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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 화학적 거세] [어린이 성범죄] [국회 비서, 그녀들은 왜 거절하지 못했나] ....

뚝섬 2021. 9. 1. 06:19

[성범죄자 화학적 거세]

[어린이 성범죄]

[국회 비서, 그녀들은 왜 거절하지 못했나]

['미투'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성범죄자 화학적 거세

 

“그게 사람입니까? 악마보다 더한 악마예요.” 생후 20개월 된 손녀를 잃은 할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손녀를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는 사람은 딸과 함께 지내던 20대 남성 양모 씨였다. 범행을 저지른 뒤에도 양 씨는 손녀의 행방을 묻는 할머니에게 성관계를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패륜을 저질렀다고 한다. 정상적인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곤 믿기지 않는다. 이에 법조계에선 양 씨에 대해 ‘화학적 거세’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화학적 거세의 정식 명칭은 ‘성 충동 약물치료’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감소시키는 약물을 투여해 성욕을 저하시키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 화학적 거세 대상자를 정하는 요건은 까다롭다. 성범죄자 중에서도 성도착증 환자로서 재범의 위험성이 높은 사람으로 한정된다. 전문가의 감정을 바탕으로 검찰이 약물치료 명령을 청구하고 법원이 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체코나 미국 텍사스주 등에서는 성범죄자의 성기능을 영원히 잃도록 하는 물리적 거세가 허용된다. 반면 화학적 거세는 주기적으로 약물을 투여해야 하고, 투약을 중단하면 효과도 사라진다. 한국에선 법원이 최장 15년 동안 화학적 거세를 명령할 수 있다. 일각에선 남성호르몬 억제만으론 성범죄를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지금까지는 재범을 막는 데 효과를 거두고 있다. 2011년 한국에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49명에게 시행됐는데, 이들 가운데 다시 성범죄를 저지른 사례는 없다.

 

▷성범죄라고 하더라도 형기를 마치고 나온 사람에게 추가 제재를 하는 것은 이중처벌이고 인권침해라는 시각이 있다. 뼈엉성증(골다공증), 우울증 등 약물 주입에 따른 부작용 발생 가능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에 신체의 자유, 자기결정권, 인격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법원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5년 화학적 거세 자체에 대해선 “수단의 적절성이 인정되며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재범 가능성이 있는 범죄자라고 해서 무조건 무기징역 이상의 중형을 선고해 평생 감옥에 가둬둘 수는 없고, 이들의 인권도 존중돼야 한다. 그렇지만 재범의 위험을 방치할 수도 없기 때문에 사회적 논의를 거쳐 전자발찌를 채우거나 화학적 거세를 하는 등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2019년 미 앨라배마주에서 아동 대상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법을 발의해 통과시킨 스티브 허스트 의원은 인권침해라는 비판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조차 없는 어린아이가 성범죄 피해를 당하는 것보다 화학적 거세가 더 비인간적인 일인가.”

 

-장택동 논설위원, 동아일보(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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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발찌 끊고 두 명 살해한 범인 “더 죽이지 못한 게 恨.” 그런 사람 방치한 우리 治安 현실이 더 한심.

 

-팔면봉, 조선일보(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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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성범죄

 

며칠 전 한 프로 스포츠 치어리더가 자신을 원색적으로 성희롱한 소셜미디어 글을 복사해 올렸다. 온갖 난잡한 단어와 함께 "강간하고 싶다" "임신시켜도 되겠지?" 같은 표현들이 가득했다. 치어리더는 "웬만하면 웃고 넘기는데 너는 고소해야겠다"고 썼다. 이후 해당 글을 쓴 사람이 치어리더에게 연락을 해왔는데 초등학교 5학년생이었다고 한다. 충격을 받는다면 요즘 초등학생 세계가 어떤지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성적 불평등과 일상적 성희롱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직장마다 강도 높은 성희롱 방지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여성의 자각적 움직임도 활발해져 '탈코르셋' 같은 운동이 호응을 얻는다. 그런데 그 이면에서 어린이들은 범람하는 포르노에 노출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초등학교 내 학생 간 성폭력 심의 건수는 2013년 130건에서 2017년 936건으로 7배 넘게 늘었다.

 

▶얼마 전 경기 성남의 한 어린이집에서 벌어졌다는 5세 아이들 간 성추행 사건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피해 아동의 말이 일관되고 의사 소견서까지 나왔으니 실제 무슨 일이 있었던 듯 보인다. 다섯 살짜리가 범죄 의도를 갖고 행동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애들이 장난한 것 갖고 뭘 그러느냐'는 식으로 넘길 일은 아니다.

