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가’ 민주당의 추억]
[김만배 “이재명 방침 따랐다”는데, 李 “오늘 재판했나”]
[얼렁뚱땅 넘어가면 안 되는 여야 대선후보 리스크]
‘명가’ 민주당의 추억
[朝鮮칼럼]
건국 기여한 한민당부터 시작, 6·25때는 반공·애국주의
민주주의 불씨 지킨 공로… ‘386 민주당’은 품격 잃고 퇴화
이젠 후보 이름 앞세운 정당으로 민주당다운 민주당 사라졌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만큼 꾸준히 후보자를 낸 정당도 없다. 직선제일 때는 특히 그랬다. 물론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이름은 각종 선거 때마다 거의 매번 달랐다. 신민당, 민주한국당, 신한민주당,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꼬마’민주당, 새천년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 열린민주당 식으로 말이다. 새정치국민회의, 열린우리당처럼 민주라는 말이 사라졌다가도 결국에는 도로 민주당이 되고야 만다. 마치 ‘민주’가 들어가는 당명에 침이라도 발라놓은 느낌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선 후보의 이름의 초성을 활용한 새 홍보 이미지를 6일 공개했다. 2022.1.6 /더불어민주당
그러다 마침내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재명의 민주당’이다. 말하자면 당명 앞에 인명을 보란 듯 앞세운 것이다. 물론 대선 후보가 정당의 얼굴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게다가 정권 교체 여론이 정권 재창출보다 높게 나오는 상황에서 이는 선거 전략의 일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재명 민주당’은 이전의 경우에 비해 뭔가 다른 느낌이다. 아닌 게 아니라 같은 당내에서도 그런 목소리가 나온다. 이상민 공동선거위원장은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닌 ‘이재명의 민주당’에 대해 ‘질겁했다’는 표현을 썼고, 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이낙연 전(前) 당대표는 ‘민주당다움의 훼손’을 염려했다.
민주당계의 역사는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 한민당까지 소급된다. 또한 이승만·박정희 시대에는 민주주의의 불씨와 희망을 어렵사리 지켜낸 공로가 혁혁하다. 민주당 안에는 전통적으로 박사나 선생, 여사 등으로 불리는 정치 지도자가 많았다. 교육 수준이 높았을 뿐 아니라 해외 문물에 대한 식견에서도 시대를 앞섰다. 기득권 세력이었지만 농지개혁처럼 자기희생에 인색하지도 않았다. 6·25전쟁이 터졌을 때 민주당에는 반공과 애국주의가 탱천했다. 이만하면 한국 정당사에서 그나마 눈에 띄는 명가(名家)가 아닐 수 없다. 최소한 군사 쿠데타의 원죄에 기약 없이 얽혀 있는 보수 쪽 정당에 비해서는 말이다.
이와 같은 정통 민주당의 추억은 오늘날 거의 사라졌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당사에는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만 걸려 있다. 민주당 출신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물론 윤보선 전 대통령도 그 자리에 없다. 이른바 386 출신 운동권이 장악한 지금의 민주당은 자신의 출신 성분과 성장 과정에 대해 선을 긋는 모습이다. 소속 정치인들의 품격, 나라 사랑의 진정성, 자유의 가치에 대한 신념, 그리고 국제적 감각의 측면에서 작금의 민주당은 그야말로 퇴화 일로다. 아마 사진 속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려다봐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가 들어간 당명에 집착하는 이유는 일종의 브랜드 효과 때문일 텐데,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명의 도용이자 명예훼손에 가깝다.
‘민주 없는 민주당’이라는 세간의 일반적 평가는 차라리 점잖은 편이다. 민주 빼고 다 있다는 표현이 오히려 정확할지 모른다. 총체적 정책 실패는 두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선거 공작, 기획 사정, 통신 사찰, 공문 훼손, 통계 조작, 사법 농단, 언론 통제, 인권침해 등은 모두 문재인 정부가 민주당과 더불어 벌인 일이다. 그럼에도 도대체 죄의식도 없고 수치심도 모른다. 운동권 특유의 선민사상과 이념적 진보를 배경으로 ‘386 민주당’은 정치의 목적 자체를 ‘그들만의 잔치’로 바꿔버렸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또한 날이 갈수록 이전투구(泥田鬪狗) 양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예측불허의 ‘이재명식 야생(野生) 정치’에 정권 사수(死守)의 명운을 걸었다.
