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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펜웨이 파크] [부수고 다시 짓기 전에 해야 할 일] ....

뚝섬 2021. 8. 29. 05:59

[보스턴 펜웨이 파크]

[부수고 다시 짓기 전에 해야 할 일] 

[기록 지워야 역사 바로 서나]

 

 

 

보스턴 펜웨이 파크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미국인들의 야구 사랑은 잘 알려져 있다. 정규 시즌이 한창인 여름에는 각 구장마다 지역 연고팀을 응원하는 관중들로 연일 성황이다. 몇 년에 걸쳐서 미국의 모든 메이저리그 야구장을 순례 여행하면서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도 많다. 지난 25년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선수들의 경기를 시청하면서, 우리에게도 이런 야구장 풍경은 꽤 친숙해졌다.

 

보스턴 팬웨이 파크.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분위기에서 으뜸인 보스턴의 펜웨이 파크(Fenway Park)가 있다. 1912년 개장하여 109년 역사를 가진 구장이다. 여러 번의 개조, 확장 공사로 모양도 반듯하지 못해서, 유명한 외야의 높은 벽 ‘그린 몬스터(Green Monster)’<사진>와 같은 명물도 탄생했다. 펜웨이 파크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광고판을 포함한 기존 구조물을 바꾸지 못한다. 덕분에 구장은 포근한 빈티지 느낌 그 자체다. 마치 과거로 여행해서 몇 세대 전의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기분이다. 타 구장은 디지털 전광판을 사용하지만 이 구장의 메인 스코어보드는 수동이다. 한 점씩 점수가 날 때마다 사람이 손으로 숫자를 바꾸는 풍경은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이다. 다소 낡고 불편하지만, 부수거나 새로 짓지 않고 고쳐가면서 지켜온 덕분에 오늘날 이렇게 멋진 구장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보스턴 팬웨이 파크.

 

‘레드 삭스(Red Sox)’의 홈구장인 이곳에서는 8회 중간에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스위트 캐럴라인(Sweet Caroline)’을 합창한다. 1997년 구장에서 음악을 담당하던 직원의 지인이 ‘캐럴라인’이라는 이름의 아기를 출산한 기념으로 노래를 튼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전통이다. 실제로 여기서 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율동하려 경기장을 찾는 사람도 있다. 전통과 빈티지,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펜웨이 파크는 노래가사만큼이나 달콤하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멋지게 보존할 수 있는 야구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페인 코르도바(Cordoba)의 메스키타(Mezquita)에 관하여 카를 5세(Carlos V)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리는 언제든지 지을 수 있는 건축을 위해서 다시는 만들 수 없는 추억의 공간을 파괴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조선일보(21-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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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고 다시 짓기 전에 해야 할 일

 

부산에 갈 때마다 대저동을 답사한다. 대저동은 부산광역시의 가장 서쪽인 강서구에 자리하고 있다. 낙동‘강’의 ‘서’쪽이라는 이름처럼, 강서구는 낙동강의 서쪽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강서구는 크게 둘로 나뉘는데, 한 곳은 김해시와 맞닿아 있는 육지고, 또 한 곳은 낙동강 삼각주라 불리는 여러 섬의 모임이다. 

 

 

낙동강과 서낙동강 사이에 놓인 낙동강 삼각주는 원래 대저도・명지도・덕도・맥도 등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섬이었다. 그러다가 1930년대에 대저제방을 쌓고 낙동강의 물줄기를 바꾸면서 대저도・명지도(명호도)・덕도・맥도 및 작은 섬들이 점차 하나의 큰 섬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그 동쪽의 을숙도 역시 현재는 사하구에 속하지만 1983년까지는 강서구에 속했었다. 그리고 낙동강 삼각주와 을숙도는 모두 1978년까지 김해군에 속했었다.

강서구 명지동 해척마을, 2019년.

