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인 앞날, 기대 半 걱정 半이다]
[청와대 폐지, 제왕적 대통령제 벗어나는 첫걸음이길]
당선인 앞날, 기대 半 걱정 半이다
[강천석 칼럼]
人事 구상, 당선인 좋아하는 사람 아니라 국민 承服 기준 삼아야
친인척 비위 감시하는 청와대 특별감찰관 꼭 임명하도록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을 찾아 헌화 참배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당선자는 당선 첫날 옳은 말을 많이 했다. 말한 대로 실천하면 좋은 대통령이 될 것이다. 당선자는 자신을 대통령 자리에 세운 국민 뜻이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라는 개혁의 목소리이고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 정치를 하라는 간절한 호소’라고 했다. 전쟁 같은 정치와 전투 같은 선거가 이 나라를 사막(沙漠)으로 만들었다. 세계 제1차 대전을 일으킨 정치인들의 구호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마지막 전쟁’이었다. ‘나라의 폐단(弊端)을 바로잡기 위한 마지막 적폐(積弊) 청산’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어리석은 인간들의 오만(傲慢)에 지나지 않았다. 당선자는 ‘통합’ ‘상식’ ‘공정’의 세 기둥을 끝까지 붙들기 바란다.
당선자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거대한 야당을 상대해야 하는 대통령이다. 그는 이런 정치적 입지(立地)에 대해 ‘민주국가에서 여소야대(與小野大)는 자연스러운 일이며 어느 당이 대통령 행정부를 맡게 되면 다른 당이 의회의 주도권을 잡는 게 크게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크게 이상하지 않은 여소야대’를 제대로 감당했던 전임자(前任者)는 없었다. 당선자는 ‘여소야대 상황이 민주주의와 정치가 성숙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여러 당선자가 이런 다짐을 했고 실제 임기 초반 잠시 그런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으나 이내 접고 말았다. 그래서 기대 반(半) 걱정 반(半)이다.
야당과 협치(協治)는 대통령 의지(意志)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야당의 호응을 이끌어 내야 하는 일이라서 더욱 어렵다. 협치는 말로 되는 게 아니다. 여야가 서로 정책을 조정하거나 자리를 주고받아야 실현된다. 여야의 등 뒤에는 정확히 절반으로 쪼개진 국민들이 버티고 있다. 타협의 성패(成敗)는 등 뒤 지지자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달렸다. 보수주의 신념에 투철했던 레이건 대통령도 야당과 협상할 때만은 유연했다고 한다. 주위에서 ‘왜 자꾸 물러서느냐’고 대들 때마다 ‘나머지 절반은 다음 달 아니면 내년에 얻으면 되잖아···’ 하며 다독였다. 미국 국민은 ‘물러서서 이기는’ 레이건에게 여러 선거에서 잇단 승리를 안겨줬다.
제1 야당은 과반(過半)을 크게 웃도는 172석 의석으로 언제든지 새 대통령 팔다리를 묶을 수 있다. 국무총리 임명 동의를 부결시키거나 국회 인사청문회를 지연시켜 내각 구성을 가로막거나 정책 변경에 따르는 입법(立法)을 저지해 ‘식물 대통령’을 만들 수도 있다. 대통령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이 승복(承服)할만한 인물 우선으로 인사(人事) 기준을 짜야 한다. 대통령의 곤경(困境)이 나라의 득(得)이 될 수도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侵攻) 이후 세계 정세, 북한 동태가 급박해졌다. 새 정부 외교·국방·경제 라인과 현 정부 간의 긴밀한 공동 대처가 절실하다. 유권자들은 올 6월 1일 치러질 전국 동시 지방선거를 통해 국익(國益)보다 파당(派黨)의 이익을 앞세운 쪽에게 벌(罰)을 줄 것이다.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겐 ‘보통 시민에서 위대한 대통령으로’라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그는 6·25 남침 후 이틀 만에 미군을 한국 방어에 투입했다. 트루먼은 그 결정이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결정보다 어려웠다고 했다. 3차 세계대전의 문(門)을 따는 게 아닐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평생 친구 하원 의장이 취임한 지 며칠 안 된 트루먼을 백악관으로 방문했다. “다들 자네를 왕처럼 떠받들지. 자네가 왕이 아니란 건 자네도 알고 나도 아는데 말이야···. 꼭 만나야 할 사람은 떼어 놓고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에겐 문을 따주는 게 백악관 부하들이야···.” 대통령으로 뽑혀 왕 노릇 하다가 출옥(出獄) 한 수인(囚人)처럼 관저를 빠져나가야 하는 게 대통령 중심제 속 대통령 반생(半生)이다.
