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아는 체하는 역사]
[정치인 이재명을 만나면서 세 번 당혹했던 이유]
[미 의원에 116년 전 일 따지는게 이재명식 외교인가]
이재명의 아는 체하는 역사
[송평인 칼럼]
‘가쓰라-태프트 협약’은 본래 없어… 비망록 수준의 문서가 있을 뿐
아는 체하며 남 탓이나 해서는 역사의 돌파구 마련하지 못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얼마 전 방한한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 앞에서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거론했다. 그러나 ‘가쓰라-태프트 협약’은 없다. 비망록 수준의 문서가 있을 뿐이다.
역사는 복잡다단해서 검정고시나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공부하는 국사 정도로는 알아지지 않는다. 1905년 일본 가쓰라 다로 총리와 미국 윌리엄 태프트 육군장관이 서명한 문서는 협약(pact)이나 협정(agreement)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대화를 주고받았음을 ‘서로 확인한 비망록(agreed memorandum)’에 불과하다.
이 비망록은 서명 당시 공개되지 않았다. 1924년에 가서야 타일러 데닛이라는 학자가 우연히 발견해 ‘비밀협약(secret pact)’ ‘행정협정(executive agreement)’이라고 과장했다. 그러나 태프트 장관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전문(電文)의 제목 자체가 비망록일 뿐만 아니라 1959년 레이먼드 에스더스라는 학자가 데닛이 밀약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뺀 전문 내용들을 복원해 비망록임을 밝혀냈다.
이 비망록이 발견 당시 눈길을 끈 것은 일본은 필리핀에 관심이 없고 미국은 일본의 조선 보호령화에 이의가 없다는 대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자들은 그 의미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은 필리핀을 이미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었던 반면 일본은 러일전쟁 후 곧 다시 전쟁을 일으킬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필리핀 불개입 보장과 미국의 조선 보호령화 인정 사이에 ‘대가(quod pro quo)’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 후보는 오소프 상원의원에게 일본에 의한 조선의 병합이 미국 탓이라고 말하기 위해 ‘가쓰라-태프트’ 얘기를 꺼냈다. 물론 학자들이 ‘가쓰라-태프트 비망록’의 의미를 축소했다고 해서 당시 미국이 일본 편을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다만 ‘가쓰라-태프트 비망록’은 현상(現狀)의 변경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없었어도 일본에 의한 조선 보호령화는 진행됐을 것이라고 봤기 때문에 그 의미를 축소한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가쓰라-태프트 비망록’ 2개월 뒤 러시아와 일본의 포츠머스 조약을 중재한다. 조선에서 일본의 특수 이익을 인정하는 것이 조약의 주된 내용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포츠머스 조약을 중재한 공로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조선으로서는 억울한 일이었지만 일본 외의 특정한 나라를 탓하기는 어렵다. 당시는 약소국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방지하는 걸 세계 평화의 선결 과제로 보던 시대였다.
미국이 자유세계의 가치를 위해 자국의 희생을 감수하게 된 것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참전부터다. 미국은 1950년 한국에서도 3만7000명의 자국민을 희생하며 싸웠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미국은 고립주의를 바탕으로 철저히 자국 위주의 현실적인 정책을 폈다. 미국만이 아니라 모든 열강이 자국의 손해를 감수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들어 있지도 않던 시대다. 가까운 시기에 미국이 한국을 위해 싸운 사실은 다 건너뛰고 돌연 다른 시대로 돌아가 자신도 국민 대부분도 잘 모르는 역사 문서를 들먹이며 미국 탓을 하는 대통령 후보가 우리가 보기에도 황당한데 미국 상원의원의 눈에는 얼마나 황당하게 비쳤을까.
오늘날 ‘가쓰라-태프트 비망록’과 포츠머스 조약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가쓰라-태프트 비망록’과 포츠머스 조약은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세계열강 중 하나로 급부상한 데 대한 미국의 대응이다. 지금은 중국이 미국에 맞먹는 강대국으로 등장해 당시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미중(美中) 간 투키디데스 함정을 경고한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가 2017년 펴낸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에 따르면 중국의 홍콩 편입과 대만 점령 다음은 한국의 예속화다. 지금 대만 점령 직전까지 와 있다. 반면 미국은 점점 더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서고 있다. 역사 앞에 겸손한 자세로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고 아는 체나 하고 있다가는 주변 강국에 예속된 구한말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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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이재명을 만나면서 세 번 당혹했던 이유
[태평로]
거침없고 현란한 말로 떴지만 쉽게 말 바꾸고 오류 인정 안 해
비판 언론엔 “폐간하겠다” 공격… 대장동·가족 논란 불신 늪 빠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2021년 10월 18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2016년 성남시장이던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처음 만났다. 기초단체장이 대선에 출마한다는 게 무척 생경했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눈 후 생각이 달라졌다. 말은 재치 있고 시원시원했다.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를 넘나들면서도 막힘이 없었다. 자기주장을 펴는 논리력과 디테일 또한 놀라웠다. 그는 반드시 근거 수치를 댔다. 다 외우고 있는 것 같았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똑똑하고 유능해 보였고 수완도 있었다. “행사장에서 한번 봤는데 다음 날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말해달라’는 전화를 받고 놀랐다”고 전하는 각계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후보를 수차례 만나면서 의문이 싹텄다. 그는 “내가 기본적으로 보수인데 보수가 나를 몰라준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어떻게 보수냐”고 했더니 자신이 얼마나 시장경제를 신봉하고 동맹과 안보를 중시하는지 길게 설명했다. 그런데 실제 그의 공약은 시장 통제와 세금으로 퍼주는 포퓰리즘이 상당수였다. 대북 정책과 한미 동맹에 대한 인식도 보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정책과 공약을 설명하면서 내세운 수치도 때론 정확한지 의심스러웠다. 대화가 길어지면 이전 발언과 다르거나 모순되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가 대표 치적으로 자랑한 계곡 정비 사업은 남양주시와 ‘원조 논쟁’에 휩싸였다. 지역 화폐 정책엔 국책 기관이 의문을 제기했다. 기본소득 시리즈는 현실성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음식점 총량제나 주4일제 같은 설익은 공약도 간 보듯 쉽게 던졌다. 이 지사의 말과 공약을 어디까지 신뢰할지 당혹스러웠다.