 

낙동강 삼각주와 을숙도가 지니는 이러한 경계 지역으로서의 특성으로 인해, 이 섬들에는 여러 특수 시설이 들어섰다. 식민지 시기에는 낙동강 삼각주 북쪽의 대저동에는 김해공항이라는 군사 시설이 들어섰고, 현대 한국 시기에는 부산교도소가 들어섰다. 을숙도에는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섰다.

 

나는 쓰레기 매립장이 설치되고 그 후 다시 공원으로 정비되기 이전의 을숙도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을숙도 서쪽의 낙동강 삼각주 남쪽에 명지국제신도시를 만들기 위해 철거될 운명을 맞이한 농촌 마을 ‘해척’의 마지막 모습은 기록할 수 있었다. 을숙도 주민들이 1980년대에 겪었고 해척마을 주민들이 2020년대에 겪고 있는 갈등 도시의 양상은, 낙동강 삼각주 북쪽의 대저동에서 일어날 미래의 모습이다.

 

대저동에는 일식 가옥과 김해공항 주변의 옛 일본군 비행기 격납고 같은 식민지 시기의 경관, 그리고 최근까지도 주민들이 이용하던 나루터와 대저 짭짤이토마토를 재배하는 농장과 같은 현대 한국의 경관이 산재해 있다. 

김해공항 인근 일본군 비행기 격납고, 2019년/낙동강 삼각주의 옛 북섬 나루터, 2021년.

 

2021년 현재 낙동강 삼각주 지역은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남쪽의 명지동에서는 신도시를 건설하려 해척마을 같은 옛 마을이 철거되고 들판에는 고층 아파트 단지가 올라오고 있다. 북쪽의 대저동 역시, 가덕도 신공항이 실현되어 김해공항이 이전하고 신도시가 들어서든, 실현되지 않아 김해공항이 확장되든 간에 그 경관을 크게 바꿀 것으로 예상한다.

 

대저동 '낙동강 칠백리' 일식가옥의 2014년(왼쪽)과 2021년.

 

2014년에 처음으로 대저동을 들렀을 때 ‘낙동강 칠백리’라는 이름의 식당이 영업하던 일식 가옥은, 2021년에 다시 들렀을 때는 용처(用處)를 잃고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한편 대저동의 또 다른 일식 가옥 앞에서 만난 주인과의 대화에서는, 자신이 나고 자란 이 건물과 대저동에 대한 애착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21세기 중기의 대저동에 남아있을 20세기 중기의 일식 가옥은 이 건물 하나뿐일지도 모르겠다.

 

강서구 대저동의 일식가옥, 2021년.

 

낙동강 삼각주의 수리 사업을 주관해온 대저수리조합의 사무동과 창고 역시 철거가 예고되어 있다. 2014년에 처음 들렀을 때 대저수리조합의 후신인 한국농어촌공사가 사용하고 있던 사무동은, 그 후 도시재생사업 사무동으로 쓰이다가 최근에는 재건축이 예고되어 부산 현지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대저수리조합 창고는 식민지 시기에 세워진 것이고, 사무동은 1954년에 미국의 지원으로 재건축된 것이다. 사무동 앞에 세워져 있는 ‘대저수리조합 순직 직원 위령비’와 ‘사무소 복구 건축 기념비’에 따르면, 1952년에 연합군 비행기가 추락하여 직원 다수가 사상했다.

 

연합군 비행기가 추락하여 사무동이 파괴된 2년 뒤인 1954년에는 ‘우방 미국'과 국군 1105야전공병단의 지원으로 현재의 사무동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즉 이 건물은 미군이 주도한 유엔군이 세운 건물이다. 6·25전쟁 당시의 전사자들을 모신 ‘유엔기념공원’을 “유엔에서 지정한 세계 유일의 성지”로 내세우는 부산광역시와 산하 지자체들이 왜 유엔군이 세워준 건물을 헐려고 하는지, 부산 외부에 사는 나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대저수리조합 사무동과 비석. 2014년(왼쪽)과 2021년.

