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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이모'] [오복 중 으뜸이라는 ‘이모님 복’… ] ....

뚝섬 2024. 5. 20. 06:07

[ '필리핀 이모']

[오복 중 으뜸이라는 ‘이모님 복’…동남아 가사도우미는?]

[가사도우미가 ‘현대판 노예’?] 

[가사근로자]

 

 

 

'필리핀 이모'

 

한반도에 ‘식모’란 직업이 등장한 것은 일제 강점기에 건너온 일본 가정이 조선 여성을 고용하면서부터였다. 1938년 일제가 조사한 식민지 조선의 여성 구직자는 2만7000명이었는데 이 중 식모 취직자가 2만5000명으로 90%에 육박했을 만큼 대표적인 여성 직업이었다. 적으나마 월급도 받았다. 하지만 해방 후 6·25로 전쟁 고아가 쏟아져 나오며 ‘입에 풀칠만 시켜주면 월급은 안 줘도 되는’ 직업으로 전락했다. 급여가 한 달 담뱃값 수준도 안 돼 1960년대 서울 가정의 52%가 식모를 뒀을 정도다.

 

식모와 함께 여공과 버스 안내양은 가난했던 1960년대 여성이 택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직업이었다. 그분들이 번 돈으로 가족이 생계를 꾸렸고 형제자매가 공부했다. 일부는 독일에 간호사로 나갔다. 그처럼 억척스러운 여성 중엔 식모살이하면서도 주경야독으로 미래를 개척해 대학 총장이 되고 자기 개발에 나서 화가로 성공한 이도 있다.

 

▶오늘날 필리핀 여성이 반세기 전 한국 여성과 비슷한 처지다. 1960년대만 해도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살고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두 배였던 나라가 지난 반세기 추락을 거듭해 전 세계에 저임금 노동자를 200만명 넘게 내보내는 처지가 됐다. 필리핀 여성 해외 취업은 주로 가사 도우미라고 한다. 유럽·중동·일본·싱가포르·홍콩 등에 진출해 있다. 홍콩에선 최저임금만 받아도 필리핀 의사 수준이다. 고생스러워도 외국 식모살이를 각오하는 이유다.

 

▶필리핀 가사·육아 도우미가 오는 9월쯤 한국 땅을 밟는다. 맞벌이 증가와 고령화로 인해 늘어나는 돌봄 도우미 수요를 국내 공급으론 감당이 안 돼 받아들이기로 했다. 벌써부터 ‘필리핀 이모’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왕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한국과 필리핀 두 나라에 이익이 되었으면 한다. 일부 중동 국가들이 필리핀 가사 도우미를 학대하거나 성폭행해 국제적 비난을 샀다. 우리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가 그들 처지였다.

 

▶1960년대 저임 노동에 시달리던 식모와 버스 안내양, 여공을 얕잡아 부르던 말이 ‘삼순이’였다. 삼순이의 삶을 다룬 어느 책에서 10대 소녀가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번 돈을 아껴 동생들에게 빵을 사주며 “이 순간처럼 땀 흘린 보람을 느껴본 적이 없다. 피곤도 굴욕도 내 것이 아니다”라고 썼다. 내 어머니 또래였을 이 소녀의 희생을 빼고 오늘의 풍요를 설명할 수 없다. 이 땅에 오는 필리핀 여성들의 노고도 훗날 보상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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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 중 으뜸이라는 ‘이모님 복’…동남아 가사도우미는? 

