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적 ‘상X들 시대’ 온 줄 몰랐으니]
[성공하고도 실패한 文의 ‘주류세력 교체’]
초현실적 ‘상X들 시대’ 온 줄 몰랐으니
[양상훈 칼럼]
지난 수년간 벌어진 안 믿기는 일들
염치없는 사람은 못 할 일이 없다는데
염치 포기 정치는 혐오 넘어 두려움까지
지난 수년간 우리 정치에서 벌어진 일들은 초현실적이다.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지면 제 몸을 꼬집어 본다고 한다. 그게 초현실이다. 정치 세계에선 별일이 다 일어나고, 필자도 30년 가까이 온갖 일을 보았다. 그런데 대통령이 자신의 불법 혐의를 수사하는 검찰 수사팀을 인사권을 이용해 뿔뿔이 흩어지게 해 수사를 중단시키는 것은 처음 보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울산시장 선거 공작 등 정권 의혹 수사팀을 공중 분해시킬 것이란 소문이 돌았을 때 필자는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외국 체류 중 문 대통령의 ‘결행’ 소식을 듣고 초현실적이란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3일 퇴임 전 마지막 국무회의를 열고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추진한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을 의결, 공포했다. /연합뉴스
보통 사람들은 길에 떨어진 돈을 잘 줍지 못한다. 잘못이 드러나면 얼굴이 붉어진다. 염치(부끄러워 하는 마음)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염치 없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대통령은 염치가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대통령 권력으로 할 수는 있어도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스스로 멈추게 하는 것이 염치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염치가 없으면 권력 전체가 염치가 없고, 세상이 염치가 없어진다.
민주당이 압승한 지난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도 실로 초현실적이었다. 울산 선거 공작의 피의자 중 한 명이 출마한다고 했을 때 민주당 공천 경선에서 떨어질 것이라 보았다. 국민에게 회초리를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경선에서 이기더니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이겼다. 필자 예상은 다 틀렸다.
그는 이번에 문재인, 이재명 그리고 자신의 안전 보장을 위한 검찰 수사권 박탈법 추진에 앞장섰다. 피의자가 수사기관을 없앴다. 한 정당이 선거법도 마음대로 바꾸더니 수사기관도 마음대로 만들고 없앤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주위 사람들에게 ‘결국 안 될 것’이라고 했는데 다 틀렸다. 초현실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가짜 증명서를 써 준 혐의로 기소된 청와대 비서관도 국회의원이 됐다. 대통령, 청와대, 여당에 염치가 있었으면 공천을 받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국회의원이 되더니 재판을 받다가 판사에게 ‘다른 일 있으니 그만 하자’고 했다. 이 사람과 짝을 이룬 듯한 다른 국회의원은 성(性) 얘기를 심하게 하는 유튜브 방송에 계속 출연한 사람이다. 이 의원도 요즘 민주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라고 한다. 이 둘 중 한 명이 다른 한 사람에게 “ 치러 갔느냐”고 상스러운 소리를 했다. 문제가 되자 ‘짤짤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자신도 알고 세상도 다 아는데 거리낌 없이 한다. 어찌 이토록 상스러운가. 국회의원 배지를 단 그의 언행을 보면 그 자체가 초현실이다.
문 전 대통령이 국회의장을 총리로 임명할지도 모른다는 뉴스에 필자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입법부 수장이 행정부 수장의 부하가 된다는 것은 필자의 상상력이 미치는 범위 밖이었다. 이 예상도 틀렸다. 원래 민주당은 이런 정당이 아니었다. 초현실적 사태는 지난 수년간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민주당의 제대로 된 정치인들은 이 초현실의 마법에 걸렸는지 그저 숨을 죽이고 있다.
필자는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 추진에 대해 ‘문 대통령이 마지막 순간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랬더니 여러 분이 ‘아직도 문재인을 모르느냐’고 핀잔을 줬다.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인데 자기 안전을 위해 검찰을 없애는 일을 하겠느냐고 했지만 ‘염치가 없는 사람은 못하는 일이 없다’는 반박만 들었다. 결국 필자가 틀렸다. 도둑이 포졸을 없앤 이 현실은 아직도 초현실 같다.
지난 대통령 선거는 역대 최악이었다지만 진짜 최악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에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이 총리 인준을 막더라도 대통령 취임 직전에는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이 예상도 틀렸다. 총리, 장관 없이 대통령이 취임하는 초현실이 벌어졌다. 지금 민주당은 여론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선거 지면 죽는다’던 자기 말의 죄수가 돼 이 골목이 막히면 저 골목으로 그저 내달린다. 염치를 포기한 정치는 혐오를 넘어 두려움을 준다.