 

그러나 대저수리조합 건물이든 가덕도 신공항이든, 결국은 부산에 사는 시민들께서 그 운명을 결정하시게 될 터이다. 그리하여 나는 장차 그 모습을 크게 바꾸게 될 대저동과 낙동강 삼각주를 틈날 때마다 찾아가서는 기록하고 있다.

 

2021년 현재, 전국에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활발하다. 이 사업들에 반대하는 분들께는 보존 운동에 앞서 우선 현재의 모습을 꼼꼼히 기록으로 남겨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한편 찬성하고 추진하는 분들께는, 기록하려는 사람들을 반기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기록하는 작업은 허락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조선일보(21-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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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지워야 역사 바로 서나

 

왼쪽부터 전두환 정권 시절 경기 포천 43번 국도에 세워진 '호국로' 비석, 박정희 전 대통령의 광화문 한글 현판, 1954년 서울 수복 제4주년 기념식에서 당시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청사 앞에서 태극기 게양 재현 행사를 하는 모습./조선일보DB, 연합뉴스

 

경기 포천시가 전두환 정권 때 43번 국도에 설치된 ‘호국로(護國路)’ 비석을 철거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친여 시민단체들은 전 전 대통령 친필이 담긴 이 비석을 ‘전두환 공덕비’라고 부르면서 철거를 요구해왔다. 이 논란을 보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수준이 수천 년 전 고대(古代)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집트 파라오와 로마 황제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전임자의 비석·건물·동상·조각을 아예 없애는 ‘기록말살형’을 내리곤 했다. 라틴어로 담나티오 메모리아이(Damnatio Memoriae), ‘기억의 죽음’이라는 뜻이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구호를 입버릇처럼 외치는 민주당 정권 때마다 기록 말살이 벌어진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광화문 한글 현판은 노무현 정권 때인 2006년 철거됐다. 현 정권 출범 후 현충사·충의사·만인의총 등에 걸린 박 전 대통령 현판을 떼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박 전 대통령을 언급한 국회 ‘준공기’와 전 전 대통령의 국립대전현충원 현판은 지난해 모습을 감췄다. 현충원 6·25 유공자 묘소는 해마다 ‘친일 파묘’ 난동으로 몸살을 앓는다. 안익태 작곡 애국가는 물론이고 서울대 교가와 육군가, 가곡 ‘어머니의 마음’도 친일 논란이 있으니 교체하라고 한다. 이런 요구는 위인의 표준 영정, 화폐 도안까지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기록 말살의 비용도 적지 않다. 컴퓨터로 짜깁기한 광화문 현판은 2억원, 국회 준공기를 덮는 LED판 3억5000만원, ‘안중근체’ 대전현충원 현판은 1000만원, 신(新)육군 군가는 2500만원짜리다. ‘과거사 청산’을 내건 재조산하(再造山下) 사업으로 돈을 버는 이들이 따로 있다는 우려는 지엽적인 일일지 모른다. 과연 역사란 기록을 말살해야 바로 세울 수 있느냐는 본질적 물음을 품게 된다. 북한은 과거 황장엽·장성택은 물론이고 최근엔 문재인 대통령마저 자기네 공식 화보집에서 아예 지워버렸다. 통일이 된다 해도 이런 기록만으로 온전히 북한사(史)를 쓸 수 있는지 역사학자들은 두려워한다.

 

광복 50주년이었던 1995년 8월 15일, 광화문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할 때 “속이 시원하다”는 국민도 많았다. 하지만 예루살렘 ‘통곡의 벽’처럼, 치욕을 증거하는 기념물로 남았다면 어땠을까. 지금은 그곳에 일제의 지휘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젊은이도 많다. 대한민국 수립 후 한 세대 이상 정부 청사였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기록과 기억을 파괴해 당대인들의 쾌감을 일시적으로 만족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 사라진 공간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은 쉽지 않다. 앞으로 50년, 100년 뒤 후세가 치욕과 고난의 역사를 현장과 물증 없이 교과서로만 배워야 하는가. 기억의 죽음 이후 도래할 망각의 미래가 두렵다.

 

-원선우 기자, 조선일보(2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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