 

▶어린이들의 성적 행동이 늘어나는 것은 스마트폰의 영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에서 쏟아지는 자극을 소화하고 감당할 수 없는 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일탈 행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초등 4~6학년에서 가장 크게 늘어, 지난 2015년 59.3%에서 작년 81.2%로 폭증했다. 그만큼 아이들이 음란물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성가족부가 조사해보니 청소년의 성인물 이용 경로는 포털 사이트가 28.2%로 가장 많았다. 포털 사이트만 들어가도 광고물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얼마든지 음란물을 접할 수 있다.

▶안 그래도 요즘 초등학생들의 세계는 어른들이 짐작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 있다. 초등학생들의 화장도 점점 일반화되고 있다고 한다. 어른보다 화장품이 더 많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부르는 노래는 성인 가요다. 연예인에게 악플을 다는 사람 중에도 초등학생이 적지 않다고 한다. 전문가들조차 스마트폰에 대해 "최대한 늦게 사줘야 한다"는 것 외엔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결국 학교와 가정에 1차적 교육 책임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1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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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비서, 그녀들은 왜 거절하지 못했나

 

"젊은 비서 낙하산 채용… 100% 불륜이란 게 정설"
강력한 갑을 관계 "인사권 쥔 의원의 사노비… 미투하려면 다 걸어야" 

 

"저는 국회에서 일하고 있는 A입니다. (중략) 보좌관인 그 사람과 직장 상하 관계로 묶이기 시작한 뒤 장난처럼 시작된 성폭력이 일상적으로 반복됐습니다. '뽀뽀해달라', '엉덩이를 토닥토닥 해달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부터, 상습적으로 제 엉덩이를 스치듯 만지거나 팔을 쓰다듬는다거나, 제 가슴에 대한 음담패설까지 부적절한 신체 접촉과 발언이 계속됐습니다."

지난 5일 국회 공식 홈페이지에는 현직 비서의 실명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글이 올라왔다. 이날은 김지은 충남도 정무비서가 방송 인터뷰를 통해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성폭행을 폭로한 날이었다. 정치권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드디어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지금, 문화·예술계처럼 정치권 미투 운동이 확산되는 분위기는 아니다. 실명 폭로도 A씨에 그쳤다. A씨를 가해한 해당 보좌관은 즉각 면직 처리됐지만, 국회 의원회관 내에서는 "저 정도는 흔하디흔한 일"이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정치권 미투가 급속도로 확산하지 않는 이유가 문화·예술계보다 더욱 폐쇄적이고 갑을 관계가 훨씬 강력하게 작동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10년 차 국회 여성 보좌진은 "여기는 의원이 나가라고 하면 내일 당장에라도 짐을 싸야 하고, 다른 곳에 취직하려면 의원이나 보좌관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일반 회사로 이직하려고 해도 대관 업무 등을 담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국회 내 평판을 지켜야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미투를 하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유부남이 "사귀자"며 성추행

몇 년 전 결혼을 앞둔 비서 B씨는 모시던 의원에게 "결혼 전에 한번 주고 가라"는 말을 들었다. 평소에도 "끌린다.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다" 같은 희롱 발언을 서슴지 않던 사람이다. 20대부터 국회에서 일한 C씨는 40대 보좌관에게 "나와 사귀면 다른 방으로 진급시켜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거절하니 "남자 친구는 만나도 좋다"는 말도 했다. C씨는 "자신의 딸에게서 전화 오면 다정다감한 아빠처럼 굴던 것이 더 역겨웠다"고 말했다.

국회 여성 보좌진들의 폭로는 페이스북 익명 게시판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도 속속 올라오고 있다.

"당시 딸 같다며 (날) 며느리 삼고 싶다던 의원은 내 앞에서 바지를 내렸다. (…) 의원의 더러운 성욕 때문에 우리 부모는 딸에게 더러운 말을 하는 의원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어야만 했고, 나는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은 죄인이 됐다."(D씨)

"애인으로 만나보지 않겠느냐며 제안하던 그 의원을 잊지 못합니다. 정치인이고 공인이라 여자 만나기 더 조심스럽다 하며… 아빠보다 더 많은 나이인데도 괘념치 않고, 심지어는 소변보는 영상을 찍어 보내줬던 그 변태 같던 사람을 잊지 못합니다."(E씨)

