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폭탄 발언 26년 ‘정치는 4류에서 G류로’
[양상훈 칼럼]
1995년 이 회장이 던졌던 화두.. 기업 2류, 관료 3류, 정치 4류
삼성 등 우리 기업들 글로벌 초일류 됐는데
지금 우리 대선은 ‘나쁨’ ‘이상함’ ‘추함’의 경쟁
누가 말했는지는 몰라도 많은 분이 기억하고 있는 말이 있다. “기업은 2류, 정치는 4류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5년 중국 베이징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꼴찌는 3류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회장은 한국 정치를 3류도 아닌 4류라고 했다. 바닥보다 더 아래인 ‘지하’ 수준이라는 것이다.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정치는 4류, 기업은 2류다"라고 말한 고 이건희 삼성 회장./TV조선
이 말을 들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화가 단단히 났다고 한다. 문민 정권 시절이었지만 군사 정권이 막 끝난 시점이어서 사회에 권위주의적인 분위기가 남아 있을 때였다.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까지 이 회장 발언을 못마땅해했다. 당시 야당 소속 한 의원의 반응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정부가 잘하는 것은 없지만 어디 기업인 따위가…”라고 했다. 아마 상당수 정치인의 생각이 비슷했을 것이다. 이 회장 발언이 전해지자 삼성그룹은 폭탄이 떨어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곧 닥쳐올 후폭풍에 전전긍긍했다. 실제 삼성이 당한 공격은 크지 않았지만 이 회장의 그 말은 ‘폭탄 발언’이라 불릴 정도로 충격이 컸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났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 회장은 고인이 됐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2류에서 1류로, 다시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수직 상승했다. 그때와 지금의 삼성전자는 다른 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출액이 15배 늘어난 것보다 큰 것은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가 세계 5위라는 사실이다. 애플, 아마존, MS, 구글 다음이다.
지금 삼성전자의 위상을 설명하는 데는 단 한 장면이면 충분하다. 지난 4월 12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글로벌 핵심 기업들을 불러 직접 투자를 요청한 극히 이례적인 장면이다. 인텔, 마이크론, GM, 포드, 구글, AT&T 등 모두 세계 최고의 기업이다. 이 자리에 삼성전자는 필참 기업이다. 빠진다는 것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다. 삼성전자는 그런 기업이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제조 영업 비밀 침해 문제로 소송 중일 때 미국 백악관이 직접 조정에 나섰다는 후일담 역시 우리 기업의 현재 위상을 말해준다.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우리 기업은 기술과 생산 모두에서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 기업이라 해도 새로 이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1위 조선 업체이고, 포스코는 10여 년 연속으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 회사다. LG전자는 가전제품 세계 1위다.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 5위다. 하나같이 놀라운 기록들이다. 국제 특허 출원 세계 2위가 삼성전자, 4위가 LG전자다.
한국은 기업 발전이 사회와 국가 발전을 견인해온 대표적인 나라다. 경제 개발 초기 단계에선 정부 역할이 컸지만, 2000년대 들어 그 단계를 넘어서서는 글로벌 초일류 기업의 탄생이 수많은 기술 강소 기업을 출현시켰다. 세계 1위 한국 제품 수는 69개로 국가 기준으로 세계 11위다. 히든챔피언(세계 최고 수준 중소기업) 숫자도 한국은 세계 16위다. 글로벌 기업의 출현은 우리 청년들,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의 수준과 시야, 사고방식까지 크게 끌어올렸다. 사회 전체가 촌티를 벗자 BTS, ‘오징어게임’ ‘기생충’, 아카데미상 등 우리 문화계도 글로벌 초일류로 나아가고 있다.
이 회장은 1995년 2류이던 기업을 초일류로 만든 사람이다. 그는 그때 한국 관료와 행정은 3류라고 했다. 지금 관료와 행정은 4류가 됐다고 생각한다. 소신 있는 관료는 거의 다 사라지고 대통령에게 잘 보여 출세하려는 사람들이 눈알 굴리는 소리만 요란하다. 탈원전 같은 백해무익한 대통령의 아집을 뒷받침한다고 휴일 밤에 제 사무실에 숨어들어 증거를 인멸하는 게 요즘 한국 관료다. 포퓰리즘 정치권이 하라는 대로 국가 부채를 폭증시키고 무리한 규제를 쏟아내고 있다. 탄소 중립과 관련해선 공상 소설까지 쓰고 있다.
