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 치킨.. 匠人이 튀겨낸 바삭한 껍질과 촉촉한 속살]
[ 대한민국 울린 ‘치킨 한 접시’]
프라이드 치킨.. 匠人이 튀겨낸 바삭한 껍질과 촉촉한 속살

서울 동교동 '야망'의 프라이드 치킨.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치킨을 시킬 때 어머니의 기준은 ‘한 번에 꼭 한 마리’였다. 중학생이었던 동생과 나는 방학 때마다 5cm씩 자랐다. 아버지는 평생 90kg이 넘는 거구였다. 그런 4인 가족이 치킨 한 마리를 가운데 두고 앉노라면 킥오프를 앞둔 축구 경기처럼 긴장감까지 감돌았다.
규칙은 명확했다. 아버지가 닭다리를 하나 든다. 어머니가 날개를 잡는다. 그다음이 우리 형제 차례였다. 또 다른 규칙은 모든 살을 먹는다였다. 손톱만 한 내장과 연골도 포함이었다. 살점이 남아 있으면 다음 조각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마침내 포장 바닥에 깔린 튀김 부스러기까지 핥아먹으면 치킨 한 마리가 끝이 났다.
노하우를 넘어 예술과 창작의 영역으로 들어선 양념, 신속한 배달과 그만큼 치밀하게 깔린 산업망, 작은 닭을 토막 내 바싹 튀겨 낸 치킨은 간단한 한 끼를 넘어 이 나라의 상징이자 특유의 정념(情念) 그 자체다.
그런데 막상 프랜차이즈가 아닌 치킨집을 찾자면 한국 치킨의 세계화를 외치던 기세가 갑자기 궁색해진다. 몇몇 대형 브랜드가 내놓는 한 줌의 메뉴를 고르며 취향과 개성을 논한다는 것은 이 시대와 땅이 얼마나 좁고 편협한 기준으로 삶을 재단하는지를 보여준다.

서울 동교동 치킨집 '야망' 외관.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홍대입구역에서 연남동 쪽으로 난 막다른 골목의 반지하에는 ‘야망’이란 치킨집이 있다. 이 집은 치킨에 대한 좁은 정의와 마치 삶에 정답이 있다는 듯 주장하고 몰아세우는 이들에게 기습으로 대항하는 게릴라다.
좁은 주방에서 닭을 튀기고 손님을 맞는 주인장은 체격이 크지 않았고 안경을 썼으며 말수가 적었다. 가게 조명은 빨갛고 음악은 때로 전위적이었다. ‘모두를 위한 가게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막상 메뉴를 보니 가게 크기와 다르게 다국적의 꽤 여러 음식을 다루고 있었다. 주인장은 이탈리아 음식을 다루던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았다고 했다. ‘대파 골뱅이 샐러드’ ‘차가운 토마토 파스타’ ‘마라 라구 파스타’ ‘홍시 부라타’같이 치킨집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서양식으로 올리브유와 레몬즙 등을 넣어 만든 드레싱으로 골뱅이를 버무린 샐러드는 칼같이 예리하게 느껴지는 산미 덕분에 침이 저절로 나왔다.
을지로에서 먹는 맵고 단 무침과는 요리 문법이 달랐다. 골뱅이는 더 탱글하게 느껴졌고 대파의 아릿한 풍미도 신맛을 만나 서양 허브를 먹는 듯했다. ‘차가운 토마토 파스타’는 토마토의 단맛과 신맛이 낮아진 온도 덕에 더 두드러지는 것 같았다. 가장 가는 파스타인 카펠리니(capellini) 면을 써서 토마토소스의 질감과 풍미가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서울 동교동 치킨집 '야망' 내부.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치킨은 주문하고 10분 정도 후에 나왔다. 주인장은 “닭다리 정도만 따로 골라내 좀 더 튀길 뿐 보통보다 낮은 온도에서 짧게 튀긴다”고 했다. 한국 치킨의 희극이자 비극은 모두 배달에서 시작된다. 배달 중에 튀김옷이 눅눅해지면 안 되니 필요 이상으로 오래, 높은 온도에서 바싹 튀긴다. 필요 이상으로 수분까지 날려버리니 남는 것은 바삭한 것이 아닌 단단한 튀김이다.
이 집은 기계적으로 닭을 튀겨내는 게 아니라 기름으로 닭을 조리한다는 느낌으로 음식을 내고 있었다. 혹시나 쓴맛이 돌까 닭 내장을 일일이 제거하고 핏기가 돌까 큰 핏줄도 일일이 걷어낸다는 설명도 들었다.
닭은 부드럽고 촉촉했다. 튀김옷은 얇고 바삭했다. 유심히 보니 주인장이 골라놓은 맥주는 하나같이 구하기 어려운 종류였고 음식을 담은 접시도 하나하나 사모았는지 모두 각기 달랐다.

