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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과 정치] ['예능형' 정치 인재] [哀悼마저 '감 놔라 배 놔라']

뚝섬 2022. 4. 22. 06:36

예능과 정치

 

1997년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가 TV 예능에 출연했다. 노타이 차림으로 나와 “나는 알부남(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이 아니고 본부남(본래 부드러운 남자)”이라 했다. 부인 이희호 여사가 전화로 연결되자 “당신, 사랑해요”라고도 했다. 사별한 첫 부인 차용애 여사를 언급할 땐 “고생만 시켜 굉장히 가슴 아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예능 출연 효과는 컸다. 단숨에 지지율이 3~4%p 올랐다. 정치인 예능 출연이 그때 본격화됐다고 한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에겐 정치 등용문이 예능이었다. 2009년 ‘무릎팍도사’ 출연을 계기로 벤처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이던 2003년 ‘느낌표’에 출연해 청소년이 읽을 책을 권했다. 재직 중 예능에 나온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2012년 대선에 출마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힐링캠프’에서도 맞붙었다.

 

▶정치인들은 예능 출연의 효과로 인지도 확산과 이미지 제고를 꼽는다.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성남시장이던 2017년 ‘동상이몽’에 고정 멤버로 11회나 출연하자 특혜 시비가 일었다. 이낙연·박원순·오세훈·원희룡·홍준표·나경원·박영선 등 정치인들도 예능 출연 경력을 갖고 있다. 각종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지난 대선에선 후보들이 유튜브 예능에서 개인기 대결을 펼쳤다. 시청률 오른다고 방송들도 정치 예능을 좋아한다.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출연한 예능은 동 시간대 1위를 찍었다.

 

▶윤석열 당선인이 20일 역대 당선인 신분으론 처음으로 예능에 출연했다. “숙면이 안 된다”며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토로했다. 시청률은 높지 않았다고 한다. 후보 시절 예능에 나왔을 때는 ‘계란말이’ 특기가 히트를 쳤지만 이번엔 그런 대박 상품은 없었다는 평가다.

 

▶윤 당선인 예능 방송이 나가자 돌연 문재인 청와대가 “지난해 문 대통령의 예능 출연을 해당 방송에 문의했다가 거절당했다. 제작진 의사를 존중해 더 이상 요청하지 않았다”고 끼어들었다. 자신들도 예능에 나가고 싶었지만 밀어붙이진 않았다는 것이다. 문 정권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5년 내내 방송을 정권 응원단으로 만들었다. 그 방송을 통해 국정을 TV 쇼로 만들었다. ‘대통령과 국민 간 대화’는 각본에 따른 예능이나 다를 게 없었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탄소 중립을 선언할 때는 공영방송에 컬러 화면 아닌 흑백 화면을 내보내게 했다. 예능 좋아하던 문 대통령이 임기 말에 다른 사람의 예능을 보고 심사가 편치 않았던 것일까.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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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형' 정치 인재 

 

15대 총선을 앞두고 인재 영입으로 골머리를 앓던 신한국당 공천 실무자들이 어느 날 TV에 출연한 한 젊은 여성 변호사를 우연히 보게 됐다. "얼굴도 예쁘고 똑똑해 보이는데 누구냐?" 실무자들 입에서 동시에 이런 말이 나왔다고 한다. 이후 4선 의원까지 지낸 의원이 비례대표로 발탁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관계자는 "TV를 통한 첫 깜짝 발탁 사례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1996년 총선은 이전과 달랐다. 여당 신한국당은 홍준표·맹형규·이찬진·김문수를 영입했고, 야당 국민회의는 정동영·김한길·김근태 영입으로 맞섰다. 여야 경쟁에 곳곳에서 동시 구애가 벌어지기도 했다.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는 꼬마민주당까지 포함해 세 군데서 영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16대 총선에선 원희룡이 여야 동시 영입 제의를 받았다. 

 

▶17대 총선부터 여야가 장애인·여성 등 소수자 가운데 이른바 '스토리가 있는' 인물을 찾는 데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공감(共感) 공천'이다. 열린우리당이 소아마비 장애인에 무학(無學)인 사람을 비례대표 1번에 공천하자 한나라당은 시각장애인 공천으로 맞섰다. 이후 이런 공천을 얼마나 잘하느냐는 경쟁이 벌어졌다. 19대 총선 때 새누리당은 귀화 여성에게 공천을 주는 이벤트를 선보였다. 민주당은 전태일 여동생에다 30대 청년들 영입으로 맞섰다.

