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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가 받은 50억 퇴직금] [대깨문 게임] ....

뚝섬 2021. 10. 1. 06:23

[또래가 받은 50억 퇴직금] 

[대깨문 게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또래가 받은 50억 퇴직금

 

[카페 2030]

 

최근 수년간 좋지 못한 일로 뉴스에 오르내리는 누구의 아들, 누구의 딸들이 모두 내 또래 밀레니얼이다. ‘조모’는 서른, ‘문모’는 서른아홉, ‘곽모’는 서른하나. 밀레니얼의 범위는 1981~1996년으로 상당히 넓다. 올해 마흔으로 특혜 분양 의혹을 받는 ‘박모’도 아슬아슬하게 밀레니얼로 묶인다.

그러나 나와 그들의 공통점은 딱 거기까지다. 이전 어느 세대보다 ‘공정’과 ‘정의’를 중시한다던 밀레니얼의 특성은 이름 앞에 ‘OO의 자녀’란 글자가 안 붙었을 때만 유효하다. 대신 “모든 게 내 노력과 능력 덕분”이라는 비대한 자의식이 이들 ‘2세’의 공통점인 듯하다.

 

최근 곽상도 부자의 ‘50억 퇴직금’ 논란에서 평범한 밀레니얼을 분노케 하는 이들의 자의식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본질은 50억이란 천문학적 액수 그 자체가 아니다. 곽씨가 그 돈을 안 받는다고 다른 밀레니얼들이 그 돈을 나눠 가질 수도 없다. 각종 지원금 논란을 빚는 대통령 아들도 마찬가지다. 그가 2년간 작가로 활동하며 세금으로 지원받은 액수는 약 2억. 큰 액수지만 그가 2억을 반납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들의 무감각, 특권과 특혜를 누리고도 모른 척하는 뻔뻔함이 아닐까. 문씨의 페이스북 글에선 “대통령 아들인 내가 이런 지원금을 과연 받아도 되는가”란 겸양과 고민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주변이 알아서 넙죽 엎드려도, 모른 척 “특혜는 없다”고 단언하는 그의 오만함이 가장 큰 문제다.

 

“받을 만해서 받았다”는 취지로 쓴 곽씨의 긴 해명 글에서 문씨가 겹쳐 보였다. 곽씨는 문씨처럼 디자인 전공자다. 곽씨 글에 따르면 그는 연세대 원주캠퍼스를 졸업하고 석사 과정을 밟다가 “아무개가 부동산 개발사업을 하는데 사람을 구한다”는 아버지 말을 듣고 곧바로 ‘절차에 따라’ 지원했고, 면접에 합격해 입사했다. 부동산 개발 업무 경력이 전무한 디자인 전공자가 아버지 덕에 50억 로또 회사에 특혜 취업한 데 대한 문제의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글에서 회사를 두고 이런 표현을 썼다. “대박이 날 수도 있겠다.” “한번 베팅해볼 만하다.” 스물여섯 첫 직장에 일개 직원으로 입사 지원하며 ‘대박’ ‘베팅’ ‘올인’ 같은 걸 논한다. 창업자나 쓸 법한 말이다. 일반적인 취업준비생이라면 “부동산 경력도 없는 내가 일을 잘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할 것이다. 다른 밀레니얼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는 자신의 노력과 성실성을 너무나 강조하고 싶었던 나머지 또 하나의 무리수를 던졌다. “다만 저는 주식, 코인에 올인하는 것보다 ‘화천대유’에 올인하면 대박 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한탕이나 노리는 다른 젊은이들과는 달리 ‘성실하게 일해 번 돈’이란 말인가. 성실과 노력 말고는 별다른 무기가 없는 평범한 또래들, 주식이나 코인이 아니면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려운 이들에 대한 기만으로 느껴졌다.

 

그는 글에서 ‘저는 치밀하게 설계된 오징어 게임 속 ‘말’이라고 했다’. 정 자신을 그 게임의 말이라 주장하고 싶다면 아마도 참가 번호는 1번으로 해야 할 테다. 드라마를 끝까지 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손호영 기자, 조선일보(2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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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깨문 게임

 

[논객 조은산의 시선] 

 

“평생 최하급 대깨문으로 사시겠습니까?”

 

이른바 ‘대깨문 게임’의 시작이었다. 서울에서 밀려나 수도권 외곽에 월세로 거주하며, 내 집 마련 꿈을 포기한 대가로 적폐 청산의 후련함을 만끽한 그들이지만 그래도 역시 부에 대한 갈망은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최하급 대깨문 456명은 모처에 모이게 됐고, 때마침 나타난 붉은 옷이 게임 규칙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환영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집값 폭등, 부의 양극화, 자영업 몰락 등을 견뎌낸 극한의 대깨문으로서, 기존 오징어 게임보다 더욱 업그레이드된 초고난도 신개념 게임에 도전하게 됩니다. 상금 역시 업그레이드된 4000억원이며, 살아남은 대깨문은 수드라급 대깨문에서 브라만급 대깨문으로 승급해 평생을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상금 액수에 흥분한 참가자들은 부르르 떨며 “재난지원금까지 받으면 4000억25만원이다!”를 외쳤고 바로 그때, 붉은 옷들이 난입해 참가자들을 몰아세웠으니 그렇게 첫 번째 게임이 시작하게 된다.

