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후보에게 고(告)함]
[가는 곳마다 선심 공약, 李 후보의 무책임한 퍼주기 선거운동]
[누가 돼도 100兆를 푼답니다]
[“아들은 남이다”]
[독재자가 ‘히어로’인 나라]
윤석열 후보에게 고(告)함
[윤평중 칼럼]
코로나는 다시 창궐하고, 경제는 도탄에 빠졌으며, 나라는 분열되었다
정권교체 민심에 응답하지 못하면 역사에 씻을 수 없는 대죄를 짓는 것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021년 12월 30일 대구시당에서 열린 대구 선대위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라의 운명이 벼랑 끝이다. 차기 대선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다. 정권 교체나 정당 재편을 넘어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을 퇴치하는 역사의 현장이다. 진정한 정치가(政治家·Statesman)의 소명은 문재인 정권의 연성 파시즘과 싸워 조국(祖國·patria)을 살리는 데 있다. 건곤일척의 미·중 그레이트 게임에서 중국과 북한에 굴종하고 미국과 일본을 배척하는 문 정권의 망국적 행보를 중단시켜야 한다.
나라의 명운이 달린 결정적 순간이건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이하 윤석열)는 대통령이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윤석열 캠프는 차기 정권 요직과 보선·지선 공천권을 둘러싼 권력 투쟁으로 지새운다. 민심의 절규를 배반하는 최악의 망동(妄動)이 아닐 수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이하 이재명)가 한껏 몸을 낮춰 국민에게 다가가는 것과는 너무 다르다. ‘개 사과’와 김건희씨 소동이 증명하듯 한국 국민은 권력자의 오만과 불통(不通)을 그 무엇보다 혐오한다.
윤석열을 야당 대권 주자로 키운 건 팔할이 문재인 정권이다. 윤석열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오늘의 자리에 이른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그는 문 정권의 법치 파괴에 단기필마로 맞서는 강단을 보여주었지만 지금은 이런 결기가 흔적조차 없다. ‘공정과 상식’과는 거리가 먼 윤 캠프의 면면은 절망을 부른다. 지리멸렬한 선대위는 곧 지리멸렬한 ‘윤석열 정부’를 예고한다. 모두 윤석열의 리더십 빈곤이 부른 참사다.
윤석열 캠프의 혼미(昏迷)는 12월 31일 현재, 한국 갤럽을 비롯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재명이 윤석열을 넘어선 충격적 결과로 나타났다. 정권 교체 민심이 정권 재창출 여론을 10~20% 차이로 압도해 온 흐름을 윤석열은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이재명은 선대위를 혁파하고 대장동 사태를 사과했다. 문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시인하며 탈원전 정책을 버리고 조국 사태가 공정을 해쳤다고 인정했다. 기본 시리즈 공약은 허무맹랑하지만 대선 승리를 위해선 ‘아들조차 남이다’라고 강변하는 포퓰리스트 이재명의 무서운 민낯을 보여준다.
이재명의 변신을 ‘쇼’로 폄하하는 윤석열은 스펙터클의 시대에 이미지 정치가 갖는 막강한 위력을 간과한다. 윤석열은 문 정권과 이재명에게 차기 대선이 생사의 투쟁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문 정권은 대선 승리를 위해 돈과 권력, 어용 언론과 시민단체를 총동원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는 40%를 넘나든다. 때 이른 정권 교체론에 도취된 윤석열은 대선 운동장 자체가 이재명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현실을 외면한다. 정권 교체를 열망하는 민심 외엔 기댈 데가 전무한 윤석열이 필사적으로 뛰기는커녕 국민적 검증의 장(場)인 공개 토론을 기피하는 것도 최악의 오판이다.
이준석 당대표(이하 이준석)의 ‘가출 유랑’과 ‘내부 총질’은 윤 캠프를 겨냥한 충격 요법이긴 하지만 치기 어린 소영웅주의에 불과하다. 이준석의 좌충우돌은 청년 정치의 싹을 짓밟고 정권 교체와 정치 개혁의 대의(大義)를 파괴하는 경거망동이다. 친박과 싸우다가 당 직인을 갖고 가출한 김무성 전(前) 대표는 그 행동 하나로 정치적 사망 선고를 맞았다.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무책임과 가벼움을 잊지 않는다. 그러나 ‘윤석열·이준석 샅바 싸움’의 궁극적 책임도 당무 우선권을 가진 윤석열에게 귀속된다. 윤석열은 당장 이준석을 끌어안아야 하며 이준석은 즉각 선대위에 복귀해야 한다. 역사의 사명은 태산같이 무겁고 개인의 야망은 티끌처럼 가볍다.
