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꼼수가 판치는 나라] [국민의 뜻이라는 입법 독재]

뚝섬 2022. 5. 4. 06:15

꼼수가 판치는 나라

 

[정진홍의 컬처 엔지니어링]

릴레이 꼼수로 만든 검수완박, 방탄입법
청문회마저 꼼수판… 나라 꼴이 이게 뭐냐
 

 

# 대한민국은 ‘법치’가 아니라 ‘꼼수’의 나라다. 아니 꼼수가 판치는 나라다. 지난 토요일 검찰청법 개정안에 이어 어제 형사소송법 개정안마저 국회를 통과해 이른바 ‘검수완박’ 입법이 일단락되었다지만, 개정의 전 과정은 그야말로 유례없는 ‘꼼수의 대방출’이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꼼수는 역시 여당 의원의 위장 탈당이었다. 이견 조정이 필요한 안건에 대해 제1교섭단체 소속 위원과 이에 속하지 않은 위원을 동수로 구성해 대화와 타협을 도모하라는 국회법 취지를 완전히 뒤집어 여당 의원이 자진해서 위장 탈당한 후 ‘제1교섭단체 소속 위원’에서 ‘이에 속하지 않은 위원’으로 탈바꿈해 개정안들을 무사히(?)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에서 통과시키지 않았나! 법 만들라고 뽑은 의원이 스스로 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넘어 비틀고 악용한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이보다 더 적확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을까 싶다.

 

본회의에서 회기 쪼개기 방식으로 필리버스터를 무력화시키는 꼼수는 너무 자주 반복되다 보니 이제 식상할 정도다. 이런 꼼수의 극상들을 대하다 보니, 국회법에 명시된 개의 시간을 이리저리 편의적으로 옮긴 것은 차라리 ‘귀여운’ 아니 누구 말대로 ‘앙증맞은’ 꼼수에 속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자기 임기 중 마지막 국무회의를, 국회에서 넘어온 이런 꼼수 덩어리 법을 곧장 받아내기 위해 통상의 오전 10시가 아닌, ‘검수완박’ 입법이 종료된 직후인 어제 오후 2시에 열지 않았나! 정말이지 끝까지 꼼수였다. 아니 꼼수의 팀플레이였다.

 

/일러스트=박상훈

 

# 일주일 후면 평범한 국민으로 되돌아가 초야에 묻히겠다는 대통령과, 역시 일주일 후면 야당이 될 지금의 거대 여당이 이토록 무리하게 꼼수로 점철된 검수완박 입법을 강행한 이유를 세상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것은 ‘검찰 개혁’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방탄개악(防彈改惡)’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세간에 알려졌던 것처럼 문재인과 이재명을 지키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두 사람은 명분상 내세워진 것처럼도 보인다. 검수완박 방탄개악의 진짜 수혜자는 다름 아닌 국회의원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어 보인다. 앞서 야당 원내대표가 국회의장 중재안을 덥석 물고 이것이 의총에서 추인되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번에 통과된 검수완박 방탄개악 입법은 그 논란이 되었던 중재안과 별 차이가 없다. 개정 전 검찰청법은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6대 범죄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것이 “부패·경제 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바뀐 것은 중재안과 개정안이 동일하다. 여기서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등’이란 토씨가 산 것과 ‘선거’ 항목이 빠진 것이다. 우선 ‘선거’ 항목이 빠진 이번 개정안의 통과로 여야 가릴 것 없이 국회의원들은 선거 후 6개월 동안 사실상 ‘가위눌림’을 넘어 ‘공포’로까지 여겨졌던 검찰 수사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검찰청법 개정에 따라 선거 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올해 말 폐지되기 때문이다. 결국 다음 번 2024년 총선에 출마하는 의원들은 선거법을 위반해도 검찰 수사는 받지 않게 된 것이다.

 

야당 의원들이 검수완박 중재안에 합의했다가 뒤늦게 여론의 비판 화살에 쫓겨 중재안을 뒤집고 다시 검수완박 절대반대로 돌아섰다지만, 속마음은 적어도 이 점에서만큼은 여야가 한통속이었다는 것을 국민들은 이미 꿰뚫듯 알고 있다. 그들에겐 검찰청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이유가 검찰 개혁의 완수이든, 혹은 반대하는 까닭이 국민 불편 초래이든 그것은 명분일 따름이고 진짜 속마음은 선거법을 위반해도 검찰을 피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에 안도한 것이었으리라! 결국 여야 가릴 것 없이 국회 전체가 꼼수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 일년여 전 ‘검수완박 부패완판’이란 말을 하며 검찰총장 직을 내려놨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여당의 검수완박 입법 강행에 대해 보다 직접적이고 분명한 비판을 하지 않는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대목이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애초에 국회의장 중재안을 덥석 문 것이 독단적인 행동이었다는 당선인 측 얘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검수완박 부패완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던 윤 당선인의 조용한(?) 반응은 의외가 아닐 수 없다.