▶새누리당이 참패한 20대 공천은 거꾸로였다. 야당 민주당은 상고 출신 삼성전자 상무, 종편 출연 경찰 등 화제성 인물을 잇달아 찾아냈다. 그러자 청와대는 당이 만든 비례대표 리스트를 퇴짜 놓으며 "스토리 있는 사람을 다시 찾으라"고 했다고 한다. 며칠 만에 '여성 IT 전문가', 지뢰 사고로 다리를 잃은 군인이 발탁돼 비례 1, 2번에 배치됐다. 그 대신 경제·외교안보 전문가가 들어설 공간은 줄어들었다. 이게 '정치 인재' 영입의 한국적 현실이다.

▶며칠 전 민주당 2호 영입 인사가 자신의 과거 '미투' 논란에 휩싸여 영입인재 자격을 반납했다. 여야의 '보여주기' 영입 경쟁 속 검증 미비가 낳은 사고였다. 이번 총선에서도 여야의 영입 경쟁은 치열하다. 민주당은 소방관, 발레리나 출신 장애인 영입을 시리즈로 발표했고, 한국당은 탈북 장애인, 미투 피해자 영입으로 맞섰다. 이런 인물들이 국회에 들어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정치권의 인재 영입이 날이 갈수록 예능 프로그램식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동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0-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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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悼마저 '감 놔라 배 놔라'

 

사람은 관(棺) 뚜껑을 닫아 봐야 가치를 알 수 있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숨지자 공과(功過)에 대한 평이 쏟아져 나온다. 그는 4·19혁명으로 수립된 민주 정부를 군사 쿠데타로 무너뜨린 사람이다.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맡아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부훈(部訓) 아래 막강한 힘을 휘둘렀다. 인권 후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공헌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대한민국을 산업화 시대로 이끌고 국가의 체계를 다졌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정부는 그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조문을 가지 않았다. 201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 민주통합당은 조문사절단 파견을 주장했었다. JP는 적국(敵國) 수장만도 못한 대접을 받은 셈이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발끈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가는 마당에도 좋은 말을 못하겠다. 징글징글했다'고 쓴 뒤 방송에도 출연했다. "김종필은 총으로 권력을 찬탈했다. 독재 권력의 2인자로서 호의호식했고 민주주의를 훼손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말라. 이 자랑스러운 민주공화정 대한민국의 시간을 되돌리지 말라."

황씨에게는 그렇게 말할 자유가 있다. 애도할지 말지도 국민 각자의 자유다. 싫어하는 정치인이라고 해서 혐오를 강요할 수는 없다. 정반대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왜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을 좋아하지 않느냐"고 화를 낸다면 그것이야말로 탄압이다.

황씨의 주장이 논쟁적인 까닭은 그가 영향력 있는 폴리테이너(politainer·정치 활동을 하는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본업을 뛰어넘어 문재인을 지지하는 문화·예술계 모임 '더불어포럼' 공동대표를 맡았고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온다. 지난해 초엔 "KBS가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분은 출연이 어렵다고 통보했다"며 블랙리스트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역사는 시대 상황에 비춰 평가해야 한다. 지금 잣대로는 군사 쿠데타와 중앙정보부, 인권 후퇴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당시엔 필요악(必要惡)이 등장할 만한 세상이었기에 역사의 바퀴가 돌아갔다. 교육부는 2020년부터 쓰일 중·고교 교과서에서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가 빠진다고 발표했다. 황씨가 누리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교과서를 적폐로 몰아 비난했던 이 정부가 역사에 대한 평가도 입맛대로 바꿀까 두렵다.

죽음은 공평하다. 정치인도 사망할 때는 개인으로 죽는다. 애도할지 말지, 감 놔라 배 놔라 할 권리는 없다. JP가 생전에 지은 묘비명은 이렇게 끝난다. '되돌아보니 제대로 이룬 것 없음에 절로 한숨짓는다. 숱한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던 사람, 한평생 반려자인 고마운 아내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박돈규 주말뉴스부 차장, 조선일보(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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