코로나는 다시 창궐하고 민생 경제는 도탄에 빠졌으며 나라는 분열되었다. 문재인 정권 5년은 일대 재앙으로 끝나가고 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정권 교체론이 분출하는 이유다. 윤석열이 이런 압도적 민심에 응답하지 못한다면 역사에 씻을 수 없는 대죄를 짓는 것이다. 윤석열은 냉전 반공주의와 천민 자본주의를 넘어 중도와 합리적 진보까지 껴안아야 한다. 그게 유일한 대선 승리의 길이다. 위대한 정치가는 스스로를 버려 국민을 살리고 나라를 구한다. 그것이 바로 정치의 근본이다. ‘아님’(nicht)이라는 절망을 ‘아직 아님’(noch nicht)의 희망으로 바꾸는 것이 ‘희망의 원리’다. 우리는 오늘의 절망을 딛고 내일의 희망으로 나아가야 한다.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불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정치철학, 조선일보(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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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곳마다 선심 공약, 李 후보의 무책임한 퍼주기 선거운동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021년 12월 30일 인천 중구 서해5도 특별경비단을 찾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주택 실수요자의 취득세 부담을 낮추는 공약을 내놓았다. 1주택자 보유세 완화, 공시가격 동결, 종부세 부분 완화, 다주택자 양도세 한시 경감 등에 이어 또 부동산 세금을 깎아주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주에만 소상공인을 위한 카드 수수료 인하, 농민들이 요구하는 쌀값 부양 조치, 대학생 학자금 대출 확대 등을 잇따라 내놓았다. 유권자들을 그룹별로 겨냥한 공약을 매일같이 쏟아낸다.
이 후보의 공약들은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고 비용도 큰 것이 적지 않다. 그는 아파서 일을 못할 때 현금을 주는 상병(傷病)수당을 도입하겠다고 했는데 연간 1조원대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7세 미만에게 월 10만원씩 지급하는 아동수당을 임기 내 만 18세까지로 확대하는 방안이나, 다자녀 가정에 월 50만원씩 주겠다는 공약 역시 매년 수조원이 필요하다. 이 후보는 코로나로 피해 본 소상공인·자영업자 전원에게 완전·사전 보상을 하겠다고 밝혔으나 수십조원도 넘게 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후보는 지난해 코로나 확산의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 피해 보상 대신 전 국민 현금 살포를 하는 방안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이다. 대선 후보로 확정되자마자 ‘전 국민 재난지원금 25조원 지급’을 또 추진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선 소상공인 피해를 전액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후보는 전 국민에게 연간 100만원씩 기본 소득을 주고, 19~29세 청년 700만명에겐 연간 100만원을 추가로 주겠다고도 했다. 누구나 1000만원씩 대출해주는 기본 금융도 공약했다. 무슨 돈으로 한다는 말인가.
이 후보 측은 ‘OECD 평균 정도의 삶의 질’을 누리게 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국민이 조세 부담을 얼마나 더 져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국가 재정에서 5년간 ‘350조원+α’를 확보해 이 후보의 공약 사업에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밝혔던 공약 소요 재원 178조원의 두 배다. 민주당이 줄이고 줄인 수치겠지만 나랏빚 1000조원 시대에 진입한 재정 여건상 이런 재원을 뽑아 내기란 쉽지 않다. 눈앞의 표만 겨냥한 무책임한 퍼주기 매표(買票)일 뿐이다.
-조선일보(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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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돼도 100兆를 푼답니다
[동서남북]
대선 후보들 돈 살포 공약은 국민 호주머니 쥐어짜겠단 약속
성장 공약은 달성 어렵지만 돈 푸는 공약은 지키기 쉬워 문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왼쪽)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747′을 공약했다. 10년 동안 연 7% 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7대 경제 대국 진입의 앞 숫자를 땄다. 준비된 대통령의 이미지를 비상하는 항공기 보잉 747에 담아내려는 듯했다. 입에도 착 감긴다. 하지만 생각대로 안 됐다. 747 구호 10년 후 성장률은 연평균 3%, 국민소득은 3만2000달러, 경제 규모는 10위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처음부터 숫자 공약을 하지는 않았다. 전임 정권의 실책을 배웠나 싶었다. 하지만 집권 2년 차에 ‘474 경제 비전’을 꺼내 들었다.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포부다. 임기 말까지 목표에 못 미쳤다. 부작용이 없진 않았겠지만 두 정권의 747과 474는 정치판 특유의 허세쯤으로 넘어가 줄 수 있다. 구체적인 정책이라기보다 구호이자 비전이었기 때문이다.
