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바이든 첫 신규 대북제재, 美 대화 인내심 바닥나고 있다]
[“바보야, 문제는 북한이 아니라니까”]
체제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침통하고 유감스럽다. 국가 주권과 존엄을 수호하기 위해 오늘부로 니카라과와 외교 관계를 중지하며 협력 및 원조 계획을 전면 중단하고 대사관을 철수한다.” 지난 10일 중남미 니카라과가 중국과 수교하기 위해 대만과 단교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직후, 대만 정부는 이런 대응 성명을 냈다.

지난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공동 식수를 마친 후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한국공동사진기자단
니카라과의 ‘갈아타기’는 시간문제였다. 좌파 게릴라 지도자 출신으로 1985년 집권한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은 그해 55년간 수교해온 대만과 국교를 끊고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1990년 대선 승리로 새로 들어선 우파 정권이 대만과 복교했다. 이후 2007년 재집권한 오르테가 정권이 헌법을 고치고 야당과 언론을 억누르며 장기 독재 체제를 구축했지만, 정통성은 부정당했고 서방의 경제 제재 강도는 높아졌다. 중국이 이 ‘약한 고리’를 파고들었다.
이 외교적 사건은 체제 우월성과 국가의 안위는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만의 국제적 위상이 요즘처럼 높은 적이 없다. 유럽 주요국과 호주·일본 등이 고위 인사들을 대만으로 보내며 교류의 폭을 대폭 넓히거나 대만에 우호적 발언을 이어갔다. 프리덤하우스 자유지수에선 한국을 제치고 아시아 2위에 올랐고, 이코노미스트 민주주의지수(11위), 헤리티지재단 경제자유지수(6위) 등 대만 체제를 높이 평가한 수치들도 잇따라 발표됐다. 미국 주도 민주주의정상회의에도 초청돼 참석했다.
하지만 존재감이 커지는 만큼 존립 위협도 증가했다. 중국은 전례 없는 수준의 무력 시위를 벌였고, 중국이 무력으로 강제 복속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구체적인 시점까지 곁들여 나돌았다. 니카라과의 단교로 대만의 수교국은 14국으로 줄었다.
우리 상황은 어떤가. 분단 뒤 70년간 체제 경쟁을 하면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북한을 압도했지만, 비대칭 전력의 우위를 빼앗긴 상태다. 2006년 공개 핵실험을 시작한 북한은 국제사회 제재에 아랑곳 않고 핵 역량을 키워왔다. 우리는 김정은이 핵 단추를 누를지 노심초사하는 ‘핵 인질’ 신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미 동맹과 안보 정책은 갈수록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한 행사에서 “(남북) 체제 경쟁이나 국력의 비교는 이미 오래전에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미·중 갈등 격화로 냉전 시대 유산인 올림픽 보이콧까지 되살아났는데, 이 나라의 방향타를 잡은 사람들은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6·25 종전선언’에 몰두한다.
나라의 생존은 낭만적 민족주의로 보장되지 않는다. 국제 정세와 맞물리며 여전히 치열하게 계속되는 체제 경쟁에서 긴장의 끈을 놓아 버리면, 언제 국가 존립의 위기를 맞을지 모를 일이다. 집권층의 비현실적 안보 인식에 국민이 불안해하는 일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체제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지섭 기자, 조선일보(2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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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첫 신규 대북제재, 美 대화 인내심 바닥나고 있다
미국이 북한 중앙검찰소와 리영길 국방상(전 사회안전상)에 대한 제재 조치를 내렸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첫 대북제재다. 미 재무부는 10일 ‘국제 인권의 날’을 맞아 북한 중국 미얀마 등에서 벌어진 인권 탄압의 책임을 물어 개인 15명과 단체 10곳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미국은 북한 방문 도중 체포됐다가 송환 직후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의 책임자와 함께 북한과 거래한 중국·러시아 기관들도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번 제재가 북한만을 겨냥한 단독 조치는 아니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첫 신규 대북제재라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올해 초 출범 이래 기존 제재를 연장하는 조치 외에는 새로운 제재의 추가를 피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의 인권침해뿐 아니라 북한을 도운 제3자도 제재했다. 그간 제재와 압박보다 외교적 관여를 우선해온 바이든 대북정책 기조에도 변화를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은 5월 초 대북정책 검토를 마무리한 이래 줄곧 북한에 대화 테이블로의 복귀를 촉구해왔다. 최근엔 한국이 제안한 종전(終戰)선언에도 긍정적 자세를 보이며 문안을 맞춰 보는 등 북한을 향한 외교적 손짓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북한은 미국에 적대시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워싱턴 조야에서 대북 피로감을 넘어 인내심의 한계를 토로하는 목소리가 높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북한은 내주 김정일 사망 10주기와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계기로 김정은 집권 10년을 결산하는 사업총화에 분주하다. 미국의 인권 제재에 ‘조작’이니 ‘모략’이니 반발하면서 초라하기 짝이 없는 10년의 성적도 미국 탓으로 돌릴 게 뻔하다. 하지만 미국이 언제까지나 기다리진 않을 것이다. 김정은도 더 늦기 전에 결단해야 한다. 핵을 끌어안고 주민을 먹여 살릴 수는 없다. 번번이 기회를 놓쳤던 아버지의 실수를 대(代) 이어 되풀이해선 안 된다.
