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선 反日 죽창가, 뒤에선 ‘광복회’ 팔아 자기 정치 한 김원웅

25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열린 '독립운동가 최재형상' 시상식에서 '최재형상'을 받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오른쪽)이 김원웅 광복회장과 임시의정원 걸개 태극기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원웅씨가 회장으로 있는 광복회가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독립운동가 최재형상’을 수여했다. “친일파 재산 국가 귀속을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광복회는 8개월 전 이 상을 만들었는데 그동안 민주당 정치인 3명에게 잇달아 상을 줬다. ‘최재형 기념사업회’가 이미 같은 이름의 상을 제정했는데 광복회는 이들과 협의도 없이 또 상을 만들었다. 기념사업회 측이 항의하자 “회원들이 쳐들어간다고 벼르고 있다”고 했다고 한다. 이름을 가로챈 것도 모자라 협박까지 한 것이다.
광복회는 2019년 김씨 취임 이후 ‘우리 시대 독립군’ ‘단재 신채호상’ ‘역사 정의 실천 정치인·언론인·기업인상’ 등 각종 명목의 상을 만들어 여권 인사 등에게 집중적으로 수여해 왔다. 단체 수상을 제외하면 수상자 44명 중 64%가 민주당 관련 인사라고 한다. 설훈·우원식·안민석 의원, 은수미 성남시장 등이 상을 받았다. 예술인·시민운동가 수상도 좌파에 쏠렸다. 광복회가 여권·좌파 인사들에게 무더기로 상 주는 단체가 돼버렸다. 김씨가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팔아 자기 정치를 하는 것이다.
광복회는 독립 선열의 희생정신 계승과 민족정기 선양이 단체 설립 목적이다. 국민을 하나 되게 하는 데 뜻이 있다. 그래서 광복회 정관에서부터 특정 정당을 지지·반대하는 등 정치 활동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그런데 김씨 취임 이후 광복회가 김씨 주도의 정치 단체가 돼버렸다. 나라를 분열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김씨는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이승만은 친일파와 결탁했다”며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선생을 민족 반역자로 낙인찍었다. 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을 저지하겠다며 운구 차량을 가로막았다. 백 장군을 높이 평가한 주한 미군 사령관을 본토로 소환하라는 서한을 백악관에 보내기도 했다. 그런 김씨는 6·25 남침에 공을 세워 김일성 훈장을 받은 김원봉의 서훈을 주장하고 국가 기간시설 파괴 모의로 투옥 중인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을 찬양했다. “박근혜보다 독립운동가 가문에서 자란 김정은이 낫다”고 했다. 북한 핵 개발을 옹호하고 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포기를 주장했다.
김씨는 유신시대 때 공화당 당료를 시작으로 전두환 민정당에서 국장까지 지냈다. 이후 민주당, 한나라당, 열린우리당을 오갔다. 그래놓고는 “생계 때문”이라고 했다. 이 정권에서 광복회장 자리를 주자 이제 종북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 정권이 반일 죽창가를 부르며 정치 선동을 하는 뒤에서 이런 사람들이 ‘독립운동'과 ‘광복'을 팔아 자기 정치를 하고 있었다.
-조선일보(21-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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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새 여당 정치인에게 세 차례 준 광복회 ‘최재형賞’
김원웅씨가 회장으로 있는 광복회가 어제 추미애 법무부장관에게 ‘최재형상’을 줬다. 공적은 ‘친일파 재산의 국가 귀속 노력 인정’이란다. 고구마 삼킨 듯 속이 답답해 몇 가지 짚는다.
최재형은 함경도 머슴집 아들이었다. 1860년대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로 이주한 뒤 성공한 거부(巨富)였다. 그 돈으로 독립운동을 했다. 안중근 의사가 쓴 권총도, 사격 연습장도 그가 제공했다. 안중근 신분증도 최재형이 만든 ‘대동공보’ 기자증이었다. 최재형은 1920년 4월 4일 일본군이 우수리스크 한인촌을 습격한 ‘4월 참변’ 때 노변 총살됐다. 무덤도 없다. 그 거인(巨人)을 기리는 상을 정치인 추미애씨에게 주었다. 몇 가지 해명을 듣고 싶다.