한 5년 차 국회 여성 보좌진은 "유부남 의원·보좌관들이 여비서에게 접근할 때 자주 하는 말 중의 하나가 '우리 한번 사귀자'다. 그러곤 추행하다 문제가 생기면 합의한 관계나 치정으로 몰아간다. 우리가 그들을 왜 사귀느냐. '여비서는 꽃이니 옷 좀 섹시하게 입으라' 등의 희롱은 셀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상관 다수가 남성이라는 점도 여성 보좌진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요인이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20대 국회 여성 보좌진은 총 836명으로 전체 보좌진(2548명)의 32.8%다. 최고 직급인 4급의 여성 비율은 7%에 불과하다. 말단일수록 여성 비율이 높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남성 비율이 높아져 내부 분위기가 남성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신하? 우리는 '사노비'

국회 내 갑질은 단순히 성범죄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가족들을 수행하라고 요구하는 의원부터 폭행·폭언을 서슴지 않는 의원까지 다양하다. 밤낮없는 업무 지시와 주말·새벽 출근은 일상이다. 직원들은 "우리는 신하도 아닌 '사노비'"라며 분노한다.

국회 비서관 F씨는 "의원 사모(부인) 수행은 일상이다. 의원 부모 고향집에 TV가 고장 나도 우리가 고치러 간다. 대학생 인턴이 의원 대학생 아들 리포트를 대신 써주기도 한다. 심지어 의원의 애완견 털 깎기도 우리 몫"이라고 말했다. 다른 남성 보좌관 G씨는 "의원이 직원들 조인트 까고(구둣발로 정강이를 걷어차는 것) 휴대폰이나 스테이플러, 재떨이를 던지는 건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의 내연녀 채용 논란 역시 국회에서는 종종 나오는 말이다. 비서관 H씨는 "모 의원 방에 경력이 전혀 없는 젊은 여성이 4급 보좌관으로 들어와 입법·정무 등의 일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의원 수행일만 하면 우리 사이에서는 의원과 100% 불륜 관계라는 것이 정설"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의원과 보좌진 간 갑을 관계가 강력한 이유는 '별정직 공무원'이라는 인사 시스템 때문이다. 보좌진은 형식적으로는 국회사무처 소속이지만, 실질적인 인사권은 의원이 쥐고 있다. 15년 차 보좌관 I씨는 "예전에야 정치의 꿈을 갖고 보좌관이 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생계형 보좌진으로 20년을 채워 공무원 연금을 받는 게 목표"라며 "먹여 살릴 처자식이 있는 경우 몇 개월의 백수 기간도 치명적이다. 의원들이 손에 쥔 인사권을 내려놓지 않는 한 이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운 기자, 조선일보(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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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라는 로빈 월쇼의 책이 있다. 무려 1982년 미국 32개 대학 6000여 명 남녀 대학생의 경험 분석을 통해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에 대해 다룬 두꺼운 책인데,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화두들이 우리나라에는 최근에야 도착한 것 같은 느낌이다. 나 역시 얇지 않은 이 책을 보면서 나와 내 몸에 일어났던 일을 직시하게 됐다. 이를테면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이 지면에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게 됐지만, 한동안 극장의 영화 스크린은커녕 영화 포스터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 푹 숙인 고개로 땅바닥만 쳐다보며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영화'라는 단어의 획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칼날처럼 가슴을 저몄다. 그렇다, 이것은 나의 '미투' 이야기다.

 

#metoo. 오랜 시간 숨겨온 아픔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앞선 미투를 보고 용기를 얻는다지만 그 결과는 두렵다. 들불처럼 번진 미투 속에서 나의 미투는 별일 아닌 것처럼 묻혀버리는 것도 겁난다. 필요한 건 #withyou. 용기 낸 고백을 들어주는 것./ 플리커.

 

스무 살 무렵 삶은 간단치가 않았다. 과대표였던 캠퍼스 커플 남자친구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꼭 어른처럼 보였다. 그는 내게 큰돈을 빌린 채 갚지 않았고, "갚아봤자 네 옷 사고 신발 사는 데나 쓰지 않겠느냐"며 이상하게 당당했다. 과에는 말이 이상하게 퍼져 결국 나는 휴학을 했고 교수님에게 중재를 부탁하겠다는 최후 수단을 쓰고서야 해결할 수 있었다. 어느 중견 영화사를 통해 모 감독을 소개받아 함께 시나리오를 개발하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시나리오 작가가 꿈이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완전히 밀려나 고립되어 버린 상황에서 '입봉'은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당당한 핑계가 되어 줄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데뷔를 하고 싶었다. 감독을 자주 만나야 했다. 감독은 30대 초중반의 유부남이었고 인간성 좋은 사람으로 주위에서 인정받고 있었다. 나 역시 그를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 간에 일어나서는 안 될 것 같은 '터치'가 수시로 일어났는데, 어느 순간에 화를 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거절하기도 두려웠고 거절하지 않는 것도 두려웠다. 내가 데뷔에 목숨을 걸수록 그의 손길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아마도 그는 최근의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 관계를 연애 감정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엉킨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몰라 괴로웠고,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조용한 모텔을 잡아 주는 영화판의 관례대로 모텔에 들어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감독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그리로 가도 되냐는 거였다.

