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품격
[김순덕 칼럼]
분노에 권력을 탐했던 진나라 때 이사, 자신을 가리지 못해 끝이 좋지 못했다
“나는 겁이 없다” 與대선후보 이재명.. 겁 없이 자유민주주의 흔들까 두렵다

사진공동취재단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은 글도 잘 쓴다. 2017년 대선 전에 내놓은 자서전 ‘이재명은 합니다’의 첫 문장이 ‘나는 겁이 없다’다.
첫 문장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어본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마술적 시작인지. ‘나는 겁이 없다. 살아가면서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 정치에 입문한 뒤에도 그 이전에도 나는 옳지 않은 일에 맞닥뜨릴 때마다 저항했다…’는 다음 문단까지 순식간에 읽히지 않는가.
자서전에서 보여준 이재명의 삶은 감동적이다. 가난 때문에 어린 공장노동자로 일하다 장애를 입고, 검정고시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성공 스토리는 고 노무현 대통령보다도 극적이다. 팔자를 바꿀 수 있었던 그때, 판검사 같은 출세의 길 대신 자신이 어렵게 자란 성남에서 노동변호사의 길을 택한 젊은 날의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안타깝게도 이재명의 개인사 아닌 사회에 대한 인식은 거칠고 불길하다. ‘친일세력을 등에 업고 편법으로 정권을 창출한 이승만 정권’ 같은 대목은 그가 법대 시절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영향일 것이다. 7월 대통령 출마 선언 후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체제를 유지했다”는 그의 발언은 지금껏 역사 공부 한번 제대로 않고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걸 시사한다.
‘(기득권 정치가) 대한민국 10% 부유층에 감세를 해주는 만큼 90%의 서민층 국민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대목도 국가경영 자질을 의심케 한다.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는 노동자가 10명 중 4명이나 되는 사실을 모른다면 무능하고, 알고도 선동할 작정이라면 조악하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면 제일 먼저 뭘 하겠느냐는 김어준의 질문에 “작살부터 내야죠” 했을 것이다.
2017년 대선 도전 이유를 이재명은 분노 때문이라고 했다. 분노의 근원은 정경유착이라며 ‘민주주의를 망치는 부정부패의 꼬리를 잡아 대한민국에서 몸통이라 으스대는 자들을 뒤흔들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이 생각 역시 진화하지 않은 것 같다. 이재명 자신이 설계했다고 밝힌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을 ‘부패기득권과의 최후대첩’이라고 거꾸로, 재빨리 규정한 걸 보면 그의 의식구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격과 삶’을 쓴 김창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재명의 성격을 ‘외향적 감각형’으로 봤다. 성과가 뛰어나고 임기응변에 능하지만 직관과 감정 부분이 열등해 옳고 그름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거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지도자로 적합하지 않다고도 했다.
권력에 대한 이재명의 의지와 분노, 그리고 여당 대선 후보 등극은 전국(戰國)시대 말 이사(李斯)를 연상케 한다. 비천하고 곤궁했던 그는 순자(荀子)에게 제왕학을 배우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대는 총명함이 남다르고 무엇이든 빨리 터득하니 언젠가 꼭 크게 출세할 것”이라는 스승의 칭찬에 이사는 우쭐해 “사람이 가장 비통한 건 빈궁한 것이고 이 모든 것은 권력이 없는 탓이며 권력은 모든 이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으로 치면 사이다 발언이다.
이사가 방에서 나가자 순자가 말했다고 한다. “이사는 내 제자 중 가장 뛰어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 대한 분노가 너무 깊고 권력을 지나치게 좋아하며 자신을 가리는 데 미숙하니 결국 끝이 좋지 않겠구나.”
진시황을 도와 중국을 통일하고 권세를 누린 이사가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은 역사는 세세히 언급하고 싶지 않다. 겁 없는 이재명은 문재인 대통령의 철저하고도 신속한 수사 지시에도 눈도 깜빡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성남시장으로 있던 2015년 5월 민간업체 초과이익환수 조항이 삭제됐고 자신에게 무죄를 준 대법관도 업체와 관련돼 있다는 게 사태의 핵심이다. 그런데도 이재명이 성과만 강조하는 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옳고 그름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거나, 뻔뻔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복잡한 개인사로 인해 언행이 거칠 수도 있다. 그러나 윤리적 가치를 가볍게 아는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도 흔들어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마이클 블레이크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지적했다. 존경할 만한 대통령까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멸스러운 대통령은 더 이상 없기 바란다. 대통령의 품격은 우리나라의 품격이어서다.
