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사건 없이도 울림이… 삶을 닮은 클래식]
[교향악 황제들의 계보 이어준 슈베르트 교향곡 9번]
대단한 사건 없이도 울림이… 삶을 닮은 클래식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가장 감동을 받을 때는 언제일까.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폭발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낼 때? 유명한 성악가가 공연장 천장을 울리는 고음을 낼 때? 그런 장면들도 물론 인상 깊지만, 내가 진짜 울컥하는 순간은 다른 데 있다. 누군가의 일상을 닮은 음악을 들을 때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움직인다. 감동은 생각보다 화려한 장면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평범한, 정직한 감정에서 온다. 마치 내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처음 들었을 때가 그랬다. 이 곡은 말 그대로 ‘겨울에 길을 떠나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실연의 아픔을 안고, 눈 내리는 들판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남자의 내면을 24개의 노래로 그린 작품이다. 놀랍게도 여기엔 대단한 서사가 있는 게 아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걷는다. 발걸음은 무겁고, 바람은 차갑다. 눈은 그치지 않고 내린다. 누구에게도 그 감정을 내보이지 못한 채, 혼자 걸어간다. 그 모든 상황이 특별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감정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이 지극히 평범하고 정적인 음악에서 깊은 감정을 느낀다. 그 이유는 아마 우리에게도 그 길이 낯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한 번쯤은 그런 겨울을 통과해 봤으며, 마음이 추운 날을 겪어 봤다. 삶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막막한 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괜히 쓸쓸한 하루가 있다. 그런 날이면 평소와 똑같은 길도 더 외롭고, 낯선 풍경처럼 느껴진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그저 혼자서 그 감정을 감당해야 하는 날이 있다. 슈베르트는 그런 날을 꾸밈없이 노래했다. 설명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조용히 꺼내 보였다. 그래서 더 마음에 남는다.
이 곡의 다섯 번째 곡인 ‘보리수’는 전체 연가곡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노래다. 보리수는 사랑을 속삭이던 나무지만, 이제는 주인공에게 ‘여기서 쉬었다 가라’라고 속삭인다. 따뜻한 유혹처럼 들려도, 사실은 삶을 멈추라는 무언의 권유일지도 모른다. 나그네는 그 유혹을 뿌리치고 다시 눈보라 속을 걸어간다. 이 짧은 노래 안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이 담겨 있을까. 우리의 삶 속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어떤 형태로든. 쉬고 싶고, 그만두고 싶은 유혹 앞에서 스스로를 다잡았던 순간들. 그러한 감정을 슈베르트는 단 4∼5분의 노래로 그려냈다. 그것도 단지 성악과 피아노만으로.
‘겨울 나그네’의 마지막 곡인 ‘거리의 악사’는 이런 여정을 마무리하는 노래다. 거리를 떠돌며 악기를 연주하는 노인을 보면서 주인공은 그에게 말을 걸어볼까 망설인다. 노래는 그렇게 끝난다. 아무 결론도, 위로도 없다. 이야기의 끝도 열려 있다. 가만 보면 그게 바로 삶이다. 우리의 하루하루가 언제나 마무리되는 건 아니다. 어떤 감정은 해소되지 않은 채 끝나기도 하고, 어떤 질문은 대답 없이 남기도 한다. 그저 그런 하루가 쌓여 간다.
우리는 흔히 클래식 음악이 어려운 이야기, 비범한 감정, 화려한 기교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면도 있다. 하지만 클래식이 오래도록 사랑받아온 이유는, 그 안에 우리의 일상이 있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떠오른 옛 기억, 바람 부는 오후의 쓸쓸함, 해 질 무렵 노을을 보며 느끼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리움, 무언가를 잃어버린 뒤 찾아온 공허함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낸 음악이 오히려 더 많이 공감받고, 더 오랫동안 남는다. 그래서 나는 ‘겨울 나그네’ 같은, 작다면 작은 곡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대단한 장면을 보여주진 않지만, 우리 안의 조용한 겨울을 꺼내준다.
이 음악은 꼭 겨울이 아니어도 듣기에 좋다. ‘겨울 나그네’는 단지 겨울 음악이 아니다. 그것은 계절을 넘어선 마음의 풍경이다. 어떤 계절에도, 어떤 순간에도, 우리 안에는 늘 작고 조용한 겨울이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슈베르트는 그 겨울을 너무도 솔직하고 꾸밈없이 노래했다. 그렇기에 이 음악은 계절이 바뀌어도 여전히 감동을 준다. 대단한 사건이 없어도, 드라마틱한 전개가 없어도 우리는 ‘겨울 나그네’ 안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큰 울림을 얻는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동아일보(2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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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악 황제들의 계보 이어준 슈베르트 교향곡 9번

슈베르트(왼쪽)가 죽은 뒤 9년 동안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그의 교향곡 9번은 슈만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로써 슈만은 교향곡의 위대한 계보를 넘겨받게 된다. 동아일보DB
교향곡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종종 하나의 연속된 줄기가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교향곡의 완성자’로 불린 하이든의 제자 베토벤은 ‘불멸의 아홉 곡’으로 불리는 교향곡의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그 베토벤을 존경했던 슈베르트는 베토벤이 죽었을 때 운구에 참여했고 훗날 베토벤 바로 옆에 묻혔다.