이재명으로 의인화(擬人化)된 민주당의 전격 등장으로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의 한 축을 담당했던 ‘민주당다운 민주당’과의 최종 결별을 예감하고 있다. 이미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을 바꾸고 대한민국을 바꾸겠다’고 호언한 바 있다. 정체도 모르고 기원도 알 수 없는 이른바 ‘주권자의 명령’이라는 것을 받들어 말이다. 이로써 문재인 시대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맛보기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현재로서 ‘이재명 민주당’의 확실한 대안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대선이 불과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야당은 무능과 무기력으로, 그리고 야권은 내분과 균열로 허송세월 중이다. 이를테면 차려진 밥상도 못 떠먹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정치학에서는 역사적으로 분수령이 되는 선거를 ‘중대 선거’(Crucial election)라 부른다. 이번 대선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하지만 너무나 어렵고 괴로운 선택이 국민을 기다리고 있기에 그것은 미증유의 ‘잔인한 선거’(Cruel election)라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조선일보(2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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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배 “이재명 방침 따랐다”는데, 李 “오늘 재판했나”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왼쪽)씨와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가운데) 변호사, 정민용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실장이 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2021.11.3 /연합뉴스
대장동 사건으로 구속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측 변호인이 재판에서 “(김씨는)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안정적 사업을 위해 지시한 방침에 따랐다”고 했다. 검찰은 김씨를 기소하면서 그를 비롯한 투기 세력이 대장동 개발에서 나오는 추가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유동규 성남도시개발공사 전 기획본부장과 짜고 7개 독소 조항을 요구해 관철시켰고, 이로 인해 성남시가 651억원 이상의 손해를 입었다고 했다. 이들이 받고 있는 배임 혐의의 핵심 내용인 7개 조항이 이재명 후보의 당시 지시와 방침에 따른 것이라는 말이다.
7개 조항의 핵심 내용은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초과 이익이 발생해도 이를 요구하지 않고, 초과 이익을 두고 경쟁할 수 있는 건설사의 참여를 배제하며, 화천대유와 같은 시행사가 택지 개발 외에 아파트 분양 사업에서도 이익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소수의 특혜를 보장하기 위한 조항들이다. 당시 성남도공 개발본부 관계자들이 “초과 이익을 배분할 수 있는 조항을 삽입해야 한다”고 수차례 요구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당시 성남도공 개발본부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유한기씨다. 김씨를 비롯한 투기 세력은 이 조항을 통해 택지 개발에서만 4040억원의 이익을 얻었고, 이후 아파트 분양 사업에서도 4000억원 이상의 추가 이익을 얻은 것으로 추산된다.
김만배씨 측 주장은 ‘7개 조항이 당시 시장이던 이 후보의 정책에 맞춘 것이기 때문에 자신에겐 잘못이 없다’는 것이지만 바꿔 말하면 ‘이 후보가 하라는 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위법하다면 책임자는 이 후보’라는 뜻이다. 김씨는 구속 직전에도 자신이 받고 있는 대장동 의혹에 대해 “그분의 방침에 따랐을 뿐”이라고 했다. ‘그분’은 이재명 후보를 말한다.
그런데도 검찰은 이 후보는 물론이고 당시 성남시 정책실장으로 대장동 사업 핵심 안건을 결재한 정진상 선대위 비서실 부실장 등 이 후보의 측근을 조사하지 않고 있다. 정 부실장은 작년 9월 유동규씨가 압수수색을 당했을 때 그와 8차례 통화한 사실이 밝혀져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검찰은 진상 규명이 아니라 진상을 덮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후보는 이들의 주장에 대해 “오늘 재판이 있었느냐”고 딴청을 부렸다. 말로만 “대장동 특검이 필요하다”고 할 뿐 시간만 끌고 있다. 이 후보는 대장동 개발 사업의 설계자다. 이대로 넘어간다면 법치국가가 아니다.
