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사막서 본 盧의 공과
식민 통치와 독립, 남북 분단, 동족상잔, 군부 쿠데타와 독재, 이념 갈등과 민주화 항쟁. 한국 현대사 얘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9800㎞ 떨어진 아프리카 대륙에서 영토 크기로 셋째, 인구로 열째 가는 나라 수단이다. 인종·언어·종교 무엇 하나 공통분모가 없는데 근현대사 궤적 곳곳이 한국이 걸어온 길과 묘하게 겹친다.

26일 수단 수도 하르툼에서 열린 시위에서 한 수단 시위자가 수단 국기를 들고 있다.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과도정부를 엎고 권력을 찬탈했다./ EPA 연합뉴스
영국과 이집트의 지배를 받다가 1956년 독립한 이 나라는 민간과 군부, 사회주의 세력 등 정파 간 권력투쟁이 30여 년간 이어지며 혼란과 빈곤이 지속됐다. 1989년 쿠데타로 집권 뒤 30년간 통치한 오마르 알 바시르는 임기 중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체포영장을 내줄 만큼 인권유린으로 악명 높았다. 독립 이후 이슬람·아랍세가 강한 북부와 기독교·토착 신앙을 믿는 흑인이 주축인 남부 간 내전으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결국 2011년 남·북으로 쪼개졌다. 이때 풍부한 유전 지대가 남수단으로 넘어갔고 (북)수단 국토 대부분은 사하라 사막과 삭막한 초원만 남았다.
암울하던 이 나라가 3년 전 변화의 전기를 맞았다. 경제난과 독재를 참지 못하고 봉기한 반정부 시위에 이은 쿠데타로 이듬해 봄 알 바시르 30년 폭정이 종식됐다. 야권과 군부는 ‘질서 있는 민주화’에 뜻을 모으고 과도정부를 출범시켰다. 군부와 야권, 시민사회 진영에서 공동 참여하는 통치 기구를 꾸렸다. 2023년 항구적 민주 정부 출범 일정을 잡고 차근차근 절차를 밟았다.
세계가 보는 눈이 달라졌다. 미국은 과도정부가 과거 자국 극단주의 테러로 희생된 미국인 유족에게 배상금을 지급하자 테러 지원국 족쇄를 풀고 국제사회 복귀를 도왔다. 각국의 인도주의·개발 원조가 잇따랐다. 민주화 열망과 경제 발전 희망,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불안함의 혼재는 한국의 1987년과 흡사했다. 그러나 수단은 다시 위기를 맞았다. 군부가 지난 25일 정변을 일으켜 과도정부를 엎고 권력을 찬탈했다.

부산시 공무원들이 28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1층 로비에 마련된 고 노태우 전 대통령 분향소를 조문하고 있다. /뉴시스
퇴행 기로에 놓인 수단의 모습은 민주화로 정상 국가가 되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준다. 수단이 아니더라도 독립 후 60년 안팎 세월 동안 정치 안정이나 경제 발전 그 어느 것도 이루지 못한 채 허우적대고 비틀거리는 나라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대한민국은 식민 통치를 벗어난 동시대 신생국 중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모두 이뤄내며 문화 강국까지 된 희귀 사례다.
지금 위상을 다지는 데 1987년 민주화가 커다란 디딤돌이 됐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논란이 있지만 그 시대 주역 중 한 명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과(過)에 대한 반성 못지않게 공(功)에 대한 재평가가 나오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그의 장례가 우리가 이뤄낸 성취와 가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정지섭 기자, 조선일보(2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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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주한미군’
2001년 한국 씨티은행이 ‘씨티가란트 펀드’라는 상품을 내놨다. 투자금 대부분을 채권에 투자하고 채권 이자에 해당하는 부분만 주식에 투자해 고수익을 노리는 상품이었다. 미국 씨티 본사가 원금 지급을 보장한다고 하자 순식간에 2000억원이 모였다. 씨티은행에선 2·3호 펀드를 내놓으려 했는데 금융 당국이 제동을 걸었다. “(손실 가능성 있는) 펀드를 예금으로 오인하게 만든다”는 이유였다. 알고 보니 국내 은행들이 방해 공작을 펼친 결과였다. 몇 달 뒤 국내 은행들이 씨티 상품을 그대로 베껴 ‘원금보장형 펀드’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으로 판매했다.

2004년 11월 2일 한미은행과 씨티은행 서울지점이 통합된 한국씨티은행의 당시 하영구 행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조선호텔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조선일보 DB
▶씨티은행이 한국에서 개인 상대 소매금융 영업을 시작한 것은 1986년부터다. 1989년 프라이빗뱅킹(PB), 1990년 ATM(현금입출금기), 1993년 24시간 폰뱅킹 등 혁신적인 서비스를 선보이며 시장을 선도했다. 규제 탓에 지점을 늘리지 못해 답답해 하던 씨티은행은 2004년 한미은행을 인수해 한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후 은행 통폐합으로 덩치를 키운 토종은행들과의 경쟁은 만만치 않았다. 은행 달력 배포조차 금기시하는 미국 본사의 영업 방침에 발목을 잡힌 사이 토종은행들이 한국적 영업으로 고객을 잠식해 갔다. 토종은행이 연 3조원대 수익을 내는 반면 씨티은행은 연 2000억원도 못 버는 소형 은행으로 쪼그라들었다. 수익 악화를 견디다 못한 씨티는 2017년 은행 점포 80%를 없애 충격을 주었다.

▶미국 본사 씨티그룹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치욕을 겪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관련 부실 채권 탓에 미국 정부로부터 250억달러 구제금융을 받고 다우존스 지수에서도 퇴출됐다. 경쟁사인 JP모건은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미국 1위 자리를 빼앗았다. 지난 2월 새로 취임한 씨티그룹 회장은 글로벌 전략을 수정할 때라며 한국을 포함해 아·태 지역 13국의 소매 금융 철수를 결정했다. 씨티그룹은 한국 직원 1인당 최대 7억원의 특별퇴직금 등 철수 비용만 1조원 넘게 써야 할 상황이다.
▶씨티은행은 한국 경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구원투수 역할을 많이 했다. 1970년대 석유 파동 때 2억달러 차관을 제공해 급한 불을 끄게 해주었고, 외환 위기 땐 240억달러 외채 상환 연장에 기여해 한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2008년 글로벌 위기 땐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을 도왔다. 그래서 한국에서 ‘금융의 주한미군’이란 평판을 갖게 됐다. 비록 소매금융은 철수하더라도 ‘한국 금융 지킴이’ 평판은 이어지면 좋겠다.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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