-동아일보(2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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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북한이 아니라니까”
[특파원칼럼]
전통 외교안보 넘어 ‘경제안보’로
美中경제, 기술 경쟁 흐름 읽어야
3년간의 특파원 근무 종료를 앞두고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한 관계자에게 ‘앞으로 어떤 기자가 워싱턴에 오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경제와 기술, 인공지능(AI) 같은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정치와 외교안보의 중심인 워싱턴에 경제 전문가를? 멈칫하는 기자에게 그는 “미국이 요즘 대외적으로 ‘경제안보’ 이슈들에 얼마나 진심인지 안 보이느냐”고 했다.
그러고 보면 지난달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방한 행보는 인상적이었다. 11년 만이라는 USTR 대표의 한국 방문은 일본, 인도를 아우르는 아시아 순방 차원에서 이뤄졌다. 그가 무려 50분간 한국의 한 라디오방송과 인터뷰를 가진 것은 워싱턴에서도 화제가 됐다. 이번 주에는 호세 페르난데스 국무부 경제차관이 한국을 찾는다.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 참석이라는 목적 자체는 새로울 게 없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새 변이인 오미크론 확산 우려가 커진 시점에 방한해 대면 회의를 강행한다는 데 눈길이 간다. 비슷한 시기 서울에서 열린 유엔 평화유지 장관회의에 참석하려던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방한을 취소하고 화상회의로 돌린 것과 대조적이다.
외교안보의 관점에서 글로벌 경제를 들여다보고 이를 정책적으로 엮으려는 미국의 시도는 반도체 공급망 문제가 불거지면서 급속히 속도를 내고 있다. 백악관이 직접 주재한 반도체 공급망 대책회의에는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장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동시에 참석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에 해외에서 공급망 회의를 주재하는 등 직접 나선다.
워싱턴발 경제 기사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21세기의 쌀’이라는 반도체의 공급 부족 문제를 놓고 기자는 삼성,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의 워싱턴 사무소를 취재했다. SK와 LG의 배터리 분쟁을 놓고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의 결정 체계부터 다시 들여다봤다. 물류대란과 인플레이션 악화 속에 ‘테이퍼링’을 비롯한 미국 금융당국의 움직임도 챙겨야 했다. ‘대포동 미사일’ 같은 북한의 무기 이름이 훨씬 익숙한 기자에게 이런 미션들은 때로 낯설고 막막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미중 간 패권 경쟁에서 결국 핵심은 경제”라고 말한다. 군사력 증강과 대만해협 같은 외교안보 이슈도 중요하지만, 중국의 부상을 막겠다는 미국의 근본적인 문제 인식의 핵심은 경제에 꽂혀 있다는 말이다. 아시아 경제블록을 구축해 주도권을 쥐려는 기 싸움도 팽팽하다. 한 당국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이었던 ‘바보야, 문제는 경제라니까(It‘s the economy, stupid!)’를 새삼 상기시키며 “요즘 외교안보 상황에서 이 문장이 자주 생각난다”고 말했다.
요즘 워싱턴의 주요 인사 중에서 북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종전선언도 여기서는 사실상 물 건너간 분위기다. 북한 문제는 한국에 여전히 최우선 순위의 안보 이슈이지만, 여기에만 매달리기에는 경제와 기술 패권 등 분야에서 미중 간 전략 경쟁이 너무 정신없이 돌아간다. ‘경제안보’가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는 흐름 속으로 맹렬히 달려들어야 하는 시점이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이재명, 윤석열 대선캠프의 외교안보 핵심 참모들이 경제안보의 중요성에 대해 한목소리를 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동아일보(2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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