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隨想錄]

[윤창중 八字] 논객과 벼슬은 상극.. 벼슬 안 하고 '배고픈 논객' 생활을 계속했더라면..

뚝섬 2013. 5. 21. 09:00

()이 있으면 사()가 있듯이, 영달(榮達)이 있으면 추락(墜落)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달과 추락이 동등한 무게는 아닌 것 같다.

인생에서 영달의 기쁨은 잠깐이고 곧 잊히지만 추락의 고통은 길고도 깊게 박힌다.

추락을 견디어 내면 내공이 쌓이지만 못 견디면 자살하는 수도 있다.

대개 영달에서 추락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슬로 템포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윤창중 전() 대변인 같은 경우에는 마치 널뛰는 것처럼

불과 몇 달 사이에 급격한 상승과 하락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명과 암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사건은 관람객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곧바로 대조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벼슬의 무상함이다.

차라리 벼슬 안 하고 '배고픈 논객' 생활을 계속했더라면 이런 추락과 망신은 없었을 것 아닌가!

특히 자기를 수신하고 되돌아보는 '위기지학(
爲己之學)'의 공부를 적게 했던 사람이

비중 있는 공직에 나가는 것은 장작을 쥐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이 위험한 일이다.

논객은 자기주장을 강하게 펴는 상관(傷官)이 발달한 팔자라서 원래 관운이 약한 법이다.

관운은 그 자리에서 당장 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쳐 올라와도 꾹 참고 뱃속에 담아두는 데서 온다.

논객과 벼슬은 상극이다.

벼슬을 하더라도 변두리 벼슬을 해야지.

가운데 벼슬이라니!

옛사람은 벼슬의 위험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부침환해여구조(浮沈宦海如鷗鳥).'

'벼슬의 바다는 마치 물결치는 파도 위에 떠 있는 갈매기처럼 부침이 심하다.'

파도 위에 앉아 있는 갈매기를 보면 아슬아슬하다.

'맹자'에는 '필관기란(必觀其瀾)'이라는 말이 있다.

'흘러가는 물을 볼 때 반드시 그 굽이쳐서 휘어지는 대목을 보라'는 뜻이다.

평탄하게 흘러가는 대목은 볼거리가 없다.

급격하게 물살이 꺾일 때 한세상 사는 여러 가지 이치를 시사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시사점은 말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과도한 구업(
口業)을 안 지어야 하겠다는 다짐이다.

불가의 '천수경(千手經)'에 보면 앞부분에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 나온다.

이제까지 자기가 지은 구업을 정화해 주는 주문을 경전의 앞부분에 배치하였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많은 공부를 하게 해주는 팔자이다. 

 

-조용헌살롱, 조선일보(13-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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