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국내 대학에서 박사 1만6000여명이 배출되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외국인 유학생이 있긴 하나 압도적 대다수는 대한민국 국적의 박사들이다. 2000년에 6000여명이던 박사 학위 신규 취득자가 지난 20년 사이 세 배 가까이로 증가한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이미 우리나라는 ‘박사의 나라’로 정평이 나 있다. 1993년에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 마이클 크라이턴 작(作) 미국 소설 ‘떠오르는 태양’에는 세계에서 인구 대비 박사 학위 소지자가 가장 많은 도시가 어딘지 묻고 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누군가가 ‘보스턴’이라 말하자 상대는 ‘한국, 서울’이라고 바로잡는다.

홍콩과기대는 교수와 연구인력 등에 대한 꾸준하고 과감한 투자로 개교 21년 만에 아시아 정상으로 평가받았다. 사진은 홍콩과기대의 학위 수여식 모습./홍콩 과기대
박사가 많아지면서 우리나라 국력이 이만큼 커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추세로 박사가 계속 다다익선(多多益善)일지는 미지수다. 물론 인구 감소 및 저성장 시대를 맞이하여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이들의 취업난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관건은 이런 식의 박사 인력 배출이 우리 사회의 지적 역량 강화와 국가 발전에 얼마나 이바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박사의 본래 의미는 특정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연구할 능력을 공인하는 일종의 자격증이다. 태생적으로 그것은 고등교육이나 전문 연구 분야 안에서 통용되는 것으로 족하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박사 창구(窓口) 앞에 몰리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우리의 경우에는 학문의 이름으로 권력이나 부, 명예와 같은 학문 외(外)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무엇보다 이는 조선 시대의 학문관(學問觀)이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의 학문이란 기본적으로 과거 급제를 통한 입신양명 수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의 정치인이나 공직자 가운데는 박사 학위 보유자가 유난히 많다. 2019년 현재 공공기관장의 60.6%, 중앙행정기관장의 42.3%가 박사 학위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 인사 청문회의 단골 장면 가운데 하나가 논문 표절 의혹 관련 아닌가.
현재 우리나라의 박사 증산(增産)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은 미국 주도 공장제 지식 생산 양식이다. 사실 이는 범세계적 현상으로 박사 학위 취득 요건 자체가 과거보다 크게 완화된 측면이 있다. 학문적 업적에 대한 평가는 종합적, 전인적(全人的)인 것에서 단편적, 기술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그것의 가장 상징적인 제도가 1963년에 등장하여 현재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는 과학논문인용색인(SCI)이다. 이에 따른 지식 생산의 표준화, 규격화 및 계량화는 박사 학위를 양산하기 마련이다. 학위 인플레 현상에 따라 미국에서조차 ‘박사 플러스’(PhD Plus)와 같은 새로운 학위가 논의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이처럼 학문의 한국적 유산과 미국식 관행이 혼합된 결과가 오늘날 한국 사회 특유의 박사 열풍이다. 문제는 그것의 낮은 사회적 가성비다. 박사가 많다고 하지만 그들의 국가 R&D 성적표는 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투자를 부끄럽게 만든다. 노벨상 앞에서 매년 입만 다시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박사가 늘어나 우리 사회의 교양과 품격이 높아진 것 또한 아니다. 박사 숫자에 비례할 정도로 우리가 세계적인 지식 강국이나 문화 대국은 아닌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자유롭고 보람 있게, 즐기며 하는 사회 분위기가 부족한 탓이 가장 크다. 많은 경우 중요한 것은 학위 그 자체일 뿐, 학문의 의미나 공부의 가치를 스스로 성찰하는 일은 드물다. 학계 외부 유력자(有力者)들에게 박사 학위란 성공과 출세의 또 다른 장식품일 때가 많다. 학문의 세계에 입문하는 젊은 세대 또한 각종 제도권 지식 관리 시스템에 순치되어 지식 창조 행위 본연의 동기와 목적을 망각하기 일쑤다.
이런 점에서 최근 박사의 의미 자체가 달라지는 일부 외국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컨대, 2016년 프랑스에서는 91세 할머니가 이주노동자 관련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30여년 동안 프랑스 거주 외국인 노동자에게 불어를 가르치며 쉬엄쉬엄 자료를 모으고 논문을 썼다. 2018년 일본에서는 88세 할머니가 박사 논문을 완성했는데, 주제는 조몬(繩文) 시대의 천에 관한 것으로 평생 인형이나 완구 등을 제작하며 축적한 현장 지식이 바탕이 되었다. 지식·문화 선진국의 궁극적 기반은 박사의 규모가 아니다. 대신 그것은 개인의 삶과 분리되지 않은 학문, 장인 정신으로 불태운 연구, 그리고 현학적이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현장 공부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조선일보(21-07-03)-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國內-이런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北 금기어 ‘오빠’] [김정은과 레드벨벳] (0) | 2021.07.10 |
|---|---|
| [세계 반딧불이의 날] (0) | 2021.07.06 |
| [동해의 오징어 풍년] [스포츠와 정치의 충돌, 유로 2020과 도쿄 올림픽] (0) | 2021.06.29 |
| [기립 박수 초심자를 위한 가이드] (0) | 2021.06.27 |
| [북한 호텔방엔 몰카가 있을까] (0) | 2021.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