 

혹자는 당선인이 검찰청법 개정안의 ‘등’ 자에 어느 정도 안도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고 이야기한다. 그 ‘등’ 자 덕분에 부패·경제 외에도 대통령령으로 얼마든지 수사 대상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란 얘기다. 일견 수긍이 가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렇게 말하는 것은 윤 당선인 본인이 ‘시행령 대통령’에 안주하겠다는 얘기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검수완박 입법의 정당성에 대해 ‘국민투표’ 하자고 말하기 전에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보다 분명하게 정리된 입장을 천명해야 하지 않겠나! 그것이 검찰총장에서 대통령으로 직행한 당선인이 결코 피해서는 안 될 첫 번째 국가적 사안에 대한 언명이기 때문이다.

 

# 검수완박 입법 강행이 어제의 일로 되어버리 듯하면서 이와 더불어 펼쳐지고 있는 새 정부 국무위원 내정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보노라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특히 사회지도층에서 꼼수는 정치의 영역을 넘어 일상으로, 아니 문화로 굳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꼼수로 덧칠 된 것 같던 교육부 장관 내정자는 어제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조국 전 장관의 아빠 찬스와 비교되어 국회 안팎에서 탈락 1순위로 꼽혀온 정호영 복지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에서는 한 여당 의원이 청문 후보자에 대해 윤 당선인 측에서 그를 살려두는 진짜 이유가 나중에 보란 듯이 버리는 카드로 쓰기 위한 또 하나의 꼼수라는 시중의 이야기를 들먹거리며 자진 사퇴를 압박하기까지 했다. 청문회마저 꼼수의 공방전이 된 셈이다.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정진홍 컬처엔지니어, 조선일보(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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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뜻이라는 입법 독재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당신이 보고서를 썼습니까?” 재판장이 물었다. “너잖아!” 다른 피고인이 손가락으로 한나를 가리켰다. “아닙니다. 내가 쓰지 않았습니다.” 검사가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보고서에 쓰인 필체와 한나의 필체를 비교해보자고 제안했다. “내 필체라고요?” 한나는 더욱더 불안한 태도를 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전문가까지 부를 필요 없습니다. 내가 그 보고서를 썼다는 사실을 시인합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중에서

 

얼마 전 대통령 당선인 진영은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논란을 국민투표로 끝내자고 제안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법적으로 불가하다고 했고, 여당은 국민투표란 히틀러가 좋아할 일이라며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부터 물어보라고 비아냥댔다. 이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법을 바꾸자고 했다. 야당도 여당의 반대야말로 히틀러식 독재라며 비난했다.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니 지혜로운 국민이 결정해주소서, 하는 모양새는 얼핏 민주적이고 국민 존중의 뜻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치인 마음대로 발의한 사안마다 투표로 결정하자며 여론 몰이를 한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국민 몫이 된다. 히틀러 시대야말로 95.7%의 투표 참여, 88.1%의 찬성이라는 국민투표의 결과였다.

 

그 시절 독일인으로 살았던 소설 속 한나는 수용소의 가스실 살상에 일조했다는 혐의로 전범재판에 선다. 함께 기소된 다른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가볍게 하기 위해 한나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운다. 한나는 읽고 쓸 줄 몰랐다. 보고서를 쓸 권한도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문맹을 수치라고 여긴 그녀는 히틀러의 하수인이라는 비난을 선택하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또 한 번의 국민투표는 필요 없었다. 여당이 국회에서 관련 법안들을 강행 처리, 모두 통과시켰다. 국민투표로 얻은 과반의 의석수 덕분이다. 검수완박은 다수당 마음대로 해도 돼, 하고 허락한 국민투표의 결과물인 셈이다. 시대의 불행은 통치자들의 권력욕과 오판 그리고 무책임으로 시작된다. 국민의 뜻이라는 명분으로 완성된 입법독재는 결국 한나처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희생으로 귀결된다.

 

-김규나 소설가, 조선일보(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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