다시 번민이 시작됐다. 시나리오 개발을 하자는 것일 수도 있는 데다 그를 딱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애써 일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준비했는데, 객실 문이 열리자마자 쏟아져 들어온 그는 술 냄새를 풍기며 내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몸을 더듬었다. 온 힘을 다해 풀려난 후 어찌할 바를 몰라 룸메이트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2차 가해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녀는 "내 남자친구가 그러는데, 그 사람이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데?"라고 말했고, 나는 힘없이 전화를 끊었다. 영화사 직원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하자 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그 여성 PD는 "그러게 감독님에게 꼬리를 치더라니…"라고 말했다. 그 이후 그 발언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자 "조그만 게 잘해줬더니 이젠 박박 기어올라?"라고 답했다. 누구도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신속하게 나는 그 프로젝트에서 퇴출됐고, 그 감독은 지금도 차분히 영화를 만들고 있다.

영화판을 떠나 조그만 회사에서 일할 때 그때의 나처럼 스무 살이던 막내 직원이 팀장에게 모텔에서 똑같은 일을 겪었다. 나는 남자 직원들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기 위해 경찰서로 따라갔다. 그러나 내가 그녀를 지켜줄 필요는 없었다. 내 스무 살 당시 영화사 관계자들은 모두 대학 시절 정의로운 운동에 몸을 담은 사람들이었고, 명문 대학을 나온 엘리트들이었다. 그러나 중소기업에 재직하는 고졸 직원 두 사람의 처신이 훨씬 품위 있었다. 그들은 막내 직원에게 가장 먼저 "네 책임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직원의 편에 설 것을 다짐했다. 문제를 일으킨 팀장이 그 두 사람과 절친한 사이였는데도 그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범죄 피해자가 문제를 잘 해결하고 다시 일어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관계된 남자들의 인품이 훌륭하기를 바라야 한다. 그저 운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그 회사에서 회식이 있던 어느 날, 부장의 손이 엉뚱한 곳에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 등에서 시작해서 허리로 슬금슬금 손이 와서 이리저리 피해도 계속됐다. 조명이 컴컴한 데다 인원이 많아 누구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나 혼자 어둠 속에 얼굴이 벌게진 채 과일 안주 접시라도 엎어야 하는지, 손을 잡아서 꺾기라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얼굴만 계속 빨개졌다 파래졌다 하다가 결국 가방을 집어들고 모두에게 인사도 제대로 없이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며칠을 혼자 고민하다가 같은 팀 남자 직원 두 사람에게 의논을 했다. 부장의 손장난을 털어놓자 그들은 정의로운 얼굴로 나를 마구 야단쳤다. "김현진씨 정말 실망이에요. 용감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서 화를 냈어야죠. 지금 뭐 하는 짓이냐고 했어야죠. 현진씨는 좀 다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실망이에요." 나는 순간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실망시켜서 미안하다고 빌어야 하나? 이런 성적인 문제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악을 써도 "평소에 네가 꼬리 치던 행실을 보아하니 그런 일 있을 줄 알았다"라는 취급을 받는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일단 참고 나중에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의논하면 "진작에 왜 안 돼요, 싫어요 하지 않았느냐"고 또 비난을 받았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지금도 수많은 여성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몰라 고뇌하고 있을 것이다. 왜 이제야 말하는 게 아니라 이제야, 그것도 많은 고통을 삼켜가며 털어놓는 것이 미투 피해자들의 마음일 거라 생각한다. 내 몸을 누가 함부로 할 때의 모욕감과 고통의 기억을 꺼내는 것이 얼마나 캄캄하고 슬픈 길인지 안다면 감히 '공작' 같은 소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찌르는 듯한 고통을 꺼내어 전시하며 공작 행위를 할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이 고통 앞에는 진영이 없다. 진보도 보수도 없다. 미투는 절대로 섹스의 기억이 아니다. 미투를 섹스, 그리고 섹스 스캔들로 이해할 때 미투 피해자는 다시 한번 고립된다. 그것은 섹스가 아니라 고통의 기억이다.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겨우 다시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모든 미투 피해자들 역시 삶을 회복할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고통만 이어지기에는 우리의 남은 인생이 너무나 길다. 

 

-김현진 작가, 조선일보(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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