베토벤이 죽고 49년이 지난 1876년,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이 세상에 나왔다. 지휘자 한스 폰 뷜로는 이 작품을 ‘교향곡 10번’이라고 불렀다. 베토벤의 아홉 곡을 잇는 곡이라는 뜻이었다. 브람스는 완성도가 높은 교향곡 네 곡을 써서 이 전통의 적자임을 입증했다.
브람스가 쌓아 올린 네 개의 봉우리 다음에 나타난 커다란 산맥은 구스타프 말러였다. 말러는 언뜻 브람스의 계승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는 ‘순음악파’ 브람스와 대립해 ‘종합예술’을 목표로 했던 바그너의 추종자였다. 그러나 브람스와 말러는 자주 그 시대의 음악 경향에 대한 담론을 나누며 세대를 뛰어넘어 우정을 이어갔다.
하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브람스가 한 번 본 적도 없는 베토벤의 위업을 반세기나 지나 갑자기 계승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한스 폰 뷜로의 말 한마디로 그 왕관을 순순히 넘겨줄 수 있을까.
이 교향곡 왕조의 신화를 더 완전하게 해줄 이야기가 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더 그레이트’)에 대한 얘기다. 이 곡이 있음으로써 교향곡의 물줄기는 베토벤에서 슈베르트, 그리고 슈만과 멘델스존, 이어서 브람스로 이어진다. 최소한 마치 그렇게 이어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연은 이렇다. 슈베르트가 죽고 9년이 지난 1837년, 음악평론가 겸 아직 무명 작곡가였던 로베르트 슈만이 슈베르트의 형 페르디난트를 찾아갔다. 페르디난트는 동생 슈베르트가 남긴 악보 꾸러미로 슈만을 안내했다. 슈만은 거기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교향곡 악보를 발견한다. 놀라움과 기쁨은 말할 수도 없었다. 슈만은 친한 친구이자 지휘자였던 멘델스존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악보를 보냈다.
이 곡은 멘델스존의 지휘로 1939년 게반트하우스에서 처음 연주됐다. 객석에 앉은 슈만은 당시 연애 중이었던 클라라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클라라. 나는 오늘 복을 받았소. 이 곡은 형용할 수 없소. 인간의 목소리요. 모든 악기가 엄청나게 즐겁고 관현악법도, 엄청난 길이도 놀랍소. 난 정말 행복했고 당신이 나의 아내가 되고 내가 이런 곡을 쓸 수 있기만 빌었소.”
이 편지는 교향곡의 위대한 전통이 슈베르트로부터 그의 유작을 발견한 슈만의 손으로 인계되는 환상을 일으킨다. 슈만은 실제로 다음 해인 1840년에 교향곡 1번 ‘봄’을, 그 다음 해 오늘날 교향곡 4번이 되는 교향곡 d단조를 쓰는 등 교향곡 네 곡으로 선배들의 업적을 잇는다.
슈베르트의 악보더미에서 슈만이 찾아내 다시 불씨를 키워낸 교향곡의 전통은 다시 슈만의 제자였던 브람스에게 계승된다. 슈만은 독일 오스트리아 음악계에 브람스의 존재를 알린 선생이자 스승이었다.
이렇게 보면 하나의 계통도가 그려진다. 하이든이 쌓아 올린 교향곡의 토대는 제자 베토벤에게 이어지고, 베토벤을 운구했고 그의 곁에 묻힌 슈베르트에게, 그 슈베르트의 교향곡을 찾아낸 슈만에게, 그 슈만의 제자 브람스에게, 그 브람스와 친교를 나눈 말러에게. 장대한 산맥이 굽이치는 것처럼 이어진다.
물론 이는 신비주의적인 시각일 뿐이다. 교향곡의 세계에는 모차르트나 브루크너,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체코의 드보르자크,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등 앞에 언급하지 않은 수많은 거장이 있다. 하지만 하이든에서 말러로 이어지는 일련의 ‘인연’들은 오늘날 그들의 음악을 듣는 음악팬들에게 신비로운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KBS교향악단 콘서트에서는 ‘지휘자가 된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7번을 지휘와 솔로를 겸해 연주한 뒤 후반부에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 ‘더 그레이트’를 지휘한다. 작품의 장대함과 유려함을 즐기는 데서 나아가 교향곡 역사의 위대한 전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동아일보(2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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