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 .. 尹, ‘다시 대한민국’ 이룰까] [윤석열 정부의 ‘주제’는 무엇인가]

뚝섬 2022. 4. 22. 06:36

[세계화 올라탄 30년 전처럼... 尹, ‘다시 대한민국’ 이룰까]

[윤석열 정부의 ‘주제’는 무엇인가]

 

 

 

세계화 올라탄 30년 전처럼... 尹, ‘다시 대한민국’ 이룰까

 

[박성민의 정치 포커스]

韓, 탈냉전 시대 기회 잡아 번영하는 동안 러는 蘇 회귀, 中은 독재화, 北은 핵 가져
공산국가 향한 ‘햇볕정책’ 다 실패로 판명… 대전환 시대에 우리 정치는 ‘막장 드라마’
민주당, 이성 잃고 민주주의 자해극 벌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에 북한이 미사일 시위와 핵 위협을 했다. 지난 30년 공산국가를 향한 ‘햇볕 정책’은 모두 실패했다. 러시아는 여전히 소비에트 제국 위상을 그리워하고, 중국은 부유해졌지만 민주화로 이행하지 않았고,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미국·유럽연합(EU)은 ‘그들이 변할 것’이라고 오판했다.

 

푸틴과 시진핑의 지지 기반은 놀랍게도 ‘MZ세대’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이 ‘쇼비니즘’에 사로잡힌 이유는 뭘까. 스위스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김정은에게 걸었던 기대가 헛된 것처럼 이들에게 걸었던 변화의 기대도 허탈하다.

 

냉전 끝 무렵을 또렷이 기억한다. 고르바초프는 1988년 “아무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으며 사회주의 발전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신(新)베오그라드 선언’을 발표한다. 이로써 “사회주의 진영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별 국가의 주권은 제한될 수 있다”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은 폐기됐다. ‘제한 주권론’이라 부른 브레즈네프 독트린은 체코 ‘프라하의 봄’을 진압한 명분이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됐다. 우리는 역사적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990년 한·소 수교, 1991년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1992년 한·중 수교가 숨 가쁘게 이어졌다. 누구나 냉전이 끝난 건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탈냉전과 함께 오고 있었던 더 큰 변화를 눈치 챈 사람은 많지 않았다.

 

‘Globalization’은 처음에는 ‘지구촌화’라고 번역되었다. 그만큼 ‘세계화’에 순진했다. 유명한 교수가 “세계화 그거 별거 아닙니다. 국제화를 좀 쎄게화하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하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훗날 토머스 프리드먼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세계화의 의미를 설명해 줄 때까지는 무서운 노림을 알아챈 사람이 몇 안 됐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구호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는 국제화와 세계화를 잘 상징한다. ‘서울은 세계로’가 국제화라면 ‘세계는 서울로’가 세계화다. 국제화가 나가는 것이라면 세계화는 들어오는 것, 즉 ‘개방’이다. 쌀·금융·법률 시장을 여는 것이다. 그땐 몰랐다.

 

세계화는 미국이 냉전 시대에 빌려준 ‘빚’ 받으러 온 것이다. 그 당시 세계화를 추진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었다. 김영삼 정부는 1994년 호기롭게 ‘세계화 추진 위원회’를 출범시켰는데,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했다면 ‘세계화 대책 위원회’를 만들어야 했다.

 

세계화(렉서스)에 올라탈 것인가, 아니면 정체성(올리브나무)을 지킬 것인가. 우리는 세계화를 택했다. 옳은 선택이었다. 한국은 세계화 최대 수혜자다. 세계화 탓에 양극화가 심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세계화 덕에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

 

1990년대는 ‘리엔지리어링’ ‘리스트럭처링’ ‘다운사이징’ ‘아웃소싱’ 등 새로운 경영 용어가 쏟아지던 시대였다. 세계는 빠른 속도로 묶이고 있었다. 세계는 평평해졌지만 평등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승자로 보인 나라조차도 안으로는 양극화와 일자리 소멸이라는 골병이 들어가고 있었다. 세계화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계화를 선도했던 미국과 영국이 먼저 발을 뺐다. 2016년 영국은 ‘브렉시트’를 결정했고,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중국을 상대로 패권 전쟁을 선포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영국 모두 ‘찬란한’ 제국의 위상을 되찾고 싶었다. ‘소박한’ 중산층 삶을 잃어버린 대중은 분노했다. 이들의 분노와 증오를 숙주 삼아 ‘쇼비니즘’과 ‘포퓰리즘’이 확산했다.