-김순덕 대기자, 동아일보(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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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보다 위험한 ‘기본소득’ 공약
게이트에 흔들리는 치적 마케팅
경제 재앙 부를 공약도 경계해야
“하나의 주장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면 교묘하게 다른 주장으로 넘어갔다.” “그는 언제든 자기 자신도 속일 수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비전을 믿도록 많은 사람을 기만할 수 있었다.” 최근 10주기를 맞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옛 동료들은 독선적 성격의 잡스와 대화할 때 현실이 묘하게 뒤틀리는 경험을 했다고 회고한다. 그들은 공상과학 영화 ‘스타트렉’에서 외계인이 정신력으로 만든 가상공간에 빗대 이 현상을 ‘현실 왜곡장’이라 불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한국 정치판에서 드물게 자신의 ‘치적’과 고유 브랜드 정책을 세일즈하는 정치인이다. 국민 세금에서 지원금을 나눠줘도 꼭 ‘경기도 기본소득’으로 이름 붙이고, 국민은 별 관심도 없는 계곡 정비사업 ‘원조’ 자리를 놓고 같은 당 소속 하위 지자체장과 신경전을 벌이는 걸 보면 그가 얼마나 성과, 정책 마케팅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 그이기에 최대 치적으로 자랑하던 대장동 개발에서 터진 비리 의혹은 참기 힘든 일일 것이다. 곧바로 “단군 이래 최대규모 공익환수 사업” “사과할 일이 아니라 칭찬받을 일”이라고 맞받아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본인 입에서 나온 “(대장동 사업은) 내가 설계한 것”이란 말 때문에 공격받자 “노벨이 화약 발명 설계를 했다고 해서 알카에다의 9·11테러를 설계한 것이 될 수는 없다”는 이상야릇한 논리도 폈다. 납치한 항공기로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들이받아 무너뜨린 9·11테러 비유를 굳이 들어야 한다면 노벨이 아니라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가 맞겠지만 열혈 지지자들로 둘러싸인 이재명식 현실왜곡장 안에서 그런 건 별문제가 안 된다. 그렇다 해도 10여 년간 손발을 맞춘 ‘측근 아닌 측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가 700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는 등 상황은 녹록지 않다.
다만 지난 주말 집권여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 후보와 관련한 국민의 관심이 온통 대장동에만 쏠리는 건 문제가 있다. 그는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다른 나라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가 하지 못할 이유는 될 수 없다”며 ‘기본소득’ 공약 추진 의지를 확인했다. 기본소득은 천문학적 비용이 들지만 효과가 불투명해 세계 어느 나라도 도입하지 않은 정책이다. 1000조 원 넘는 나랏빚을 물려받을 차기 정부가 한국을 초유의 기본소득 실험장으로 만드는 건 국가적 경제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상위 10%에게 국토보유세를 걷어 재원을 만들면 된다면서 조세저항은 염두에도 없다. 과일가게에서 주인이 권한 수박을 사왔는데 속이 곯았다면 같이 사온 복숭아에는 문제가 없는지 살피는 게 정상이다. 대장동 개발이 불량품으로 판명 난다면 기본소득 등 이재명 브랜드 공약들에 문제가 없는지 의심해봐야 한다.
서민을 살린다는 ‘소득주도 성장’이 저소득층 일자리를 없애고, “부동산만은 자신 있다”는 정부에서 집값이 갑절로 뛰고, 세계가 칭찬한다는 ‘K방역’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쓰러지는 뒤틀린 현실을 우리는 4년 반 가까이 경험했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란 한 명의 공직자가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드리겠다”고 힘줘 강조하지 않아도 한 명의 대통령이 얼마든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국민은 너무 잘 안다.
수천억 원이 아이들 용돈처럼 오간 대형 비리 사건을 눈앞에 두고도 ‘성공한 민관개발’이라고 계속 우기는 정치인을 국민은 신뢰하기 어렵다. 대장동 사건은 이 후보의 성과와 공약들의 겉포장을 뜯어내고 냉정하게 내용물을 살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동아일보(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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