 

“첫 번째 게임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아닌, 술래잡기입니다. 참가자 여러분은 붉은 옷들을 피해 재주껏 알아서 세트장에 마련된 집으로 숨으시면 됩니다.”

 

붉은 옷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가 물었다. “집은 어떤 집인가요?” 붉은 옷이 답했다. “미분양된 13평짜리 임대 아파트입니다.” “아니, 13평짜리 임대 아파트에 456명이 다 숨으라고요?” 놀란 참가자들이 되묻자 붉은 옷은 이렇게 답했다. “13평짜리 임대 아파트에 5000만 국민을 다 몰아넣으려는 인간도 있으니 닥치고 숨으십시오.” 그리고 동시에 게임 시작을 알리는 타이머가 작동했고 붉은 옷들의 자동 소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으니 참가자의 80%가 첫 게임에서 사망하고 만 것이다.

탈락자들의 시신이 관에 담겨 분홍 리본으로 묶인 채 사라졌고, 기뻐할 겨를도 없이 두 번째 게임이 시작됐다.

 

“두 번째 게임은 설탕 뽑기입니다. 물론 여러분에게 뽑기 모양을 선택할 권리 따윈 없습니다. 태어날 때 집안 골라서 태어났습니까? 아무튼 모양은 여러분 인생처럼 랜덤으로 찍혀 이 상자 안에 담겼으니, 모두 앞으로 나와 한 개씩 수령해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상자를 수령한 참가자들이 제 것을 하나둘씩 열어봤을 때, 생사는 이미 결정된 것과 다름 없었다. 누군가가 절망에 휩싸인 목소리로 외쳤다. “젠장, 난 이미 끝났어. 청와대 로고야.” 그 옆의 참가자는 당황해하며 외쳤다. “난 김어준 얼굴이야. 수염까지 있어!” 잠시 생각하던 그는 혓바닥으로 그것을 핥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그들의 멱살을 동시에 부여잡으며 피를 토하듯 울부짖었다. “모두 입 닥쳐. 난 화천대유 천화동인을 한자로 긁어야 돼. 핥아도 소용없다구!” 그렇게 남은 참가자들의 절반이 두 번째 게임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이제 남은 건 세 번째 게임이었다. 살아남은 그들은 두려웠다. 그러나 그들 마음 안에 응축된 최하급 대깨문의 설움은 공포마저 압도하는 처절한 것이어서, 두 눈을 부릅뜬 그들은 각자 한 권씩 소지하고 있던 ‘조국의 시간’을 꺼내 다시 정주행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붉은 옷들이 다시 도열했고 세 번째 게임의 시작을 알려왔다. 신앙의 힘으로 재무장한 참가자들은 다시 모여 세 번째 게임 규칙에 귀를 기울였다.

 

“세 번째 게임은 대깨문 장학 퀴즈입니다. 퀴즈는 총 세 문항이며, 각 정답에 따라 숫자가 그려진 곳으로 이동하시면 되겠습니다. 첫 번째 문제입니다. 조국 전 장관이 그의 저서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표현했던 말을 다음 보기 중에서 고르시오. 1, 위리안치의 극수 2, 예루살렘의 예수.”

 

그들에게는 너무도 쉬운 문제라 참가자들은 일시에 우르르 1번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일부 갸륵한 대깨문이 복수 정답 아니냐며 출제 오류를 주장하고 버티다 쏟아지는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손뼉 칠 겨를도 없이 두 번째 문제가 던져졌다.

 

“두 번째 문제입니다. 토건 기득권이자 비리의 온상인 화천대유는 누구 것입니까? 1, 국힘당 2, 이재명.”

 

그 또한 너무도 쉬운 문제라 참가자들은 일시에 “화천대유는 국힘당의 것이다!”를 외치며 1번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일부 극성 대깨문이 이어폰을 꽂은 채 김어준의 뉴스 공장을 듣느라 문제를 못 들어 쏟아지는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마지막 문제가 던져졌다.

 

“마지막 문제입니다. 차기 민주당 대선 후보로 누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1, 이낙연 2, 이재명”

 

일순간 정적이 흘렀고 참가자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낙연이냐, 이재명이냐 그것은 대깨문들에게는 마치 전두부를 깰 것이냐, 후두부를 깰 것이냐를 묻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화천대유는 이재명의 것이다!” 정적을 깨고 누군가가 외쳤다. 아마도 이낙연 지지자였으리라. 그러자 대깨문들은 두 패로 나뉘어 그게 그 사람 것이 맞네, 아니네, 때리고 쑤시고 던지며 피 튀기는 전쟁을 벌이다 결국 모두 사망하고 말았으니 결국 상금 4000억원은 처음부터 그들 몫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임은 그렇게 끝났다.