 

좋은 ‘이모님’ 만나는 건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한 일이다. 워킹맘에겐 ‘이모님 복이 오복 중 으뜸’이라고 한다. 가사도우미 얘기다. 미덥기는 친정엄마 같은 한국인 이모님이 최고지만 조선족 도움을 받는 집이 많다. 싸고, 입맛 비슷하고, 중국어 조기교육이 가능하며, 육아와 살림에 이것저것 ‘조언’을 삼가기 때문에 편하다. 올 하반기에는 서울에서 동남아 출신 이모님들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는 방문취업(H2) 비자로 들어온 중국동포만 가사도우미 일을 할 수 있다. 자녀 영어 교육을 위해 알음알음 필리핀 도우미를 고용하는 집도 있는데 불법이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는 ‘의사소통이 쉽거나’ ‘정서적 거부감이 적은’ 나라 출신을 가사도우미로 시범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월 100만 원 이하” “싱가포르에선 월 38만∼76만 원” 등의 주장이 있지만 최저임금법이 적용되면 급여는 월 210만 원 수준이 된다. 한국인의 경우 주5일 출퇴근 도우미가 250만∼300만 원, 입주는 350만∼400만 원이다.

조선족 이모님에겐 익숙해도 동남아 이모님에 대해선 걱정들이 많다. 말도 문화도 달라 서로 불안과 불편을 호소할 가능성이 높다. 근무 여건이 좋은 다른 일자리로 이탈해 불법 체류자가 될 우려도 있다. 정부가 참고하는 나라가 싱가포르 홍콩 대만 일본인데, 제도 시행의 역사가 긴 싱가포르 홍콩 대만은 도우미 인권침해 사건이 양국 간 외교 문제로 비화한 적도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4개국 모두 제도 도입 후 출산율에 큰 변화가 없었다.

 

▷해외 이모님 모시기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돌봄 공백은 심각하다. 워킹맘들은 육아휴직이 끝나면 첫 번째 퇴사 위기를 맞는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1년 넘게 기약 없는 대기 줄을 타야 한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이 두 번째 위기다. 등하교 시간에 정부의 ‘아이 돌봄 서비스’를 쓸 수 있지만 역시 대기 줄이 길고 맞벌이 부부는 소득 기준에 걸려 신청도 못 한다. 등하교 이모님을 쓰면 월 120만∼150만 원이다. 이렇게 육아와 가사 고비를 못 넘기고 집에 들어앉은 여성이 698만 명이다.

▷돌봄 공백은 정책 한두 개로 메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기존 돌봄 체계를 업그레이드하고 선택지도 넓혀야 한다. 조선족 이모님을 더 모셔오거나, 국내 건강한 고령층을 돌봄 인구로 흡수하는 방법도 있다. 필리핀은 해외에 나가 가사도우미 하려면 국가자격증을 따야 한단다. 신뢰할 만한 인력송출제도를 갖춘 나라를 대상으로 가사도우미 도입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아이 낳고 키우는 일이 남다른 복을 타고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이 됐으면 좋겠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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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도우미가 ‘현대판 노예’?

 

[특파원 리포트]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현대판 노예’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지난달 29일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을 인터뷰하러 가기 전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질문지를 준비했다.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곤두박질치자 한국에서도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저임금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됐다. 그러자 정의당 등 야권과 노동계는 이를 ‘인종차별’ ‘현대판 노예제도’ 등이라 칭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실제 외국인 가사도우미들의 생각이 궁금했고, 별다른 고민 없이 ‘현대판 노예’라는 단어도 질문지에 넣은 것이다.

 

이날 찾은 싱가포르 한 가사도우미 소개소 앞에는 필리핀 출신 A씨가 지인들과 의자에 앉아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인터뷰를 흔쾌히 허락한 그는 싱가포르인 부부 집에서 4년간 일했다고 했다. 고용주 자녀들 등교를 도우려 오전 5시에 일어나는 게 힘들지만 일은 어렵지 않다고 했다. 다른 가사도우미들처럼 돈을 모아 본국에 돌아가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가족도 챙기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렇게 인터뷰를 이어가다 질문지에서 현대판 노예라는 단어를 보고 기자는 새삼 당황했다. 잘사는 나라 사람의 오만과 위선, 편견이 단어에 집약됐다는 사실이 그제야 피부에 와 닿은 것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타국에서 분투하는 이에게 이는 질문보다 언어폭력에 가깝다 생각했다. 낯이 뜨거워 말문이 막혔고, A씨의 인적 사항도 묻지 못한 채 황급히 자리를 떴다.