'야망' 프라이드 치킨.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나는 어릴 적처럼 닭에 붙은 살을 모두 발라먹었다. 한 남자가 골방에 들어앉아 소설을 쓰듯, 섬세하고 강인한 마음으로 조심히 익혀낸 음식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손님이 한바탕 몰아닥치자 주인장은 테이블을 치우고 주문을 받은 뒤 다시 작은 주방에 들어가 닭을 튀겼다. 그의 얼굴은 식구 딸린 가장처럼 피곤해 보였다. 또다시 보면 장인처럼 그 피로함마저 존재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치킨 값에는 쉽게 분노하지만 그 음식을 함부로 다룬 것은 우리 모두였다.
그는 홍대 뒷골목에서 외롭게 아니라고 말하며 자신만의 전투를 하고 있었다. 그 싸움에는 피아(彼我)가 없었다. 이길 수도 질 수도 없는 흐릿한 전선(戰線)을 남자 홀로 지키고 있었다.
#야망: 프라이드 치킨 2만2000원, 양념 치킨 2만3000원, 차가운 토마토 파스타 1만3000원.
-정동현 음식 칼럼니스트, 조선일보(25-08-16)-
______________
대한민국 울린 ‘치킨 한 접시’

프라이드 치킨
# 3월 들어 비록 날은 여전히 쌀쌀하지만 그래도 감출 수 없는 봄기운 마냥 가슴 따뜻한 소식을 접하며 마음이 울컥했다. 서울의 한 치킨집 주인과 조실부모한 형제 사이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다. 33년 전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던 ‘우동 한 그릇’의 감동 같다고나 할까? 망조(亡兆)가 들었다고밖에 할 수 없는 나라 안팎의 모양새지만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어준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해본다.
# 서울 서교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젊은 박씨. 그날 따라 코로나 때문에 정말 장사가 너무 안됐다. 그래서 혼자 가게 앞 골목에 나와 밤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치킨, 치킨” 하는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골목 안에 들어선 어린 초등학생이 내지르는 소리였다. 그 옆에는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형이 입을 앙 다문 채 주먹을 꽉 쥐고 서 있었다. 형은 어렵사리 입을 열어 치킨을 5000원어치만 먹을 수 없겠냐고 물었다. 동생이 치킨을 먹고 싶어 하는데 형은 사줄 돈이 턱없이 모자란 것이었다. 상황을 감지한 치킨집 주인은 형제를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한 후 메뉴판도 내보이지 않은 채 그 가게에서 제일 맛있는 것을 해주고 싶다는 심정 하나로 푸짐한 치킨 세트를 콜라 두 병과 함께 내놨다. 마침 홀 안에는 손님이 없어 형제는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맘 편하게 치킨을 먹을 수 있었다.