 

제국들이 렉서스(세계화)를 버리고 올리브나무(정체성)로 돌아가자 하나로 묶였던 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 체인’이 곳곳에서 끊어졌다. 얼마 전까지 인터넷·플랫폼·AI·블록체인 같은 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는 줄 알았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식량·에너지·원자재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중이다. “맥도널드가 진출한 나라 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토머스 프리드먼 가설도 깨졌다.

 

이 새로운 흐름을 ‘탈세계화’로 부를지 아니면 ‘블록화’로 부를지는 모르겠으나, 세계화 덕에 선진국이 된 우리로서는 큰 위기다. 30년 전처럼 잘 대응할 수 있을까. 지난 30년간 우리는 경제 정책과 안보 정책을 놓고 큰 논쟁이 있었다. 보수는 ‘더 큰 대한민국’(성장), 진보는 ‘더 따뜻한 대한민국’(분배)을 앞세웠다. 진보는 “평화가 경제”라고 주장했고, 보수는 “경제가 평화”라고 맞받았다. 결과적으로 진보는 (북한에 대해) 순진했고 보수는 (약자를 돌보는 데) 게을렀다.

 

돌이켜보면 냉전이 끝나고 세계화가 시작되던 때 우리는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1987 체제’로 국민의 에너지를 하나로 묶을 수 있었고, 담대한 ‘북방 정책’과 호기로운 ‘세계화 추진 위원회’를 결단할 지도자도 있었다.

 

역대 정부 모두 국제 정치와 글로벌 산업 흐름 속에서 시대적 소임을 그런대로 잘 해냈다.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기꺼이 ‘지지자에게 욕먹을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난 10년은 극단적 진영 싸움 때문에 ‘비토크라시(vetocracy·상대 정책, 주장에 무조건 거부부터 하는 파당 정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5년은 최악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지자에게 욕먹을 용기’가 없었다. 그가 ‘정치 훌리건’의 난장을 방치 내지 방조했기 때문에 민주주의, 법치주의, 공론, 엘리트 관료 시스템 모두 망가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검찰을 악마화한 막장 드라마를 5년 내내 찍고 있다. 드라마가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다. 민주당이 이성을 잃고 자기들이 쟁취한 ‘민주주의’를 자해하고 있다.

 

‘다시, 대한민국!’을 내건 윤석열 정부가 30년 만에 다시 맞는 역사적 대전환 속에서, 30년 전 보수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도약시킬 수 있을까.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조선일보(22-04-22)-

_______________________

 

 

윤석열 정부의 ‘주제’는 무엇인가

 

[박정훈 칼럼]

어떤 비전으로 국정을 차별화하고
어떤 어젠다로 존재 이유를 증명할 건가
이 질문에 윤 인수위는 아직껏 제대로 된 답을 못 내놓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지난 10일 서울 통의동에 마련된 인수위 사무실에서 정호영(오른쪽에서 둘째) 복지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한 8개 부처 장관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인수위가 지난 한 달여 동안 했던 일을 생각해본다. 청와대 집무실의 용산 이전 문제가 모든 것을 다 집어삼킬 만큼 압도적이었다. 이 이슈 하나로 절반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 계산법을 만 나이로 통일한 것, 다주택자 양도세를 1년 감면키로 한 것도 떠오른다. 그 밖에도 각 분야에서 많은 과제들을 내놓긴 한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게 없다. 그만큼 작고 자잘한 각론에 매달렸다는 뜻이다. 5년 간 나라를 어떻게 이끌고 가겠다는 큰 그림의 청사진은 보여주지 못했다.

