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쇼다운 쇼’ 보고 싶다]
[말로는 거들어도 함께 싸워주진 않는다]
[兄弟와 패거리]
이젠 ‘쇼다운 쇼’ 보고 싶다
[특파원 리포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좌측).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 시각) 수도 키이우에서 교전 19일 차를 맞아 연설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ㆍ우크라이나 대통령 공보실
유엔 정기총회를 앞둔 지난해 8월 뉴욕경찰 쪽 정보원으로부터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뉴욕 JFK 공항을 통해 왔다”는 귀띔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이 확정돼 사전 답사를 온 것인가 했지만 뭔가 이상했다. 방문지 분위기를 가장 잘 아는 수많은 현지 인력을 두고 의전비서관이 오는 건 이례적이었다. 그냥 비서관이 아니라 문 대통령의 ‘이미지 연금술사’ 아닌가.
탁 비서관이 BTS의 유엔 공연이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관람을 준비하러 움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 임기 최후의 카드이자 마지막 유엔 연설 주제였던 ‘한반도 종전선언’ 관련 이벤트를 추진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뉴욕엔 유엔에 파견된 북한 외교관들도 있고, 그들을 먹여 살리다시피하는 친북 교포 단체들이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이들을 엮어 ‘평화쇼’를 하려는 문 정부의 시도를 여러 번 감지했다. 하지만 일이 제대로 진행되는 걸 본 적이 없다. 탁 비서관이 다녀가던 그때, 유엔에선 각국 엘리트 외교관과 정보 분석가 수백 명이 북한이 국제 제재를 어떻게 위반하고 핵시설을 어디에서 가동 중인지 담은 보고서를 만들고 있었다. 또 한편에선 한국만 빠진 채 북한 인권결의안이 작성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청와대 쇼 전문가가 다녀간다 한들 제대로 된 쇼가 진행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쇼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정치는, 특히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제에선 다분히 연극적 요소가 있다. 지금 국제사회는 극단적으로 다른 두 대통령의 쇼를 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다. 푸틴은 한때 웃통을 벗고 사냥하거나 말 타고 설원을 달리는 상남자 쇼로 일부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팬데믹 이후 ‘개인기’를 못 하게 된 푸틴이 강한 러시아의 환상을 충족시키려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 쇼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휴지가 된 루블을 버리고 도망치고 있다.
반면 젤렌스키는 도망칠 거라던 예상과 달리 군복 티셔츠 차림으로 결사 항전을 외치는 소셜미디어 생중계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대통령을 연기했던 배우 출신인 만큼 카메라 앵글부터 발성, “난 탈출보다 탄약이 필요하다”는 발언까지 예사롭지 않다. 영국 유명 극작가가 “가장 깊은 진실을 연기하는 세계 최고의 배우”라고 찬사하는 그의 퍼포먼스에 여성들도 무기를 들고, 글로벌 기업들이 러시아 사업 철수로 이익을 포기했다.
세계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열광하는 것은 불의가 득세하고 선악 구분이 모호해진 세상에서 사람들이 리더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진실 앞에 정직하고, 약자의 편에 서고, 자신의 소중한 것마저 버리는 결단력으로 우리에게 영감을 달라는 것이다. 모두가 그런 ‘쇼’에 목말라 있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조선일보(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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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거들어도 함께 싸워주진 않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국제사회, 결의안·제재로 압박
미·서방 군사적 개입은 꺼려.. 혈맹 없는 설움이란 이런 것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0일이 넘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핵무기와 제2의 군사력을 가진 러시아의 공격에 맞서 홀로 참혹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 서방 지도자들은 목청 높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있다. 반면 유엔 안보리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러시아 규탄 결의안을 시도했지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됐다. 유엔은 우회로를 택해 긴급 특별총회를 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구속력은 없으니 상징적인 의미뿐이다.