 

싱가포르에서는 23~50세의 8 이상 교육(중학교 2학년) 받은 외국인 여성이 가사도우미로 일할 있다. 이곳 가사도우미 상당수가 가난으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여성들이다. 이날 만난 한 미얀마 출신 가사도우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6년 전 싱가포르에 온 그는 이제 월 800싱가포르달러(약 78만원)를 받으며 일한다고 했다. 미얀마 월평균 1인당 국민총소득(약 12만원)의 6배가 넘는다.

 

이처럼 이들은 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월급을 이곳에서 받는다. 억지로 끌려와 임금 차별을 당하는 아니라, 스스로 인생을 바꿀 기회를 찾아온 것이다. 동시에 싱가포르 맞벌이 부부들은 가구 수입의 10분의 1 정도로 부담 없이 가사도우미를 고용해 고충을 던다. 서로윈윈 계약 관계다. 한국처럼 맞벌이 부부 사람 월급 대부분을 가사도우미 비용으로 내야 했다면, 싱가포르에 26만명의 가사도우미가 고용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한국에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도입되면 노동 착취, 불법체류자 양산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많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주장을 단편적으로 해석해 ‘노예제도’ ‘인종차별’ 따위의 막말을 쏟아내는 일은 멈추길 바란다. 그 말이야말로 가장 차별적인 말이다.

 

-싱가포르=표태준 특파원, 조선일보(2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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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근로자

 

가사도우미 없는 한국사회를 떠올리기는 힘들다. 특히 맞벌이 가정에 있어 가사도우미의 도움은 절실하다.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부터 직업소개소에 전화를 돌려 숱한 면접 끝에 맺어지는 가사도우미와의 인연. 이 만남이 얼마나 잘됐느냐 아니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을 돌봐주고 집안일을 도와주는 그들이 있기에 그나마 여성들이 밖에 나와 일을 할 수 있다.

▷대개의 가정에서 여성들이 맡던 가사노동은 1967년 정부가 직업안정법에 유료 직업소개소를 허용하면서 공공 서비스가 아닌 민간의 직업소개 방식으로 사회에서 ‘거래’돼 왔다. 시장이 커지면서 가사노동자는 베이비시터, 간병인 등의 직종으로 세분됐지만 주로 가사도우미로 불렸다. 그런데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가사근로자법)이 통과되면서 이들을 부르는 새로운 이름이 생겨났다. ‘가사근로자’다.

▷이 법은 정부 인증을 받은 가사노동 제공기관이 가사도우미를 고용해 최저임금을 보장하면서 퇴직금, 4대 보험, 유급휴일, 연차 유급휴가 등을 제공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정부가 인증하는 기관이 고용하는 가사도우미에 대해서는 ‘가사근로자’의 자격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가사노동은 68년 만에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정식 근로가 됐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당시만 해도 가사노동을 경제행위로 생각하지 않았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가사노동자가 법 적용 범위에서 빠졌던 것 같다”고 했다.

 

▷현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전국의 가사도우미는 청소만 하는 경우는 13만7000명, 육아와 간병 등도 포함하면 30만∼60만 명이다. 제정안은 앞으로 1년 후 시행되는데, 새 법이 시행돼도 기존처럼 직업소개소를 통해 가사도우미를 직접 고용해도 된다. 정부가 인증기관을 통한 가사근로자와 민간을 통한 가사도우미 고용이라는 두 길을 다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소개소를 통한 도우미에 비해 정부가 인증하는 가사근로자가 믿음직한 건 사실이지만 비용이 최대 20% 정도 비싸진다.

 

▷가사근로자법은 가사서비스와 관련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가사근로자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의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가사근로자에게 휴게시간을 주는 등 적절한 근로환경을 제공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이용계약서에 정한 사항 이외의 업무는 요구할 수 없다. 돕는 사람들을 귀하게 대하자는 법이다. 남은 1년, 선의의 피해자나 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생기지 않도록 정부는 빈틈없이 준비해야 한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김선미 논설위원, 동아일보(21-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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