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가는 차에 40대 남녀 커플이 타고 있다. 그들은 과연 부부일까, 아니면 불륜일까? 만약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부부이며, 서로 웃으며 대화를 자주 한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불륜이다!
이 씁쓸한 농담의 메시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부부는 대화를 잘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편적인 대화 모습만으로도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때론 잘 포착할 수 있다’ 는 사실이다. 심리학에선 이런 능력을 ‘얇게 조각내기’(thin-slicing) 라고 부른다. '얇게 조각내기’란 매우 적은 양의 경험 조각들을 토대로 이른 시간 안에 사람을 판단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우리의 무의식적 능력을 말한다.
부부의 대화를 분석해보면 그들이
이혼할지 어떨지를 알 수 있다. 결혼생활을 오래 지속하는 부부는 상대에 대한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의
비율이 최소 ‘5대1’ 이지만, 불행한 부부들은 부정적 감정의 비율이 40%가 넘었다.
<뉴요커>의 저널리스트 맬컴 글래드웰은 '인간의 순간적인 판단 능력이 때론 매우 유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아 전세계적인 화제작 <블링크> (2005) 를 출간한 바 있는데, ‘얇게 조각내기’ 는 그가 이 책을 쓰게 만든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그가 이 책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얇게 조각내기’의 예로 존 고트먼 교수의 ‘이혼 연구’가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이기도 했던 히피 외모의 존 고트먼 박사는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회심리학자이다. 그의 전공 분야는 ‘부부관계’인데, 부부생활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어려움과 위기를 상담해 주고 화목한 가정생활으로 이끄는 조언을 해주는 것이 그가 주로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가 여느 부부상담가와 다른 점은 수학의 엄격함과 정확성에 매료돼 매우 수학적인 방식으로 부부관계를 진단하고 이혼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한 시간 동안 남편과 아내가 나눈 대화만 분석해도 그 부부가 15년 뒤에 여전히 부부로 살지, 아니면 이혼을 하게 될지 여부를 95%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5분만 관찰할 경우에도 성공 확률은 무려 90%나 된다). 그는 지난 20년간 자신이 분석한 부부관계를 정리해 <결혼의 수학> (The Mathematics of Marriage, 2002) 이란 책을 써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이혼의 수학’ 으로 하려 했으나 출간 직전에 ‘결혼의 수학’으로 바뀌어 출간된 것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중략>
가장 심각한 요소는 ‘경멸’
존 고트먼은 1980년대 이후 3천 쌍이 넘는 부부를 상담하면서 커플들의 대화를 비디오카메라로 기록하고 분석했다. 맬컴 글래드웰의 <블링크>에
따르면, 표정에 나타나는 감정의 미묘한 차이를 섬세히 기록하고 모호하게 들리는 대화의 편린을 정확히
해석할 수 있다면 부부의 미래가 그림처럼 선명히 보인다고 고트먼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SPAFF(specific affect·명확한 감정)라 고 이름 붙인
시스템을 개발해 부부가 대화 중에 표현할법한 모든 감정을 20가지 범주로 표시했다. 예를 들어 혐오감은 1, 경멸은
2, 화는 7, 방어 자세는 10, 푸념은 11, 슬픔은 12, 의도적 회피는
13, 특성이 없는 것은 14 같은 식이다.
그는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매초마다 커플의 상호작용 때 나타나는 감정을 SPAFF 코드로 표현해 15분 동안의 대화를 남편과 아내별로 각각 900개씩 모두 1800개 수치의 열로 전환했다. 그렇다면 고트먼은 자신의 결혼 방정식을 통해 어떤 부부관계의 비밀을 밝혀낸 것일까? 고트먼이 쓴 <결혼의 수학>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부부는 대화를 하고 감정을 교류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자신들만의 패턴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불행한 부부에게서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우선 결혼생활을 오래 지속하는 부부를 관찰해보니, 서로 대화를 할 때 상대에 대한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의 비율이 최소 ‘5 대 1’은 되더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불행한 부부들은 부정적 감정의 비율이 40%가 넘었다.
대화 내용보다 태도가 중요
게다가 불행한 부부들은(이들 중 상당수는 15년 내에 이혼을 했다!) 방어적 자세, 의도적 회피, 냉소, 경멸 등이 대화에서 자주 발견됐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요소는 ‘경멸’이었다. 부부 중 어느 한쪽이(또는 둘 다) 상대방에게 경멸의 감정을 보일 경우 그들의 결혼은 심각한 적신호를 보인다고 판단해야 한다.
두 번 이상 눈알을 빠르게
굴린다거나, 어처구니없다는 식의 표정을 짓거나, 무시하는
말을 내뱉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거나 항상 긴장하게 만드는 환경은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고트먼 박사는 지적한다. 방어적인 태도도 좋지 않은 신호다. ‘그래, 하지만’ 화술을 사용해,
동의하는 것 같지만 이내 되받는 말투를 자주 사용하는 부부들은 오해의 골이 깊었다.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차라리 ‘노골적인 적대감’을 나타내거나 ‘화’ 를 자주 드러내는 부부는 티격태격할지언정
이혼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지적한 대목도 흥미로운 결과였다.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 를
“세상의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서로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는 말로 시작하지만, 고트먼은 불행한 부부에게도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통상적인 상식과는
달리) 부부 갈등이 심화되는 것은, 부부간에 문제가 된 대화
내용 자체보다도 그런 대화를 나눌 때 부부가 보이는 태도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대화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지가 부부 사이에선 매우 중요하며, 대화 태도는 그들의 내면적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숨길 수 없는 지표라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결혼생활을 성공적으로 이어가는 부부들은 논쟁적인 대화를 나눌 때에도 서로 장난을 치거나 웃으며 정서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낸다. 그러나 불행한 부부들은 논쟁을 할 때 유머러스하게 대화하는 법을 잘 몰라 사소한 말다툼을 심각한 싸움으로 치닫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당신은 남편 혹은 아내와 어떤 방식으로 말을 걸고, 대화를 하며, 말싸움을 끝내는가? 대화의 내용이 아니라 대화하는 방식 말이다.
[한겨레 21, 정재승의 사랑학 실헐실 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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