이재명 전 대선 후보가 국회의원 선거에 나올지도 모른다는 놀라운 뉴스에 ‘설마’라고 했다. 이번에도 사람들이 ‘아직도 이재명을 모르느냐’고 했다. 대선 후보가 대선 두 달 만에 국회의원에 나오면 사람들이 혀를 찰 텐데 그런 일을 왜 하겠느냐고 했지만 이번에도 ‘염치가 없는 사람은 못하는 일이 없다’는 반박이 나왔다. 필자가 또 틀리고 말았다. 그의 출마 선언을 보면서 한국 정치는 초현실주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치없고 상스러운 사람들이 못 하는 게 없고 안 되는 게 없다. 그걸 몰랐으니 하는 예측마다 다 틀린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라는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에서 사람이 거울을 보는데 거울에 그 사람 얼굴이 아니라 뒷모습이 나타난다. 자기 얼굴을 못 보니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이 얼마나 상스러운지도 알 수 없다. 요즈음 한국 정치와 그 정치를 지배하는 민주당을 풍자한 그림 같다.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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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고도 실패한 文의 ‘주류세력 교체’
5년 내내 밀어붙인 주류 교체
정권 교체되자 허망하게 끝나
몇 주간 우리 사회는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특이한 정권 교체를 경험했다. 후임 하는 일이 마뜩지 않다고 퇴임할 대통령이 불편한 감정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내비친 적은 없었다. 5년 만에 정권이 교체되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덕담하고 떠나는 게 정상인데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그 대신 “다음 정부는 우리 정부의 성과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다시피 하는 가운데 출범하게 돼 우리 정부의 성과, 실적, 지표와 비교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어디 잘되나 보자’는 앙심이 느껴진다. 그래서 퇴임하는 날 청와대 앞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다시 출마 할까요”라고 한 말도 단순한 농담같이 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문 전 대통령의 캐릭터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되기 전인 2017년 1월 펴낸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이유를 찾는 게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이 책에서 그는 “가장 강렬하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정치의 주류세력들을 교체해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이라고 썼다.
주류 교체 의지는 취임 후 곧바로 실행에 옮겨졌다. 전직 대통령 둘을 감옥에 보냈고, 비주류였던 김명수 대법원장을 필두로 사법부 주류도 싹 바꿨다. 2020년 4·15총선에선 팬데믹으로 인한 ‘국기 결집 효과’와 재난지원금의 힘을 빌려 180석 거대여당을 키워냈다. “한국 사회의 주류가 산업화 세력에서 민주화 세력으로 완전히 교체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수사한 뒤에는 검찰 수뇌부까지 바꿨다.
권력 핵심부만 교체된 게 아니다. 실패한 경제정책으로 혹평받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세금 일자리 등은 지지세력 확장에 효과가 있었다. 최저임금 선상에 몰려 있던 20대 직장인들은 따로 임금협상을 안 해도 연봉이 5년간 40% 넘게 올랐다. 그중엔 여성이 많다. 20대 여성 58%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은 게 국민의힘의 반(反)페미니즘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금 일자리로 생계에 도움을 받는 노인도 수십만 명이다. 포퓰리즘 정책은 수많은 이해 관계자를 만들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나는 5년 만에 주류세력 교체와 지지층 확장에 모두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마지막 주까지 유지된 40%대 지지율이 그런 생각을 뒷받침했을 것이다. 정권 교체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저는 한 번도 링 위에 올라가 본 적 없다”고 답한 데에서 ‘대선에서 진 건 내가 아니다’라는 속내가 엿보인다.
그가 뭐라고 생각하든 ‘문재인의 주류세력 교체’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바로 그 주류에게 칼을 들이댔다가 고초를 겪고 물러난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됐다. 주류 교체를 목표로 폈던 편 가르기 정치, 정책들은 더 많은 국민들에게 환멸을 줬다. 지지세력만 바라본 규제 일변도 부동산 정책, 성장률을 깎아먹은 ‘소득주도 성장’은 ‘경제에 무능한 좌파’ 이미지를 강화했다.
문 전 대통령이 애지중지 키운 주류가 이젠 교체의 대상이다. 그들의 적폐를 새 정부가 낱낱이 파헤치길 바라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거대 야당은 다음 총선까지 최소 2년간 국회를 쥐락펴락할 기세고,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공공기관장 257명은 바꿀 수도 없다. 정권 말 밀어붙인 ‘검수완박’은 자신들에게 손댈 생각도 말라는 뜻이다. 차라리 다행스러운 일이란 생각도 든다. 대통령이 작심하고 사회의 주류를 바꾸겠다고 나설 때 국민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그 끝은 또 얼마나 허망한지 이미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나.
-박중현 논설위원, 동아일보(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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