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축적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21일 오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붉은 화염을 내뿜으며 날아오르고 있다. 로켓 엔진부터 동체, 발사대까지 한국 독자 기술로 개발된 누리호는 이날 발사 16분 7초 만에 지구 700㎞ 상공에 도달했다. 하지만 로켓의 마지막 3단 엔진 연소가 계획보다 빨리 끝나는 바람에 누리호에 탑재됐던 위성 모사체를 목표 궤도에 올리는 데는 실패했다. /사진공동취재단
1986년 1월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고는 우주 도전사에서 참사 중 하나였다. 승무원 7명을 태운 챌린저호는 발사 73초 만에 가스 누출로 공중 폭발했다. 이 장면을 세계인이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원인은 미터법을 쓰지 않은 데 있었다. 이음매를 미터보다 더 큰 단위인 인치로 설계하면서 로켓의 고무링에 틈새가 생긴 것이다.
▶‘항공우주 개발의 역사=실패의 역사’다. 브라질은 2003년 로켓이 폭발하면서 발사대가 붕괴해 과학자 등 23명을 잃었다. 중국은 1996년 쓰촨성 우주센터에서 위성 탑재 로켓을 쏘아 올렸다. 그러나 발사 몇 초 만에 로켓이 심하게 기울더니 하필이면 주변 민가로 추락했다. 중국의 언론 통제로 정확한 피해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수백 명의 사상자가 생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류 최초 달 착륙을 앞두고 이뤄진 최종 점검에서 우주인 3명 전원이 사망하는 비극도 있었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는 21일 발사 후 2단과 3단 분리와 엔진 점화, 페어링 분리, 위성 분리까지 성공했으나 3단 엔진에 문제가 생기면서 위성 모사체를 목표 궤도에 진입시키지 못했다. 이번에 얻은 경험과 수치는 향후 발사 성공률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로켓 엔진은 경험을 축적하는 것 말고는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 방법이 없다고 한다. 미국의 첫 우주 발사체 뱅가드도 1957년 12월 발사 후 1.5m도 솟구치지 못하고 2초 만에 폭발했다.

▶서울대 교수들이 쓴 책 ‘축적의 시간’은 “창조적 역량은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를 전제로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축적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고 했다. 모든 기술은 실패의 축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수십만 개 부품이 극한 환경에서 정확하게 작동해야 하는 우주 발사체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실패가 축적돼 성공으로 가려면 과학자들이 ‘과학’만을 생각해야 한다. 누리호 발사 중계를 지켜보던 국민은 발사 14분 만에 뜬 ‘3단 엔진 정지 확인’이란 자막이 무엇인지 의아해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주는데 항공우주연구원은 아무런 발표도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언론은 ‘발사 성공’이란 오보를 내보내야 했다. 항우연은 궤도 진입 각도 등 구체적인 수치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한 시간이나 지나서 대통령이 나와 ‘미완의 과제’라면서 위성 궤도 진입 실패를 알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통령이 아니라 과학자가 국민에게 발표하고 설명해야 할 일 아닌가. 내년 5월 누리호 2차 발사는 성공하기를 바란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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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쇼가 먼저인가
[기자의 시각]
21일 오후 5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누리호가 우주로 발사된 이후 연구진들과 취재진들은 분석 데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발사는 예정대로 진행됐지만 로켓에 실린 위성 모사체가 목표로 한 700㎞ 궤도에 제대로 올랐는지 확인하기 위한 데이터였다. 예정된 5시 50분이 지나고도 결과가 나오지 않자 프레스센터 분위기는 술렁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2)'의 발사 참관을 마치고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동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다. 2021.10.21/연합뉴스
그러던 중 문재인 대통령이 6시 10분쯤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동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발사통제동은 프레스센터에서 2㎞ 정도 떨어져 있어 기자들도 TV를 통해 생중계를 지켜봤다. 누리호를 개발한 과학자들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먼저 발표에 나서자 프레스센터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TV 속 문재인 대통령은 ‘누리호 발사 쇼’의 주인공이었다. 문 대통령은 박수를 받으며 연단 위에 올랐다. 그 뒤로는 누리호 개발의 주역인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개발본부장을 비롯해 11년 7개월 동안 누리호를 개발해온 과학자들이 병풍처럼 서 있었다. 그렇게 연설 10여 분 동안 과학자들은 꼼짝도 않고 대통령 뒤를 지켰다. 한 참석자는 “연설이 끝나고도 30~40분은 더 서 있었던 것 같다”며 “시험 성패를 떠나서 과학자들이 피땀 흘려 이룬 성과를 보여주는 자리가 쇼가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항우연의 한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대통령 뒤에 서 있던 건 애초 계획에 없었지만 갑자기 요청을 받아 부랴부랴 결정된 것이었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이번 누리호 행사를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한 박사는 “TV로 발사 과정을 지켜봤던 국민들에게 그 결과를 알려주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아니냐”며 “정치 쇼를 꼭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대통령 연설로부터 1시간 뒤인 7시에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이 열렸다. 