 

“이봐, Mr. 곽. 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이 뭔지 아는가? 더 벌고 싶어 한다는 거야. 바로 저들과 우리처럼 말이야.”

 

VIP룸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한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뭘 하면은 좀 재미가 있을까.” 그런 그의 하얀 머리칼이 허공에 흩날렸다.

 

-조은산·'시무 7조' 청원 필자, 조선일보(2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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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재밌다. 필자를 포함해 주변 사람들이 이구동성 “오지게 재밌다”고 했다. 우리는 왜 재밌다고 느낄까. 왜 이웃 나라, 먼 나라 관객도 빠져들까.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한마디로 실감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그럴듯해야” 재밌다. 소설가 이청준이 갈파했듯 “스토리 속 감동의 본질은 실감(實感)에 있다”고 본다. 실감이 나야 관객은 몰입한다. 바로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할 때다.

 

“재미없는 글은 범죄”라는 각오로 목숨 걸고 써내려간 이야기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모르는 이야기는 잘 쓸 수 없다. 그래서 장르 불문, 작가는 자신의 삶을 베낀다.

 

이 드라마엔 이혼 실직자, 투자 실패자, 건달 양아치, 채무자, 외국인 노동자, 탈북 소매치기, 부랑 노인 등이 등장한다. “어느 날 없어져도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두운 사회 현실을 거울처럼 비추면서 ‘살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역설의 게임에 마지막으로 자신을 내던진다. 루저들이 최후로 선택한 생사의 무대만큼 절박하게 “그럴듯한” 상황은 없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만든 성공 비결을 이렇게 정리했다. “룰이 매우 단순한 게임이다.” “가장 한국적인 게임이 세계적 소구력을 갖는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게임은 룰이 단순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딱 하나다. 처음 나오는 딱지치기의 룰은 내 딱지로 상대 딱지를 뒤집느냐 못 뒤집느냐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룰은 술래 인형이 뒤를 돌아본 순간 내가 움직이고 있었나 정지해 있었나, 이것 하나다. 줄다리기 룰은 상대를 끌어오느냐 아니면 내가 끌려가느냐다. 구슬치기는 상대가 손에 쥔 구슬 수가 홀인지 짝인지 맞히면 된다.

 

언어적, 문화적, 역사적 번역 따윈 필요 없다. 섬뜩한 단순함이 우리를 얼어붙게 만들고 때론 들썩이게 만든다. 그것이 싸이의 ‘말춤’처럼 국경을 뛰어넘고 세대(世代)를 초월하게 한다. 또 룰이 단순하면 게임 참가 인원을 무제한 늘일 수 있다. 드라마 속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줄다리기에 사실상 수억 관객이 참여하고 있는 셈인데 전혀 불편하지 않다.

 

황 감독은 이 드라마를 처음 구상했을 때가 2008년이라고 했다. 당시 그는 “이런 이야기가 낯설거나 황당하다는 반응은 없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3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슬프게도 살벌한 서바이벌이 잘 어울리는 세상이 됐다”고 했다. 이젠 주식, 코인, 부동산으로 한탕을 노리는 대박 신화의 경연대회가 매일 벌어지고 있다.

 

때로 작가적 상상력은 현실을 못 따라갈 지경이다. 드라마 속 최후 승자가 거머쥐는 돈이 456억원인데, 현실에서는 ‘4000억원 대장동 게이트’가 신문을 도배하고 있다. 필자가 아는 어떤 소설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 엄마가 두 아이를 데리고 목숨을 끊는 장면을 넣었다가 후회했는데, 얼마 뒤 신문을 보니 세 아이를 데리고 투신한 엄마 이야기가 사회면에 실려 있더라고 했다.

 

‘오징어 게임’은 루저들의 피비린내 나는 목숨 잔치다. 일확천금이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다. 루저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다. 극 중 대사처럼 체스의 폰, 장기의 졸 같은 존재다. 반면 생사의 무대를 조종하는 플레이어는 억만장자다. 플레이어와 폰의 극렬 대비가 높은 전압을 발생시켜 드라마를 온 세상에 퍼뜨리는 힘이 된다.

 

극 중 게임이 어디서 처음 발생했는지 원산지를 따지는 일은 시시하다. 문화의 본질은 섞인다는 데 있다. 필자도 어렸을 때 오지게 놀았던 게임들이다. 무엇보다 드라마가 한국 땅에서 한국어로 진행됐으니 일단은 한국 게임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일 수 있다”는 문화계 명제가 입증되고 있다.

 

-김광일 논설위원, 조선일보(2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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