 

역대 정권은 저마다의 통치 플랜을 갖고 있었다. 김영삼 정부는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청산이라는 무혈 혁명을 단행했고, 김대중 정부는 외환 위기 극복과 디지털 경제화로 족적을 남겼다. 논란은 있지만 박근혜·문재인 정부에도 창조 경제, 적폐 청산이란 정권 차원 어젠다가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주제’는 무언가. 어떤 비전으로 국정을 차별화하고 어떤 전략으로 정권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것인가. 이 질문에 윤 당선인과 안철수 인수위는 아직껏 제대로 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윤 당선인이 가장 힘주어 말한 것은 ‘공정과 상식’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국정 비전이 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인권·법치가 특정 정권의 전유물일 수 없듯, 공정·상식 또한 물과 공기처럼 지극히 당연한 국가의 기본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난 몇 년간 주목받았던 것은 문재인 정부의 불공정·비상식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뿐이다. 문 정권이 끝나는 순간 공정·상식의 프레임도 제자리로 돌아가야 맞는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윤 당선인 자신이 불공정 논란에 휩싸여 있다.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은 ‘조국 사태’의 복사판과도 같다. 자기가 간부로 있는 병원에서 자녀들이 인턴을 하고, 논문 저자로 등재하는가 하면, 동료 교수들이 높은 면접 점수를 준 덕에 두 자녀가 의대 편입에 성공했다. 검증팀이 이런 의혹을 못 걸러낸 것도 실망이지만 “확실한 팩트가 없다”는 이유로 싸고 도는 윤 당선인이 스스로 ‘윤석열다움’에 먹칠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장 큰 정치 자산에 흠집이 생겼다.

 

한 정권의 ‘주제’란 그 정권이 명운을 걸고 추구하는 국정 지향점을 말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보면 윤석열 정부의 지향점은 ‘전임 정권 지우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제, 재정, 부동산, 대북·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문 정권의 기조를 뒤집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임자가 워낙 국정을 망쳐 놓은 탓에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 정부 정책만 아니면 된다’는 이른바 ‘ABM(Anything But Moon)’이 새 정부의 국정 어젠다일 수는 없다. 전임자 부정(否定)을 넘어, 건설적이고 미래 지향적 비전을 제시해야 된다는 뜻이다.

 

윤 당선인은 문 정권의 ‘인사 사유화’와 결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첫 내각의 면면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오랜 지기를 복지부 장관에, 고교 후배를 행안부 장관에, 최고 심복을 법무부 장관에 기용했다. 절친하다는 대학 동기를 감사위원에 보내기도 했다. 윤 당선인은 할당·안배 없이 실력만 따졌다고 하지만 장관 후보들이 과연 그 분야 최고 전문가인지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윤 당선인은 잘 아는 사람만 쓰는 타입이라고 한다. 인재 풀을 좁게 가져가는 것은 치명적 패착이 될 수 있다. 문 정권의 실패도 내 편만 쓴다는 진영 인사 탓이 컸다.

 

윤 당선인은 전임자의 재정 포퓰리즘을 매섭게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윤 정부 역시 현금 퍼주는 공약을 강행하겠다고 한다. 자녀 낳은 부모에게 1200만원씩 주고, 고령자 기초연금을 월 10만원, 병장 월급은 200만원까지 올리겠다고 한다. 이 세 가지 현금 복지만으로도 연 17조원이 필요하다. 그토록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던 윤 당선인이 맞나 싶다. 정체성이 혼란스럽다,

 

윤 당선인은 ‘불통(不通)의 통치’를 끝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몇몇 현안에서 보여준 그의 고집은 소통이나 통합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불렀다. 충분한 논의 없이 집무실 용산 이전을 밀어붙인 것, 여당 반발이 뻔한 한동훈을 법무장관에 지명한 것, 복지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들에 침묵하는 것 등이 그 예다. 마이 웨이를 고수하는 윤 당선인을 보며 전임자와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권 출범을 3주 앞둔 지금쯤이면 5년 국정의 마스터 플랜과 분야별 계획이 세워져 있어야 한다. 골든 타임을 허비한 채 철학 빈곤과 준비 부족 상태로 윤 정부 5년의 막이 오르게 됐다. 안타깝게도 출발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박정훈 논설실장, 조선일보(22-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