보통 사람은 없고 왕한테만 있다는 게 역린(逆鱗)이다. 비늘이 거슬러서 난 것인데 이걸 건드리고도 목숨을 부지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대통령 측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역린이다. 역대 대통령의 역린은 피를 나눈 친족(親族)과 살을 나눈 인척(姻戚) 이었다.
친인척 사고 때는 경보(警報)가 울리지 않는다. 눈치챘을 때는 이미 큰불로 번져 손을 쓸 수 없다. 역대 대통령은 친인척 사고 이후 허리가 꺾여 끝내 위엄(威嚴)을 회복하지 못했다. 친인척 사고로부터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국회 추천을 받아 친인척 비위를 감시하는 청와대 특별감찰관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내내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당선자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더 이 문제를 걱정한다.
-강천석 고문, 조선일보(2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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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폐지, 제왕적 대통령제 벗어나는 첫걸음이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바라본 정부서울청사 모습./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내 국무총리실을 대통령 집무실로 쓰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한다.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광화문 인근으로 옮기겠다는 대선 공약을 인수위 1호 사업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집무실 이전은 여러 대통령과 후보들이 공약했지만 한 번도 지키지 못한 일이었다. 만일 윤 당선인이 실천한다면 불통과 제왕적 대통령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청와대가 60여 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청와대는 과거 경복궁 후원이었지만 일제가 총독부 관저를 세웠다가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로 사용했고 4·19 이후 청와대로 바뀌었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미국·영국·일본 등의 대통령·총리 집무실과 달리 외부와 철저히 격리돼 있다. 국민과 소통하며 일하는 곳이 아니라 사실상 구름 위에서 군림하는 자리였다. 면적은 25만㎡로 미국 백악관(7만3000㎡)의 3.4배나 된다. 1992년 부시 대통령이 궁궐 같은 청와대를 보고 깜짝 놀라 “백악관과 맞바꾸자”고 말했을 정도다. 영국 다우닝가의 총리 관저가 연립주택식의 좁은 3층 건물인 것과도 대비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고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며 집무실 이전을 약속했다. 하지만 취임 후 아무 조치도 않더니 2년 만에 여러가지가 불편하다면서 백지화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도 이전은 무산됐다. 업무나 경호가 힘들다는 것은 거짓 핑계에 불과하다.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서 제왕 대접을 받다 보니 마음이 바뀐 것이다. 대통령만이 아니라 비서들도 ‘청와대’라는 특별 권력에 취해 이를 놓지 않으려 했다.
정부서울청사에는 화상회의와 통신·보안·업무 시스템이 모두 갖춰져 있다. 경호·의전·교통 문제도 사실상 없다고 한다. 대통령 거처도 부근에 구할 수 있다. 현재의 청와대는 대통령 역사 박물관이나 기념관, 공원으로 리모델링해 시민에게 개방하면 될 것이다. 그 자체가 상징하는 변화가 클 것이다. 과거 전문가·여론 조사에서도 이 방안이 제시됐다.
광화문으로 물리적 이전뿐 아니라 구 청와대의 권한·조직·기능도 대폭 바꿔야 한다. 행정부 위에 군림하는 권력기관이 아니라 대통령을 지원하는 보좌 기관에 그쳐야 한다. 윤 당선인은 그 첫걸음으로 수석비서관을 없애고 민정수석실과 제2부속실을 폐지하는 구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윤 당선인이 청와대 폐지로 권위적이고 어두운 대통령사(史)를 바꾸고 광화문 시대를 열어 우리 정치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면 헌정사에 남을 획기적 일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2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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