미국 상원은 푸틴을 전범으로 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8억달러 규모의 군사장비를 지원하고, 푸틴의 이너 서클인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들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유럽 주요 국가들의 의회도 저마다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폴란드와 체코, 슬로베니아 등 3국 총리는 지지와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전장 한가운데인 키이우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소셜미디어엔 러시아군에 대항해 피눈물 나는 항전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응원이 넘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위기의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고, 화염병을 든 우크라이나인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운영하는 현지 ‘에어비앤비’에 예약을 했다가 ‘노쇼’함으로써 미리 지불한 숙박비를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직접 기부하는 창의적인 지원 방안도 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말로 거들고 돈으로 지원할 뿐 같이 어떤 나라도 같이 피 흘려 주지는 않는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그토록 애원해도 미국은 비행금지 구역 설정이나 전투기 지원은 망설이고 있다. 미국과 서방이 군사 개입을 망설이는 이유는 수십 가지다. 우크라이나가 동맹국도 아니거니와 핵을 가진 러시아와의 충돌을 원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쟁이 우크라이나를 넘어 확대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장기화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처음 일어난 침략 전쟁이다. 한 국가가 자국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타국을 무력으로 침공하는 일은, 적어도 EU를 만들어낸 유럽에선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푸틴이 등장하면서 오랜 규범은 깨졌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긴장하고 있다.
나토 헌장 제5조는 ‘회원국 한 곳에 대한 군사 공격은 회원국 전체에 대한 침공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러시아와 국경을 이웃한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회원국이 되어 이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여러 번 문을 두드렸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러시아의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이 같은 움직임에 거꾸로 자국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겠다며 침략을 감행했다.
현재 진행 중인 협상 관련 보도를 보면, 푸틴이 공격을 중단하고 철군 대가로 원하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란 약속이다. 우크라이나를 중립국화 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요약하면 우크라이나가 서방과의 연결점을 끊고 동맹 없는 나라가 되어 사실상 러시아에 의존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라로 만들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오늘의 우크라이나 사태는 북한이 왜 그토록 한미 관계를 이간질하려 하는지를 단번에 이해시켜준다. 우크라이나가 처한 위기를 보면서 ‘만일 우리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이라고 자문하게 된다. 위기 시 같이 싸워줄 혈맹이 없다면 우리도 또 다른 우크라이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인선 부국장, 조선일보(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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兄弟와 패거리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주민등록증, 시쳇말로 ‘민증’에 찍힌 나이를 두고 누가 형이고 동생이냐를 가리는 일은 우리에게도 제법 익숙하다. 남성들끼리 형제(兄弟) 서열을 정한 뒤 호형호제(呼兄呼弟)하면서 더 가깝게 지내기 위한 걸음이다. 따라서 ‘형제’는 단순히 핏줄에 그치지 않는다. 남성들끼리 우의를 깊이 다지는 사회적 관계 설정의 한 방식으로 쓰일 때가 많다. 그런 우리보다 몇 수 높게 이 ‘형제’ 개념을 활용하는 곳이 중국이다.

공자(孔子)의 ‘논어(論語)’에는 “세상 안에서는 모두 형제다(四海之內皆兄弟也)”라는 어구가 나온다. 당시 중국의 범주는 매우 작았겠지만, 그 안의 사람은 모두 형제처럼 평화롭게 잘 지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형을 일컬을 때 요즘 중국인들은 “거거(哥哥)”라고 한다. 그 한자(漢字)는 남의 성씨(姓氏)를 얕잡아 부를 때 쓰는 우리 용례와 많이 다르다. 본래는 당(唐)나라 무렵에야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외래어라는 설명이 있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거나 경험이 풍부한 사내를 호칭할 때도 많이 쓰인다. 복수(複數)를 뜻하는 문(們)이라는 글자를 붙여 ‘가문(哥們)’이라고 적으면 혈연 관계를 넘어서 ‘뜻을 함께하는 사내 집단’이라는 의미로 변한다. 그러나 대개는 ‘강호(江湖)’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겉으로는 의리를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같은 이익으로 묶인 패거리 모임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죽음을 각오하고 똘똘 뭉쳐 행동하는 그룹인 ‘사당(死黨)’도 그와 비슷한 말이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의 행보가 큰 관심이다. 경제나 군사적으로 중국의 후원을 크게 기대하는 눈치다. 중국이 러시아와 전략적으로 이해관계가 깊다 하더라도 그에 호응하면 곤란하다. 국제적으로 위상이 크게 추락하기 때문이다. 푸틴의 불장난에 맞장구친 그의 ‘가문’과 ‘사당’의 패거리로 말이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조선일보(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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