-조선일보(2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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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넘어가면 안 되는 여야 대선후보 리스크
화장품 종류 중 ‘컨실러(concealer)’라고 있다. 말 그대로 뾰루지나 잡티를 일시적으로 가리는 용도다. 화장 직후엔 그 나름 감쪽같지만 지워지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게다가 덧칠할수록 그 부분만 화장이 두꺼워져서 오히려 더 티가 난다.
요즘 각종 실언과 논란 속에 역대급 비호감 레이스 중인 여야 대선 후보들은 대형 리스크에 구차하게 대응한다는 점에서도 서로 비슷하다. 진정성 있게 해명하지 않고 모면하기에만 급급하다. 깨끗하게 치료해 뾰루지를 가라앉힐 생각은 않고 그 위에 컨실러만 떡칠하는 식이다. 요즘 기업에선 리더의 자질로 정직하고 진실함을 토대로 성과를 만들어내는 ‘인테그리티(Integrity)’를 가장 중시한다는데 지금 대선판에선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덕목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책임 소재를 교묘하게 피해간다. 대장동 의혹으로 수사받던 ‘키맨’ 두 명이 목숨을 끊었을 때 그는 “모르는 사람”, “왜 돌아가셨는지 모른다”고 했다. 도리어 검찰을 향해 “왜 유독 이 사건만 가혹하게 수사하나”라고 했다. 전형적인 물타기다. 자기 입으로 “측근이라면 정진상, 김용 정도는 돼야 한다”더니 막상 정진상, 김용이 검찰 압수수색 직전 유동규와 수차례 통화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자 “기억나는 게 없다. 그들에게 확인하라”고 발을 뺐다.
조카 살인 변호 논란 땐 “어린 조카라 변호가 불가피했다”고 해명했지만 성인이 된 뒤에도 두 번이나 변호한 사실이 드러났다. 불법도박 등 각종 논란에 대해 아들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는 지적엔 “성년인데 사실 남”이란 궤변을 늘어놨다.
이 후보가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이라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대충 뭉개고 버티는 식이다. 아내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및 허위 경력 의혹이 나오자 일단 “여권의 정치 공세”라고 우겼다. 그러다 한참 늦게 사과하면서도 ‘사실관계를 떠나서’, ‘여권의 기획공세가 부당하지만’ 등의 단서를 달았다. 인색해서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다.
김 씨의 대국민 사과 역시 “잘 보이려고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다”, “남편 앞에 제 허물이 부끄럽다”는 감성적 반성문에 그쳤다. 윤 후보는 “형사 처벌될 일은 없는 것 같다”고 감쌌다. 물론 이 부부의 진정성 없는 사과는 지난해 ‘개사과’가 압권이었다.
어쩌면 지금 사회 분위기가 이들의 얼렁뚱땅 해명에도 관대한 건지도 모르겠다. 동아일보 새해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차기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로 ‘국가운영능력’(40%)을 꼽았다. ‘도덕성’은 이에 한참 못 미치는 9.2%였다. 2007년 1월 한겨레 대선 여론조사에서 1위는 ‘추진력’(44.5%)이었고, 2002년 1위(35.7%)였던 ‘도덕성’이 5년 만에 3위(14.4%)로 떨어졌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해 온갖 의혹 속에서도 ‘불도저’ 이미지를 앞세워 당선됐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금 감옥에 있다. 아무리 지금 시대정신이 ‘능력 최우선주의’라 해도 후보들을 둘러싼 리스크를 대충 넘어가면 안 되는 이유다. 컨실러로 가려둔 뾰루지가 언젠간 곪아 터지듯 대선 후보들에 대한 의혹도 끝까지 검증해야 한다.
-김지현 정치부 차장, 동아일보(2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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