대장동 의혹에서도 이 후보 말은 앞뒤가 잘 맞지 않았다. “단군 이래 최대 공익 환수 사업으로 내가 직접 설계했다”고 하더니 화천대유에 8000억원 넘는 특혜가 간 것은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추가 이익 환수 장치를 두자는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자신이 아닌 성남도시개발공사가 그랬다고 했다. 친형과의 불화에 대해 “형이 시정에 개입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형이 대장동 사업에 의문을 제기하며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을 비판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 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는 의혹도 부인했지만 사실이었다.
이 후보는 잘못이나 오류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다. 자기 생각에 반대하면 가차 없이 몰아쳤다. 그의 방침에 반기를 든 남양주시에 대해선 감사를 벌였다. 지역 화폐의 문제점을 제기한 국책연구원장을 향해 “청산해야 할 적폐”라며 문책을 요구했다. 비판 보도는 가짜 뉴스로 몰았고 무더기 고발·소송으로 대응했다. 이 후보에 대한 비판 기사를 냈다가 “언론사를 폐간시키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까 놀라웠다.
이 후보는 달변가다. 하지만 말이 너무 현란하면 외려 불신을 키운다. 당장은 넘어가도 근본적 의문을 해소하진 못한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신뢰를 주지 못하는 유능함은 오래갈 수 없다. 이 후보를 오래 지켜보면서 그의 현란한 말솜씨에 한번,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말에 또 한번, 가차 없는 말 공격에 다시 한번 놀랐다. 국민은 조금 어수룩해 보여도 솔직한 사람,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를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을 더 신뢰한다. 집권당 후보가 되고도 지지율 정체의 늪에 빠진 이유가 무엇인지 이 후보는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배성규 논설위원, 조선일보(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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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원에 116년 전 일 따지는게 이재명식 외교인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2일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을 만나 이야기 하던 중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건 미국의 승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TV조선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을 만나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이유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통해 승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쓰라-태프트 협약은 1905년 일본의 가쓰라 다로 총리와 미국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육군장관이 한반도와 필리핀에 대한 상호 지배권을 인정한 구두 합의다. 이 밀약이 하나의 디딤돌이 됐을 수는 있지만, 우리가 일제에 강점당한 근본적인 원인은 나라를 스스로 지킬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후보는 마치 비극의 책임이 미국에 있는 것처럼 미 상원의원에게 따진 것이다.
눈웃음을 짓던 오소프 의원의 얼굴은 이 발언 후 바로 굳어졌다고 한다. 그는 “전쟁기념관에서 한국군과 함께 싸운 유엔군과 미군을 기리기 위해 헌화했다”면서 “양국 동맹이 얼마나 중요하고 영속적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답했다. 그는 동맹 강화를 위해 상원대표로 방한했다. 70년 전 자유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함께 피를 흘렸던 동맹국과의 우의를 확인하려 했던 미 의원은 116년 전 협약을 들이대는 이 후보의 문제 제기에 당혹했을 것이다.
이 후보는 지난 7월 “(해방정국에서) 미군은 점령군이었다”면서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나라가 깨끗하게 출발하지 못했다”고 했다. 당시 미군이 일제에는 점령군이지만 한국인에겐 해방군이었다는 역사학계 평가와 거리가 먼 얘기였다. 이 후보는 최근에도 “해방 후 미국은 점령군이 맞고, 정부 수립 후엔 동맹”이라고 했다.
20세기 역사 속에서 세계 각국은 내 편, 네 편이 수시로 바뀌는 격변을 치렀다. 그렇게 얽히고설켰던 원한 관계에 대해 모두 셈을 따지려 들면 끊임없이 서로에게 으르렁댈 수밖에 없다. 쓰라린 상처가 유난히 깊었던 동북아 한중일 세 국가에서 새로운 도약을 이뤄낸 지도자들은 과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며 주변 국가들과 발전적인 관계를 모색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 후보는 대선 출정식에서 “대한민국을 질적으로 다른 도약과 발전의 시대로 이끌겠다”고 했다. 그 다짐을 실천에 옮기고 싶다면 과거에 갇혀있는 자신의 편협한 역사관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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