이 글을 쓰며 이 회장이 4류라고 했던 한국 정치는 몇 류가 됐다고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떠오른 말은 ‘G류’다. ‘GSGG’의 그 G다. GSGG라는 상욕을 처음 쓴 것도 국회의원이지만 지금 한국 정치를 보며 G류라는 것 외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사람들은 대선 출마자들을 보며 혀를 찬다. 우리나라가 이 수준밖에 안 되느냐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든다.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 추한 사람’뿐이라지만 그래도 이 중 누군가 대통령이 될 것이다. 그들이 또 세상을 뒤집으며 글로벌 초일류 기업들 위에서 이래라저래라 호령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기가 막힌다. 이 회장의 선친인 고 이병철 회장은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가혹한 비판자가 된다’고 했다. ‘G류’가 ‘초일류’를 겁박하는 세상을 말한 것 같다.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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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4수 심상정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12일 정의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심 후보의 대선 도전은 이번이 네 번째다. 그는 당원투표 100%로 진행된 결선투표에서 6044표(51.12%)를 얻어 당선됐다. 그러나 경쟁했던 이정미 전 대표(5780표·48.88%)와의 표 차는 264표에 불과했다. 정의당의 간판이나 다름없던 심 후보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지만 1차 경선에서 과반 득표를 못해 결선투표로 갔다. 막판까지 승부도 아슬아슬했다. 당내에선 “또 심상정이냐”라는 피로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노동운동가 시절 그는 ‘철의 여인’으로 불렸다.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이던 2003년 국내 최초로 산별 중앙교섭을 통해 ‘임금 삭감 없는 주5일 근무제’ 합의를 끌어낸 덕분이었다. 젊은 세대와 격의 없이 소통하면서 ‘심블리’(심상정+러블리)라는 애칭도 생겼다. 국회에서 차분하게 팩트와 논리로 질의하는 모습은 과격해 보이는 진보정치인의 이미지를 바꿔 놓았다. 이런 자산이 심 후보가 진보정당 소속으로 유일한 4선의 대중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꽃길만 갈 수는 없었다. 2011년 진보세력이 뭉친 통합진보당을 출범시켰지만 당내 자주파(NL) 그룹과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창당한 지 1년도 안 돼 갈라서야 했다. 심 후보는 진보 진영이 민감해하는 ‘종북(從北)주의’ 청산을 외치고, 천안함 위령탑을 참배하는 등 변신을 시도했지만 진보 진영 내 갈등은 장기화됐다.
▷2019년 조국 사태는 정의당의 정체성에 일격을 가했다. 당시 당 대표였던 심 후보는 거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조국 법무부 장관 인준에 손을 들어줬다. 더불어민주당과 손잡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이듬해 총선에서 20석 이상의 교섭단체를 만들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을 한 결과였다. 하지만 역풍은 거셌다. “진보 정당이 기성 정당의 구태를 뺨칠 정도”라고 반발하는 진성 당원들의 탈당이 속출했다. 그나마 기대했던 선거제 개편도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무용지물이 됐다. 결국 정의당은 6석의 미니 정당으로 주저앉았다. 진보의 위기라는 경고등이 켜졌다.
▷심 후보는 민주당을 ‘가짜 진보’, 국민의힘을 ‘극우 포퓰리즘’이라고 싸잡아 비판했다.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 여부에 대해선 “그런 질문 자체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거대 양당에 염증을 느끼는 제3지대 유권자들을 공략하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보수-진보 진영 대결이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상황에서 제3지대의 문이 쉽게 열릴 수 있을까. 앞으로 심 후보가 내놓을 차별화된 비전과 정책이 진보의 부활을 알리는 의미 있는 득표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동아일보(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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