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영혼, 신분, 돈]
[富者의 옷장]
옷은 영혼, 신분, 돈
[조용헌 살롱]
대통령 영부인의 옷 문제가 사그라들지 않고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논란이 되면 칼럼 소재이다. 옷이란 무엇인가? 동아시아의 고대인들에게 옷은 영혼을 상징하였다. 필자가 어렸을 때 장례를 보면 죽은 사람을 땅에다가 묻고 난 후에는 그 사람이 생전에 입었던 옷을 불에다가 태우는 관습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재사용할 수도 있는데 굳이 태울 필요가? 옷에는 망자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불로 태워야만 했다. 아깝지만 망자의 영혼이 붙어 있는 옷을 산 사람이 입으면 귀신이 붙는다고 믿었던 것이다.
옷에는 혼이 깃들어 있다. 일본의 한자 권위자였던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는 의지한다는 의미의 ‘依’ 자를 ‘사람에게 의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해석한다. ‘사람에게 혼을 옮긴다’는 의미라고 본다(’주술의 사상’). 옷은 혼령이 옮겨가는, 즉 빙의(憑依)되는 매개물이다. 여기에는 육체라고 하는 것이 영혼을 감싸는 하나의 옷이라고 보고, 육체가 죽어버리면 일상의 옷이 육체 역할을 대신한다고 믿는 사생관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요즘에도 꿈을 해석할 때 옷을 갈아입는 꿈을 꾸면 신분이 바뀌거나 직장 또는 상황이 바뀌는 의미로 해석한다.
필자도 베스트셀러를 냈을 때는 번쩍거리는 금단추가 달린 옷으로 갈아입는 꿈을 꿨던 적이 있다. 좋은 옷으로 갈아입으면 길몽이고 다 떨어진 허름한 옷을 입으면 부도날 조짐이다. 인도의 카스트에서도 상류층 브라만 계급은 흰옷을 즐겨 입고, 밑바닥의 수드라(천민) 계급은 검정 계통을 입었다. 흰색 옷은 정화된 영혼을 상징한다. 불교의 흰색 옷을 입은 관음보살인 백의관음(白衣觀音)도 같은 맥락이다. 용도 여러 색깔의 용 중에서 백룡(白龍)이 가장 수준 높은 용에 해당한다. 인도인들에게 검정은 업장(karma)이 두터운 색으로 여겨졌다.
샤넬이 선호했던 ‘블랙 앤드 화이트’ 패션은 사제 계급인 브라만 색과 밑바닥 색의 기묘한 결합이다. 지금은 신분제도가 사라졌다. 신분제도가 없어진 이후의 옷은 돈을 나타낸다. 돈이 신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수천만원씩 하는 명품 패션은 돈으로 살 수 있고, 이 명품 패션은 사이비(似而非) 브라만 계급을 배출해 내고 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이 명품 앞에서 기가 죽고, 계급적 열등감을 느낀다. 권력은 왜 잡는가? 명품을 걸쳐서 서민들에게 위압감을 주고 ‘네 인생은 별 볼일 없다’는 계급적 열등감을 주려고 잡는 것이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조선일보(2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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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者의 옷장
'부자학(富者學)' 연구로 유명한 대학교수가 서울 성북동 부자들의 집 옷장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옷장 속 옷들이 뜻밖에 단순하고 허름한 데 놀랐다고 했다. 예상보다 가짓수가 많지 않았고 명품도 몇 벌밖에 안 됐다. 그는 "명품은 부자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것이지, 진짜 부자들은 명품도 적게 사서 오래 입더라"고 했다. 오히려 그는 옷장 깊숙한 곳에 금고가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서른한 살 페이스북 CEO(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재산이 54조원에 이른다. 그가 그제 자기 페이스북에 "육아 휴가 후 복귀 첫날, 뭘 입어야 할까?"라는 글과 함께 집 안 옷장 사진을 올렸다. 옷장에는 디자인이 똑같은 회색 반팔 티셔츠 아홉 장, 지퍼와 모자가 달린 진회색 '후드 집업' 여섯 벌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빛깔이 짙고 옅을 뿐 그 옷이 그 옷인데 무엇을 고를지 고민한다며 애교 있는 엄살을 부린 셈이다.

▶저커버그는 회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행사장에 나타나곤 한다. 몇 년 전 남성 패션잡지 에스콰이어는 그를 '옷 못 입는 최악 유명 인사, 워스트 드레서'로 선정했다. 에스콰이어는 "정장을 입고 나와야 할 행사에 그런 차림으로 등장할 수는 없다"며 멋진 코트를 입고 다닌 빌 게이츠와 비교했다. 그러자 저커버그는 "결정해야 할 사항을 최대한 줄이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회사와 사회를 위해 고민할 일이 많은데 옷차림에 신경 쓸 새가 어디 있냐는 뜻이다.
▶스티브 잡스도 지루할 만큼 검정 터틀넥과 청바지를 고수했다. 그의 옷장을 열면 두 가지 옷이 수십 벌 걸려 있을 거라고들 했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회사 샤오미의 레이쥔 CEO도 신제품을 소개할 때 잡스처럼 청바지에 검정 티셔츠 차림으로 등장한다. 한국에선 차병원그룹 차광렬 총괄회장이 잡스처럼 검은색 터틀넥을 즐겨 입는다. 일본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창업주는 공식 행사에서도 2만~3만원대 중저가 유니클로 옷을 입었다.
▶옷이 날개라지만 요즘엔 꾸미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멋을 내는 '놈코어(Normcore)' 스타일이 유행이라고 한다. '평범하다'는 '노멀(normal)'과 핵심을 뜻하는 '코어(core)'를 합성한 말이다. 저커버그나 잡스 스타일은 놈코어라기보다는 단순한 생활을 추구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생겨났을 것이다. 일상은 무미건조하게 꾸리면서 겨냥하는 목표에만 모든 것을 쏟아붓는 삶이다. 저커버그의 옷장에서 한 곳에 몰두하는 천재들의 치열함을 다시 본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16-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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