숫자를 내세운 공약은 문재인 정부 때 ‘진화’했다. 세부 정책에 숫자가 대거 포함됐다. 최저임금 1만원 달성,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같은 것들이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소상공인은 급하게 오른 최저임금에 신음했고,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을 계획대로 못 올렸노라며 2번 사과했다. 지난해까지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은 25만명가량 늘었다. 문 대통령은 최근 기업인과 만나 공공 부문 일자리 얘기는 쏙 빼고 “일자리 창출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몫”이라고 태세를 전환했다.
대선 주자들이 배턴을 이어받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디지털 공약을 발표하며 임기 5년 동안 국비 85조원을 넣어 일자리 200만개 이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연간 17조원이 아닌, 5년간 85조원이라고 표현해 숫자가 커 보이게 하는 기교를 동원했다. 8월까지만 해도 이 후보는 “저의 정치 방식 차이인데요. 국민들께서 과거의 747 공약을 기억하실 겁니다. 전혀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제시해서 국민을 기망했죠. 굳이 숫자를 표현하지 않는 이유는 저의 진정성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입니다”라고 했었는데, 그사이 그의 정치 방식이 변한 모양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진영은 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 5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나섰다. 어떤 기준으로 산정된 금액인지, 재원은 있는지 캠프 핵심 관계자도 “나중에 설명하겠다”며 제대로 말을 못 했다. 그러면서도 국민의힘은 “100조원 기금 마련”으로 판을 키웠고, 이재명 후보는 100조원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왜 100조원이어야 하는지 누구도 설명하지 않았다. 전주(錢主)인 국민을 제쳐둔 채 벌이는 포커판과 닮았다.
돈을 쓰겠다는 공약은 성장률을 달성하겠다는 공약보다 해롭다. 목표가 아닌 수단을 약속한 것이라서다. 액수 맞춰 돈만 뿌리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킨 게 되는 맹목적인 성격 때문이다. 성장률 같은 목표를 공약해 실패하면 비난받을 여지는 있지만, 나중에 핑곗거리를 대며 넘어갈 수 있다. 코로나 탓을 할 수도 있고, 글로벌 경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돈으로 공약하면 핑계 대기 힘들다. 돈을 빌리든, 다른 부문의 예산을 깎든 지켜야 한다.
관료들도 머리를 쥐어짤 것이다. 한 정부 관료는 벌써부터 “국채를 더 찍고, 2~3년으로 기간을 늘려 잡고, 기왕에 써 왔던 소상공인 예산을 몽땅 포함시켜 100조원을 지켰다고 선언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둘 중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갖은 술수가 난무할 것이다.
툴툴 털어내고 싶은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날이다. 내년은 구관(舊官)을 보내고 신관(新官)을 맞는 해다. 이럴 거면 구관이 차라리 더 낫지 않았느냐는 말이 부디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김정훈 기자, 조선일보(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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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남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에 사는 딕 호잇은 전신마비 아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평생을 달렸다. 40년간 마라톤과 철인 3종 경기 등에 1100회나 나갔고 미 대륙도 횡단했다. “달릴 때는 장애를 전혀 못 느낀다”는 아들의 말 때문이었다. 그는 아들을 실은 고무배를 허리에 묶고 바다를 헤엄쳤고 특수 자전거에 아들을 태우고 페달을 밟았다. 그는 “아들은 내 심장이고 몸”이라고 했다. 호잇이 80세로 생을 마감하자 미국 사회가 ‘가장 위대한 아버지’가 떠났다고 애도했다.

▶동해에 사는 생선 뚝지는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나면 수컷이 40일 동안 알을 지킨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쉬지도 않고 지느러미를 흔들어 알에 산소를 불어넣는다. 새끼가 부화하면 수컷은 지쳐 죽는다. 가시고기 수컷도 가시를 세워 알을 보호한다. 새끼가 나오면 자기 몸을 먹이로 내어준다. 사람 못지않은 부성애다.
