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

세상을 떠난 역대 대통령은 7명인데 장례 형식은 네 가지였다. 이승만 윤보선 대통령은 가족장을 지냈고 최규하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장,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이 국장, 김영삼 대통령은 국가장을 치렀다. 26일 서거한 노태우 대통령 장례도 어제 국무회의에서 국가장으로 의결했다.
▷유족이 가족장을 원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현직 대통령은 국장, 전직은 국민장이 관례였다. 국장은 9일장에 영결식이 공휴일로 지정되고 전액 국고로 지원한다. 반면 국민장은 7일장이고 영결식은 공휴일이 아니며 비용도 일부만 지원해 국장보다는 예우의 수준이 낮다.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은 관례에 따라 국민장으로 치렀는데, 3개월 후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는 같은 전직임에도 고인의 공로에 비추어 최고 예우가 필요하다는 유족의 요구를 수용해 전직 대통령으로는 유일하게 국장을 지냈다.
▷이후 국장과 국민장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2014년 법을 바꿔 국장과 국민장을 ‘국가장’으로 통일했다. 국가장은 최대 5일장이며 공휴일 지정은 없고 조문객의 식사비 노제 삼우제 비용 등을 제외한 전액을 국고에서 지원한다. 2015년 서거한 김영삼 대통령 장례가 국가장으로 엄수된 첫 사례다. 의회주의자였던 고인은 국회의사당에서 영결식을 거행하고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장례비용은 15억8864만2240원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내란죄로 실형을 선고받아 전직 대통령의 예우가 박탈된 상태이고 국립묘지 안장도 불가능하지만 국가장 결격 사유는 없다. 정부는 5·18 희생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검소한 장례식을 당부하고 떠난 고인을 법이 허용하는 최대치인 5일간의 국가장으로 예우하기로 정했다. 여당 내에선 ‘전두환 국가장 배제법’을 발의하면서도 고인에 대해서는 ‘큰 과오와 작은 공’을 함께 인정하는 분위기다. 유족은 장지로 고인이 대통령 재임 시 조성한 통일동산이 있는 경기 파주를 원하고 있다.
▷미국에선 전직 대통령의 장례식을 ‘고인과 국가의 마지막 대화’라고 한다. 역대 대통령들이 드물게 한자리에 모여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 전현직 대통령들은 다양한 이유로 모이기 어렵고, 서로 마주쳐도 서먹한 인사를 주고받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재임 시절 김영삼 대통령의 영결식에 불참해 ‘대를 이은 불화 탓’이란 뒷말을 낳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노태우 대통령을 5일장으로 예우하면서도 조문 가지는 않았다. 미국처럼 전직 대통령의 장례식이 고인과 국가의 마지막 대화가 되기에는 아직 아물지 않은 현대사의 상처들이 많은 것 같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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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태우’
몇 년 전 일본 기자가 한국 방송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문재인씨”라고 했다가 방송국이 수난을 당했다. 대통령 지지자들이 떼로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대통령 별명이라도 말했으면 프로그램이 폐지됐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방송에서 대통령 별명을 말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이 공약으로 “대통령을 개그 소재로 삼아도 좋다”고 한 이후다.

▶‘물태우’는 노 대통령의 약한 리더십을 풍자했다. 허(虛)태우, 속태우, 애태우 등 아류작까지 나왔다. 대통령이 강하게 나서면 “불태우”라고 했다. 나중에 비자금 문제가 생기자 “돈태우”라고 했다. 당시 개그맨 김형곤은 물태우 리더십을 이렇게 놀렸다. 대통령이 회의에서 방귀를 뀌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은 “임자도 뀌어”라며 밑에 권하고, 전두환 대통령은 부하들이 먼저 “내가 뀌었다”며 나선다. 노 대통령은 “네가 뀌었제?” 하고 밑에 덮어씌우려는데 부하들이 “누가 방귀를 대신 뀌어줍니까?”라며 대든다.
▶노 대통령은 늘 평범했다고 한다. 권력 2인자로 부상했을 때 중학교 동창생들이 모여 그의 특징을 기억하려 했지만 ‘노래와 휘파람을 기차게 불었다’는 것 외엔 없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참을성만큼은 유명했던 모양이다. 육사 시절엔 물에 들어가 오래 참는 시합에서 늘 일등을 했다고 한다. ‘물태우’의 유래를 여기서 찾는 이들도 있다. 그는 생전 “자꾸 참다 보니 참는 게 제2의 천성이 됐다”고 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노 대통령이 위중하다”는 얘기가 계속 나왔다. 그의 부음(訃音)을 써놓은 게 10년이 훨씬 넘었다는 신문사도 여럿 있다. 말년의 지병은 소뇌 위축증이었다고 한다. 의식은 있지만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딸 노소영씨는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몸도 움직이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어떻게 십여 년을 지낼 수 있을까? 나는 단 한 달도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인내 천성으로 10년을 보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생전에 ‘물태우’를 “매우 좋은 별명”이라고 했다. “물 같은 사람이 바람직한 지도자”라고도 했다. 2007년엔 “용수철처럼 일어난 욕구도 가만히 두면 강도가 약해져 자율이라는 규범 속에 가라앉을 것이라고 봤다”고 했다. 그게 물과 같은 리더십일 것이다. 그는 유언으로 ‘나를 용서해달라’고 했다. 무겁게 다가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 대통령 조문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옹졸한 처사에 ‘물태우’는 뭐라고 했을까. 조용히 인내하고 돌아서 걸어가지 않았을까. 그의 영면을 빈다.
-선우정 논설위원, 조선일보(2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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