모두가 궁금해하던 위성 모사체가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이유가 한 시간이나 뒤에서야 발표된 것이다. 대통령이 행사장을 떠나고 나서야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누리호 개발자들이 프레스센터에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도 과학자들은 뒷전이었다. 약 10분간 임 장관이 누리호의 비행에 대해 설명했다. 임 장관은 기술적인 질문은 받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한 뒤 자리를 금방 떠났다. 항우연 내부에서도 “자료만 그냥 읽는 장관이 왜 브리핑하느냐”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질문 시간이 돌아오자 그제야 과학자들이 마이크 앞에 설 수 있었다. 고정환 본부장은 마지막 한마디를 자처하며 “너무 아쉬운 결과다. 다음에는 반드시 완벽한 결과를 보여 드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완벽한 성공을 하지 못한 과학자들은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제대로 들지도 못했다. 박수를 받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대통령과 장관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유지한 기자, 조선일보(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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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감 걷어 내는 누리호의 한 걸음
게임의 룰이 예측 불허인 현재의 삶
성공률 낮아도 도전하는 데 답이 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극적으로 만든 핵심적인 장치가 있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어떤 게임을 하게 될지 참가자들이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목숨을 걸어야 할 게임의 룰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게임 장소로 향하는 사람들의 불안감이란….
세계 1억4000만 명이 이 드라마에 감정이입한 이유 중 하나는 현재의 보편적인 삶이 어느 정도 그와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몇 년 사이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게임의 룰이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2년 전엔 상상도 못 했을 마스크 낀 삶을 살고 있고, 그 사이 성업이던 동네 노래방은 죄다 문을 닫았다. 자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벼락부자와 벼락거지가 순식간에 엇갈렸다.
기업과 국가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기후변화로 공장이 멈춰서고 삶이 위협받았다. 수백 년 성장 공식의 기본이었던 화석연료 의존을 끊어야 한다는 과제가 눈앞에 다가오자 자원 가격이 요동쳤다. 디지털 자산의 가치 상승 등 기존 질서, 즉 게임의 룰이 흔들리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모든 것에 새로운 가격표가 붙고, 과거 경험을 벗어나는 빠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머지않은 훗날 개인과 기업은 물론 많은 국가의 운명이 엇갈린 시기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화를 예측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관건은 적응할 힘을 가지고 있느냐가 될 것이다. 기축통화국이 아니라면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거나 각 분야 세계 1등 기업을 가지고 있어야 환경 변화를 직접 주도하거나 변화에 적응력을 높일 수 있다.
변화 때문에 커진 불안감을 해소하는 궁극적인 길은 모두에게 목돈을 나눠 준다든지, 소득을 보장한다든지 하는 ‘100%의 안전’을 언급하는 약속에 달려 있지 않다. 오히려 낮은 성공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취하는 데 달려 있다.
27%의 성공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 21일 누리호의 첫 우주 발사가 그랬다. 누리호 겉 표면의 약 80%는 최대 3mm 두께에 불과한 알루미늄 합금판으로 이뤄져 있다. 추진체 탱크의 겉면이다. 두꺼운 종이 한 장 수준의 합금판이 안으로는 대기압 4∼6배의 압력을 견디고 밖으로는 지상 700km까지 비행 중 가해지는 압력과 충격을 견뎌야 한다. 누리호 38만 개의 부품 중 하나라도 이 같은 극한의 조건을 견뎌내지 못하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우주 발사는 실패로 돌아간다.
문제는 이런 구조물과 부품을 어떻게 만드는지 세상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용접하는 방법부터 부품을 제어하는 기술까지 직접 찾아내야 한다. 11년 7개월 동안 한 걸음 한 걸음 우주를 상상하며 직접 수많은 시험을 거듭해 걸어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그 길의 끝, 첫 발사의 성공률은 27%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시도한 국가들의 통계가 그렇다. 미국, 중국, 일본 모두 첫 발사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의 첫 우주발사체 ‘람다 4S’는 4차례 실패 후 5번째 가서야 성공했다.
누리호는 21일 첫 시도에서 73%의 실패 가능성을 완전히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게임의 룰 체인저가 되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는 길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데는 확실한 성공을 거뒀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에의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이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주도하고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100% 보장된 길이라는 얘기다.
-김용석 산업1부장, 동아일보(2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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