▶'자식은 원수’라고도 한다. 티베트의 환생 이론에 따르면 전생에 원수였던 연인이 자식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자식은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버릴 수도 없고, 무관심할 수도 없다. ‘안 보겠다’고 백 번을 결심해도 자식이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잠을 못 자는 것이 부모다. 그래서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참고 삭일 수밖에 없는 게 부모다. 노인 학대 사건의 제1 가해자가 아들이라고 한다. 그래도 부모는 어쩔 수 없다. 상속에 눈이 뒤집힌 아들의 칼을 맞은 어머니가 아들이 살인범으로 붙잡힐까 봐 증거를 삼키고 숨지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 속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아들의 도박에 대해 “대통령 부인은 공적 존재지만 성년인 아들은 남”이라고 했다. ‘부부는 헤어지면 남’이라지만 ‘아들이 남’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 ‘아들 문제는 나와 상관없다’고 선을 그으려는 것처럼 들린다. 역대 대통령들은 거의 예외 없이 아들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들은 줄줄이 구속됐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아들도 검찰·특검 조사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그 일로 목숨까지 끊었다. 그래도 ‘아들은 남’이라고 한 사람은 없었다.
▶이 후보는 대장동 사업에서 유동규 전 본부장의 비리가 드러나자 “측근이 아니다”라고 했다. 성남공사 간부인 김문기씨가 극단적 선택을 해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 후보는 누구라도 걸림돌이 되면 ‘손절’할 수 있는 것 같다. 심지어는 자신이 한 말도 문제가 되면 ‘손절’한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들을 남이라고 할 줄은 몰랐다.
-배성규 논설위원, 조선일보(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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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가 ‘히어로’인 나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AFP 연합뉴스
이달 초 베네수엘라 국영TV에서 방영된 단편 애니메이션 ‘수퍼콧수염(Super Bigote)’은 이런 내용이다. 미국 백악관에서 노랑머리 캐릭터가 소리친다. “아직 못 쫓아냈다고? 고작 버스 운전사잖아.” “별수를 다 써봐도 안 된다”는 부하들 하소연에 ‘노랑머리’가 버튼을 누르자 무인기가 출격해 발전소 전원을 차단해버린다. 병원 응급실 전기가 끊기는 등 아비규환 상황에서 망토를 두르고 베네수엘라 국기 모자를 쓴 콧수염 사나이가 날아오르자 시민들이 환호한다. “수퍼콧수염이다!” 그가 무인기를 한 주먹에 박살내고 전기가 돌아오자 ‘노랑머리’는 분개한다.
‘수퍼콧수염’ 얼굴은 영락없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다. 실제 그는 버스 운전사로 일했었다. ‘노랑머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마두로는 트럼프 집권기이던 2018년 8월 공개 행사장에서 정체 불명 드론 공격을 받자, 배후로 미국을 지목했었다. 악당 미국에 맞서 마두로가 나라를 구해내는 수퍼히어로로 그려지는 만화가 국영TV에서 방영된 것은, 베네수엘라 좌파 독재가 안착 단계를 지나 독재자 우상화 단계까지 왔음을 보여준다.
베네수엘라는 특정 세력이 선전·선동과 포퓰리즘으로 장기 집권이 가능하고, 그 과정에서 멀쩡한 나라가 파탄 날 수 있음을 지난 20여 년간 보여줬다. 자원 부국이자 뷰티·패션 산업 선도국,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는 음악프로그램 ‘엘 시스테마’로 유명한 나라였지만, 1999년부터 현재까지 우고 차베스와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로 이어지는 좌파 집권 아래 전 국민의 16%(540만명)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조국을 등졌다. 각종 포퓰리즘 정책으로 나라 살림이 거덜나 물가상승률이 초현실적 수준으로 치솟고, 통화 가치가 폭락하자 화폐 단위에서 0을 여러 개 떼버려야 했다. 산유국임에도 변변한 정제 시설이 없어, 최근엔 지구 반 바퀴 떨어진 이란에서 정제유를 들여오는 상황도 벌어졌다. 젊은 여성들이 성매매에 내몰리고, 엘 시스테마 단원들이 구걸에 나섰다는 뉴스도 들려왔다.
나라가 이 지경인데도 정권이 끄떡없는 데는 국민을 길들이는 우민화 정책 위력도 컸다. 정권이 행정·입법·사법권 장악에 나팔수 언론까지 포진시키고 국민 갈라치기 전략을 구사하면서 야권은 내부서 분열하며 힘을 잃고 있다. 지난 11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노골적 선거 공작 없이 압승한 뒤, 마두로를 수퍼히어로로 그린 애니메이션이 등장한 것은 ‘무기한 집권도 가능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라의 운명이 유권자의 투표로 송두리째 뒤바뀔 수 있다. 우리에겐 대선을 앞두고 이미지와 선동을 걷어내고 정책과 비전을 따지는 유권자의 냉정함이 더없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우리라고 베네수엘라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정지섭 기자, 조선일보(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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