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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의 디지털 혁신]

뚝섬 2021. 4. 22. 06:22

14억달러 빚더미서 부활한 뉴욕타임스, 3가지 비결 있었다

 

2009년 3~4월 뉴욕타임스(이하 NYT)의 주가는 4~5달러였고 그해 영업이익률은 1.3%였다. 신용등급은 투기 등급 수준인 ‘BB-’였다. 2006년 회사가 진 빚은 14억4593만달러(약 1조6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12년 후인 올해 3~4월 주가는 48~55달러로 1200% 정도 올랐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9.9%, 부채 없이 보유 현금만 7억달러가 넘는다. 작년 말 현재 세계 232개국에서 752만명이 NYT를 유료 구독하고 있다. 압도적인 세계 1위다. 죽어가던 NYT를 살린 세 가지 묘약(妙藥)이 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뉴욕타임스(NYT) 본사 모습. 1851년 창간 후 아돌프 옥스가 1896년 인수해 지금까지 ‘옥스-설즈버거’가문이 5대째 이끌고 있다. /Flickr

 

◇① 100년 넘은 ‘혁신 DNA’

 

NYT는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보스턴글로브와 어바웃닷컴 등 30곳이 넘는 자회사를 팔았다. 2008년부터 10년간 6차례 명예퇴직을 실시했고 임금 삭감, 무급 휴가도 잇따랐다. 벼랑 끝 상황에서 2011년 3월 NYT는 온라인 기사 유료화를 시작으로 ‘디지털 전환’에 승부수를 던졌다. 두 차례 좌절 끝에 세 번째 도전이었다. 4년 넘게 유료 가입자는 100만명을 밑돌았지만 경영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2015년 4월부터 7개월 동안 최고위 임원 5~6명은 매주 금요일 낮 12시부터 6~7시간 집중 토론을 통해 ‘월드클래스 저널리즘 기업’이자 ‘월드클래스 디지털 상품·기술기업’으로 회사의 정체성, 즉 업(業)을 재정의(再定義)했다. 마크 톰슨 당시 CEO는 이를 “저널리스트들이 만드는 1층(고품질 저널리즘)과 실용 정보와 디지털 상품으로 구성된 2층 건물 구조”로 비유했다.

 

특히 쿠킹(Cooking), 게임, 오디오 같은 비(非)뉴스 ‘서비스 저널리즘’ 상품을 디지털로 구독한 인원은 2016년 24만명에서 지난해 160만명으로, 936만달러이던 매출은 5470만달러로 늘었다. 2017년 시작한 팟캐스트 ‘더 데일리’는 2년 8개월 만에 누적 다운로드 10억건을 돌파했고 매일 300만명 넘게 듣고 있다.

 

이완수 동서대 교수는 “세계 최초 북섹션(1896년), 세계 최초 요일별 섹션(1976~77년)으로 발현된 NYT의 ‘혁신 DNA’가 디지털 시대에도 빛을 발하고 있다”며 “그 출발점은 발상의 유연한 전환”이라고 말했다.

 

◇②가문의 명품 리더십과 ‘신뢰’

 

독일계 유태인인 아돌프 옥스가 1896년 인수한 이후 ‘옥스-설즈버거’ 가문은 올해로 126년째 5대 연속 NYT를 경영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WSJ), LA타임스 같은 미디어 가문들이 경영권이나 재산 다툼 끝에 몰락한 것과 달리, 설즈버거 가문은 여태 잡음이나 내분이 없다. 이들은 “가문은 NYT의 저널리즘을 지키는 파수꾼이며, NYT는 공적(公的)인 자산”이라는 소명의식을 공유한다. 그 바탕에서 임직원들을 전폭 신뢰하면서 외압이나 외부의 경영권 도전을 합심해 이겨냈다.

 

설즈버거 가문은 2015년 말 ‘발행인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10개월여 심사와 심층 인터뷰를 거쳐 A. G. 설즈버거를 차기 발행인으로 뽑았다. 리더 선정과 가문 구성원 관리에도 공정·투명·무(無)특혜 원칙을 실천한 결과 가문 내부 불만이 없다.

 

NYT는 각종 기사와 행사, 오디오, 동영상 등으로 회사 속사정을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공개하며 이용자 초청·참여 같은 쌍방향 소통에 매진한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매주 편집인과 편집국장을 포함한 기자들이 독자를 직접 만난 ‘편집국과의 대화(Talk to the Newsroom)’가 대표적이다.

