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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공습 80년] [진주만의 아베]

뚝섬 2021. 12. 6. 06:04

[진주만 공습 80년] 

[진주만의 아베]

 

 

 

진주만 공습 80년

 

7일은 일본의 미국 하와이 진주만 기습으로부터 80년째가 된다. 일본은 1941년 12월 7일 미군이 평화로운 일요일을 맞아 휴식을 취하는 사이 진주만을 공습했다. 미국 측 함정 16척과 항공기 177대가 파괴됐다. 당시 수장된 애리조나호를 그대로 놔둔 채 그 위에 설치한 기념관에서는 여전히 솟아오르는 기름을 볼 수 있다. 미국은 기습에서 살아남은 베테랑들을 모아 하와이에서 8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퍼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이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를 시작한 후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세계열강의 하나로 인정받기까지 36년이 걸렸다. 다시 러일전쟁 이후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을 공격하기까지 37년이 걸렸다. 그 사이 1910년 한국, 1931년 만주를 차례로 점령하고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과 인도차이나로 진출했다. 이에 미국이 일본을 향한 석유와 철강의 수출을 금지하자 일본은 1940년 독일 이탈리아와 3국 동맹을 체결한 뒤 진주만 기습을 강행했다.

▷진주만 기습은 이후 4년간 이어진 태평양전쟁의 시작이다. 미국은 항공모함 3척이 바다에 나가 있어 피해를 면한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고 일본은 미 해군 수리시설과 유류 저장소를 미처 파괴하지 않고 돌아간 것이 실수였다. 미국은 남은 전력을 바탕으로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항공모함 4척과 경항공모함 3척을 격침시켜 반격의 계기를 마련했다. 미국인은 진주만 기습을 미드웨이 해전과 연결시켜 시련을 극복한 승리의 역사로 기념한다.

 

▷태평양전쟁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됨으로써 끝난다. 일본의 항복은 한국의 광복으로 이어졌으니 진주만 기습은 우리에게도 의미가 없지 않다. 특히 진주만 기습 80년을 맞는 올해는 중국이 미국과 대결적 자세를 취하며 동아시아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대동아공영권이란 일본몽(日本夢)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동풍이 서풍을 제압한다’는 마오쩌둥 이래의 중국몽(中國夢)이 대신 들어섰다.

 

▷중국이 1978년 덩샤오핑에 의해 개혁개방 정책으로 돌아서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시진핑은 미군을 중국 연안의 열도에서 몰아내는 군사몽(軍事夢)을 실현할 해로 올해로부터 29년 뒤인 2050년을 잡고 있다. 중국 연안의 열도에는 일본까지 포함된다. 시진핑은 지난해 홍콩을 사실상 본토로 편입하고 올해는 대만해협에서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항공모함에 탑재한 항공기의 기습을 대신해 둥펑(東風) 미사일이 하늘을 나는 일만은 막아야 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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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의 아베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1939년을 보통 2차 대전의 출발선으로 잡는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는 유럽의 지역 전쟁이었을 뿐이다. 명실상부 '세계대전'이 된 것은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습한 1941년 12월이다. 일요일 아침 날벼락을 맞은 미국이 일본에 선전포고하자 일본의 동맹국 독일과 이탈리아가 미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피바람이 세계로 몰아쳤다.

▶두 차례 공습은 몇 분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함 8척을 포함해 선박 19척이 파괴됐고 폭격기 117대를 비롯해 항공기 328대가 박살 났다. 2403명이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절반이 어뢰를 맞고 침몰한 전함 애리조나호 승무원이다. 미국은 배를 인양하지 않았다. 많은 유해가 여전히 그 속에 있다. 그 위에 전몰자를 추도하는 기념관을 세웠다. 위에서 보면 기념관 건물과 물속 애리조나호의 그림자가 십자가처럼 다가온다. 

 

▶비열한 기습이었다. '더러운 일본 놈(dirty Jap)' 이미지가 못이 박혔다. 슬로건 '진주만을 기억하라(Remember Pearl Harbor)'는 유럽 전선에서도 사용됐다. 미국은 8개월 뒤 남태평양 작은 섬에서 반격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원자탄 두 발이 본토를 강타할 때까지 일본은 한 번도 미군을 당해낸 적이 없다. 빈 라덴이 복수당했듯 진주만 공습 사령관도 미군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일본인 235만명이 죽었다. 한국인 수만 명도 남의 전쟁에 끌려가 희생됐다.

▶아베 신조 총리가 진주만을 방문했다. 세계인을 향해 사죄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기념관에 헌화하고 "전쟁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하는 선에 그쳤다. "전후 평화 국가의 길을 걸어온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75년 전 공습 때 가미카제 방식의 공격을 시도했다가 숨진 일본 조종사 유적도 찾았다. 공습 직후 미군이 군인의 명예를 생각해 만든 석판이다. 아베 총리는 "용감한 자는 용감한 자를 존중한다"고 했다. 지금의 미·일 동맹을 "관용의 힘이 가져다준 화해의 힘"이라고 했다.

▶승자의 여유일까. 미 오바마 대통령은 2차대전 때 맹활약한 일본계 미국인 부대를 언급했다. 유럽 전선에서 9000명 넘는 사상자를 내면서 미군 역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442연대다. "미 역사상 가장 빛나는 부대 중 하나"라고 했다. 불행한 역사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모래알처럼 작은 역사의 공통분모를 찾아 최대한 부각했다. 한국인의 눈으론 용납하기 어려운 모순투성이 방문으로 보였다. 하지만 미·일 동맹은 확실히 다른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선우정 논설위원, 조선일보(16-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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