최재형(1860~1920)
첫째 횟수와 수상 대상이다. 광복회가 준 첫 최재형상은 2020년 5월 고(故) 김상현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받았다. 명분은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민족정기 선양에 공헌’했고 ‘생존 독립운동가의 품위 유지비 지원 정책을 실현’했다는 이유였다. 상은 김 의원 아들인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신 받았다.
7개월 뒤인 12월 5일 광복회는 두 번째 수상자를 발표했다. 수상자는 전 국회사무총장 유인태씨였다. 명분은 ‘사무총장 재임 시 독립유공자 후손 복지 향상’과 ‘국회에 있는 광복회 카페 운영에 기여’라고 했다. 그리고 어제 또 상을 줬다. 8개월 새 세 번째고 모두 여당 정치인들이다. 광복회장 김원웅씨에게 물었더니 “우연의 일치니 트집 말라”고 했다.
최재형을 기리는 단체는 따로 있다.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이하 ‘최재형사업회’)다. 2011년 ‘최재형장학회’로 시작해 최재형 후손과 함께 추모식과 독립운동가 후손 장학 사업, 우수리스크 기념관 사업과 학술 사업을 주관해온 단체다. ‘광복회 버전’ 최재형상은 이 사업회와 상의 없이 이뤄졌다. 제정 과정도 상식에 어긋난다. 제정과 수상자 선정은 별도 정식 규정 없이 상벌위원회에서 결정했다는 것이다.
‘오리지널’ 최재형상도 따로 있다. ‘최재형사업회’는 2018년 2월 임시정부 100주년인 2019년 시상을 목표로 ‘최재형상’ 제정을 결의했다. 2019년 ‘3‧1문화재단’ 특별상(상금 1000만원)을 받은 최재형사업회는 시상 시기를 순국 100주년인 2020년으로 미루고 이 돈을 최재형상 수상자에게 주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4월 최재형사업회가 후보 추천 공고를 냈는데 한 달 뒤인 5월 8일 광복회가 ‘제1회 최재형상’을 발표한 것이다. 이 또한 우연의 일치인가. 최재형사업회는 1회 최재형상을 작년 9월 안산 고려인 동포 야학을 후원한 조영식씨에게 주었다.

2007년 최재형 총살 및 매장 터로 추정되는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야산에서 제사를 올리는 최재형 손자 최발렌친(2019년 사망).
최재형사업회는 “악연이 있는 듯하다”고 했다. “2017년 12월 ‘최재형선생선양기념사업회’라는 단체가 보훈처에 등록을 신청했다. 3선 의원이 명예이사장인 쟁쟁한 단체가 신청했다는 것이다.”(‘사업회’ 이사장 문영숙) 최재형사업회에 따르면 그 ‘쟁쟁한 3선 의원’이 현 광복회장 김원웅씨다. 심사 끝에 ‘쟁쟁한 단체’는 탈락하고 최재형사업회가 등록 단체로 승인됐다.
광복회장 김원웅씨는 전화 통화에서 말했다. “내가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있을 때 다른 단체에서 ‘신채호상’을 제정했다. 나는 ‘고맙다’고 했다.” 8개월 사이 세 차례 남발한 ‘최재형상'을 고마워하라는 말이었다. 김원웅씨는 사단법인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1~5대(2004~2017년) 회장을 지냈다. 이 단체 현 상임대표는 2회 최재형상을 받은 유인태씨다.
100여년 전인 1920년 4월 4일 밤 최재형이 말했다. “내가 도망치면 너희 모두 일본군에 죽는다. 나는 살 건 다 살았다. 너희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딸 올가의 회상) 그리고 최재형은 죽었다. 삶은 장엄했고 죽음은 당당했다.
광복회는 설명해보라. 장엄하게 생을 마감한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들먹이면서 여당 정치인에게만 주는 상을 만든 이유를.
-박종인 선임기자, 조선일보(2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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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회, 추미애 장관에게 독립운동가 이름의 상. 이국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들이 통곡하실 듯.
-팔면봉, 조선일보(2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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