 

161년 전에 실린 오보(誤報)를 정정 보도하는 성실함과 155개 조항으로 이뤄진 엄격하고 철저한 윤리 규정 준수도 남다르다. 임현찬 한국외대 교수는 “수십 년간 NYT가 쌓아온 신뢰와 소통은 충성 독자들을 더 결집·확장하면서 이용자들의 디지털 유료 가입을 촉진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③기술 투자와 R&D

 

퓰리처상 수상 횟수로 보면 NYT(130회)는 2위 매체의 두 배이다. 장문(長文)의 기사와 1~2년짜리 탐사 기획 보도를 상설화한 덕분이다. 편집국 인원은 경영 악화에도 1100명 이상을 유지했고 지금(1750명)은 미국 언론사 중 가장 많다.

 

경영진은 ‘기술'을 중시하고 연구개발(R&D) 투자에도 열성적이다. 2006년부터 ‘R&D 랩’을 운영했고 2013년부터 디지털 상품 개발 조직인 베타(Beta)그룹, 디지털 저널리즘 분석 도구를 만드는 ‘데이터&인사이트 그룹’을 가동 중이다.

 

웹 개발자, 데이터 과학자 같은 디지털 전문 인력만 1000여명으로 전체 임직원(4700명)의 20%가 넘는다. 편집국에 이어 둘째로 큰 사내 조직은 ‘디지털 상품&기술팀’(700명)이다.

 

지난해에는 총매출액의 7%인 1억3243만달러(약 1457억원)를 R&D에 썼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블록체인 같은 첨단 기술을 저널리즘에 접목하는 한편, 디지털 유료 구독자 창출·확보에도 성과를 내고 있다.

 

톰 로젠스틸 미국신문연구소(API) 사무국장은 “NYT는 공격적인 기술 투자와 활용으로 디지털 이용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며 “이는 회사의 경영 개선 같은 선순환을 낳고 있다”고 말했다.

 

[구독 752만명 중 온라인이 669만명]

 

작년 말 현재 NYT의 전체 유료 구독자(752만3000명) 가운데 89%(669만명)는 디지털 구독자이고, 종이신문 독자는 11%(83만명)이다. 작년 4분기 광고와 구독 매출액에서 디지털 비중은 65%, 53%를 각각 차지했다. 지면(紙面) 광고에 의존하는 종이 신문이 아니라 ‘디지털 구독 중심’ 기업이 된 것이다.

 

이런 변화는 마크 톰슨 전 CEO와 메러디스 레비언 현 CEO가 주도했다. 영국 BBC방송 사장 출신인 마크 톰슨은 2012년 11월부터 작년 8월 말까지 현장을 지휘했다. ‘포브스’지 광고임원이던 레비언은 42세이던 2013년, NYT로 스카우트돼 광고책임자와 최고매출책임자,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작년 9월 최연소 CEO가 됐다.

 

2012년 말 60만명을 밑돌던 NYT의 디지털 유료 구독자는 8년 만에 10배 넘게 늘었다. 이는 20~30대의 MZ세대를 주축으로 ‘젊고 새로운 NYT’로 변신 노력이 적중한 결과이다.

 

마크 톰슨은 취임 직후부터 “20대 후반 젊은이들에게 훨씬 강력한 브랜드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스마트폰에 총력을 쏟았다. 그 결과 이달 현재 NYT 웹사이트를 찾는 미국 내 이용자의 58%는 MZ세대이다.

 

사내에서도 20~30대를 대거 뽑아 MZ세대는 NYT 전체 정규직원의 50%에 달한다. 50~60대의 숙련된 저널리스트들과 20대 후반~30대 팀장이 공존하는 구조이다. 테크 스타트업들이 편집국 안에 들어와 첨단 기술과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거나 접목하는 일도 잦다. 그러면서 ‘실패해도 전진하는 문화’가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레비언 CEO는 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접목한 첨단 광고 등으로 디지털 광고를 크게 활성화했다. 그는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종이 신문 조직과 결별하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처럼 부서 간 경계를 넘어 수평적으로 협업하는 조직 구조와 일하는 방식을 정착시켰다.

 

-송의달 선임기자, 조선일보(21-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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