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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400여 명에도 방역 완화 타령, 이유라도 듣고 싶다] ....

뚝섬 2022. 3. 18. 06:55

[사망자 400여 명에도 방역 완화 타령, 이유라도 듣고 싶다]

[그들도 마지막엔 손을 잡았다]

 

 

 

사망자 400여 명에도 방역 완화 타령, 이유라도 듣고 싶다 

 

17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함백산 추모공원 화장장에 화장시간 안내문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계절적 영향과 코로나19로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화장시설이 부족해지자 정부가 전국 공설 화장시설 운영기간과 화장 횟수를 늘리기로 했다. /뉴시스

 

17일 코로나 새 확진자가 62만여 명, 사망자가 429명으로 폭증했다. 방역 당국은 전날 또는 최근 누락분을 추가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16~17일 이틀간 확진자는 100만명이 넘고, 사망자는 600명에 가깝다. 전례 없는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 숫자는 2~3주 시차를 두고 확진자 숫자를 따라가기 때문에 이달 말엔 사망자가 지금의 두 배 정도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미 장례식장마다 안치실 자리가 부족해 난리라고 하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방역 당국은 방역 완화 타령만 하고 있다. 이달 들어 방역 패스를 전면 중단하고 사적 모임 제한을 완화한 데 이어 20일부터 거리 두기 조치를 더 느슨하게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김부겸 총리는 1급 감염병인 코로나 등급을 완화하는 방안을 논의해 달라고 했고 21일부터는 백신 접종을 완료한 해외 입국자에 대해 격리 조치를 면제하기로 했다. 방역 담당자들은 연일 “오미크론 치명률이 0.1% 이하로, 계절 독감 치명률(0.05∼0.1%)과 비슷한 수준이 됐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방역을 포기한 정도가 아니라 감염을 부추기는 것으로 비친다. 온 국민이 2년 넘게 조심하며 버텼는데 뭐가 급하다고 방역을 풀지 못해 안달인가.

 

정부가 “충분히 걸릴 만큼 걸려서 마지막 유행을 한번 만들고 끝내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한 것 같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방역을 완화하더라도 최소한 다른 주요국처럼 정점을 확인한 후 해도 늦지 않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소 귀에 경 읽기다. 주요국 중 이런 식으로 방역한 나라는 없었다.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은 정부의 예측이 번번이 틀렸다는 점이다. 16일에도 방역 당국자는 확진자 수가 하루 최다 40만명대 중반까지 갈 수 있다고 했는데 곧바로 60만명대 확진자가 나오는 식이다.

 

앞날이 불확실한 경우 안전한 길을 택하는 것이 상식인데 방역 당국은 모험을 택했고, 지금도 브레이크 대신 가속기를 밟고 있다. 책임 있는 당국자가 나와 솔직하게 방역의 방향을 제시하고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도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

 

-조선일보(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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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마지막엔 손을 잡았다

 

[카페 2030] 

 

연극 시작 몇 시간 전이었다. 나는 우연이 얼마나 잔인한지 설파하기 좋아하는 ‘만약론자’, 남편은 백신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신뢰하는 ‘원칙론자’였다. 그날도 또 충돌했다.

 

“극장에 사람 많잖아. 코로나도 심각한데 그냥 가지 말자.” “백신 3차까지 맞아놓고 왜 그래?” “아니 그래도, 만약에, 혹시나 걸리면 타격이 너무 크니까.” “다들 마스크 끼고 얌전히 앉아있는데 뭔 걱정?” “마스크 껴서 괜찮을 것 같으면 지금 확진자가 왜 이렇게 많니?” “너는 과학 전공했으면서도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가 그렇게 없니? 됐어, 가지 마!” 언제나 끝은 이렇게 파국이다.

 

곡절 끝에 대학로 극장에 앉았더니, 이번엔 주인공 두 사람이 곧 파국을 맞을 것처럼 싸운다.

 

“신을 믿지 않기로 선택한다는 것이야말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죠.” 똑똑한 유신론자의 말에 막강한 무신론자가 반박한다. “난 유니콘의 존재를 부인하는데, 그럼 유니콘이 존재하는 건가?”

 

연극 ‘라스트 세션’의 두 주인공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그렇게 1시간 30분 내내 싸웠다. 종교적 신념을 강박이라 믿는 프로이트와,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루이스가 토론으로 맞붙었으니 당연히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집에서 한참을 싸우고 극장에 와서 겨우 엉덩이를 붙였는데, 남이 싸우는 것까지 보자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런데 연극을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행동에 눈길이 갔다. 서로를 잡아먹을 듯 설전을 벌였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잠시 휴전해야 할 때엔 서로를 살뜰히 챙겼다. 죽음을 앞둔 프로이트의 건강을 염려하는 루이스, 멀리서 찾아온 젊은이에게 차를 한잔 내어주고 싶은 프로이트. 결코 의견이 합치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안 순간 두 사람이 한 행동은 뜻밖에도 악수였다. 극장 앞에서까지 망설이던 나에게 남편이 “그러면 그냥 다른 데 놀러 갈까?” 하며 화해의 손을 건넨 것처럼.

 

가정에서나 무대에서나, 인간 세계는 갈등과 대립으로 가득하다. 다만 이것은 인류의 진일보를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믿는다. ‘내 말대로 하면 둘 다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상대를 설득하려 노력하고, 의도치 않은 팽팽한 긴장을 유발한다. 대신 갈등과 상관없는 지점에선 서로를 배려하고 염려해야 한다. 프로이트와 루이스처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연극의 여운을 간직할 새도 없이 현 대통령과 새 대통령의 회동이 불발됐다느니, 대선 때 누구를 찍었냐를 놓고 20대 남녀가 서로를 마녀사냥하고 있다느니, 검사들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눈다느니, 별별 뉴스가 쏟아져 나와 머릿속을 헤집었다. 현실 속 인물들은 다툼이 잠시 멈췄을 때 서로를 염려하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더 공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 같다. ‘같이 살자’가 아니라 ‘나만 살고 너만 죽어라’ 식의 싸움이다.

 

연극은 신과 종교, 인간에 대한 깊은 고찰을 전하고자 했을 것이다. 연출 의도와 달리 이 한심한 관람객은 현실이 얼마나 엉망인지 생각하고 좌절했지만, 느낀 점이 전혀 없지는 않으니 완전 실패는 아니다.

 

-최연진 기자, 조선일보(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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