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달호의 오늘도, 편의점]

“우회전, 우회전! 차선 바꿀 때는 깜빡이를 켜야지 왜 와이퍼를 작동시키고 그래!” 한숨이 나온다. “옆을 봐, 옆. 뒤에서 뭐가 달려오는지 확인해야 할 것 아니야!” 말끝이 날카로워진다. “앞을 봐, 앞. 전방 주시! 야, 사고 날 뻔했잖아!” 끝내 고함을 지른다. “어휴, 이래가지고 대학은 어떻게 나왔니?” 결코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튀어나온다.
굳이 상황을 설명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음성 지원’되었을 이 소리는, MBC 라디오 장수 프로그램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버전으로 소개하자면, 경기도 남양주시에 거주하는 편의점주 봉달호씨가 자기 아내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소리다. 그렇다. 우리 부부는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결코 하지 말아야 할 금기’ 가운데 최고봉에 도전하고 만 것이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내가 장롱 면허를 흔들어 깨우겠단다. 10년 전 자격을 따 올해 말이면 면허를 갱신해야 하는 사람이, 그동안 한 번도 핸들을 잡지 않다가, 다시 운전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자동차 뒤 유리에 큼지막하게 ‘주행 연습’이라 써 붙이고 우리 부부는 겁도 없이 대로로 나섰다. 금단 영역에 접어들었다.
말이 주행 연습이지 운전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는 일이었다. 여기가 액셀, 여기가 브레이크, 이건 변속 레버, D는 앞으로, N은 중립… 그런 것부터 가르쳐야 했으니까. “어? 내가 배울 때는 왼쪽에 뭐가 하나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아, 클러치. “바보야, 이 차는 오토라고!” “오토엔 그게 없어?” 그렇다. 나는 이런 사람에게 운전을 가르친 것이다. “너에게 1종 보통 면허증을 준 대통령은 대체 누구니?” 다시 독설이 훨훨 날아오른다. 면허증과 대통령은 뭔 상관이람.
조수석 손잡이를 꼭 붙들고 나는 이를 꽉 악문다. 코너링을 할 때마다 몸이 이리 비틀 저리 뒤뚱 흔들린다. 덜컥! 횡단보도 정지선 앞에 차가 멈춘다. 몸이 앞으로 휙 쏠린다. “야, 신호를 보라고, 신호를!” 첫날, 아내는 그렇게 10킬로미터를 달렸다. 30분 넘게 걸렸다. 지난 주말, 남양주에서 구리로 향하는 4차선 국도의 차선 하나를 점령하고 느릿느릿 위태롭게 달리는 파란색 차 때문에 고생하셨을 운전자 여러분에게 이 자리를 빌려 깊은 사과 말씀을 드린다. 결국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아내를 집에 내려주고 편의점으로 향한다. 이곳에서도 나의 일상은 초보와 씨름하는 일이다. 편의점 알바를 뽑을 때 경력자를 선호하는 점주가 있고, 일부러 경력 없는 사람을 뽑는 점주가 있는데, 나는 대체로 후자 쪽에 기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경력과는 상관없이 ‘성실성’ 하나만 본다. 경력이 있으면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으니 좋지만, 편의점 일이라는 것이 그리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거니와, 하나하나 가르쳐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와 보람이 쏠쏠하다.
물론 복장 터지는 순간도 많다. 편의점 초보라면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인데, 상품을 채워 넣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상품 종류만 수천 가지인데 뭘 어디에 놓아야 하는지 어찌 안단 말인가. 나는 10분이면 끝낼 일을 초보 알바는 1시간 넘게 걸린다. 적응하기까지 보통 한 달은 걸린다. 느긋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수밖에. 아직도 많은 사람이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편의점 대형 냉장고는 사람이 내부에 들어가 안쪽에서 상품을 채워 넣는 구조로 되어 있다. 초보 알바가 거기에 들어가 1시간 가까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종종 문을 열어 “춥진 않니?” 물어봐야 한다(왜 안 춥겠나). 감기에 걸릴 수 있으니 20분이 넘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준다.
아무튼 그런 과정 거쳐 서너 달쯤 지나면 냉장고 왼쪽 셋째 줄에 콜라가 있고, 진열대 상단 오른쪽 끝에 새우깡이 있으며, 택배는 오후 4시에 수거하러 오고, 중고딩 손님이 몰려왔다 나가면 시식대를 다시 청소해야 한다는 점 등을 깨닫게 된다. 손님이 담배 이름을 말하면 눈 감고도 꺼내 줄 수 있는 수준이 된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어엿한 우리 식구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진다. 이렇게 편의점에서는 지극히 친절하고 너그러운 스승님인 내가 왜 자동차 조수석에만 앉으면 사람이 달라진단 말인가.
서둘러 결말을 소개하자면, 아내는 주행 연습 닷새째 되는 날 한강 다리를 건넜고, 유턴해 강변북로를 거슬러 아파트 입구까지 되돌아왔다. 물론 나는 벌벌 떨었지. 벽장에 감춘 태극기를 꺼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던 조상님들의 심정으로 그날 밤 우리 부부는 축배를 들었다. 반드시 언급할 사항이 하나 있다. 우리 부부의 주행 연습이 파행으로 치닫지 않았던 것은 내 무수한 악담과 폭언에도 일절 대꾸하지 않고 운전에만 집중한 아내의 지극한 인내심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걱정이 하나 생겼다. 아내가 속도를 즐긴다.
-봉달호 작가 '힘들 땐 참치 마요' 저자, 조선일보(22-03-12)-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國內-이런저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왜 수많은 대선 공약 중에 ‘음쓰 분쇄기’가 눈에 띌까] (0) | 2022.03.20 |
|---|---|
| [살림 해보면 알게 된다 왜 ‘1+1′에 집착하는지] (0) | 2022.03.13 |
| [서로 맞서면서 기대는 우리] (0) | 2022.03.11 |
| [스카이라인] (0) | 2022.03.05 |
| [큰개불알풀] (0) | 2022.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