인이어야 한다. 이 지인은 “입양 기관이 받는 수수료에서 한국인과 외국인 차이가 크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실제 한 입양 기관이 외국인에게 받는 입양 수수료는 4만~5만달러(미국인 기준)이지만 한국인은 그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아마 오해일 것이다. 그러나 오해가 쌓이면 편견이 된다. 보건복지부는 해마다 입양의 날 기념식을 갖는다. 여배우를 비롯한 유명 인사를 홍보대사로 초청해 행사도 치르고 입양 모범 사례를 발굴해 상을 주면서 입양을 독려한다. 그 정성으로 이런저런 입양 제도 맹점들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개선해주길 기대한다. ‘제2, 제3의 정인이'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이위재 기자, 조선일보(21-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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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청하다방 주인 가족을 찾습니다” 

 

황현주(가운데)씨 남매들 사진.

 

미국 유타주(州)에 사는 이사벨 현 두샴이라는 여성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한국인 어머니의 가족을 애타게 찾고 있다(anxiously search for her dying Korean mother’s family). 그녀의 가운데 이름 ‘현’은 엄마 이름 ‘황현주’에서 따온 것. 엄마는 지금 생명 유지 장치를 한 상태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be at the brink of death on life support).

 

이사벨은 엄마의 오빠 황세민, 남동생 세원, 여동생 현미씨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이사벨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연에 따르면, 엄마는 1987년 수원공군기지에 배치돼 있던(be stationed at Suwon Air Base) 아빠를 만났다. 아빠는 엄마와의 사랑을 위해 한국 복무 기간을 두 차례 연장한(extend his tour of duty twice) 끝에 결혼을 했고, 1989년 일리노이주 공군기지로 발령을 받았다.

 

아빠와 함께 미국으로 간 엄마는 한국에 두고 온(leave behind) 남매들과 전화 통화를 하는 등 자주 연락을 했었다(maintain frequent contact with her siblings). 그런데 지난 2012년 어떤 연유에서인지 집의 소유권을 빼앗기게 되면서(be foreclosed upon) 한국 친척 연락처가 적혀 있던 주소록(address book containing the contact information of her relatives)과 전화번호들을 몽땅 잃어버리게 됐다.

 

그때 이후 연락이 끊기면서 엄마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be absolutely devastated).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정신 건강 문제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struggle with mental health issues) 할 정도까지 됐다. 보다 못한 이사벨이 엄마의 한을 풀어드리겠노라(resolve her mother’s deep sorrow) 외삼촌들과 이모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다(Misfortune never comes alone)’고 했던가. 그것도 지난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엄마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뼈가 여러 군데 부러지고 장기 손상까지 입었다(suffer multiple broken bones and ruptured organs). 설상가상으로(to make matters worse) 병원 입원 중에 코로나-19에 감염돼 양성 반응을 보였다(test positive).

 

결국 산소호흡기를 써야(be put on a ventilator) 할 정도가 됐고, 상태는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의사들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do not have much time left) 생을 마감할 선택을 상의해야 할 시간(time to discuss end-of-life options)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이사벨은 “지금은 돌아가셨을(be now deceased) 외할머니께서 엄마가 미국으로 올 때쯤 춘천에서 청하다방을 경영하셨다고 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기(pass away) 전에 오빠·동생들 소식만이라도 들을 수 있도록, 아시는 분 계시면 꼭 좀 연락을 달라”며 “엄마 없는 세상을 생각하는(think of the world without my mom) 것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럽다(be completely and utterly agonizing). 엄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드리고(comply with her dying wish) 싶다”고 호소하고 있다.

 

-윤희영 에디터, 조선일보(21-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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