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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 여권의 ‘갈라치기’, 與 차기 주자들도 이어갈까] [仁知勇]

뚝섬 2021. 9. 1. 06:19

계속된 여권의 ‘갈라치기’, 與 차기 주자들도 이어갈까

 

“정권을 잡고도 자신의 집단이 기득권의 희생자라는 피해의식. 적(敵)으로 상정한 검찰과 언론에 대한 법률적, 도덕적 한계를 벗어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정서. 반대자들을 배제하기 위한 사이버 폭력으로 친문(친문재인)의 순혈주의를 유지하겠다는 결속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인 권경애 변호사는 책 ‘무법의 시간’에서 집권 여당과 그 지지자들의 행태를 이렇게 규정했다. 이 책은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폭주가 본격화되기 전에 썼지만, 지금의 언론중재법 정국에서 드러난 여권의 모습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민주당은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렇게 당한 것처럼 국민도 한마디도 못 하고 검찰과 언론에 당해야 하나”(윤호중 원내대표)라고 했다. 국내외 언론·시민단체들이 위헌성을 지적했지만 민주당은 “언론개혁”이라는 자신들만의 명분을 앞세워 귀를 닫았다. 속도 조절을 언급했던 몇몇 의원들은 ‘좌표’가 찍혀 문자폭탄을 받았다. ‘언론이라는 적과 싸우고 있는데 왜 동참하지 않느냐’는 이유다.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부터 여권은 내부 결속을 위해 끊임없이 외부의 적을 만들었다. 첫 타깃은 적폐 세력이었다. 적폐 청산의 선봉에 섰던 검찰이 그 다음 대상이 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던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2년 임기를 무사히 마칠 동안 지켜만 봤던 여권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끄는 검찰의 칼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향하자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적을 만들어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갈라치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도 등장했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지난 폭염 시기, 옥외 선별진료소에서 방호복을 벗지 못하는 의료진들이 쓰러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국민들의 마음을 울렸다”며 “의료진이라고 표현되었지만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고 적었다. 파업을 결정한 의사들을 겨냥한 메시지에 야당은 “다음엔 누구를 적으로 돌리실 셈인가”라고 성토했다.

 

4·7 재·보궐선거 참패로 ‘갈라치기’에 대한 호된 심판을 받았지만, 여권은 굴하지 않았다. 마지못해 검찰개혁을 잠시 접은 민주당은 언론으로 시선을 돌렸고, 여당의 폭주 기관차는 다시 출발했다.

쏟아지는 비판에 언론중재법 강행은 일시적으로 중단됐지만, 여권의 적 만들기는 앞으로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여권의 미래 권력으로 꼽히는 대선 주자들은 누구도 국민통합을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권 주자들은 부동산정책 실패를 관료 탓으로 돌리고, ‘조국 사태’ 판결을 두고는 판사를 성토한다. 여권 원로로 꼽히는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조차 “(차기 대선일인) 내년 3월 9일이 같은 밤이 안 되려면 4월 7일을 잊지 말라”며 폭주와 독주를 경고할 정도다. 이처럼 도처에서 울리는 경고에 민주당은 언제까지 귀를 닫고 있을 셈인가.

-한상준 정치부 차장, 동아일보(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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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知勇

 

[이한우의 간신열전]

 

“다움[德]은 엷은데 자리는 높고, 지혜는 작은데 도모함은 크고, 역량은 모자란데 맡은 바가 크면 재앙에 이르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주역’을 풀이한 공자의 글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말이다. 특히 여기에는 간신(奸臣)들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다움, 즉 덕(德)이란 다른 뜻이 아니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로 살펴야 한다. 즉 말과 행동이 다르다거나 큰소리, 헛소리, 딴소리를 해대는 자들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공자는 특히 자리는 다움을 갖춘 자, 즉 인자(仁者)에게 줘야 한다고 했다. 자리는 일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논공행상(論功行賞)이란 말에 담긴 깊은 뜻을 새겨보면 알 수 있다. 공로를 논해 상을 주라는 말인데 그 상에는 자리가 포함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땅이나 작위 혹은 돈을 주라는 말이지 자리를 주지 말라는 뜻이다.

 

가족이 고초를 겪는데도 그 화(禍)가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즉 자신의 무덕(無德), 무지(無知), 무용(無勇)에서 비롯된 줄 모른 채 소셜 미디어상에서 ‘멸문지화’ 운운하며 감성팔이를 해대는 조국 전 법무장관은 특히 이 구절을 음미해야 할 것이다. 무협지에 나오는 삼류 사자성어 읊어댈 게 아니라 고전에 담긴 제대로 된 글들을 만나볼 일이다.

 

그의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초는 윤석열 전 총장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다. 모든 근원은 조 전 장관 본인이다. 그의 무덕, 부덕(不德)은 달리 말할 필요가 없다. 문 대통령 당선에 공을 세웠으면 일정한 보상을 받고 물러설 일이다. 그것은 예로부터 전해오던 일의 이치, 즉 사리다. 무지란 바로 이런 이치를 모른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욕심을 버리는 용기가 필요한데 가진 것이라곤 권력욕뿐이니 그런 용기가 있을 리 없다. 소셜미디어 하며 검찰·언론·세상 원망할 시간에 이런 공부도 하길. 물론 하지도 않겠지만. 이런 사람을 공자는 ‘고자(固者)’라 했다. 조금도 개선될 여지가 없는 자라는 뜻이다.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조선일보(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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