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정신 ‘매화’
[조용헌 살롱]
유교 문화권의 학자 관료들이 특별한 의미를 붙여서 사랑한 꽃은 매화와 국화이다. 추위와 서리를 맞으면서 피는 꽃이라는 점 때문이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실패를 경험하고 외로움과 고통을 겪는다. 그 쓰라림은 버티기 어렵다. ‘내 팔자는 이런 식으로 끝나는 것인가!’ 인생의 나락에 떨어졌다고 느낄 때 매화와 국화가 달래준 것이 아닌가 싶다.
국화를 사랑했던 대표적 인물을 꼽는다면 ‘귀거래사’의 정신을 상징하는 도연명을 들 수 있다. 매화는 누구인가? 퇴계 선생이 아닌가 싶다. 퇴계는 사화(士禍)에 걸리거나 당쟁에 엮여서 유배를 경험하지 않은 독특한 인물이다. 핍박받고 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화를 광적으로 좋아했다는 점은 이채롭다. 퇴계만큼 매화를 아꼈던 인물은 한중일 삼국에 없는 것 같다.

꽃으로서 좋아한 정도가 아니다. 퇴계는 매화를 자신의 또 다른 자아로 여기는 경지로까지 나아갔다. 자기 내면세계에 매화가 자리 잡고 있었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확인할 때마다 매화에게 질문을 던졌고, 어떤 때는 매화가 퇴계에게 말을 걸기도 하였다. 퇴계는 돈과 ‘가오’가 보장되는 서울의 출세길을 뿌리치고 안동 도산으로 귀향길을 떠나면서 자신이 아끼던 ‘분매(盆梅)’에게 작별시를 써준다. “도산으로 돌아가는 길 그대와 함께 못 가서 아쉬움이 크구려(東歸恨未携君去), 나 없는 사이에 서울의 먼지 속에서도 기품 있는 모습 잘 간직하고 있게나(京洛塵中好艶藏).”
퇴계의 이 시를 받고 ‘분매’는 이렇게 답한다. “자네도 옥설(玉雪) 같은 맑고 진실한 마음을 잘 보존하고 있게나(玉雪淸眞共善藏).” 퇴계의 제자 김취려는 선생이 서울 거처에 놓고 갔던 분매를 이듬해에 사람을 시켜 도산에다가 보냈다. 도산에 도착한 분매를 보고 퇴계는 이렇게 반가움을 표했다. “자네가 만겹의 풍진을 벗어나서 강호에서 한가롭게 살고 있는 삐쩍 마른 늙은이와 같이 놀려고 왔구려(脫却紅塵一萬重 來從物外伴癯翁)”. 퇴계는 죽기 직전에도 ‘매화에게 물 줬는가?’ 하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서울 삼청동에 있는 금융연수원은 역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인수위라는 장이 서는 특별한 장소이다. 이 앞을 지날 때마다 특별한 냄새가 난다. 금융연수원을 들락날락하는 사람들 표정을 보면 왠지 기대감에 들떠 있다. 히로뽕 맞은 사람들 같다. 벼슬 줄을 잡았다는 기대감 때문일까. 왜 퇴계는 이 좋은 길을 마다하고 도산서원 골짜기로 가서 매화 향이나 맡았던 것일까!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조선일보(2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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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의 畿湖南人 집안
조선시대 남인(南人)은 야당을 많이 했다. 노론(老論)은 여당을 주로 해 권세도 있고 돈도 있었지만, 만년 야당이었던 남인들은 벼슬도 못하고 배가 고픈 한사(寒士)였다. 노론이 모란이었다면 남인은 추위 속에서 꽃을 피우는 매화였다고나 할까. 남인도 영남남인(嶺南南人)과 기호남인(畿湖南人)이 있다. 퇴계학파를 중심으로 하는 경상도는 인조반정 이후 대부분이 남인이었다. 노론이 거의 없었으므로 영남은 배는 고팠을지언정 단결은 잘됐다. 기호지역은 노론과 남인이 6대 4로 섞여 있었다.
전라도에서는 삼국시대 이래로 가장 돈이 많았던 나주(羅州)가 남인의 본부였고, 나주를 둘러싼 주변 지역이 모두 노론이었다. 기축옥사(己丑獄事·1589)와 무신란(戊申亂·1728)을 거치면서 나주의 남인들은 노론의 공격을 받고 초토화됐다. 노론의 집중 포화를 받고도 살아남은 기호남인 집안이 해남의 고산 윤선도 집안, 무안(務安)의 무안 박씨(다산·茶山 전문가 박석무도 이 집안)다.
순천의 양천 허씨(陽川 許氏) 집안도 남인 집안의 가풍을 유지하고 있다. 국회부의장과 5선 의원을 지낸 허경만(許京萬), 농림부장관과 학술진흥재단 이사장을 하면서 'HK(human Korea) 교수' 제도를 도입한 허상만(許祥萬), '식객'으로 유명한 만화가 허영만(許英萬)이 이 집안 '만'자 돌림이다. 순천 허상만 집에 놀러가니까 방안에 놓인 '책궤'가 눈에 들어온다. 책궤는 책을 보관하는 궤짝이다. 근래 소목장에게 600만원을 주고 만들었다. 재료는 느티나무인데, 가로 106, 세로 53, 폭 55㎝ 크기다. 돈 궤짝과 비슷한 모양이다. 느티나무는 무늬가 좋아 자꾸만 만져보고 싶다. 책궤 가운데 박힌 검은색 열쇠 모양의 무쇠 장석이 무게감을 더한다. 이 책궤 안에는 기호남인 집안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족보와 고서들이 차곡차곡 보관돼 있었다. 장관 시절부터 민속주에 애착을 가졌던 허상만은 요즘 납월홍매(臘月紅梅)라는 민속주 개발에 취미를 붙인 상태다. 납월은 12월이다. 섣달에 피는 홍매는 끊어질듯 끊어지지 않는 기호남인의 전통을 상징하는 술이라고 한다.
-조용헌, 조선일보(1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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