# 형은 수중에 있는 돈이 단돈 5000원이라 내심 불안하면서도 치킨을 보자 행복해하며 허겁지겁 먹는 동생을 보니 자신도 아무 생각이 없어져 주린 배를 채우듯 치킨을 모두 맛있게 먹었다. 그는 어릴 때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하지만 이젠 나이 들어 몸 불편하신 할머니와 일곱 살 어린 동생의 생계마저 떠맡은 소년 가장이었다. 얼마 전까지 돈가스집 알바를 뛰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그나마도 그만둔 뒤 나이를 속여가며 택배 상하차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철없는 동생이 치킨 먹고 싶다고 울며 떼를 쓰니 마음이 짠했지만 편찮으신 할머니 보기도 뭣해 일단 밖으로 동생을 데리고 나왔다. 치킨집만 보면 들어가자고 조르는 동생이 너무 안돼 집 근처 치킨집에 들어가 염치없게도 5000원어치만 줄 수 없냐고 물었지만 문전박대만 당했다. 다른 곳에서도 매 한 가지였다. 결국 홍대 근처 서교동까지 걸어가서 ‘수제치킨 전문점’이란 작은 간판이 걸린 치킨집 앞에서 다시 쭈뼛거리다 이를 지켜보던 치킨집 주인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 얼떨결에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채는 동생 먹이려고 5000원어치만 달라고 한 것인데, 주인은 2만원 상당의 푸짐한 치킨 세트를 내놓고 콜라 두 병까지 내어 줬던 것이다. 내심 형은 치킨집이 장사가 워낙 안되니 주문도 하지 않은 비싼 것을 내어놓은 후 억지로 바가지라도 씌우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치킨을 보자 환호하는 동생을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치킨집 주인이 내놓은 것들을 모두 허겁지겁 먹어치웠던 것이다. 하지만 잠시 후 주머니 사정이 뻔한 형은 막상 계산하려니 앞이 캄캄해져 동생 손을 잡고 잽싸게 도망이라도 쳐야겠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작 그 치킨집 주인은 맛있게 먹었는지 물은 후 이런저런 이야기만 나눈 뒤 돈은 다음에 내라고 하고선 되레 사탕을 쥐여주는 것이 아닌가. 형이 수중에 있던 5000원이라도 내겠다는 것을 한사코 받지 않더니 급기야 그 형제를 내쫓듯 가게 밖으로 내보냈다. 형은 다음 날 다시 찾아가 계산하려 했지만 치킨집 주인은 오히려 꾸짖듯 하며 돈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형에게 그것은 진짜 꾸짖음이 아니라 정말이지 얼마 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이었는지 모른다.
# 그 후에도 어린 동생은 형 모르게 그 치킨집을 찾아갔고, 그때마다 치킨집 주인은 동생에게 배불리 치킨을 먹였다. 코로나 때문에 매출도 반 토막이 나서 가게 월세도 밀리고 식자재 발주마저 미룰 만큼 형편이 어려웠지만 말이다. 심지어 어느 날은 치킨집 주인이 동생을 데리고 자신의 단골 미용실에 가서 덥수룩한 머리를 자르고 다듬어 주기까지 했다. 미용실 주인 역시 치킨집 주인이 데리고 온 초등학생이 자식이나 조카가 아닌 것을 알았기에 따로 돈을 받지 않고 동생의 머리를 손질해 주었다. 뒤늦게 그것을 알게 된 형은 죄송한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이 함께 들어 더는 치킨집 주인을 직접 찾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근 일 년이 지나 코로나 때문에 소상인 자영업자들이 가장 힘들다는 뉴스를 접한 후 그 치킨집 아저씨가 잘 계신지 궁금하고 걱정이 돼 그 치킨집의 프랜차이즈 본사 앞으로 비뚤비뚤한 글씨로나마 꾹꾹 눌러 쓴 손 편지 한 통을 보냈다. 그 편지엔 그간의 사정과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런 다짐으로 편지를 마무리 지었다. “처음 보는 저희 형제에게 따뜻한 치킨과 관심을 주신 (치킨집) 사장님께 진짜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앞으로 성인이 되고 돈 꼭 많이 벌어서 저처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면서 살 수 있는 철인 7호 홍대점 사장님 같은 멋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 도움 받은 것을 도와준 이에게 되갚는 것을 ‘페이 잇 백(pay it back)’이라 하고 도움 받은 것을 또 다른 이에게 갚는 것을 ‘페이 잇 포워드(pay it forward)’라고 한다. 치킨집 주인의 선행과 처신이 한 청소년 가장에게 자신이 받은 은혜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갚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갖게끔 만들고 전국적으로 착한 갚음의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대한민국에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실로 거기 우리 미래가 있다!
-정진홍 컬처엔지니어, 조선일보(21-03-03)-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國內-이런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국의 더위, 한국의 기회?] [에어컨 없는 유럽] .... (0) | 2025.08.22 |
|---|---|
| [스님 연기하다 스님 될 뻔한 배우… 속세에서 道 닦습니다] (8) | 2025.08.17 |
| [오늘 떼인 '주차위반 딱지' 팝니다] (2) | 2025.08.17 |
| ['지방 소주'의 쇠락] [1000원 vs. 45만원… 잔술 한 잔의 양극화] .... (0) | 2025.08.14 |
| [딸 선호 세계 1위는 한국] [“태아 성별과 낙태는 무관”… ] .... (8) | 2025.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